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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富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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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31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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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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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1)

DUMMY

“제 소원은 저 여인에게 작위를 하사하는 겁니다.”


황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는 몹시 흡족해하고 있었다.

만약 저 여인을 자신에게 달라고 했다면?

그는 호되게 아들을 꾸짖었을 거다.

사람의 마음은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작위를 달라는 건 신선했다.


‘나름 파격적인 소원 같은데 일말의 동요도 없네.’


검은 머리에 암청색의 눈.

율리안의 눈이 심해라면

그의 눈은 바다였다.

그 어떤 바위를 던져도 파문 없는 고요한 바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나?”


“함께 버려진 땅을 조사하고 오우거를 잡았습니다. 혁혁한 공을 세웠는데 그녀가 천출이란 이유로 이렇게 넘어가는 건 아닌 거 같아서요.”


“천출에게 작위라. 이건 내가 너무 손해보는 기분인데?”


“그러니까 소원 아니겠습니까?”


황제의 입꼬리가 또 한 번 올라갔다.


“로레인.”


“예. 폐하.”


“작위를 받고 싶은가?”


“저는 잘생긴 남자가 베푼 호의는 거절하지 않습니다. 폐하.”


황제가 호탕하게 웃었다.


“재밌어. 참 재미있는 팀이야. 모두 듣거라!”


황제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선포했다.


“로레인은 버려진 땅을 무사히 조사했음은 물론, 남아 있는 마물을 토벌하고 궁술 토너먼트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바, 바실리스라는 성과 함께 남작의 작위를 하사한다.”


“우와~”


그야말로 파격적인 보상.

토너먼트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이들이 기사서임을 받는 경우는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시상식장에서 황제가 직접 작위를 하사하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척.


“폐하의 하해와 같은 마음에 신 로레인 바실리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우리 듀발론 제국을 위해 힘써주게 로레인 남작.”


“예.”


황제가 율리안을 바라봤다.

이 정도면 만족하냐는 표정.

율리안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가 율리안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기대하고 있겠다.”


‘아.’


그저 말없이 돌아섰으면 모든 게 완벽했을 마무리.

하지만 율리안의 마음은 썩 기쁘지 않았다.

기대하겠다는 저 한마디.

좋든 싫든 황제가 자신을 주시한다는 얘기였다.

토마스와 가이렌이 그토록 바란 말이었지만

율리안은 제발 꺼내지 않길 바란 말이기도 했다.


***


또다시 일상이 시작됐다.

어떤 이들은 출근하며 후유증을 호소했고

호사가들은 여전히 대승절의 여운을 곱씹고 있었다.


“카리스 슬레인. 참 아름다운 여인이었지.”


“우리 듀발론에 검성이 재림한 거 아닌지 모르겠네.”


“얘끼! 이 사람아! 로레인 경이 훨씬 예쁘지!”


“역시 그렇지? 파하하하하! 내 태어나서 그렇게 예쁜 여인을 본 적이 없어.”


남자들 술자리에 최고 안주는 단연 카리스와 로레인이었다.

그리고 그 끝에 붙는 얘기가 있었으니


“그 두 여인을 거느린 황자 저하는 도대체···.”


“암 최후의 승자는 율리안 황자 저하지.”


“그러고 보니 이번 대승절은 율리안으로 시작해 율리안으로 끝난 거 같아.”


“이놈아! 입 조심혀! 황자 저하를 붙여야지! 율리안이 네 친구냐?”


그렇게 저자에는 카리스, 로레인, 율리안의 대한 얘기로 시끄러웠다. 그렇다면 저자에만 국한된 얘기냐 그것도 아니었다.


“필요 이상으로 자주 보는 것 같구나.”


“그러게.”


토마스와 가이렌이 찻잔을 두고 앉아있었다.

그들이 이렇게 모인 이유는 하나.

율리안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망종.

전쟁터에 가 죽으라 했더니

아예 다른 사람이 돼 돌아왔다.

은근슬쩍 부하들의 공을 가로챈 것도

이제는 업적이란 이름으로 변모했다.


“지방 귀족들은?”


“행동 빠른 놈들은 벌써 대기하고 있던데. 문 앞에서.”


“우리가 거들떠보지도 않으니 율리안의 눈에라도 들어야겠다···.”


토마스도 가이렌도 이 상황이 어이가 없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양강구도였다.

견제할 대상이 하나에서 둘이 되는 건

심력을 두 배로 소모하는 것과 같았다.


“혹시라도 회유할 생각이면 안 하는 게 좋아. 이건 빈말이 아니라 진심이야. 의심되면 직접 물어봐도 되고.”


가이렌이 그날 있었던 일을 말해줬다.

만인의 앞에서 한 증명.

그리고 건드리지 말라는 선포.


“개새끼라 목줄을 채우려 했는데 알고 보니 늑대였구나.”


두 형제가 율리안을 신경 쓰게 된 이유.

물론 율리안 개인의 능력도 있었지만

카리스가 녀석과 붙어 있는 게 컸다.

중립을 표방하는 슬레인 가가 율리안에게 붙었다는 게 세간의 평이니까.

몇몇 이들은 슬레인 가문의 사람 보는 눈을 극찬하기까지 했다.


“폐하는?”


“율리안에게 흥미가 생긴 모양이야.”


세간의 평도

귀족들의 움직임도

무시하라면 무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황제는 달랐다.

황제가 밀어주기 시작하면 형제들도 버거워진다.


“목줄을 달자니 사납게 짖을 거고 그냥 두자니 영역을 넓힐 거고···.”


가이렌이 말끝을 흐리며 토마스를 바라봤다.

뭔가 묘수가 있냐는 눈빛.

토마스는 차를 한 잔 마시며 피식 웃었다.


“너무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다. 아우야.”


“하지만···.”


“폐하가 썩 마음에 드셨다.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


가이렌이 향을 음미하며 차를 호록 마셨다.


“늑대인지 덩치만 큰 개새끼인지?”


***


“좋지 않아. 좋지 않아.”


나는 꼬리에 불붙은 고양이처럼 방을 정처 없이 배회하고 있었다.


“뭐가 안 좋아?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거 같은데?”


“로레인 언니 말대로지. 이것보다 어떻게 더 좋아?”


“그래. 나도 이젠 자유다.”


그래.

표면적으론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카리스는 자유로워졌으며

로레인은 범죄자 신분을 벗었다.

하지만 너무 눈에 띄었다.

황제는 물론 국민들에게도 너무 큰 인상을 남겼다.


“율리안. 인상 펴. 폐하도 널 다르게 보셨을 거야.”


그 부분이 가장 문제였다.

황제가 나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흥미로워 죽겠다는 그 눈빛.

그 눈빛은 앞으로 나를 계속 써먹겠다는 눈빛이었다.


“그래? 셋째는 뭐 하고 있지?”


황제가 그 한마디를 뱉는 순간

보이지 않는 이들이 사방에서 날 옥죌 것이다.


“율리 이제 뭐 할 거야?”


로레인이 소파에 기댄 채 고개만 뒤로 젖히며 나에게 물었다.


“그러게.”


사실 할 일은 많았다.

나쁜 녀석들을 죽이며 주력을 흡수하려 했다.

하지만 지금 나쁜 놈들을 족치는 건 정치적 행보로 해석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


“수련.”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거다.


***


대승절이 끝난 지 한 달이 지났다.

율리안과 카리스, 로레인의 기억이 서서히 흐려졌다.

그들을 잊고 싶지 않은 이들은


“정실은 카리스지.”


“나는 로레인이라고 본다. 카리스는 귀족가의 영애일 뿐 아직 귀족 작위는 받지 못했잖아.”


“뭐가 됐든 둘 다 율리안 황자 저하의 남자인 건 확실하지.”


이런 식으로라도 그들을 추억했고


“왜 둘인가? 아드리안 영애도 있는데.”


“캬~ 알짜배기만 가졌다. 다 가졌다. 다 가졌어.”


황궁에선 황금 여우의 주인이라 불리는 아드리안까지 율리안의 여인으로 묶었다. 그런 소문이 들릴수록 율리안은 몸을 더 바짝 엎드렸다. 방과 수련장 외에는 얼굴을 비치지 않았고 식사도 방에서 했다.


“오늘도 안 되나?”


“네. 안 될 거 같아요.”


그에게 얼굴도장을 찍으러 온 귀족들은 한 달 내내 퇴짜를 맞았다.


“오라버니!”


“루비. 왔구나!”


오직 그의 문을 넘을 수 있는 사람은 아드리안, 로레인, 카리스 그리고 루비 듀발론뿐이었다.


“이만 돌아가세. 3황자 저하는 황권에는 관심이 없는 모양일세.”


“관심이 있다면 지금쯤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여주셨어야 하는데 이거야 원.”


“잠깐 반짝였다고는 하나 제 형들한테 비빌 깜냥이 아닌 거야.”


그리고 차츰차츰 그를 찾는 귀족들도 발길을 끊었다.

하지만 그렇게 바짝 엎드린 행동이 도리어 황제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율리안은 요즘 뭐 하고 있지?”


“외출은 일절 하지 않고 훈련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호오~”


황제는 생각했다.

세력을 키우기 위한 웅크림인가?

황권에는 관심 없다는 의미에 칩거인가?


‘확인해 보면 그만.’


황제가 신하에게 명령했다.


“황자들을 불러오게.”


***


“잘 컸다. 참 잘 컸어.”


“그러게나 말입니다.”


지나가는 대신들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황제를 만나러 가는 길.

토마스, 가이렌, 율리안이 나란히 황궁 복도를 걸었다.

세 사람은 몹시도 헌앙하고 찬란했다.


끼익.


문이 열리고 황자들이 알현실에 도착했다.

황자는 턱을 괸 채 황자들을 바라봤다.


“어서오거라.”


“폐하를 뵙습니다.”


토마스가 대표로 인사했고

가이렌과 율리안이 토마스를 따라 인사했다.

황제가 자기 핏줄들을 살폈다.


토마스는 언제나처럼 자신의 존재감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가이렌은 공손한 자세로 고개를 숙이고 있어 그 속마음을 알 수 없었다.

그렇다면 율리안은?


‘왜 불렀어요?’


황제는 피식 웃었다.

예전이었다면 눈을 피하며 안절부절못할 녀석이었는데

지금은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으니.


“율리안.”


황제의 호명에 형제들이 긴장했다.


“예. 아버지.”


“최근 방에 틀어박혀 나오질 않는다던데. 혹 여인들 품에 취해 사는 건 아니겠지?”


“여인들 품에 취해 살았다면 이리 단정한 모습으로 아버지를 뵐 수 있겠습니까?”


“맞는 말이지.”


황제는 율리안과의 대화가 즐거웠다.

어떤 질문을 하든 율리안은 자신의 예상을 벗어나는 대답을 했으니까.


“맞춰보거라. 내가 왜 너희를 불렀을 거 같느냐?”


“그 질문을 하기 위해선 제 질문에 대답해 주셔야 합니다.”


“뭐냐?”


“아버지는 아직 건강하시고 노쇠하지도 않았습니다. 한데 두 형은 각자의 세력을 모으며 듀발론을 갖기 위해 물밑에서 암투를 벌이는 중이죠. 알고 계시죠?”


“!”


토마스와 가이렌이 당황했다.

그들이 다음 황권을 갖기 위해 싸우는 건 모두가 아닌 사실이지만 모두가 떠들고 다니는 사실은 아니었다. 한데 율리안은 그 벌집을 서슴없이 건드렸다.


“알고 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 중 누구를 마음에 두고 계십니까?”


토마스와 가이렌의 시선이 황제의 입에 집중됐다.

몇 초의 침묵이 지난 후


피식.


황제는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율리안의 말대로다. 나는 아직 건강학 노쇠하지도 않았지.”


아직 후계자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간접적인 대답.


“그렇다고 너희가 세력을 키우고 암투 벌이는 걸 막고 싶진 않다.”


“형제들 사이에 칼부림도 허용하겠다는 뜻입니까?”


“율리안. 나는 냉정한 군주지. 이상적인 아버지가 아니다.”


‘확실히 이 양반도 정상은 아니군.’


다른 이들이 들으면 섭섭할 수 있는 이야기.

하지만 율리안은 다이크의 이런 면이 대륙을 통일로 이끌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생각 잘 알았습니다. 이제 말씀해 주시죠. 우릴 부른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져와라.”


신하가 황제 앞에 3개의 상소문을 들고 왔다.


“이 3개의 상소문은 각지에서 이런저런 문제를 골머리를 앓고 있는 영주들이 보낸 상소문이다.”


“의견을 원하십니까? 해결을 원하십니까?”


“해결이다.”


해결이란 말에 형제들의 표정은 극명하게 갈렸다.

토마스와 가이렌의 눈빛이 빛났다.

이건 황제의 시험이었다.


“율리안.”


“예.”


“너에게 가장 먼저 선택할 기회를 주겠다.”


“기회입니까? 함정입니까?”


“잘 선택하면 쉬운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기회요. 잘못 선택하면 함정이 될 수 있겠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니까요?”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율리안은 상소문 대신 황제의 눈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이왕 갈 거면 함정에 빠지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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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시험 (2) 24.09.13 7 0 12쪽
» 시험 (1) 24.09.12 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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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이변 (3) 24.09.10 11 0 12쪽
55 이변 (2) 24.09.09 11 0 12쪽
54 이변 (1) 24.09.08 10 0 12쪽
53 대승절 (4) 24.09.07 10 0 12쪽
52 대승절 (3) 24.09.06 11 0 12쪽
51 대승절 (2) 24.09.05 14 0 12쪽
50 대승절 (1) 24.09.04 14 0 12쪽
49 복귀 24.09.03 12 0 12쪽
48 한 남자의 명예를 위하여 (5) 24.09.01 12 0 13쪽
47 한 남자의 명예를 위하여 (4) 24.09.01 12 0 12쪽
46 한 남자의 명예를 위하여 (3) 24.09.01 11 0 12쪽
45 한 남자의 명예를 위하여 (2) 24.08.31 12 0 12쪽
44 한 남자의 명예를 위하여 (1) 24.08.31 11 0 12쪽
43 바람 한 자락 (4) 24.08.30 12 0 13쪽
42 바람 한 자락 (3) 24.08.29 12 0 12쪽
41 바람 한 자락 (2) 24.08.28 13 0 12쪽
40 바람 한 자락 (1) 24.08.27 12 0 13쪽
39 버려진 땅 (4) 24.08.26 13 0 12쪽
38 버려진 땅 (3) 24.08.25 1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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