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 마카롱으로 시작하는 조선 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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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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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6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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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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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스테이크

DUMMY

실력을 증명하기로 마음먹은 나는 내게 실력을 증명할 것을 강요한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를 향해 당당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재료는 어딨습니까?”


“머이야?”


“냄비나 팬은 저기 캐리어 안에 담겨 있는 걸 쓰면 되니 괜찮지만, 어쨌건 재료가 있어야 요리를 하건 뭘 하건 할 것 아닙니까.”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비굴할 정도로 자신의 눈치를 보던 내가 갑자기 당당한 태도를 보이자,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의 얼굴에 살짝 당황한 빛이 떠올랐다.


내가 이렇게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이지?


“제 말이 틀렸습니까?”


“어···”


“성니메, 저 아새끼 말에도 일리가 있슴메. 음식을 하려면 일단 뭐가 있어야 할 것 아니우꽈.”


“두라이 너는 지금 누구 편을 드는 거니?”


“아니, 틀린 말이 아니지 않슴메. 음식을 만들게 시키려면 일단 재료는 줘야 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수꽈.”


“···크흠, 내가 언제 재료를 안 챙겨 주겠다 그랬니.”


그리 말한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는 주변을 슥 둘러보더니 자신이 ‘두라이’라 칭한 제 동료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 아새끼들 시신을 수습하며 뭐 좀 건진 거 있니?”


“은자 부스러기에 씹다 남은 육포 쪼가리 조금, 참기름이 반 정도 들어 있는 호리병 정도가 전부였슴메.”


“머이야? 참기름? 이 아새끼들, 초피값의 일부를 참기름으로 지불한 모양이구만 기래. 돌아가면 바로 아바지께 말씀드려야겠서.”


은자 부스러기? 참기름으로 초피값을 치러?


뭔가, 이상하다.


처음에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의 대화라 생각했지만, 두 사람이 대화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보고 있을수록 뭔가 의아함이 느껴진다.


미친놈들의 대화가 보통 저렇게 체계적일 수 있던가?


왜 저 대화가 그럴듯하게 들리는 거지?


그런 의문들이 새록새록 고개를 들기 시작하려던 그때.


험상궂은 사내의 목소리가 내 귓가를 두드려 왔다.


“우리가 가지고 온 육포도 전부 먹어 치웠으니 어쩔 수 없지. 두라이 너 잠깐 내려가서 사슴 좀 잡아 오라.”


“아니, 갑자기 무슨 사슴을 잡아 오란 말씀이우꽈?!”


“재료를 가져다 달라니 재료를 구해 와야 하지 않겠니. 아까 올라올 때 보니 근처에 사슴이 몇 마리 사는 모양이던데, 내려가서 한 마리만 잡아 야영지로 가져오라.”


“아니 그걸 왜 날 시키는 것이우꽈?! 활 솜씨도 사냥 솜씨도. 전부 성니메가 더 낫지 않슴메!!”


“그럼, 니 입에 들어갈 고기를 내가 잡아다 바쳐야겠니? 내가 니 성님인데?!”


“그, 그거이 그렇지만···”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아버님께는 아무것도 없었다 보고할 테니. 저 아새끼들 품에서 나온 은자 쪼가리, 전부 두라이 니가 알아서 처리하라.”


“차, 참말이우꽈?!”


“내가 언제 거짓부렁하는 거 봤니?”


“조, 좋수다! 사슴이라 했슴메?! 내, 금방 잡아 올 테니 야영지에서 기다리고 있으시우다!”


험상궂은 사내와의 협상을 끝낸 ‘두라이’는 금방 다녀오겠다며 수풀 너머로 사라졌고 나는 험상궂은 사내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발걸음을 옮기는 내내 험상궂은 사내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괜히 입을 열어 이것저것을 캐물었다 또 다른 오해를 살까 두려웠던 나는 일단 요리를 끝마친 뒤 이야기를 해 봐야겠다 생각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잠시 뒤,


험상궂은 사내의 뒤를 따라 한참을 걸어간 끝에 도착한 곳은 피서용으로 알맞아 보이는, 맑은 물이 철철 흐르고 있는 어느 계곡이었다.


계곡의 근방에는 비를 피하기 알맞은 자연으로 형성된 자그마한 동굴이 하나 있었는데,


타다 남은 모닥불과 동굴 한쪽에 장작용으로 쌓아 둔 듯한 나뭇가지들이 수북이 쌓여 있는 것을 보아하니, 방금 전 이야기가 나왔던 그 ‘야영지’가 바로 이 동굴인 모양이었다.


동굴에 도착한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는 동굴 한쪽에 쌓여 있던 나뭇가지들을 이용해 꺼져 가던 불씨를 되살렸고,


다시금 기세를 찾은 모닥불의 온기가 동굴의 공기를 따듯하게 데워 주기 시작할 즈음.


험상궂은 사내의 명령을 받고 사슴을 잡으러 갔던 서글서글한 사내가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다녀왔수다 성니메.”


“그래, 고생했다.”


돌아온 사내의 등에는 자그마한 사슴이 한 마리 들려져 있었다.


크기를 보아하니 아마 새끼 사슴인 모양이었다.


“아니 너는 잡아 와도 뭐 이런 쪼끄만 놈을 잡아 왔니.”


“일부러 어린 놈으로 잡아 온 것임메! 원래 고기는 어린 놈이 맛있다는 것도 모르시우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거이··· 뭐 먹을 거나 있겠니?”


“다른 아새끼들이랑 나눠 먹는 것도 아니고 성니메랑 나랑 둘이 먹을 건데,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슴메?”


“으음, 그도 글쿠만.”


그리 말하며 고개를 끄덕인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는 내게 ‘바라던 대로 재료를 대령했다’는 말을 던져 왔고,


나는 어이없다는 듯한 눈빛으로 눈앞의 재료를, 가죽조차 제대로 벗겨지지 않은 새끼 사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걸 지금 재료라고 준 겁니까?”


“무슨 문제 있니? 실력 있는 숙수라면 이런 고기 손질은 기본으로 할 줄 아는 것 아니니?”


고기 손질에도 정도가 있지,


대체 어느 누가 재료랍시고 도축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고깃덩이를 던져 준단 말인가.


후우, 그래.


제정신이 아닌 놈에게 상식을 기대한 내가 바보다.


어쩔 수 없지.


간만에 옛 실력을 좀 발휘해 보는 수밖에.


* * *


대부분의 요리사들은 자신들이 손질하는 고기가 어떻게 고기로 변하는지, 소와 돼지가 소고기와 돼지고기로 가공되는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그건 요리사의 영역이 아닌, 도축업자.


소위 정형 기술자라 부르는 전문가들의 영역이라 여기는 것이 보통이니까.


하지만,


내게 처음 요리를 가르쳐 준 스승께서는 그런 평범한 요리사들과는 조금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이 머저리 같은 새끼야, 상식적으로 니가 만지는 재료가 어떻게 자라는지, 어떻게 가공되는질 알아야 요리를 할 것 아니냐!]


[···선생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는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그렇다고 해서 요리사가 정형 기술까지 배울 필요가 있을까요?]


[뭐? 이야, 세상 많이 좋아졌다. 내가 처음 배울 때는 어, 스승이 시키면 ‘아, 무슨 깊은 뜻이 있겠구나’ 하고 묵묵히 하라는 대로, 그만 할 때까지 그냥 머리 박고 하는 게 보통이었는데. 하여간에 요즘 것들은···!]


[아니, 이걸 왜 배워야 하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아야 효율적으로···]


[효율?? 효유우우울?! 지금 배움에 효율을 따지는 거냐?! 그따위 잡생각을 하니까 니가 고기를 그렇게밖에 못 굽는 거야! 아, 아 몰라! 하기 싫으면 하지 마! 내 밑에서 배우고 싶다는 새끼들이 어디 너 하나뿐인가!]


[···]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조금 다른 수준이 아니라 그냥 괴팍했던 것 같다.


아무튼,


그런 괴팍한 스승의 밑에서 요리를 배웠던 나는 스승의 명령에 따라 새벽에는 마장동에서 정형 기술을 배우고, 낮에는 요리를 배우는 삶을 살아왔었다.


그것도, 5년씩이나.


아잇 씻팔.


다시 생각하니 열받네.


내 피 같은 20대 초반을 마장동에서 날린 걸 생각하면···


후우, 아니지.


탑 셰프 코리아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은 그때 익혔던 경험과 감각 덕분이었잖나.


그 영감이 좀 입이 걸고 성격이 괴팍해서 그렇지 다 내 실력 향상을 위해 그랬던 거다.


생각해 보면, 그때가 좋았다.


다른 사람들은 가격이 무서워 함부로 쓰지도 못하는 고급 고기를 마음껏 써 가며 연습을 하던 그 시절이 살짝 그립기도 하다.


[푸하핫! 이 새끼 고기 구운 것 좀 보게! 인수야, 그냥 요리 때려치우고 숯이나 구우러 갈래? 내가 아는 숯쟁이가 제자가 없어서 고민이라더라고, 내가 들었는데, 거기 매주 세 번 삼겹살에 소주도 제공해 주고 월급도 나보다 두 배는 더 챙겨 준다더라. 혹시 생각 있니? 없어? 그럼 좀 똑바로 구워 봐 이 새끼야!]


[와 얘는 미디움 레어를 구우라고 했더니 무슨 생고기를 가지고 왔네, 인수야, 우리 인수야, 너는 이게 미디움 레어로 보이니? 우리 영어 공부부터 다시 할까? 자, 레어는 ‘덜 익혔다’라는 뜻이고, 미디움은 ‘중간’이라는 뜻이야.]


[흑흑, 송아지야 너도 훌륭한 스테이크가 되고 싶었을 텐데 멍청한 요리사를 만나서 스테이크가 아니라 송아지 튀김이 되고 말았구나··· 다음 생에는 꼭 나 같은 훌륭한 요리사를 만나길 간절히 기도해 줄게!]


다시 생각해 보니 별로 그립진 않다.


난 절대로 그런 스승이 되지 말아야지.


고개를 휘휘 내저어 잡생각을 떨쳐낸 나는 캐리어를 열어 칼을 세 자루 꺼내 들었다.


한 자루는 칼이라기보다는 도끼에 가깝게 생긴, 뼈를 절단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절단용 칼.


다른 한 자루는 가죽을 벗기고 뼈에서 살을 발라내기 위한 발골용 칼.


다른 한 자루는 스키닝 나이프라고도 불리는 가죽을 벗기기 위한 박피용 칼이었다.


‘일단··· 방혈 작업부터···“


방혈 작업은 동물의 사체에서 피를 뽑는 과정을 말한다.


이 과정은 고기의 질을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과정으로, 보통은 동물이 죽은 직후에 진행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죽자마자 피를 뽑지 않으면 몸속에 남아 있던 피가 뭉치게 되고 그로 인해 육질이 망가지고 고기의 누린내가 심해지게 된단 말씀이다.


‘뭐야, 방혈 작업이 다 끝나 있네? 저 두라이라는 사람이 다 끝내 놓은 건가?’


이렇게 깔끔하게 방혈 작업을 끝내 놓은 것을 보아하니 두라이라는 저 사람,


미치기 전에는 상당히 실력이 있는 정형 기술자였던 모양이다.


뭐, 이러면 나야 편하지.


사슴의 상태를 확인한 나는 절단용 칼을 들고 작업을 이어 나갔다.


간만에 칼을 잡은 데다, 소나 돼지에 비해 많이 만져 본 적이 없는 사슴고기라 살짝 어색함이 없잖아 있었지만,


그래도 5년간 도축장에서 일했던 경험이 어디 가지는 않았는지 도축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절단용 칼로 뒷다리 부위를 떼어 내고, 뒷다리 부분의 가죽을 벗겨 낸 뒤, 근막과 지방을 걷어 내는 처리를 이어 간다.


날카로운 정형용 칼을 휘둘러 뼈에서 살을 발라내고,

절단용 칼을 휘둘러 발라낸 새끼 사슴의 뒷다리 살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준 뒤,


케이스로 손을 뻗어 새로운 칼을 뽑았다.


이번에 뽑은 칼은 휠렛 나이프라고 불리는 재료 손질용 칼.


보통 생선이나 고기를 넓적하게 저밀 때 사용하는 칼인데, 나는 이 칼을 고기의 힘줄을 제거하는 용도로도 사용하곤 했다.


“저거이, 사실은 사람이 아니라 무슨 귀신 아니우꽈? 칼 쓰는 솜씨가 무슨···”


“흥, 별 대단한 것 같지도 않구만 뭘 그리 호들갑이니.”


“성니메는 왜 이리 솔직하지 못하시우꽈?! 눈이 뚱그렇게 되어 쳐다봐 놓고서는.”


“너 그 아가리 안 닥치니?!”


음, 저 두라이라는 사람.


미쳐 버리긴 했어도 보는 눈이 있구만.


한눈에 내 실력을 알아보고 감탄을 내뱉을 정도라니, 제정신이었더라면 정형 기술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었을 텐데,


미쳐 버린 게 안타까울 뿐이다.


나는 감탄을 뒤로한 채 계속해 작업을 이어 갔다.


힘줄을 제거한 고기를 넓적하게 썰어 준 뒤 그 위에 벌집 모양으로 가볍게 칼집을 내어 준다.


그리고는 케이스를 향해 손을 뻗어 안에 보관해 둔 프라이팬과 향신료 통들을 꺼내 준 뒤,


프라이팬을 모닥불 위에 올려놓고, 팬이 달궈지는 동안 요리의 풍미를 더욱 살리기 위한 밑 준비를 시작했다.


방금 전 팬을 꺼낼 때 함께 꺼내 놓았던 향신료들은 총 세 가지.


소금과 통후추, 그리고 타임이었다.


이쯤이면 무슨 요리를 할 생각인지 눈치챘으리라 믿는다.


맞다,


내가 하려는 요리는 내가 가장 자신 있는 요리.


단순히 재료를 때려 박고 타이밍에 맞춰 고기를 굽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곤 하는,


어떻게 보면 가장 기초적이지만 가장 어려운 요리인 스테이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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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 오믈렛 +5 24.08.29 1,271 6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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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스테이크 +4 24.08.27 1,431 67 12쪽
2 2. 증명 +5 24.08.27 1,606 67 16쪽
1 1. 프롤로그 +11 24.08.27 1,819 7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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