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 마카롱으로 시작하는 조선 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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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뢰야
작품등록일 :
2024.08.06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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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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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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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솔루션

DUMMY

거식증을 치료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거식증을 얻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소아 거식증의 원인은 아이들 본인이 아닌 부모와 가정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었지.


선천적인 유전 문제나 신경 장애 등의 요인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극소수이며 보통은 부모의 불화나 불안정한 가정환경이 원인이다.


라고, 함께 출연했던 소아 정신과 전문의가 그렇게 말했었다.


그런데,


이 ‘휘호’라는 아이의 가정과 부모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부성애의 화신이며,


어머니···

어머니는···


그러고 보니까 얘 엄마는 어디 갔대?


“내 아내? 어제 인사를 나눴는데, 혹 기억이 나지 않으시오? 부족에 도착하자마자 인사를 나눴잖소.”


“아··· 그, 아이를 잘 좀 부탁한다고 울음을 터트리시던 그···.”


“그렇소. 내게는 과분한 좋은 사람이지.”


으음,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은 충격으로 거식증에 걸려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내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 보니 부부 사이에 불화가 있는 것 같지도 않고,


부부 모두가 아이를 걱정하는 것을 보니 가정이 불안정한 것 같지도 않다.


이런 경우에는 뭘 확인해 봐야 한다고 했었더라···?


아, 그래.


아이가 거식증 증세를 보인 시점에 무슨 일을 겪었는지를 확인해 봐야 한다고 했었지.


“아이가 식사를 거르기 시작한 것이 반년 전의 일이라 하셨었지요. 혹 그 무렵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반년 전에 있었던 일이라···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것 말고는 딱히 대단한 일은 없었소만.”


“어머니라면, 투먼의 어머니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휘호 녀석을 무척이나 귀여워하셨지.”


“투먼. 아드님이 식사를 거르기 시작한 시점 말입니다. 혹시, 어머님께서 돌아가신 직후 아닙니까?”


“음? 아, 그러고 보니 그랬던 것도 같소. 어머님이 돌아가신 이후부터 그 좋아하던 고기반찬을 뚝 끊었었거든.”


역시, 뭔가 있을 줄 알았지.


아마 이거겠군.


“아드님이 할머니를 무척 좋아했던 모양이지요?”


“응? 아니, 그렇지는 않았소. 무서워했다면 또 모를까.”


손자가 할머니를 무서워했다고?


자길 오냐오냐해 주는 조부모를 무서워할 이유가 대체 어디 있다고?


“휘호를 귀여워하는 것과 별개로 휘호가 버릇없는 행동을 하면 그때마다 회초리를 드셨다오. 원체 엄하신 분이셨거든.”


“···아.”


“사실, 나도 몇 번이나 혼이 난 적이 있소. 아이를 그리 오냐오냐 키우면 아이가 버릇이 없어질 것이라며, 아이를 엄히 키우라 하셨지.”


보통은 조부모가 팔불출이 되어 손자의 어리광을 받아 주는데, 이 집안은 역할이 반대였던 모양이다.


팔불출 부모와 엄한 조부모.


이러면 아이가 할머니를 무서워하는 것도 말이 되지.


으음··· 분명 할머니의 죽음이 원인일 것이라 생각했건만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것도 아닌 모양이로구만.


범차에게 들은 이야기만으로는 도저히 원인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아이와 이야기를 좀 나눠 보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거식증을 앓고 있는 당사자와 대화하여 원인을 찾아보는 수밖에.


* * *


아이의 병세를 상세히 살펴보고 싶다는 명분을 내세운 나는 범차와 함께 아이가 머무르고 있는 건물로 향했다.


“휘호야, 휘호야? 잠깐 일어나 보거라. 네 병을 고쳐 줄 분을 모셔왔단다.”


먹지 못해 힘이 없어 그런 것인지, 시체마냥 침상에 드러누워 있던 범차의 아들은 침상에서 일어나 나와 범차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


“안녕? 네가 휘호구나?”


“···.”


나와 마주한 휘호의 눈빛에는 나를 경계하는 듯한 기색이 역력했다.


깨어나 있을 때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니, 저 아이의 입장에서는 내가 처음 보는 낯선 사람으로 느껴지는 것이겠지.


“휘호야 인사드려야지.”


“아, 안녕하세요···.”


“옳지.”


아버지인 범차의 재촉을 받은 휘호는 마지못해 내 인사를 받아 주었지만 나를 바라보는 휘호의 눈빛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일단 저 경계심부터 풀어 봐야겠구만.


“아저씨의 이름은 이인수라고 한단다. 우리, 악수할까?”


“···?”


“하하··· 악수가 뭔지 모르는구나. 이렇게 서로 손을 잡고···.”


나는 나와 함께 출연했던 아동 상담 전문가가 아이들을 대할 때의 기억을 최대한 되살려 휘호와의 친밀감 형성을 시도했다.


그런 내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친밀감 형성을 시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휘호는 나에 대한 경계심을 어느 정도 누그러트리고 말문을 열어 주었다.


그렇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나에 대한 경계심이 완전히 사라졌다 싶을 즈음,


“그런데 휘호야, 아저씨가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뭔데요···?”


“휘호가 밥을 안 먹는다고 하던데, 혹시 왜 그런 걸까?? 혹시 어디가 아파서 그런 걸까? 아니면 무슨 다른 이유라도??”


“그게···.”


무어라 답을 내어놓으려던 휘호는 내 뒤에 서 있던 범차의 얼굴을 한번 바라보더니, 입을 닫아 버렸다.


뭐지?


지금 제 아버지의 눈치를 보고 입을 다문 건가?


“투먼, 죄송하지만 잠깐만 나가 주시겠습니까?”


“···알겠소. 그리하리다.”


내 말을 들은 범차는 군소리 없이 자리를 비켜 주었고, 범차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확인한 나는 휘호를 향해 다시금 입을 열었다.


“휘호야, 이제 여긴 아저씨랑 둘밖에 없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아저씨한테만 말해 줄래? 왜 밥을 안 먹는지.”


내 질문을 받은 휘호는 좌우로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거절의 의사를 밝혔고,


나는 그런 휘호를 설득하기 위해 나긋나긋한 말투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아저씨가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 그러니까 겁먹지 말고 아저씨한테만 말해 줘.”


“···겁먹은 거 아니에요.”


“응?”


“겁먹은 게 아니라, 할머니가 아버지한테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해서···.”


할머니가,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고?


이거,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이야기로구만.


거식증의 계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실마리를 잡았다 생각한 나는 다급히 입을 열었다.


“할머니? 할머니가 뭘 말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


“있지 휘호야. 아저씨는 이 부족 사람이 아니야. 잠깐 여기 놀러 온 사람이라 어차피 조금 있으면 여길 떠날 거거든? 그러니까, 아저씨한테만 말해 주라. 비밀은 지켜 줄 테니까.”


“···정말요?”


“정말이고말고.”


“하늘에 대고 맹세할 수 있어요?


“응? 어, 어어. 그럼, 당연히 할 수 있고말고. 여기서 들은 비밀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 하늘에 맹세하마. 자, 이러면 됐니?”


“좋아요. 그럼, 말해 줄게요.”


내게 비밀을 엄수하겠다는 약속을 받아 낸 휘호는 자신이 밥을 먹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천천히 풀어 나갔다.


휘호의 이야기가 끝날 즈음, 나는 휘호가 거식증을 얻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무엇인지를 완전히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 * *


휘호와의 대화를 끝마치고 건물을 빠져나오니 건물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범차가 기다렸다는 듯 내게 다가와 말을 건네왔다.


“어떻게··· 방법이 있을 것 같소?”


“예, 다행히 제가 생각하고 있던 그 병이 맞더군요.”


“저, 정말이오?!”


“예, 정말이고말고요.”


“···후우, 이제야 한시름 놓겠군. 그런데 선생. 휘호가 걸린 병의 이름이 뭐요? 원인인 또 무엇이고?”


미안하지만 그건 말해 주기 곤란하다.


휘호와 약속을 했거든.


하늘에 맹세코 비밀을 지켜 주겠다 약속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약속을 깰 수는 없지.


“병명이 무엇인지, 그 원인이 무엇인지가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그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요. 안 그렇습니까?”


“그건 그렇소만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긴다면···.”


“단단히 조치해 두고 떠날 예정이라 어지간해서는 그럴 일이 없을 테지만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다시 저를 찾아오시지요.”


“알겠소. 그리하리다. 그럼 이제부터 뭘 준비하면 되겠소? 말만 해 주시오. 휘호를 치료하는 데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건 내 구해 오리다.”


“그럼 일단··· 아드님의 식사를 담당했던 사람을 불러 주십시오.”


“내 아내를 말이오?”


“식사를 담당하는 것이 투먼의 아내분이셨습니까?”

“그렇소. 집안의 식사는 안주인이 책임지는 것이 부족의 관례니 말이오.”


“그럼 아내분을 좀 불러 주십시오. 이 병이 재발하는 것을 막으려면, 아내분의 협조가 꼭 필요하거든요.”


“아내를 불러오기만 하면 되는 거요?”


“아, 식재료도 좀 가져와 주십시오. 평소에 먹는 것들로요.”


“알겠소. 금방 다녀오리다.”


그리 말한 범차는 곧장 마을로 발걸음을 옮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아내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 휘호를 치료해 주실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제부터, 제가 무얼 하면 될까요?”


모습을 드러낸 범차의 아내는 절실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건네 왔다.


나는 범차의 아내에게 덤덤한 목소리로 답을 내어 주었다.


“일단··· 투먼께서 가져온 식재료로 식사를 준비해 주십시오. 평소 먹던 그대로.”


“예?”


“마지막으로 확인을 해야 할 것이 있어 그렇습니다. 그러니 아무 말 말고 식사를 준비해 주십시오.”


“···불도, 조리도구도 없는 곳에서 식사를 준비해 달란 말씀이신가요?”


···아뿔싸.


그러고 보니 여긴 제대로 된 주방이 없는 곳이었지 참.


* * *


나와 범차, 그리고 범차의 아내는 제대로 된 주방이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주방에 들어간 범차의 아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식사 준비를 끝마쳤다.


범차의 아내가 준비한 밥상을 마주한 나는 휘호가 거식증을 얻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제대로 도정이 되지 않은 수수로 지은 듯, 척 보기에도 거칠어 보이는 수수밥과 산나물을 넣어 끓인 맑은국.


그리고 입에 넣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누린내가 겉에서부터 풀풀 올라오고 있는 고깃덩이.


마지막으로···


쿰쿰한 냄새를 뿜어 대고 있는 정체불명의 고기 조각.


아니 저건 대체 뭔데?!


“제가 직접 담근 육젓이랍니다.”


“···젓갈이라고요? 이게?”


대체 어딜 봐서?!


여진 사람들은 상한 고기 조각을 젓갈이라고 부르는 문화가 있었던 건가?


“···일단, 한번 맛을 좀 보지요.”


먹어 보지 않아도 맛을 알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예의상 맛을 확인하기는 해야겠지.


나는 젓가락을 들어 준비된 음식들을 조금씩 맛봤고, 음식의 맛을 모두 확인한 나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 한 차례 입을 씻었다.


그리고 범차를 바라보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투먼. 정말로 이게, 평소에 드시는 식사가 맞습니까? 정말로?”


“그렇소만. 무슨 문제라도 있소?”


“아니 문제고 자시고 어떻게 매일 이딴 음식물 쓰···.”


후우,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일단, 진정하자. 진정하고···


진정은 지랄,


젠장, 휘호에게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애가 밥투정이 좀 과하게 심해 거식증을 얻은 것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는데 이건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잖나.


“부인.”


“예.”


“휘호의 식사는 원래 부인이 아닌 휘호의 할머님이 준비해 왔다 들었습니다. 그게 사실입니까?”


“예, 휘호의 식사는 항상 어머님께서 준비하셨습니다.”


혹시나 해서 교차검증을 해 봤는데 이걸로 확실해졌다.


휘호가 거식증을 얻게 된 계기는 제 할머니의 죽음 때문이었다.


할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심리적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거나 한 것은 아니고,


할머니가 해 준 맛있는 요리를 먹다 제 어머니가 해 준 끔찍할 정도로 맛없는 요리를 먹게 되어, 식사에 거부감이 생겨 거식증을 얻게 된 것이었다.


어머니의 요리가 맛이 없다고 속 시원히 말할 수 있기라도 했었다면 거식증이 생기는 일까지는 없었을 테지만.


‘버릇없이 밥투정을 하여 부모의 마음을 괴롭게 만든다면 죽어서라도 용서하지 않겠다’라는 엄격한 할머니의 유언 탓에 차마 진실을 입에 담지 못했다고 하더라.


맛있는 요리만 먹어와 입맛이 높아진 아이가 수준 이하의 맛없는 요리를 먹게 되어 식사에 거부감을 느끼는 일은 생각 외로 자주 있는 일이다.


당장 나만 하더라도 수준 이하의 학교 급식으로 인해 거식증이 온 적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교차검증을 끝마친 나는 휘호의 어머니, 범차의 아내를 바라봤다.


그리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으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내일부터 휘호를 위한 치료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그러니 부인께서는 옆에서 제가 하는 것을 잘 보고, 그 방법을 제대로 배워 두십시오. 아시겠습니까?”


작가의말

오늘도 재밌게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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