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 마카롱으로 시작하는 조선 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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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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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6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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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식객

DUMMY

맛에는 절대적인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맛있게 먹은 요리가 누군가에게는 끔찍하게 맛없는 요리일 수도 있고,


같은 요리를 먹는다 하더라도 처한 상황과 몸의 상태에 따라 그 맛이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는 법이다.


그렇기에, 이성계에게 이자춘에 대한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내 요리를 먹을 고객이 어떤 상태인지를 알면 보다 맛있는, 그 사람의 몸이 원하는 요리를 선보일 수 있을 테니까.


이성계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이자춘은 높은 확률로 소화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상황.


그런 사람이 가장 맛있게 느낄 만한 요리는 부드럽고 소화가 잘되는 요리이지만 버터를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단백질 소화흡수율이 100%에 가까워 소화가 무척이나 잘되는 치즈와 달리,


순수 지방 덩어리라 할 수 있는 버터는 소화가 불편한 사람이 기피해야 할 식재료.


버터를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는 제약이 있는 이상 소화가 불편한 사람을 위한 최선의 요리를 선보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최선의 요리를 선보일 수 없다면, 차선의 요리를 선보이는 수밖에.


그렇게 선택한 차선의 요리가 바로 오믈렛.


<거위알을 사용한 치즈 오믈렛>이었다.


부드럽고 소화가 잘되는 대표적인 요리이기도 했고 프렌치 요리를 기반으로 삼고 있는 내게 익숙한, 조금 과장을 더하자면 눈을 감고도 만들 수 있는 요리였으니까.


달걀이 아닌 거위알을 사용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맛.


거위알을 사용해 만든 오믈렛은 달걀을 사용해 만든 오믈렛보다 월등한 맛을 자랑한다.


이러한 맛의 차이는 알의 밀도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달걀보다 높은 밀도를 자랑하는 거위알은 달걀보다 훨씬 더 농후하고 녹진한 풍미를 지니고 있는 고급 식재로 분류된다.


두 번째 이유는 영양 성분.


거위알은 달걀에 비해 콜레스테롤이 낮은 저콜레스테롤 식재료로 소화가 불편한 것으로 보이는 이자춘의 몸이 바라는 안성맞춤의 식재라 할 수 있었다.


‘완성이다.’


완성된 오믈렛은 오동통하니 금방이라도 찔러 터트려 보고 싶은 유혹적인 자태, 달궈진 버터의 향과 오믈렛 속에 파묻혀 온기를 품은 치즈의 고소한 향이 어우러져 자아내는 그윽한 풍미를 모두 갖춘, 아궁이에 쪼그려 앉아 만들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완벽한 오믈렛이었다.


완성된 오믈렛을 도자기 그릇에 옮겨 담은 나는 이성계에게 도자기를 덮을 수 있는 적당한 크기의 덮개를 구해 줄 것을 부탁했다.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서빙 냄비의 대용으로 쓸 수 있도록 가급적 금속 재질로 된 것으로.


아쉽게도 도자기 그릇만을 덮을 수 있는 크기의 쇠 덮개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어쩌겠나. 꿩 대신 닭이라고 나무로 된 상자를 사용하는 수밖에.


이렇듯 요리용 덮개를 사용하는 이유는 요리의 온기 보존뿐만 아니라 요리의 향을 덮개 안에 가두는 목적도 있었다.


처음 요리를 마주한 고객이 그 향을 한껏 즐길 수 있도록 말이다.


미각의 80%를 차지하는 것은 후각.


미각을 사로잡기 위해선 우선 후각을 사로잡아야 한다.


이는 요식업계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국제 상식이다.


‘이걸로··· 완성.’


요리가 완성되었다는 말을 들은 이성계는 자못 비장한 표정으로 요리가 올려져 있는 소반을 들고 주방을 빠져나갔다.


이제 남은 것은 이자춘의 명을 받은 이성계가 나를 데리러 주방으로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뿐.


내 요리가 이자춘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어쩔 거냐고?


생각할 가치도 없는 일이다.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건 간에 내가 평생을 갈고닦아 온 실력은 변하지 않는다.


다른 모든 것들이 나를 배신하더라도 내가 쌓아 온 실력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온갖 미식을 섭렵해 온 21세기 미식가들의 까다로운 혓바닥도 사로잡은 내가 14세기 귀족의 혓바닥 하나 사로잡지 못할 것 같은가.


내 장담하건대,


이자춘은 내 요리의 포로가 될 거다.


반드시.


* * *


이자춘은 접시에 담긴 미지의 음식을 향해 젓가락을 뻗었다.


치즈 오믈렛이라는 이질적인 이름에 살짝 거부감이 들기도 했지만,


살이 오른 거위의 몸을 연상시키는 둥글고 오동통한 생김새와 접시로부터 흘러나오는 향긋한 향은 이름으로부터 오는 이질감을 순식간에 잊어버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부드럽군.’


오동통하게 튀어나온 오믈렛의 중앙 부분에 젓가락을 대고 힘을 주자 부드러운 비단을 찢는 듯한 감촉이 이자춘의 손끝을 타고 올랐다.


정확히 반으로 갈라진 오믈렛은 그 샛노란 속살을 드러내었고,


꿀꺽-

반으로 갈라진 오믈렛의 단면을 마주한 이자춘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키고 말았다.


원래도 그윽하던 풍미가 오믈렛이 반으로 갈라지는 것과 동시에 더욱 깊어졌기 때문이었다.


잠시 젓가락질을 멈추고 보다 깊어진 풍미를 즐기던 이자춘은 다시금 젓가락을 놀려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오믈렛을 집어 들었다.


두툼하게 나누어진 오믈렛 한 조각.


그 한 조각의 오믈렛이 이자춘의 입안에 들어간 그 순간.


이자춘은 지금껏 느껴 보지 못했던 맛의 신세계를 경험하게 되었다.


‘정말 이게 거위알이란 말인가? 지금껏 먹어 온 거위알들은 전부 무엇이었단 말인가!’


부드럽게 씹히는 식감과 입안을 가득 채우는 거위알의 녹진한 풍미.

거위알 특유의 맛을 보좌하듯 감싸고 있는 향긋하고 달큰한 수유(버터)의 풍미와 가열된 건락(치즈)의 고소한 향까지.


‘알’이라는 식재료로 이러한 맛을 낼 수 있으리라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이자춘은 오믈렛이 선사하는 맛의 향연에 빠져들어 한참을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잠시 뒤,


접시 위에 올라온 오믈렛을 모두 비운 이자춘은 빈 접시를 바라보며 아쉬운 듯 입맛을 한번 쩝 하고 다셨고,


그런 제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던 이성계는 조심스럽지만 비굴하지 않은 당당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어떠십니까. 제 말이 틀림없지요?”


그런 이성계의 목소리를 마주한 이자춘은 빈 접시를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이성계를 향해 돌렸다.


“···인정하마, 성계 네가 경솔히 행동한 것이 아니었어.”

“···!”


제 아버지인 이자춘의 입에서 자신을 인정하는 말이 나오자 이성계의 얼굴에 화색이 떠올랐다.


그런 이성계의 표정을 마주한 이자춘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이성계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 요리사라는 자를 데려오너라, 내 직접 만나 이야기를 좀 나눠 보아야겠으니.”


* * *


“요리사님!! 아버님께서···”


이성계를 통해 이자춘이 나와 대화를 나눠 보고 싶어 한다는 말을 전해 들은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예상했던 대로 내 요리가 이자춘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이라 생각한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이성계의 뒤를 따라 이자춘이 기다리고 있는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잠시 뒤.


어느 방 안에 도착한 나는 이성계와 크게 다르지 않게 생긴 거칠어 보이는 사내를 마주하게 되었다.


“귀하께서 그 요리사라는 분이시로군. 반갑소. 쌍성의 다루가치, 울루스부카가 나요.”


이자춘은 웃는 얼굴로 내게 인사를 건네왔고, 나 역시 웃는 얼굴로 이자춘의 인사에 답해 주었다.


“이인수라고 합니다.”


“호오, 같은 성씨를 쓰는 분이실 줄은 몰랐소만. 아, 성계야, 너는 이만 나가 보거라, 내 이분과 긴히 대화를 좀 나눠 볼 생각이니.”


“예 아버님.”


이자춘의 명을 받은 이성계는 군말 없이 자리를 비켰다. 이성계의 그림자가 완전히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이자춘은 예의 웃는 얼굴을 유지한 채 입을 열었다.


“자, 그리 서 있지만 말고 앉으시오.”


“아, 예에···”


나는 이자춘의 권유에 따라 그와 마주 앉았고, 내가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이자춘의 입이 열렸다.


“훌륭한 음식을 맛보여 주신 것에 감사드리오. 그··· 오믈렛이라 했던가? 여지껏 맛보지 못한 진기한 맛이더군.”


“입맛에 맞으셨다니 다행입니다.”


“단순히 입맛에 맞는 정도가 아니었다오. 뭐랄까, 내 몸이 원하는 듯한 그런 기분이 들더군. 아, 혹 하나만 물어보아도 되겠소?”


“말씀해 주십시오. 대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대답해 드리지요.”


“뭐, 별건 아니고··· 성계 녀석에게 듣기로 그대의 특기는 알이 아닌 고기라 들었는데, 굳이 거위알을 사용하여 그 ‘오믈렛’이라는 것을 만든 이유가 무어요?”


이건 기회다.


이자춘에게 내 능력을 어필할 수 있는 기회.


보다 나은 대우를 받으며 채용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라 판단한 나는 최대한 그럴듯한 말투로 질문에 대한 답을 내어놓았다.


“아드님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무슨 이야기?”


“본래 술과 기름진 요리를 즐기시다 최근 그 빈도를 줄이셨다지요?”


“···녀석, 별 이야기를 다 했군. 해서, 그게 어쨌다는 거요?”


“술과 기름진 음식을 즐기던 분이 그를 줄이는 경우는 보통 소화 기능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속이 불편하니 자연스레 술과 기름진 음식을 멀리할 수밖에요. 해서, 속이 불편하지 않을 부드러운 요리를 준비한 것입니다. 오믈렛은 본디 닭의 알을 사용하지만 굳이 거위알을 사용한 이유는···”


나는 어째서 거위알을 사용했는지, 건락과 거위알이 어째서 소화 기능에 도움이 되는지 등의 설명을 이어 나갔다.


“흐음··· 말로만 듣던 음선정요(飮膳正要)의 비방인가.”


내 대답을 들은 이자춘의 표정이 변했다.


저 표정 어디서 많이 본 표정인데···


아, 그래.


도매시장에서 많이 본 표정이다.


이 재료를 이 가격에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놓고 고민하던 상인들의 표정과 똑 닮았다.


대충 알겠다.


역시 뭔가를 좀 더 보여 줘야 하는 걸까···라고, 생각하던 그때.

이자춘의 입이 열렸다.


“이인수··· 라고 하셨소?”


“그렇습니다.”


“그대 정도의 실력을 지닌 숙수가 이곳 쌍성까지 온 것을 보아하니, 그대에게도 말 못 할 사정이 여럿 있는 것 같군. 아니 그렇소?”


엄밀히 따지자면 틀린 말은 아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21세기를 살아가던 중 하루아침에 14세기 여말선초의 시대에 떨어졌다는 사정을 어디에다 털어놓겠느냐고.


아마 미치광이로 몰리지나 않으면 다행일 터다.


“···뭐, 그런 셈이지요.”


“하, 그럴 줄 알았소. 몽골식 이름이 아니라 고려식 이름으로 스스로를 소개할 때부터 뭔가 문제가 있겠거니 싶었거든.”


그리 말한 이자춘은 제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목을 축이더니 단호한 어투로 한 가지 제안을 건네왔다.


“따로 갈 곳이 없다면 우리 집안에 머무르시오. 대우는 내 섭섭잖게 해 드리지.”


나를 단순한 사용인이 아닌 정식 손님으로,


식객으로 우대해 주겠다는 제안.


이 제안에 대한 내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앗!!”


* * *


이자춘은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가문의 식객이 되기로 결정한 이인수가 방을 떠나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문밖을 지키고 있던 제 측근에게 이성계를 불러올 것을 명했다.


명을 받은 측근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성계와 함께 돌아왔다.


제 수하를 돌려보낸 이자춘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이성계를 바라봤다.


“성계야.”


“예, 아버님.”


“딱 하나만 묻겠다. 저 이인수라는 요리사에게 나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느냐?”


“예, 아버님께서 즐기시는 음식이 무엇인지, 그리고 요즘 무얼 즐겨 드시는지를 묻기에 답해 주었습니다.”


“그래··· 그랬단 말이지···”


그리 말하며 고개를 주억이던 이자춘은 찻잔에 담긴 식은 찻물을 단숨에 들이켠 뒤 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잠시 뒤,


“네놈이 대체 정신이 있는 놈이야 없는 놈이야?!”


이자춘은 주먹을 쥐어 책상을 쾅- 하고 내려치며 이성계를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경솔한 행동을 한 자식을 질책하는 듯한.


그런 목소리로.


작가의말

오늘도 재밌게 읽어 주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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