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 모으는 네크로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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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富馣)
작품등록일 :
2024.07.31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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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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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변 (4)

DUMMY

황제가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내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한다.”


국민들이 열렬히 환호했다.

상인들은 매출이 올라 좋고

나라의 녹을 먹는 이는 하루를 더 쉬니 좋고

너도나도 좋은 일.


“이번 대승절은 퍽 마음에 들어.”


대승절 기획에 자문을 맡은 도노반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대승절은 대전쟁의 승리를 기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솔로몬의 지략을 칭송하는 게 주된 목적이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토너먼트는 지략대결이어야만 했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듀발론 제국의 미래가 밝아.”


“아무렴! 대륙을 통일한 다이크 듀발론님의 피를 이어받았는데 안 뛰어나면 그게 말이 되겠나!”


“누가 후계자가 되든 우리 아이들 세대도 태평성대일 거야. 든든하다. 든든해!”


눈부신 업적을 이뤄낸 황제.

뒤를 잇는 출중한 황자들.

국민들은 자신들이 듀발론 제국에 태어난 것을 진심으로 감사해했다.


경기장은 검술 결투장 못지않게 거대했다.

무려 1만 관객을 수용했고

마법 화면이 곳곳에 띄어져 있었다.


“규모가 엄청난데?”


“폐하도 기쁘시겠죠. 자식들이 두각을 너나 할 거 없이 두각을 나타내니까. 아비 마음 다 똑같나 봐요.”


그리고 여기, 한숨을 푹푹 쉬는 아비가 있었다.

바로 아이번 슬레인.

그는 카리스가 우승할 때만 해도 날아갈 듯 기뻤다.

축하해주기 위해 딸을 찾았을 때


“이제 제가 누구와 어디를 다니든 참견하지 않는 겁니다.”


딸은 마치 남인 것처럼 사실관계부터 짚고 넘어갔다.

섭섭했다.

진심으로 축하하러 온 아비를 이리 남처럼 대하다니.

하지만 약속은 약속.

아이번은 카리스가 집을 떠나간다 한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울적했다.


“와아아아아~”


아이번이 울적하든 말든 대회는 진행된다.

경기장의 오른쪽, 왼쪽 끝.

율리안과 가이렌이 동시에 등장했다.


“율리안! 가이렌! 율리안! 가이렌!”


관객들은 편을 가르지 않았다.

너도나도 한마음으로 듀발론의 미래를 응원했다.

율리안과 가이렌이 마주 섰다.

가이렌은 사람 좋게 웃고 있었다.


“경기장이 과하게 큰 거 같네.”


“그러게나 말이다. 폐하도 어지간히 기쁘셨나 보다.”


경기장의 크기에 비해 두 사람의 대결장은 실로 조촐했다.

의자 2개와 작은 테이블 하나. 그리고 체스판이 전부였다.


‘체스라.’


율리안이 회상에 잠겼다.


[아~ 이거? 내가 살던 세계에도 있었지. 규칙은 여기랑 조금 다른데.]


대전쟁 시절,

나타샤는 쉬고 있는 병사들에게 자신의 세계에 살던 체스를 전파했다. 말의 개수와 규칙, 흑과 백으로 나뉘는 것까지 모든 게 나타샤가 설명한 그대로였다.


율리안이 회상에 잠긴 사이

관객들이 너나 할 거 없이 기립했다.

율리안과 가이렌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대륙을 통일한 대제 다이크 듀발론이 있었다.

율리안과 가이렌이 황제 앞에 무릎 꿇었다.


척.


황제가 앉고 나서야 관객들이 자리에 앉았다.


“짐은 기분이 매우 좋다.”


신기한 일이었다.

목에 힘을 준 것도 아니었는데 목소리는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가이렌. 너는 항상 침착하고 차분한 아이였지. 성군의 자질을 갖고 태어났다.”


“감사합니다.”


“율리안.”


율리안이 고갤 들어 황제와 눈을 마주쳤다.

궁금했다.

대륙을 통일한 위대한 대제.

그 대제는 율리안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최근 너의 행보가 나를 즐겁게 해주는구나. 기대하고 있겠다.”


“지켜보시지요.”


가이렌이 화들짝 놀라 율리안을 바라봤다.


‘그땐 ’감사합니다‘라고 해야지 병신아!’


율리안은 그러거나 말거나였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황제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가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짐의 핏줄을 이어받았음을 증명해라.”


“와아아아아아아!”


관객들이 넘쳐버린 용광로처럼 환호했다.

두 황자가 자리에 앉았다.


“동생에게 선은 양보하마.”


“그렇다면 기꺼이.”


책상 위, 그들만의 작은 전쟁터가 펼쳐졌다.

율리안이 폰을 움직였다.

그에 대응하듯 폰을 움직이는 가이렌.

두 사람의 성향은 5수 만에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가이렌이 신중하게 말을 움직이는 반면


“체크.”


율리안은 퀸으로 향하는 길이 열리자

과감하게 퀸의 교환을 선택했다.

그 이후로도 대국의 양상은 비슷했다.

율리안은 끊임없이 말을 교환했고

가이렌은 대응하기 바빴다.


“율리안. 궁금한 게 있다.”


“물어봐.”


“이번 대승절이 나와 형님의 알력 다툼이 될 거라는 걸 알았을 거다.”


“알고 있었지.”


“그런데 왜 참여했느냐?”


“질문이 웃기네?”


율리안은 그런 쓸데없는 질문을 하냐는 듯 룩으로 비숍을 잡았다.


“내가 참가한 거 처음부터 알고 있었잖아. 상황이 이렇게 되고 나니 의도가 궁금해진 거고.”


“의도가 뭐야.”


딱!


이번엔 가이렌이 비숍으로 율리안의 나이트를 잡아먹었다.

두 사람의 대국은 치열하게 이어졌다.

하지만 관객들은 그들의 손끝보다 그들의 입술을 주목했다.

과연 그들은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을까?


“내 질문에 대답해 주면 말해줄게. 내 의도.”


“물어봐라.”


“형은 정말로 황제가 되고 싶어?”


일순 말을 움직이는 가이렌의 손이 멈칫했다.


“무슨 뜻이야?”


“토마스가 황제를 넘보니까. 귀족들이 막아야 한다고 하니까. 등 떠밀려서 황제가 되고 싶은 거 아니냐고.”


“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


가이렌이 미친 듯 웃어 재꼈다.

누군가가 보기엔 실성한 거 같기도 했고

누군가가 보기엔 율리안을 같잖게 여기는 것처럼 보였다.


“동생아. 나에 대해 이렇게 모르다니. 이 자리에서 똑똑히 알려주마. 나는 황제가 되고 싶다.”


“어째서?”


“나는 나만의 나라를 만들고 싶다.”


형세가 전환됐다.

가이렌이 마냥 교환을 강요받던 상황.

하지만 체스판의 말이 줄어들며 자연스럽게 지략대결로 넘어갔다.

본격적인 싸움은 이제부터.


“그 나라가 어떤 나란데?”


“평화로운 나라. 그게 내가 만들려는 나라다.”


“그건 토마스 형도 할 수 있는데?”


“형님은 평화를 어지럽히려는 이가 있으면 죽이겠지. 하지만 난 품을 거다.”


“이야~ 개소리네. 체크.”


체스판이 말하는 거 같았다.

지금처럼 위기의 상황이 왔을 때

네 신념은 지켜질 수 있냐고.


“개소리라고?”


“내가 만약 네크로맨서라면 형은 날 품을 수 있어?”


말을 움직이던 가이렌의 손이 움찔했다.

율리안은 잠자코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윽고 가이렌이 말을 다시 움직였다.

자신의 말은 방어하면서도 율리안의 킹을 공격하는 절묘한 수.


“아니.”


“그래. 그래서 개소리야.”


“하지만 넌 네크로맨서가 아니잖느냐.”


“이제 인간들의 나라는 오직 듀발론뿐이야. 그리고 그 인간 중엔 네크로맨서 드루이드, 벰파이어까지. 다양한 인종이 있지. 이 모두를 과연 품고 갈 수 있을까? 그게 과연 가능할까? 형이 가능하다 해도 국민들이 받아들이지 못할 텐데.”


율리안이 또다시 말을 움직였다.


“체크.”


“애초에 국민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제거하면 그만.”


“그럼 토마스 형이랑 다를 게 없는데.”


“다르지.”


두 사람의 지략대결은 치열했다.

언뜻 정적인 거 같지만 체스를 아는 이들의 해설이 더해지자, 관객들은 오묘하게 빠져들었다.


“토마스 형은 인간도 가차 없이 죽인다. 단. 난 인간은 죽이지 않아.”


“네크로맨서, 드루이드, 벰파이어는 인간이 아니다.....”


“세상이 그리 말하는데 세상의 뜻을 따라야지.”


율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 하나를 움직였다.


“끝났군.”

“끝났네~”

“끝난 거 같죠?”


카리스, 로레인, 아드리안이 똑같이 얘기했다.


“체크메이트.”


대결은 율리안의 승리로 끝났다.

세 사람이 모두 체스를 알고 있는 건 아니었다.

카리스는 가이렌의 꺾인 기세로

로레인은 율리안의 거침없는 기세로

아드리안은 이어질 대국을 예측하며

율리안의 승리를 점쳤다.


“와아아아아아! 율리안! 율리안! 율리안! 율리안!”


관객들이 율리안의 이름을 연호했다.

가이렌에겐 그 함성이 차기 황제로 자신보다 율리안이 더 적합하다는 것처럼 들렸다.


“수고했어.”


율리안이 가이렌에게 악수를 요청했고

가이렌은 사람 좋게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이제 말해봐라. 왜 대회에 참가한 거지?”


“나는 간단해. 증명과 선포.”


“뭘 증명하고 뭘 선포하려고?”


율리안이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줬다.


“형들을 견제할 수 있다는 증명.”


“견제?”


“토마스 형은 날 사지로 내몰았어. 물론 형도 동조했지. 보여주고 싶었어. 나는 호락호락한 놈이 아니라고.”


“선포는?”


“싸우려면 토마스 형이랑 둘이 싸워. 내가 무슨 일을 하든 방해하지 말고.”


그것은 선포며 경고였다.

가이렌도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항상 자신보다 밑이라 생각한 동생이다.

그런 동생이 이렇게 말하자 피가 빠르게 도는 기분이었다.


“웃어.”


동생 말대로였다.

가이렌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율리안을 치켜세웠다.

가이렌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

완패였다.

그리고 이게 세 번째 이변이었다.


***


대회가 끝난 뒤 시상식이 이어졌다.

승자의 상품은 황제가 직접 하사했다.


“축하하네.”


첫 시상식은 카리스였다.

황제가 그녀에게 상자를 건넸다.


“열어보게.”


상자에는 정갈하게 개어진 무복이 담겨있었다.


“수련을 꾸준히 한다 들었네.”


“감사합니다. 잘 사용하겠습니다.”


아드리안은 물론 아이번이 참았던 숨을 뱉었다.

누구한테든 반말을 찍찍 뱉는 버릇없는 카리스였는데 그래도 눈치는 있었다.

다음은 로레인 차례.


“앞으로도 우리 제국을 수호하는 매의 눈이 돼주게.”


로레인에겐 근사한 활과 화살이 수여됐다.


팡!!!


활시위를 당기자 살벌한 소리가 들렸다.


“감사합니다.”


로레인은 활과 화살이 퍽 마음에 들었다.

마법상을 수상한 이후, 황제가 율리안의 앞에 섰다.


“많이 컸구나.”


“감사합니다.”


아들과 아버지의 대화가 그러하듯

둘 사이에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혹 갖고 싶은 것이 있느냐?”


“저는 따로 상품을 준비하지 않았습니까?”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놈 봐라.’


율리안과 황제가 눈을 마주쳤다.

율리안은 황제의 눈을 지그시 바라봤다.

그의 눈엔 흥미와 호기심이 보였다.


피식.


“그래. 내 눈에서 뭐가 보이더냐.”


“흥미와 호기심이 보입니다.”


“정확하다.”


황제는 율리안이 묘하게 끌렸다.

언제부터였을까?

버려진 땅 탐사를 무사히 마치고 왔을 때?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대승절의 시작을 알렸을 때?

자신의 눈을 피하지 않고 바라봤을 때?

그것도 아니면 자식의 눈에서 깊이를 알 수 없는 심해를 발견했을 때?


“저는 그럼 상품 대신 소원을 들어주십시오.”


“소원이라. 낭만 있구나.”


하지만 한편으론 걱정됐다.

자식에 대해 다 안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그 사람이 걸어온 길이 그 사람을 알려주는 법.

황제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카리스와 로레인에게 향했다.


아름다웠다.

두 여인 모두

결은 다르지만 남자를 정신 차리지 못하게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대륙을 통틀어 다섯 손가락에 드는 미인을 뽑으라면 저 두 여인은 무조건 손가락 2개를 차지할 만큼.


“어딜 그렇게 보십니까?”


“커흠.”


황제가 헛기침을 내뱉었다.


“많이 변했구나.”


“어떤 점이요?”


황제는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놈이 미인을 앞두고 나를 보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여러모로. 그래서 소원은 생각했느냐?”


“네.”


“말해보라.”


“제 소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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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이변 (3) 24.09.10 8 0 12쪽
55 이변 (2) 24.09.09 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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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대승절 (3) 24.09.06 9 0 12쪽
51 대승절 (2) 24.09.05 11 0 12쪽
50 대승절 (1) 24.09.04 1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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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한 남자의 명예를 위하여 (4) 24.09.01 1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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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한 남자의 명예를 위하여 (2) 24.08.31 10 0 12쪽
44 한 남자의 명예를 위하여 (1) 24.08.31 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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