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 마카롱으로 시작하는 조선 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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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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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6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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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횡운골

DUMMY

휘호를 치료하겠다 선언한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나는 주방에 도착해 휘호를 위한 식사를 만드는 중이었다.


지금 만들고 있는 것은 좁쌀을 사용하여 끓인 버섯 달걀죽.


휘호를 위한 첫 요리로 죽을 선택한 이유는 휘호의 소화 능력이 많이 저하된 상태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반년간 거친 떡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지 않은가 당연히 소화 능력이 저하되어 있을 수밖에.


아무리 영양가 있는 음식을 준비한다 한들 먹는 사람이 소화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그렇기에 버섯 달걀죽을 준비한 것이다.


영양소가 풍부한 재료를 잘게 썰어 만든 죽이라면 부족한 소화 능력으로도 필요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을 테니까.


처음에는 죽으로 시작해 천천히 일반식으로 전환하여 소화 기능을 정상화시키고, 그 과정에서 내가 만든 요리를 먹여, 먹는 즐거움을 천천히 떠올리게 해 준다면 휘호가 앓고 있는 거식증은 자연스레 사라지게 될 터였다.


‘마지막으로 부추를 썰어 넣어 살짝 끓여 주면···.’


죽을 완성한 나는 내 옆에 서서 죽을 만드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던 휘호의 어머니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부추를 썰어 넣은 이유는 부추의 향을 가미하여 혹시 모를 잡내를 잡아 주기 위한 것이니, 푹 익히지 마시고, 부추를 살짝 데쳐 준다는 감각으로 마무리하시면 됩니다. 혹시 이 과정에서 궁금한 점이 있으시다면 지체 없이 말씀해 주십시오. 이해하기 쉽게 잘 풀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아, 네에··· 그럼···.”


“하하, 편하게 말씀하시죠.”


“알겠습니다··· 그럼 편하게 여쭙겠습니다. 손님께서는 분명··· 휘호의 치료법을 알려 준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헌데 지금 손님께서 알려 주신 것은···.”


“예, 맞습니다. 죽을 끓이는 방법이지요. 앞으로 부인께서는 죽을 끓이는 방법 외에도, 밥을 하는 법. 고기를 잡내 없이 굽고 삶는 법. 국물을 제대로 우려내는 법을 배우시게 될 겁니다.”


“저어, 그건 치료법이 아니라···.”


그래 맞다.


지금 내가 알려 주고 있는 것들은 단순한 조리 기법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 조리기법들이야말로 휘호를 치료하는 데 있어 가장 필요한 ‘치료법’이라 할 수 있었다.


휘호의 거식증의 원인은 휘호의 어머니가 지니고 있는 서툰 요리 실력에서 비롯된 것이니까.


“부인, 부인께서 보시기에는 단순한 조리 기법으로밖에 보이지 않으시겠지만. 사실 이 기법들은 ‘약선’이라 불리는 비전입니다.”


“약선이라고요?”


“예, 그러니까··· 이게 약식동원이라는, 약과 음식은 하나라는 개념에서 출발한 치료법인데···.”


휘호의 어머니.


범차 부인의 얼굴에 불신의 빛이 떠오르는 것을 마주한 나는 최대한 그럴듯한 말을 늘어놓으며 부인을 설득해 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신의 요리 실력이 형편없어 아이가 거식증에 걸리게 되었으니, 요리 실력을 키워야 아이가 나을 것이다― 라는 무례한 말을 면전에다 대고 뱉을 수는 없지 않은가.


제 자식을 낫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새벽닭이 울기도 전에 일어나 조리법을 배우고 있는 사람에게 어떻게 그런 모진 말을 할 수 있겠나.


그런데 왜 부인에게 화를 냈냐고?


그건··· 불가항력이었다.


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자전거와 부딪힐 뻔한다든가, 도로에서 운전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내 앞에 덤프트럭이 끼어든다든가 하는 그런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깜짝 놀라 비명을 내지르거나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욕설을 내뱉지 않던가.


부인의 요리는 그런 돌발 상황과 엇비슷한 충격이었단 말이다.


요리사로서의 본능이 비명을 내지르더라니까?


“그런 귀한 치료법을 아무 대가도 없이 베풀어 주시는 분을 잠시나마 의심하다니··· 부끄러워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아닙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


약식동원이니 뭐니 하는 그럴듯한 말을 총동원한 결과 나는 부인을 납득시킬 수 있었고, 그날 이후 매일 아침마다 휘호의 식사를 준비하며 부인에게 여러 기법들을 가르쳐 나갔다.


손재주가 영 없는 것은 아니었던지, 부인의 실력은 날이 갈수록 늘어갔고 휘호의 건강 역시 조금씩 호전되어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 * *


한 달 뒤,


“휘호야, 정말로 괜찮으냐?? 구역질이 나거나 그러지는 않고?”


“네! 정말 괜찮아요!”


“허, 허허··· 이렇게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을 줄이야···.”


요 한 달 사이 휘호의 건강은 눈에 띄게 회복되었다.


휘호의 식사량은 날이 갈수록 늘어가는 중이었고, 창백했던 혈색 역시 발갛게 돌아오고 있었으니,


휘호의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아쉬운 점이 없잖아 있기는 하지만, 이만하면 충분합니다. 이전보다 훨씬 낫군요.”


“저, 정말인가요?!”


“예, 오늘부터 아드님의 식사는 부인께서 직접 담당하십시오. 혹시 몰라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휘호의 병은 완치된 것이 아닙니다. 휘호의 병이 완치되기 위해서는···.”


“비전에 따라 음식에서 잡내가 나지 않도록 재료와 조리 도구를 깨끗이 손질하고 말씀해 주신 조리법을 엄수하라 하셨지요.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휘호의 건강이 호전된 만큼 범차 부인의 요리 실력 역시 부쩍 늘어난 상태였다.


자신의 아내가 해 준 식사를 맛본 범차의 입에서 ‘내 아내가 이런 맛을 낼 수도 있는 줄을 몰랐다’는 감탄사가 나올 정도였으니,


지난 한 달의 집중 교육이 헛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인수 공. 우리 가문이 그대에게 참으로 큰 은혜를 입었소. 유일한 자손을 허망하게 잃지는 않을까 걱정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리 건강해질 줄이야···!”


“별말씀을요.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닙니다.”


“텡그리의 말씀을 받든다는 샤만도, 대도에서 왔다는 의원도 고치지 못한 병을 한 달 만에 고쳐 내었는데, 어찌 대단한 일이 아니라 할 수 있겠소!

내 약속하겠소! 우리 가문을 구해 준 이 은혜는 아들과 손자 대에 걸쳐 대대로 갚아 나가리다!”


아들의 건강이 호전된 것을 확인한 범차는 무척이나 기뻐하며 몇 번이나 내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어찌나 고마워하던지, 감사를 받으면서도 부담스러울 정도였더랬다.


“연회다! 휘호의 쾌차를 기념하는 연회를 열겠다!”


내게 부담스러울 정도로 감사 인사를 건넨 범차는 그날 저녁 아들의 쾌유를 기념하는 축제를 벌였다.


술과 고기, 노래와 춤이 어우러진 축제는 날이 밝을 때까지 이어졌고 축제가 끝난 이튿날 아침.


나와 이성계가 이끄는 가병들은 쌍성으로 돌아가기 위한 채비를 끝마치고 범차와 오도리 부족의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울루스부카와 약속한 대로 올겨울이 지나면 쌍성 근방으로 근거지를 옮길 생각이오. 근거지를 모두 옮기고 나면 그때 다시 한번 그대를 초대할 테니, 그때 다시 만납시다.”


“하하,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아 그리고··· 부족의 은인인 그대를 위해 따로 준비한 선물이 있는데, 부디 받아 주었으면 하오.”


“선물이요?”


“그렇소. 잠깐 기다려 주시겠소? 선물을 가져오라 이르리다.”


그리 말한 범차는 얼굴에 흉터가 가득한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에게 무어라 말을 건넸다.


범차의 말을 들은 사내는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황금빛에 가까운 갈기와 눈처럼 새하얀 털을 지니고 있는 백마를 데리고 돌아왔다.


“선물이라는 게 혹시 저 말입니까?”


“그렇소. 용마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귀한 말이라오. 덩치만 봐서는 족히 여섯 살은 되어 보이는 놈이지만 실은 태어난 지 이제 겨우 2년밖에 되지 않은 어린놈이지.”


뭔가 대단히 뛰어난 명마라는 것 같은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갈기와 털 색깔이 조금 다르다는 것만 제외하면 다른 말들과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은데 말이지.


“원래는 휘호 녀석을 위해 기르고 있던 말인데··· 우리 부족의 은인인 그대를 위해 내 무엇을 아끼겠소! 부디 받아주길 바라오.”


이 말을 내게 주겠다고?


어··· 글쎄, 저건 받아 봐야 내가 쓰지도 못할 것 같은데 말이다.


푸르릉― 푸르르르―


저것 보라고,


딱 봐도 사나워 보이잖나.


“마음은 감사합니다만, 그. 아시다시피 제 승마 실력이···.”


“걱정할 것 없소! 겉보기엔 사나워 보여도 무척 순한 녀석이거든!”


순해? 저게?


순하다기보단 많이 화난 것 같아 보이는데···?


“정말 괜찮습니다. 굳이 그리 신경을 써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하, 겁을 잔뜩 집어먹으셨군. 자아, 그러지 말고 한번 다가와 보시오. 겉보기에는 이래 보여도 아주 순한 놈이라오!”


“···.”


범차의 권유를 이기지 못한 나는 범차의 도움을 받아 말 위에 오르게 되었다.


“···어라?”


“하하, 내 뭐라 그랬소! 아주 순한 놈이라니까!”


생각지도 못한 결과가 나왔다.


쌍성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 몸부림을 칠까 싶어 잔뜩 겁을 집어먹고 있었는데, 이 녀석은 아무런 몸부림 없이 나를 받아 주었다.


심지어 승차감 역시 나쁘지 않았다.


마치 말이 나를 배려하여 움직이는 듯한 기분이라고나 할까.


이거, 괜히 명마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구만.


“이 녀석도 인수 공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오! 괜찮다면 이 녀석의 이름을 지어 주시겠소? 이름도 없이 타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 아니오.”


흐음···


말의 이름이라, 이 털이 새하야니 그냥 흰둥이라고 부를까?


아니, 그건 너무 성의가 없어 보인다.


뭔가 그럴듯한 이름을 지어 주고 싶은데··· 뭐가 좋으려나?


“저어, 요리사님.”


말의 이름을 무엇으로 할지를 고민하고 있자니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이성계인가.


“예 둘째 공자, 무슨 일이십니까?”

“괜찮으시다면 제가 그 말의 이름을 지어 #주어(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리 말하는 이성계의 시선은 내가 아닌 내가 타고 있는 말에 집중되어 있었다.


저 눈빛 어디서 많이 본 눈빛인데, 내가 저걸 어디서 봤더라···?


아, 그래.


스포츠카라면 사족을 못 쓰던 후배 놈의 눈빛이 딱 저랬었지 아마.


“딱히 생각나는 이름이 없어 곤란하던 차였는데 잘되었군요. 그럼, 공자께서 저를 대신해 이름을 지어 주시겠습니까?”


저 눈빛, 말에 진심인 눈빛이다.


아무런 생각이 없는 나보다는 훨씬 괜찮은 이름을 지어 줄 것이라 생각한 나는 이성계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내 대답을 들은 이성계는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말의 눈매가 송골매를 닮은 데다, 갓 구름을 가르고 나온 것처럼 털의 색이 새하야니. 구름을 가르는 송골매라는 뜻에서 횡운골(橫雲鶻) 어떻습니까.”


“호오, 횡운골이라. 인수 공. 딱 어울리는 이름 같은데, 어떠시오.”


횡운골··· 이라···


음, 흰둥이보다는 그럴듯해 보이는 이름이니. 그럼 그걸로 하기로 할까.


“그럼 그렇게 할까요?”


선물받은 백마의 이름은 횡운골로 결정되었고 나와 내 호위로 따라온 이성계 일행은 범차와 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쌍성으로 향했다.


* * *


그렇게 시간은 흘러,


오도리 부족의 영역을 벗어난 우리 일행은 잠시 말에서 내려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가죽 부대에 담긴 물을 홀짝이며 마른 목을 축이고 있자니 이성계가 내게 다가와 은근한 어투로 말을 건네왔다.


“저어, 요리사님···.”


“왜 그러십니까 둘째 공자?”


“저어···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 말임다.”


“예? 제게 말입니까?”


“예··· 그, 실례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정말이지 참을 수가 없어서···.”


뭔진 모르겠지만 표정을 보아하니 상당히 절실한 모양이다.


무슨 부탁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이성계의 부탁이니 한 번 정도는 들어주도록 할까.


그리 생각한 나는 이성계에게 무슨 부탁을 하려는 것인지를 물어보았다.


내 대답을 들은 이성계는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어투로 입을 열었다.


“딱 한 번만, 횡운골의 고삐를 잡아 볼 수 없겠습니까? 보자마자 반한 말은 유린청(遊麟靑) 이후로 처음인 터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그렇습니다.”


어쩐지 말을 달리는 내내 묘한 시선이 느껴진다 했더니, 그게 이성계의 시선이었던 모양이었다.


거참, 얼마나 횡운골을 타 보고 싶었으면···


까짓거 한번 태워 준다고 해서 어디 닳는 것도 아니니 특별히 허락해 주도록 하자.


말을 한번 태워 주는 것으로 이성계의 호의를 살 수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남는 장사일 테니.


작가의말

*횡운골은 태조 이성계의 여덟 명마중 하나입니다.

여진산 말로 나하추를 상대할때 탄 말이라고 하지요. 화살을 두대나 맞고도 멀쩡했다나요?


오늘도 재밌게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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