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 마카롱으로 시작하는 조선 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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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뢰야
작품등록일 :
2024.08.06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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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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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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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주방

DUMMY

이성계는 자신의 앞에 놓인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았다.


불과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을 인정해 주는 듯한 모습을 보이던 아버지가 순식간에 뒤바뀐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도무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알 수 없었던 이성계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가,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아버님.”


“정말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서 묻는 게냐?! 정말로?!”


잔뜩 화가 난 이자춘은 주먹을 들어 탁자를 쾅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내리치며 이야기를 이어 갔다.


“알게 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이에게 가주의 건강 상태를 그리 미주알고주알 떠들어 놓고 모른다는 말이 그 입에서 나오는 게냐?!”


“제가 언제 그런 짓을 했다고 그···”

이자춘의 말에 억울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답하려던 이성계는 그제야 이자춘이 화를 내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깨닫고는 흠칫하는 표정을 지었고,


그 표정을 마주한 이자춘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그 표정을 보니 알겠구나. 아무 생각 없이 같은 집안 사람이 되겠거니- 하고 또 아무 말이나 내뱉은 게지, 내 말이 틀렸느냐?”


“그으··· 아버님, 그것이 말임다···”


“내 말이 틀렸느냐 물었다!”


“마, 맞슴다···!”


“어지간해서는 정을 잘 주지 않는 네 녀석이 그리 나올 정도라면··· 그 사슴고기라는 게 어지간히 맛있었던 모양이지?”


“···예에, 그렇슴다.”


순박한 어투로 그리 답하는 이성계의 모습을 가만 지켜보고 있던 이자춘은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차라리 당당하니 좋구나. 그래서, 이 일을 어찌 수습할 생각이냐?”


“수, 수습이라니요. 그 요리사님을 식객으로 받기로 정하셨으니 다 해결된 것 아닙니까? 이제는 우리 집안 사람이 되었으니까요.”


“식객이 된 것은 식객이 된 것이고, 속내는 따로 알아봐야 할 것 아니냐! 저치가 조 총관이 준비한 첩자라면 어찌하려고?”


그 말을 들은 이성계의 얼굴에 당황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 그럴 리가 없슴다. 조소생이 그놈이 대체 무슨 수로 저런 실력을 지닌 숙수를 초빙하여 첩자로 쓸 수 있단 말임까?!”


세상 물정 모르는 차남의 반응에 다시금 한숨이 새어 나올 뻔했지만 간신히 한숨을 들이 삼킨 이자춘은 제 아들을 위해 설명을 이어 나갔다.


“고려의 기씨 일가를 통한다면 못 할 것도 없지. 성계 네 녀석도 이번에 잘 알아 두거라. 쌍성의 조 총관과 고려의 덕성부원군 기철은 서로 친밀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니라.”


“아니, 고려의 부원군이 무슨 수로 원 황실의 숙수를 불러온단 말입니까?!”


“그 기철이라는 자가 바로 제2황후의 오라비 되는 이다. 제발 네 형의 반만이라도 좀 닮아 보거라. 이런 기본적인 것은 좀 알고 있어야 할 것 아니냐!”


“죄, 죄송합니다 아버님.”


“매번 말은 잘하는구나, 여하간, 저 이인수라는 자가 조 총관이 부원군을 통해 불러온 첩자가 아니라는 것을 네가 감히 장담할 수 있겠느냐?”


“그건···”


이성계는 말끝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가슴은 그럴 리 없다 소리치지만 방금 전 아버지에게 ‘조 총관’과 ‘기철’의 밀월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은 자신의 머리는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이인수를 의심하고 있었으니까.


머리와 가슴,


이성과 감성.


이자춘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 고민을 이어 나가는 이성계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둘 중 어느 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이성계의 모습이 이어졌고 그 모습을 가만 지켜보고 있던 이자춘은 나직이 입을 열어 그 고민을 끝내 주었다.


“무엇이 옳은지 모르겠지? 원래 그런 것이다. 세상에는 절대란 없는 법이니까.”


“해서 그자를 식객으로 받으신 겁니까?”


“방금까지는 요리사님이라 칭하더니, 그새 그자가 되었느냐? 나 원, 그리 경거망동하지 말라 일렀거늘.”


“이는 경거망동이라기보다는··· 적이 보낸 첩자일지도 모른다 말씀하시니···”


“변명은 되었다. 그보다, 어째서 그를 식객으로 받았는지를 물었느냐? 간단하다. 그것이 최선의 방책이었으니까.”


“이해가 잘되지 않습니다. 첩자일지도 모르는 이라면, 그냥 죽여 버리는 편이 쉬운 것 아닙니까?”


조심스레 자신의 의견을 내어 놓는 이성계의 목소리를 들은 이자춘은 진심이냐는 듯한 표정으로 이성계를 바라봤다.


“···안 됩니까?”


“그래. 그자가 첩자인지 아닌지를 떠나, 그자의 실력은 진짜였다. 충분히 써먹을 수 있는, 진귀한 보물과도 같은 것이었지.”


“아무리 대단한 실력을 지니고 있다 해도 첩자라면 의미가 없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리 단순히 생각하니 내가 널 볼 때마다 네 형을 좀 본받으라 말하는 게다. 너는 어찌 된 녀석이 싸울 때는 그토록 머리가 잘 돌아가는데 싸움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할 때는 그리 우둔해지는 게냐?!”


“···”


“잘 듣거라, 저 이인수라는 자가 정말로 조 총관이 보낸 첩자인지 아닌지는 알지 못한다. 허니 시간을 들여 그 속내를 살피고 행실을 살펴 첩자인지 아닌지를 확인한 뒤, 첩자라면 죽이고, 첩자가 아니라면 그 재주를 중히 쓸 생각으로 그를 식객으로 받은 것이야. 이젠 이해가 좀 되었느냐?”


“그, 그렇군요. 역시 아버님이십니다. 허면 그 요리사를 감시할 이도 이미 정해 두셨겠군요!”


“당연하지.”


“역시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이런 일이라면 역시 집사 어른을···”


“내 수발 들기도 바쁜 그치에게 이런 일까지 맡길 수야 있나.”


“허면, 누굴 생각하고 계십니까?”


첩자를 감시할 감시역으로 누굴 생각하고 있느냐는 이성계의 질문.


그 질문을 받은 이자춘은 아무렇지 않은 듯 덤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


“···예?”


“성계, 너를 감시역으로 쓸 생각이다. 네놈이 싼 똥은 네놈이 치워야 할 것 아니냐!”


* * *


다음 날 아침.


“아침상 대령했슴다.”


이씨 집안에서 두 번째로 받는 아침상은 첫날 받았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침상에 올라온 메뉴도, 조리 수준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딱 평범한 밥상.


분명 밥상의 상태는 어제와 다르지 않건만 어제 받은 아침상보다 오늘 아침상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은 역시 마음의 여유가 생긴 덕이리라.


이씨 집안의 가주에게 정식으로 손님 대우를 받게 되었다는,


이씨 집안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생겼다는 것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의 여유 말이다.


지금의 나와 같이 특정 집안의 손님으로 대우받으며 기본적인 의식주와 신변의 안전을 제공받는 손님들을 ‘식객’이라 불렀는데,


이 식객들은 여러 편의를 제공받는 대가로 자신의 재능을 살려 그 집안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 주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거 어디서 본 것 같다고?


그래 맞다.


말이 좋아 손님 대우를 받게 된 것이고, 식객으로 대우받게 되었다는 것이지.


이건 일종의 고용 계약이었다.


의식주와 신변의 안전을 제공받는 대신 내가 지닌 재능을 특정 가문을 위해 사용한다.


이거, 누가 봐도 고용 계약 아닌가?


문서로 쓰지 않았다 뿐이지 실상을 파헤쳐 보면 고용 계약과 다를 게 없다니까 글쎄?

아무튼,


‘식객’이라는 명목으로 이씨 집안에 고용된 나는 앞으로 어떻게 처신해야 이 집안에 계속 머무를 수 있을지, 보다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지를 놓고 고민하기 시작했고,


한참 동안 고민을 이어 가던 중,


문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이성계입니다! 안에 계십니까?!”


나를 고용해 준 이자춘의 뒤를 이어 이씨 집안을 물려받을 차기 CEO의 방문을 받은 나는 생각하던 것을 잠시 멈추고 문을 열어 이성계를 맞이했다.


“이른 아침부터 공자님께서 무슨 일이십니까?”


“예에, 아버님께서 귀인을 잘 모시라고 하셔 이리 찾아뵈었습니다. 혹 불편하신 곳은 없으신지요?”


불편한 곳이야 많지만 이 시대에 뭐 얼마나 대단한 것을 바랄 수 있겠나.


그리 생각하며 ‘아무런 불편이 없으며, 가문의 배려 덕분에 편히 잘 지내고 있다’는 대답을 내어놓았다.


“다행입니다. 행여나 불편하지는 않으셨을까 얼마나 걱정이었는지··· 아, 그렇지. 저택의 지리에는 조금 익숙해지셨습니까?”


“하하, 아직 조금 낯설군요.”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봐도 수십, 아니, 최소 백 명 이상이 머무를 수 있을 법한 규모의 저택의 지리를 고작 며칠 만에 다 파악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나.


그리고 애시당초 이 저택에 도착한 이후 어지간해서는 이 방을 나가지 않았으니, 지리에 익숙해지고 말고 할 일이 없는 것이다.


“잘되었군요. 그럼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예? 안내라니, 무얼···”


“저택 말입니다. 아직 저택의 지리에 익숙해지지 않으셨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한동안 머무실 곳인데, 얼른 익숙해지셔야지요.”


“아···”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던 나는 기꺼이 이성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저기 저쪽이 어젯밤 가셨던 아버님의 독채고, 동북쪽으로 가시면 우물이 있습니다만, 어차피 가실 일이 없으니 알아만 두십시오. 물이 필요하시면 하인들을 불러 시키시면 될 테니까요.”


“그렇군요. 참고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저기 저쪽은 가병들이 머무는 곳인데···”


그렇게 이성계의 뒤를 따라다니며 저택의 지리를 하나둘 파악해 갈 즈음, 나는 내게 가장 익숙한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가 저택에서 가장 큰 주방입니다. 저택의 손님들께 내어 가는 식사부터 가병들의 식사, 하인들의 식사까지 전부 여기서 만들어지고 있지요.”


이성계의 설명에 따르면 이 주방은 오롯이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라고 했다.


집안의 하인들과 가병들을 먹일 식사를 전부 이곳에서 만들어 낸다고.


“잠깐, 그럼 어제 사용했던 주방은···”


“아, 어제저녁에 사용하신 주방은 아버님의 독채에 딸린 주방입니다. 규모만 놓고 따지자면 이곳을 따라올 수 없지요.”


어쩐지 좁다 싶더라니.


별장에 딸린 개인용 주방 같은 곳이었구만 거기가.


그나저나, 이 주방··· 중세에 만들어진 주방치고는 제법 봐줄 만하다.


내가 말하는 것은 주방 장비의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렴, 21세기의 첨단 조리 도구들을 보아 온 내게 이 시대 수준의 조리 도구가 성에 찰 리가 있겠는가.


내가 이 주방을 봐줄 만하다 평한 것은 이 주방엔 이 주방 나름대로의 질서가 있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각 구역별로 솥과 시루, 석쇠 등 여러 조리 도구를 따로 배치해 놓은 것부터 시작해, 구역별로 배치된 이들이 다루고 있는 식자재가 전부 다르지 않은가.


이건 누군가 이 주방을 통솔하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도, 제대로.


지금도 보라.


외부 인원이 들어왔는데도 불구하고 아랑곳 않고 자기네들이 맡은 일에 집중하고 있지 않은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그 말처럼 주방 스탭들의 상태를 보면 그 주방을 책임지는 주방장의 실력 역시 알 수 있는 법.


이 주방을 맡은 이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제법 실력이 있는 요리사임이 분명하리라.

아침상은 평범했지만 아마도 그건 정해진 예산 내에서 식단을 준비하느라 어쩔 수 없이 맛을 포기한 탓이겠지.


여말선초의 요리사라···


어떤 사람인지, 어떤 요리를 하는지 살짝 궁금해진다.


호기심이 생긴 나는 이성계에게 이 주방의 주방장을 만날 수 있을지를 물었다.


내 말을 들은 이성계의 얼굴에는 난처한 표정이 떠올랐다.


“주방을 책임지는 숙수를 만나 보고 싶으시다고요? 그게··· 지금 당장은 어려울 듯싶습니다. 주방에서 쓸 고기를 구하기 위해 가병들과 함께 사냥에 나가 있어서 말입니다.”


아니, 무슨 놈의 요리사가 재료를 구하러 사냥을···


···


하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시대가 시대이니 그럴 수밖에.


시대의 다름을 이해한 나는 내게 사정을 설명해 준 이성계에게 조만간 주방 숙수와 자리를 한번 만들어 달라는 이야기를 건네며 주방을 나섰다.

아니, 나서려 했다.


“머이야, 뉜가 했더니 둘째 도령 아니시오. 그런데, 뒤에 서 있는 희한한 아새끼는 대체 머이간?”


한 손에 도끼를 쥐고 있는 사나운 인상의 야만인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 야만인이 이 주방을 책임지는 주방장이라고?


어쩐지 내가 요리사라고 할 때 영 못 미더운 눈으로 바라보더라니···


이러니 믿질 못하지.


작가의말

오늘도 재밌게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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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프롤로그 +11 24.08.27 1,820 7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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