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 모으는 네크로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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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富馣)
작품등록일 :
2024.07.31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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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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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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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의 명예를 위하여 (4)

DUMMY

토론토가 날 불러세웠다.


“뭡니까?”


그의 손엔 한 쌍의 팔목 보호대가 들려있었다.


“이거 차고 가라.”


“걱정해 주는 겁니까?”


“오늘은 너한테 걸었으니까.”


팔목 보호대를 찼다.

팔을 안정적으로 감싸는 것이 팔이 잘릴 공격이 박히는 걸로 끝날 느낌이었다.


“감사합니다.”


“이길 수 있겠어?”


“질문이 틀렸어요.”


내가 토론토의 눈을 보며 힘 있게 말했다.


“무조건 이겨야죠.”


“너 그거 오지랖이야.”


“책임감이에요.”


그가 헛웃음을 뱉었다.

언제 봤다고 책임감이야.


“아버지 무덤이나 잘 관리하세요.”


괜스레 팔목 보호대를 쓰다듬었다.

지난날,

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거적때기만 걸치고 있던 나인데.


“이건 잘 쓸게요.”


“잠깐.”


토론토가 다시 한번 날 불러세웠다.


“사람 김빠지게 할 거면 그냥 부르지 마시죠.”


“그런 검으론 백날 첫날 싸워봐야 못 이긴다.”


그가 흙 묻은 상자 하나를 건넸다.


“열어봐.”


상자에는 흐물흐물한 검은 액체가 담겨 있었다.


“네가 말했지? 기괴한 물건이면 성공이라고.”


“이게 그 기물입니까?”


“망자의 돌이라는 걸 최대한 가공한 거다. 우리로서도 그렇게 하는 게 최선이었어.”


다크 슬라임을 연상시키는 외형과 촉감.

나도 이런 무기는 처음이었다.


“이거 어떻게 쓰는 겁니까?”


“액체 상태를 유지하라고만 하셨어. 그게 네크로맨서에게 가장 적합한 무기라고.”


그의 설명이 이해되지 않았다.

왜 그는 그런 말을 했을까?


‘설마?’


찰박!


액체에 손을 넣고 주력을 주입했다.

그러자


스스스스스스.


기물이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파이크 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었죠.”


“?”


“무기는 사용자의 손에 쥐어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철컥! 철컥! 쩌적.


액체가 검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형태가 갖춰지자, 녀석이 응고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퍼석!


얼음이 깨진 뒤 안에 있던 진정한 기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밤하늘을 담은 듯한 매끈한 검신.

손에 촥 감기는 손잡이.

나에게 딱 맞는 무게까지.


후웅! 후웅!


검을 돌리는 것만으로도 녀석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알 수 있었다.


“......”


토론토는 말을 잇지 못했다.


“어때요? 기괴해 보이나요?”


“신비해 보이네.”


“이봐! 입장 안 할 건가!”


진행자가 나를 재촉했다.


“갑니다.”


나는 손에 들린 검을 붕붕 돌렸다.

신기했다.

오늘 처음 잡아본 검인데

마치 예전부터 쓰던 애도처럼 손에 익었다.


“지켜보세요. 당신들이 만든 물건은 망작이 아니라 걸작입니다. 제가 그걸 증명하겠습니다.”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다시 얼굴을 마주할 때는 증명을 끝마친 후다.


***


“제발. 제발. 제발. 제발.”


로레인은 양손을 가슴에 모아 기도하고 있었다.


“카리스 율리한테 돈 걸었어?”


“이길 수 없는 싸움에 왜 돈을 낭비하지?”


“하. 너는 진짜.”


“카리스 말이 맞네. 백날 죽었다 깨어나 봐라. 로드를 이길 수 있나.”


다르토가 카리스의 말을 거들었다.

요 며칠 검에 대해 토론하며 둘 사이의 거리가 말도 못하게 가까워졌다. 둘이 편을 먹고 있는 걸 보자니 로레인의 얼굴이 저절로 굳어졌다.


“너희가 뭘 알아! 우리 율리는 오우거도 잡은 사람이야!”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그래. 만약 저 듀발론의 황자가 이기잖아? 그럼 카리스의 검은 평생 무료로 손질 해주마!”


“나쁘지 않군.”


“그게 왜 그렇게 돼!!!”


다르토는 확신했다.

로드에게 패배란 없다고.


이윽고 축제의 마지막을 알리는 입장이 시작됐다.

린데가르드가 입장하며 도끼를 치켜올렸다.


“와아아아아!”


드워프들이 환호했다.


‘오늘이 끝인가?’


로드는 시원섭섭해 보였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이 대결이 끝나면 오우거의 마석을 언제든 가공할 수 있다.


쿵!


린데가르드가 도끼를 내려놓고 반대편을 바라봤다.

잠시 후, 율리안이 천천히 입장했다.

아무도 율리안을 호응하지 않았다.

아니, 호응할 수 없었다.

그의 오른손에 들린 신비한 무기 때문.


“저거 누구 작품이야?”


드워프들이 서로를 바라봤다.

모두 느낀 것이다.

저 검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우와~ 예쁘다~”


로레인의 말처럼 율리안의 검은 아름다웠다.

검신은 늘씬했고 손잡이는 날렵했으며

먹빛 검날은 율리안과 퍽 잘 어울렸다.

율리안이 린데가르드 앞에 섰다.


“네크로맨서였구나.”


“말 안 했었나요?”


“그래서 그런 부탁을 한 건가? 기물을 얻기 위해?”


“그럴리가요.”


린데가르드가 율리안을 지그시 바라봤다.

그는 영혼의 일렁임을 볼 순 없지만

지난 세월 살아온 연륜이란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 연륜은 지금 율리안이 진실을 말한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하나 물어봐도 됩니까?”


“뭐를 말인가?”


“네크로맨서인 거 어떻게 알았어요?”


“그 무기. 그 정도 완성도는 스왈로프 부자가 아니면 힘들거든.”


드워프 로드의 인정만으로 이미 율리안의 검은 걸작이었다.

하지만 그건 드워프 로드의 인정.

율리안은 자기 말을 책임지기 위해 증명해야 했다.


“네크로맨서라고 죽이기 없습니다.”


“걱정하지 말게. 대전쟁 때 네크로맨서가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어서.”


“혹시 그 네크로맨서의 이름이?”


“몰라. 랜턴을 무기로 쓰는 이상한 녀석이었지.”


피식.


“갑니다!”


관객 모두가 집중했다.

드워프들에게 승패는 중요하지 않았다.

율리안의 손에 든 저 무기.

저 무기가 어떤 놈일지 궁금했다.


깡~~~~~~


전과는 다른 맑은소리가 들렸다.


“오~~”


관객석에 있던 드워프들이 감탄했다.

소리만으로 그들은 알 수 있었다.

저 검은 걸작이다.

그리고 그걸 체감하는 또 한 명의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율리안이었다.


‘안 아파!’


이전까진 린데가르드와 무기를 맞대는 것만으로도 손목이 떨어질 듯 아팠다.

하지만 지금은 아프지 않았다.

기물은 물론 토론토가 준 팔목 보호대 덕분.


“그거 탐나네.”


“마음에도 없는 말을.”


“본격적으로 해볼까?!”


마지막 날답게 두 사람의 대결은 호각이었다.

4일간 서로의 습관과 공격 패턴을 안 것도 있지만

토론토가 준 장비의 역할이 컸다.


“파이크가 어마어마한 걸 만들었구먼.”


“말은 제대로 해야죠. 파이크랑 토론토 두 부자가 만든 겁니다.”


‘너무 좋은데?’


율리안의 입꼬리가 대결 후 처음으로 올라갔다.

확실히 기이한 물건이었다.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생각한 곳에 검끝이 딱딱 도달했다.


핏. 핏.


린데가르드의 얼굴에 실핏줄이 늘어났다.


“오오오!!!”


로레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리스도 풀고 있던 팔짱을 풀었다.

그녀는 새삼 느꼈다.

좋은 검사가 좋은 검을 가졌을 때

얼마나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지.


“하압!”


린데가르드가 처음으로 기합을 섞으며 공격했다.

드워프들은 알고 있었다.

그가 기합을 내지를 때는 수세에 몰릴 때뿐이다.


‘로드가 밀렸다고? 저 어린 꼬맹이 놈한테?’


정작 제일 당황스러운 건 린데가르드였다.

율리안의 검술은 기이했다.

원래도 공격로 하나하나에 실전경험이 묻어났지만

이번에 날아오는 검들은 예전보다 훨씬 까다로운 곳에서 급소를 노리고 날아왔다.


린데가르드가 거리를 벌렸다.

그는 알고 있었다.

전투라는 놈은 언제나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변수는 기세에서 나온다.

지금 율리안의 기세는 심상치 않았다.

더 치고 올라오기 전 끊어야 했다.


“공명.”


관중들은 기대했다.

과연 율리안이 어떻게 나올까?

과연 저 검은 공명한 도끼를 완전히 받아낼 수 있을까?


‘어떡해야 되나?’


율리안은 고민했다.

공명을 빗겨치면 패배는 면한다.

하지만 필요한 건 승리다.

그것도 이 검으로 쟁취한 승리여야 했다.


후웅!


도끼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그는 방어 대신 회피를 선택했다.

마음먹고 피하면 피하지 못할 공격은 아니었다.


쿵! 쿵! 쿵! 쩌적.


대리석으로 만든 바닥이 갈라졌다.

사방으로 파편이 튀었다.

지면은 울퉁불퉁해졌고 율리안은 스텝을 밟는 게 점점 어려워졌다.

린데가르드가 노린 점이기도 했다.


‘그래 밑져봐야 본전! 해보자!’


율리안은 자기 몸에 저장한 주력을 검에 주입했다.


키잉.


검이 진동했다.


“음?”


카리스의 눈이 꿈틀거렸다.


“저거 그거 맞지?”


로레인의 질문에 카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원리인진 모르지만 맞는 거 같구나.”


그 사이, 린데가르드의 도끼가 율리안의 허리를 매섭게 노렸다.

율리안이 검을 들어 올렸다.

카리스가 늘 수련했던 그 자세.


“하압!!!”


쾅!!!!!


결투장에 흙먼지가 솟아올랐다.

잠시 후 먼지가 가라앉았다.


“됐어!!!!!”


로레인이 뛸 듯이 기뻐했다.

들려야 할 파열음이 들리지 않았다.

율리안이 완벽하게 린데가르드의 공명을 막아낸 것이다.


“호오~”


린데가르드가 감탄했다.

그 순간 율리안이 도끼 면을 긁으며 린데가르드에게 쇄도했다.


“익!”


린데가르드는 당황했다.

그도 깨달았다.

찰나의 순간 자신이 방심했다는 걸.

깨달았을 땐 늦었다.

율리안의 검이 매섭게 린데가르드의 목을 노렸다.


하지만 그 또한 백전노장.

린데가르드는 미련 없이 도끼를 버렸다.

그리고 다가오는 율리안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모두가 홀린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한 방에 승부가 결정됐다.


퍽!!!!!


“끄악!”


율리안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다가오는 주먹을 피하지 않았다.

왼손에 차고 있는 보호대로 주먹을 받아냈다.

동시에 오른손으로 검을 뻗었다.


“제 승리입니다.”


린데가르드의 몸이 굳었다.

그의 눈알이 천천히 내려갔다.

그의 목젖에 닿아있는 검 끝.


“졌다.”


린데가르드의 패배 선언.

일순 결투장이 조용해졌다.

그것도 잠시


“와아아아아아아!”


로레인의 환호를 시작으로


“와아아아아아아!”


드워프들도 환호했다.


“율리! 믿고 있었다고!”


드워프는 진심으로 어린 인간의 호투를 칭송 해줬다.

율리안은 쏟아지는 함성 속에서 한 남자를 찾았다.

결투장의 가장자리, 토론토가 자리에서 일어나 함성을 내뱉고 있었다.

율리안이 검을 치켜들려 했다.

하지만


덥석.


로드가 율리안의 손을 저지했다.


“이런 건 내가 들어줘야 더 멋진 거야.”


“키가 됩니까?”


“열받게 하지 말게.”


린데가르드가 도끼를 땅에 박았다.

그리고는 손잡이 끝에 올라가 율리안의 손을 들어 올렸다.


“우와아아아아아아!”


쏟아지는 함성 속.

율리안이 토론토를 향해 검을 치켜들었다.

그가 토론토를 보며 씩 웃었다.


‘증명했습니다.’


***


“어땠습니까?”


그는 말없이 코를 쓱 닦았다.

나는 알 수 있었다.

그의 영혼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벅참과 기쁨, 감동으로.

드워프들이 뱉는 뜨거운 환호에 그간 겪었던 모든 고생이 조금이나마 보답받았기를 바란다.


“부러졌지?”


토론토가 내 팔목을 잡았다.


“악!!!”


팔목 보호대를 벗기자, 팔뚝이 종아리만큼 부풀어 올랐다.


“미친놈도 이런 미친놈이 없네.”


“로드를 이기려면 저도 팔 하나는 내줘야지. 팔목 보호대를 믿기도 했고.”


“언제 갈 거야?”


“갑옷 완성되는 대로 가야죠.”


“1주일만 더 있어. 검집도 만들고 그 검도 제대로 만들어줄 테니까.”


“여기서 더 손볼 게 있습니까? 로드를 이긴 검인데?”


토론토는 ‘네가 뭘 알겠냐?’는 눈빛으로 내 검을 뺏어갔다.


“맘대로 하세요.”


그의 욕심을 존중했다.

지금 그대로도 걸작이지만

그의 손을 거치면 명작이 될지 모를 일이었으니까.


***


“내가 괜한 오지랖 부린 거 아니지?”


비석은 말이 없었다.

잠시 후, 무덤에 또 다른 드워프가 나타났다.

린데가르드였다.


“무덤은 옮겨질 걸세. 역대 로드가 잠들어 있는 왕궁 지하로.”


그는 파이크의 무덤을 한참이나 바라본 후 다시 왕궁으로 돌아갔다.


뽁.


하늘을 바라봤다.

노을이 지고 있었다.

붉어진 하늘이 퍽 아름다웠다.

나는 그가 생전 즐겨 마시던 술을 꺼내 그의 비석에 부어줬다.


“자네의 유작. 명작일세.”


내 말 한마디에 잃어버린 명예.

그 명예가 제자리를 찾은 것 같아 조금은 마음이 놓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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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이변 (4) 24.09.11 6 0 11쪽
56 이변 (3) 24.09.10 8 0 12쪽
55 이변 (2) 24.09.09 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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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대승절 (3) 24.09.06 8 0 12쪽
51 대승절 (2) 24.09.05 11 0 12쪽
50 대승절 (1) 24.09.04 1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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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남자의 명예를 위하여 (4) 24.09.01 1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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