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 모으는 네크로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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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富馣)
작품등록일 :
2024.07.31 20:31
최근연재일 :
2024.09.1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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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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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변 (3)

DUMMY

관중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환호하지 못하는 두 인물이 있었으니

대결에서 패한 토마스와

대결을 앞둔 가이렌이었다.

가이렌이 율리안을 바라봤다.


‘설마?’


그를 보자 문득 떠오르는 걱정.


‘에이 아닐 거야.’


가이렌이 스스로를 다독였다.

율리안은 지략 토너먼트의 다크호스였다.

병법을 시작으로 병장기, 야영, 응급처치법, 약초와 독초의 분류까지.

그 모든 대결을 이기고 결승에 올라왔으니까.


‘다크호스일 뿐, 우승 후보는 아니다.’


대립하고 있는 두 형제의 생각이 처음으로 일치했다.

궁술 대결은 율리안 팀의 승리.

검술 대결도 율리안 팀 승리 유력.

지략 대결을 율리안이 승리한다면?

올해 대승절은 율리안으로 시작해 율리안으로 끝날 분위기였다.


사람은 죽을 고비를 넘기면 변한다고 한다.

전장엔 수많은 죽을 고비가 존재하며

율리안은 그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았다.

가이렌이 마른침을 삼켰다.

율리안이 평소보다 거대해 보였다.


***


까득.


토마스가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가 고개를 들며 표정을 갈무리했다.


“축하한다.”


토마스가 로레인에게 악수를 청했다.


“너. 재능있어. 열심히 해.”


“고맙다.”


선남선녀가 서로를 바라보며 악수했고

토마스가 로레인의 승리를 치켜세웠다.

퍽 대인배다운 연출.

하지만 속이 부글부글 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율리~ 헤헤.”


대회가 끝난 뒤, 로레인이 율리안 옆에 자리 잡았다.

관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율리안과 로레인.

토마스와 로레인도 선남선녀였지만

율리안과 로레인은 또 다른 그림이었다.


“로레인 님! 멋있었습니다!”


“저도요! 반했습니다!”


“아름다우세요!”


“고마워요.”


로레인이 윙크하며 하트를 날렸다.


“하지마.”


“질투?”


“눈에 띄는 거 싫으니까 얌전히 있어.”


“으이구. 멍청아. 이럴 땐 그냥 솔직해져 보라구!”


로레인이 율리안의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살기?’


율리안은 긴장했다.

하지만 머지않아 살기를 내뿜는 이들이 암살자가 아닌 관객임을 알아챘다.


“수고했어.”


율리안이 로레인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율리안은 로레인이 퍽 고마웠다.

카리스를 위해 참가한 대회였지만 그녀는 최선을 다해줬으니까.


“나온다! 나온다!”


로레인이 고양이처럼 율리안의 품에 파고들고 있을 때 카리스가 결투장으로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카리스! 카리스! 카리스! 카리스!”


관객들이 카리스를 연호했다.

응원은 일방적이었다.

황궁 7검을 꺾은 미녀 검사.

관객들은 그녀의 승리를 기정 사실화 했다.

중요한 건 상대방이 얼마나 버티냐의 문제.


“......”


일방적인 응원에도 상대방은 동요하지 않았다.

상대의 이름은 필루네 미언스.

백발이 성성한 백전노장의 기운을 풍기는 노기사였다.


척.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봤다.


“음?”


그를 본 순간 카리스는 느낄 수 있었다.

그저 운이 좋아 이 자리에 올라온 게 아니었다는 것을.

그는 강자였다.

이번에도 황제의 격려가 이어졌다.

하지만 토마스와 로레인의 대결만큼 대화가 길진 않았다.


“한 수 부탁하지.”


“나야말로.”


카리스가 노을을 뽑았다.


까앙~


검과 검이 만들어내는 맑은소리.


“!”


“!”


첫 합을 경합한 뒤 두 사람 모두 거리를 벌렸다.


“뭐야?”


관객들은 의아해했다.

그저 한 합을 부딪쳤을 뿐.

언뜻 보면 잘 짜인 퍼포먼스라고 생각될 수도 있는 상황.


“음?”


“쉽지 않겠는데?”


율리안과 로레인의 얼굴이 동시에 굳었다.


“왜 무슨 일인데?”


둘의 표정을 본 아드리안의 표정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저 할배. 보통 아니야.”


율리안의 말대로였다.

검을 휘두르는 자세만 봐도 알 수 있다.

검을 부딪친 그녀는 오죽할까.


“호오~”


필루네가 감탄했다.


“아직 어린데 경지가 높구나.”


“너야말로.”


“... 강자의 오만함이라. 그래. 강자라면 그럴 자격이 있지.”


“즐겨보자.”


두 사람의 대결에 잔재주는 필요 없었다.

서로가 강자임을 인정한 게 첫 번째 이유요

어차피 잔재주가 안 통하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그저 서로 갈고닦은 실력을 겨루면 그뿐.


“이런 강함을 갖고 있는데 어째 여태까지 무명이었소?”


“설명하자면 긴데.”


쾅!


카리스는 얘기를 듣고 싶다는 듯 의도적으로 거리를 벌렸다.


“대전쟁이 끝난 뒤 연합군은 마물들을 지도의 끝으로 몰아냈네.”


“그랬었나?”


카리스는 알지 못했다.

대전쟁이 끝났을 때 그녀는 이미 랜턴 안에 갇혀있었으니까.


“누군가는 그 마물들을 틀어막아야 했지. 세상에 나오지 못하게.”


“그대였군.”


“어디 나뿐이겠는가.”


그 설명이면 충분했다.

검술의 경지가 이렇게 높은 것도

움직임 하나하나에 실전경험이 스며있는 것도

그가 결승에 올라온 이유도.


“나도 자네가 궁금하네. 아직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이 검술은 도대체 뭔가? 실전경험이 진하게 녹아있는 검인데.”


카리스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고민했다.

그때 문득 나타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숙녀에게 너무 많은 질문은 예의가 아니다.”


“그 나이에 걸맞은 새침함이로다.”


쾅!!!


맑은소리가 날 선 소리로 변했다.

관객들은 침조차 조심스럽게 삼키며 이 경기에 몰입했다.

그만큼 두 사람의 대결은 치열했다.

하지만 균열은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큭.”


검을 부딪치던 필루네에 입에서 피가 새어 나왔다.


“......”


하지만 카리스는 검을 멈추지 않았다.

대결에 배려란 없었다.

그건 상대에 대한 모욕이었으니까.


“살살하게. 너무 아파.”


“.......”


“젊은 친구가 매정하구먼.”


몸이 예전만큼 따라주지 않았지만, 필루네는 최선을 다했다.


히죽.


씨익.


두 남녀는 서로를 보며 웃었다.

둘 다 전쟁이라면 지긋지긋했지만

검사로서 감각이 날카로워지는 건 기쁜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순간이 지금이었다.


카리스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녀가 숨을 천천히 골랐다.

필루네도 호흡이 거칠어지긴 마찬가지.

하지만 그는 호흡이 돌아오는 게 한참 늦었다.


“괜찮나?”


“젊음이 좋아. 은퇴한 늙은이를 상대로 너무 가혹하구먼. 살살하게.”


“미안하다. 이런 강자와의 싸움은 좀처럼 없는 기회라.”


그녀의 말은 진심이었다.

필루네의 검은 형식과 실전 감각이라는 두 가지 재료가 완벽하게 배합된 훌륭한 검술이었다. 검술의 완성도만 놓고 보면 별빛검 스텔라를 능가한다고 평가할 만큼.


“후유증인가?”


“전쟁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 몸을 갉아 먹기 마련이거든.”


카리스가 모를 리 없다.


“기권하겠나?”


“늙은이 생각해서 그쪽이 양보하는 건 어때?”


“이 대결에 걸린 게 많아서.”


“나도 마음만은 청춘이라.”


카리스는 대화하며 필루네가 호흡을 갈무리할 시간을 줬다.


“내 나름대로 전장을 누비며 완성한 일격일세. 받아보게.”


카리스가 노을을 고쳐잡았다.

언제나 랜턴에서 했던 내려치기 자세.


꿀꺽.


율리안이 긴장했다.

관객들도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 한 합에 승부가 결정된다.


“가겠네.”


필루네가 돌진했다.

카리스는 타이밍에 맞춰 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하압!”


기합과 함께 승천하는 검과


“흡!”


짧은 호흡과 함께 떨어지는 노을.


쾅!!!!


검과 검이 부딪쳤는데 폭발하는 소리가 났다.

사방으로 바람이 휘몰아쳤다.

순식간에 일어나는 흙먼지.


휘리릭. 캉.


누군가의 검이 날아가 바닥에 꽂혔다.

관객들은 침을 삼키며 대결의 승자를 기다렸다.

잠시 후, 흙먼지가 가라앉았다.


“하하. 세월이 야속해. 세월이.”


필루네는 검을 놓친 채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있었다.


“훌륭한 일격이었다.”


“자네야말로 정말 훌륭한 일격이었네. 도대체 얼마나 검을 휘둘러야 그런 일격을 만들 수 있는 건가?”


“100년.”


“허허허. 젊은 처자가 늙은이 놀리기는.”


카리스가 손을 건네 필루네를 일으켜 세웠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관객들은 좋은 경기를 보여준 그들에게 뜨거운 환호로 보답했다.


“멋지다! 카리스! 카리스! 여보! 보여? 저 아이가 내 딸이야!”


“알아요. 제 딸이기도 하고.”


어떻게든 시합 참가를 막으려 했던 아이번은 어느새 딸의 열렬한 팬이 돼 있었다.


“승자! 카리스!”


“우와!!! 됐다!!!”


“꺄아아아아!!”


율리안은 물론 로레인도 카리스의 승리를 진심으로 기뻐했다. 말은 카리스가 사라져도 된다고 말했지만 내심 그녀가 이기길 바라고 있던 그녀였다. 카리스와 필루네가 손을 흔들며 관중들에게 화답했다.


“근데 그 일격. 이름은 있나?”


“딱히 없다. 아직 미완이라.”


“그럼 이름을 지어주는 걸로 시작하면 어떨까?”


“그게 중요한가?”


“제나 검엔 이름이 있나?”


“물론. 노을이란 이름이다.”


필루네가 말했다.

검에도 이름이 있는데

그 검으로 휘두르는 기술엔 왜 이름이 없냐고.


“일리 있군. 부탁해도 되겠나?”


필루네가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일몰.”


그가 이유를 설명했다.

검의 이름이 노을이고

카리스의 검술도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는 공격이니

일몰만큼 딱 맞는 이름이 없다고.


“일몰이라. 마음에 드는군.”


카리스가 흡족해했다.


“대회가 끝난 뒤엔 어떡할 건가? 황실 근위대에 들어갈 건가?”


“아니. 다시 수련해야지. 관직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


“내가 볼 땐 수련보단 다른 걸 해야 할 거 같네.”


“여행.”


“실전경험을 쌓으라는 말인가?”


필루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가 말한 여행은 말 그대로 배낭을 메고 떠나는 여행.


“우리는 항상 곁에 있기에 중요한 본질을 잊을 때가 있네. 매일 숨을 쉬기에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고 매일 마시기에 물의 소중함을 모르지. 검도 마찬가지. 때로는 잠깐 떨어져 있어야 검을 대하는 내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을걸세.”


카리스가 이해하지 못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필루네는 이해 못 하는 게 당연하다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서두르지 말라는 말까지.


“때가 되면 알게 될 걸세.”


***


오전 시합이 끝났다.

율리안과 가이렌의 대결은 저녁 시간.

율리안 일행은 마법 결승은 과감히 스킵했다.

그 시간에 차라리 축하연을 열자는 율리안의 의견을 수용한 것.


“두 사람 다 수고했어.”


율리안이 잔을 높게 들었다.


“나야 이 정도는 껌이지~”


로레인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카리스도 반사적으로 잔을 들었다.


“짠~”


“앙!”


아드리안과 우타도 잔을 부딪쳤다.

축하연은 화기애애했다.


‘좋구나.’


율리안이 한 발짝 떨어져 왁자지껄한 이 모습을 바라봤다. 누군가의 기쁨을 공유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너무 좋았다. 지금만큼은 마음껏 즐기고 마시며 이 순간을 마음껏 누리려 했다. 하지만


“그만!”


율리안이 과음할 조짐을 보이자 아드리안이 술을 말렸다.


“음?”


“너도 오늘 결승전 치루거든요. 술은 자제하세요.”


“이 정도로는 안 취해.”


“이 정도로는 안 취한다는 생각 때문에 취하는 거야.”


율리안이 로레인을 바라봤다.

오늘만큼은 맘껏 즐기고 마시고 싶은 그였다.

하지만 웬일인지 로레인마저 아드리안의 편을 들었다.


“그래. 아드리안 말 들어.”


“에?”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


“마지막 무대잖아. 그것도 결승. 상대는 네 형.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올라가도 부족할 판에 술 냄새 술술 풍기면서 대결하는 건 나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상대에 대한 예의도 아니야.”


율리안은 가끔 느낀다.

항상 아이 같지만, 중요한 순간엔 성숙해지는 여자.

그게 로레인이었다.


“시합에 진 다음 그날 적게 마실걸, 딱 한 잔만 참으면 되는데. 젠장! 멍청아! 이렇게 자책하고 싶어?”


“로레인 말이 맞아.”


아드리안이 로레인의 말을 거들었다.


“그럴게.”


율리안이 피식 웃었다.

누군가가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일.

퍽 기쁜 일이었다.


“왜 아드리안을 그렇게 그윽하게 보지?”


아드리안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웃었다.

분위기는 대체로 화기애애했다.

율리안은 이 시간이 영원히 이어지길 바랐다.

하지만


똑똑똑.


시간은 흐르고 기쁜 시간은 언제나 끝이 있기 마련이다.


“저하. 시간입니다.”


“가자!!”


로레인의 힘찬 외침과 함께 모두가 방을 나섰다.

그런 이들에게 율리안이 속으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고마워. 얘들아. 꼭 이기고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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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변 (3) 24.09.10 9 0 12쪽
55 이변 (2) 24.09.09 8 0 12쪽
54 이변 (1) 24.09.08 8 0 12쪽
53 대승절 (4) 24.09.07 7 0 12쪽
52 대승절 (3) 24.09.06 9 0 12쪽
51 대승절 (2) 24.09.05 11 0 12쪽
50 대승절 (1) 24.09.04 12 0 12쪽
49 복귀 24.09.03 1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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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한 남자의 명예를 위하여 (4) 24.09.01 10 0 12쪽
46 한 남자의 명예를 위하여 (3) 24.09.01 8 0 12쪽
45 한 남자의 명예를 위하여 (2) 24.08.31 1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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