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 모으는 네크로맨서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새글

부암(富馣)
작품등록일 :
2024.07.31 20:31
최근연재일 :
2024.09.18 19:00
연재수 :
66 회
조회수 :
1,860
추천수 :
22
글자수 :
359,337

작성
24.09.13 19:00
조회
5
추천
0
글자
12쪽

시험 (2)

DUMMY

‘아!’


‘한발 늦었구나!’


토마스와 가이렌이 탄식했다.

두 형제는 율리안이 대화 중 실수하길 바랐다.

하지만 율리안은 능숙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거침없지만 예의가 있었고

진부하지 않고 신선했다.


“왜 어려운 걸 선택했느냐?”


“아버지의 질문엔 함정이 있었습니다.”


“어떤 함정이지?”


“모두가 힘에 부쳐 도움을 요청한 상소입니다. 어찌 일의 쉽고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우리한테 맞는 상소가 있다면 모를까.”


“옳다. 그렇다면 너에게 맞는 상소가 무엇인지 골라보거라.”



율리안이 천천히 첫 번째 서신을 잡았다.

첫 번째 서신은 최근 여기저기서 들끓고 있는 산적들의 토벌 내용이었다. 패왕이라 일컬어지는 토마스가 하기에 제격.


두 번째 서신은 흉작으로 고생하고 있는 영주가 지원을 요청한 내용. 농법을 비롯해 박학다식함은 물론 처가의 재력을 고려한다면 가이렌에게 제격이다.


“전 이걸로 할게요.”


율리안은 펼치지도 않고 세 번째 서신을 집었다.


“이거 제 거 맞죠?”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용은 돌아가서 확인하겠습니다.”


율리안이 형제들을 보며 씩 웃었다.


“황제께서 절 어떻게 평가했는지는 저 혼자만 알겠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확실한 광대가 돼주지.’


율리안이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는 몸을 바짝 웅크렸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게.

그리고 그 가장 큰 이유가 황제였다.

하지만 황제는 기어코 웅크리고 있는 자신을 끄집어냈다.

그렇다면 차라리 황제와의 우호 증진이 낫다는 판단.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폐하.”


침묵하고 있던 가이렌이 용기를 냈다.


“말해보거라.”


“보상은 있습니까?”


“보상이라.”


고민하던 황제가 재밌는 생각이 떠오른 듯 입꼬리를 비틀었다.


“문제를 무사히 해결하면 나와의 독대 시간을 윤허하겠다.”


‘뭐야? 이딴 게 보상?’


잘만 활용하면 물질적 보상보다 더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게 황제와의 독대였다.

하지만 율리안에겐 아무런 쓸모도 없는 보상이기도 했다.


***


“왔어?”


“왔다.”


“폐하한테 혼나기라도 했어? 표정이 왜 그래?”


“아무래도 아버지 눈에 너무 띈 거 같아.”


“좋은 거 아니야?”


“좋긴. 일거리만 잔뜩 가져왔는데.”


내 손에 들린 서신을 보자 아드리안이 안경을 끼며 다가왔다.


“봐도 돼?”


“물론.”


나도 궁금했다.

토마스는 소탕.

가이렌은 복구.

그렇다면 난 무엇일까?

서신의 내용을 읽던 아드리안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뭔 내용인데 그래? 나보고 돈 벌어오래?”


“차라리 돈 벌어오라면 낫지.”


내용만 놓고 보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한 영지에서 일어나는 연쇄살인범에 대한 조사의뢰.

하지만 이 서신이 황궁까지 오게 된 이유가 있었다.


“귀족들만 죽였네?”


그 지역을 관리하는 귀족의 가족들은 물론 그와 봉신 관계를 맺은 기사들까지 깡그리 다 죽였다는 게 문제.


“더 중요한 게 있어. 밑에 봐봐.”


서신의 맨 끝에는 문양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거대한 원 안에 삼각형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안에 또 하나의 역삼각형이 자리 잡은 문양.


“아드리안. 이거 무슨 문양이야?”


“나도 모르는 문양이야.”


“느낌이 와. 이 문양이 날 피곤하게 만들 거 같아.”


***


로레인과 카리스를 소환했다.


“황제가 임무를 내렸어?”


“진짜? 어디로 가는데?”


“해안 도시 갈리포드.”


“어머! 거기 휴양지잖아. 꼭 가보고 싶었는데! 언제 갈 거야?”


“내일.”


“내일 당장 간다고?”


로레인의 표정이 말하고 있었다.

꼭 그럴 필요가 있냐고.


“율리. 너무 충동적이야.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면밀히 검토한 후에···.”


“여기 계속 있고 싶어?”


로레인이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고새 황궁 생활에 익숙해진 모양.


“아쉽네. 그럼 카리스랑 단둘이 가야지 뭐.”


“그건 안 돼!”


“나도 안 된다. 이번 원정에 나는 빼줘라.”


“진짜? 맨날 밖으로 나가고 싶었잖아.”


카리스가 불참을 선언했다.


“필루네 경이 한동안 여기 머무른다더군. 그와 함께 검에 관해 얘기를 나누고 싶다.”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럼 난 갈래! 내일이라 그랬지?”


로레인은 대답도 듣지 않고 짐을 챙기러 떠났다.


“마차는 슬레인 가문에서 지원해 줄게.”


“마차 타고 가야 될 거리야?”


“걸어서 못 가. 마차 타고 가도 5일은 걸려.”


“그럼 부탁할게.”


그리고 다음 날


“뭐냐?”


들떠있던 로레인의 목소리가 북해의 삭풍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러게?”


궁금하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마차를 타기 위해 슬레인 가로 향했다.

그곳에 떡하니 기다리고 있던 아드리안과 우타.

나는 당연히 배웅을 위해 나온 줄 알았다.

근데 그녀의 발밑에 보이는 짐가방.


“너도 가게?”


아드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


아드리안이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세상물정 모르는 애.”


다음은 로레인.


“세상일에 관심 없는 여자.”


그다음은 아드리안.


“두 사람이 연쇄살인마를 잡겠다고? 나 없이? 퍽이나.”


아드리안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극구 반대했다.


“아드리안. 우리 소풍 가는 거 아니야. 연쇄살인마 잡으러 가는 거라고. 절대 안 돼!”


“아니. 넌 날 데려가야 돼.”


“내가 왜?”


“너는 날 책임져야 하니까.”


“뭐!”


로레인이 나를 사납게 노려봤다.


“율리안. 말 잘해야 돼? 왜 율리안이 아드리안을 책임져야 할까?”


“로레인. 웃는데 왜 살기가 느껴지지?”


“대답.”


나도 답을 몰랐다.

나는 어째서 아드리안을 데려가야 할까?


“나 혼자 황궁에 둘 거야? 토마스랑 가이렌이 있는 황궁에 혼자?”


아드리안의 말대로 나는 그녀를 책임져야 했다.

대승절이 끝난 뒤, 나의 인지도가 지나치게 높아졌다.

황제도 나를 흥미롭게 보고.

형제들에게 내가 껄끄러운 존재가 됐다는 의미기도 하다.

형제들은 나를 견제할 거고 아드리안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일.


“아~ 그런 거였어.”


로레인은 아드리안의 몸에 손댄 게 아니면 그녀가 가도 상관없다 말했다.


“어떡할래?”


혹시나 싶으면 예방하는 게 맞다.

카리스에게 부탁하는 것보다 내 옆에 있는 게 지키기도 용이하고.

결국 아드리안도 동행하기로 했다.

아드리안까진 그럴 수 있다.

근데


“너도 가는 거야?”


“앙!”


“카리스랑 같이 있는 게 낫지 않아?”


우타가 질린다는 듯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우타. 잠깐 이리 와 봐.”


폴짝.


“너를 왜 데려가야 하는데? 설득해 봐.”


“아드리안 누나! 내가 지켜줄 거야!”


“네가 지킬 수 있겠어?”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킬 거야.”


“그거 아드리안도 동의한 일이야?”


도리도리.


“우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뭔데?”


“아드리안. 말할 게 있어.”


“응?”


“우타. 변신해라.”


갑작스러운 급전개에 우타가 당황했다.

녀석이 이빨로 내 옷소매를 물고 당겼다.

녀석의 마음은 이해한다.

드루이드는 잡종 취급 받는 세상.

이 작은 아이는 아드리안이 자신을 혐오할까 두려웠다.


하지만 지켜주기 위해선 서로의 신뢰가 필요하다.

우타가 갑작스레 제국어를 했을 때 당황하는 것보다

지금 정보를 공유하는 게 서로에게 유익했다.

또한 내가 아드리안을 신뢰할 수 있느냐의 문제기도 했다.


“변신?”


아드리안이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면 한번은 거쳐야 할 단계였다.


“어리광 부려도 소용없어. 변신해.”


“........”


“빨리!!”


우타가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왜 자신에게 갑자기 이러냐고.

우타가 아드리안을 이렇게 따르지 않았다면 나도 안 이랬을 거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둘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다.

그렇기에 지금이라도 짚고 넘어가야 했다.

누군가를 속이며 맺는 관계는 반쪽짜리 관계만도 못하니까.


“끼잉.”


우타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작은 여우가 아드리안을 바라봤다.

눈망울에 슬픔이 그렁그렁 맺혔다.


“무슨 일이길래 그렇게 슬픈 눈으로 봐.”


우타는 변신하길 주저했다.

나를 보며 애처로운 눈빛을 날렸다.

이번만 넘어가면 안 되냐고.

변신하기 싫다고.

하지만 내 의지는 변함없었다.


“우타야 도망치면 안 돼.”


있는 그대로의 널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둬야 한다.

우리는 그런 존재들이니까.


펑!!


우타가 아드리안 앞에서 변신했다.

우타는 차마 눈을 뜰 수 없었다.

아드리안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두려웠다.


“우타. 드루이드였어?”


“응···.”


우타가 울먹거렸다.


“그동안 나한테 비밀로 한 거고?”


“응···.”


우타의 눈에서 떨어지는 닭똥 같은 눈물.


“우타!”


아드리안이 호통쳤다.

우타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다음 말이 두려웠다.


‘지금까지 널 안고 있던 내가 후회된다.’


‘그 더러운 몸으로 내 품에 안긴 거냐?’


‘드루이드가 감히 내 몸에 손을 대다니.’


생각할 수 있는 온갖 안 좋은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일로 와.”


와락.


아드리안이 울고 있는 아이를 품에 안았다.


“너도 생각이 많았겠구나.”


아드리안이 우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줬다.


“아드리안. 우타는 드루이드야. 상관없어?”


“그게 뭐 어때서?”


나는 그녀의 영혼을 살폈다.

입으로 뱉고 행동으로 옮기는 건 진심이 없어도 가능하다.

누구나 해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영혼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아드리안.”


“응?”


“너 정말 착한 애구나.”


“뭐야? 갑자기.”


그녀의 영혼은 잔잔한 호수처럼 평화롭기만 했다.

아드리안의 말을 듣는 순간,

우타는 아드리안의 품에 파고들어 더욱 서럽게 울었다.


‘잠깐? 저 새끼 저거?’


우타가 아드리안의 가슴팍에 얼굴을 비볐다.

매우 많이.


“그만. 거기까지.”


내가 우타의 꼬리를 잡아당겼다.

우타의 얼굴은 눈물 콧물 범벅이었다.


“아이참. 칠칠맞게.”


아드리안이 우타의 얼굴을 손수건으로 닦아줬다.


“우타.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만큼은 꼭 지켜야 해. 남자대 남자의 약속이야.”


“알았어! 뭔데?”


“아드리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돼. 약속할 수 있지?”


우타가 퉁퉁 부은 눈으로 아드리안을 바라봤다.


“당연하지. 누나 걱정하지 마! 무슨 일이 있어도 누나는 내가 반드시 지킬게!”


새끼.

꼴에 남자라고 온갖 똥폼은 다 잡는다.


***


“율리~ 갈리포드가 점점 가까워지나 봐. 너무 덥네?”


로레인이 스륵 옷을 벗자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날씨가 더워 그런가? 현기증이 나는 거 같기도 하고.”


그녀는 가슴골이 보이는 절묘한 각도로 내 품에 기댔다.


“언니..... 내가 준 자료 읽었어요?”


“읽었지. 갈리포드. 낭만의 항구 도시. 특산물은 숯불에 굽는 조개 구이. 조개 구이집 중 가장 인기 있는 곳은 바다로 떨어지는 석양을 볼 수 있는···.”


“제가 언제 그런 자료 줬어요! 그거 말고 익손이요! 익손.”


요 며칠 사이 로레인과 아드리안이 많이 가까워졌다.

로레인의 털털한 성격도 있었지만 아드리안은 로레인과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 노력했다. 로레인도 그 노력을 알기에 마음을 열어준 거고.


“익손. 다 알지!”


“그럼 저한테 설명해 봐요!”


“익손! 최악의 탈옥수 5명을 추종하는 이들이 만든 범죄단체.”


“또!”


“그들은 특유의 문양을 사용하며 그 문양을 받았다는 건 익손에게 찍혔다는 의미! 됐지? 율리. 나 어지러워.”


아드리안의 시험을 통과한 로레인이 기어코 내 어깨에 기댔다.


“하···.”


아드리안도 로레인은 포기한 듯 보였다.


“율리. 종이 그만 봐. 나 열나는 거 같아. 이거 봐.”


로레인이 내 손을 가슴 쪽으로 잡아당겼다.


“어허!”


“너 진짜 병신이야? 고자야? 왜? 카리스보다 가슴 작아서 그래? 나도 작은 편은 아니야! 아드리안보다 훨씬 크다고.”


“언니! 저도 작지 않아요!”


“맞아! 아드리안 누나 안 작아!!”


“우타! 너 지금 얘 편드는 거야?”


우리의 여행은 5일 내내 이런 식이었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도 굳이 그녀들을 말리지 않았다.

이 어수선함이 좋았다.

때론 범죄조직의 조사보다 가슴 크기가 더 중요할 때도 있으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죄수 모으는 네크로맨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6 보기와 달리 뜨거운 여자 (1) NEW 20시간 전 2 0 12쪽
65 시험 (8) 24.09.17 5 0 12쪽
64 시험 (7) 24.09.16 6 0 12쪽
63 시험 (6) 24.09.15 8 0 12쪽
62 시험 (5) 24.09.15 7 0 12쪽
61 시험 (4) 24.09.14 7 0 12쪽
60 시험 (3) 24.09.14 5 0 12쪽
» 시험 (2) 24.09.13 6 0 12쪽
58 시험 (1) 24.09.12 6 0 12쪽
57 이변 (4) 24.09.11 9 0 11쪽
56 이변 (3) 24.09.10 10 0 12쪽
55 이변 (2) 24.09.09 10 0 12쪽
54 이변 (1) 24.09.08 9 0 12쪽
53 대승절 (4) 24.09.07 10 0 12쪽
52 대승절 (3) 24.09.06 10 0 12쪽
51 대승절 (2) 24.09.05 14 0 12쪽
50 대승절 (1) 24.09.04 14 0 12쪽
49 복귀 24.09.03 11 0 12쪽
48 한 남자의 명예를 위하여 (5) 24.09.01 12 0 13쪽
47 한 남자의 명예를 위하여 (4) 24.09.01 11 0 12쪽
46 한 남자의 명예를 위하여 (3) 24.09.01 11 0 12쪽
45 한 남자의 명예를 위하여 (2) 24.08.31 12 0 12쪽
44 한 남자의 명예를 위하여 (1) 24.08.31 10 0 12쪽
43 바람 한 자락 (4) 24.08.30 12 0 13쪽
42 바람 한 자락 (3) 24.08.29 11 0 12쪽
41 바람 한 자락 (2) 24.08.28 12 0 12쪽
40 바람 한 자락 (1) 24.08.27 12 0 13쪽
39 버려진 땅 (4) 24.08.26 12 0 12쪽
38 버려진 땅 (3) 24.08.25 12 0 12쪽
37 버려진 땅 (2) 24.08.25 12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