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 마카롱으로 시작하는 조선 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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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뢰야
작품등록일 :
2024.08.06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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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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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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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중매

DUMMY

계절이 한 번 바뀌는 동안 나는 이씨 집안의 귀빈 생활에 완전히 적응할 수 있었다.


아, 완전히 적응했다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겠다.


지금도 어색한 점이 없잖아 있긴 하거든.


어딜 갈 때마다 가베치들, 그러니까 이씨 가문의 가병들 서넛이 호위로 따라붙곤 했는데 이런 부분은 아직도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다.


평생 혼자 잘만 돌아다니다 갑자기 경호원들을 끼고 살게 되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리라.


“어디··· 저거랑 저거, 아, 저 산마늘도 좀 괜찮아 보이네. 그리고 송이··· 아니다 저기요? 그냥 여깄는 거 전부 주세요.”


“예? 아, 알겠습니다!”


오늘도 가베치들의 호위를 받으며 시장에 도착한 나는 괜찮아 보이는 식재료를 구매해 저택으로 돌아왔다.


이럴 때만큼은 호위가 있는 것이 어색하지 않고 참 편하게 느껴졌다.


구매한 식재료의 운반을 전부 가베치들에게 떠넘길 수 있었으니까.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구입해 온 식자재는 창고에 가져다주시고, 이만 돌아들 가 보세요.”


“예, 선생.”


저택으로 돌아온 나는 가베치들을 해산시킨 뒤, 오늘 저녁에 있을 손님의 접대를 준비하기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계절이 바뀌기 시작할 무렵부터 나는 이자춘의 손님을 접대하는 일을 맡고 있었는데 이 일을 맡게 된 것은 이자춘이 제시한 거절할 수 없는 제안 때문이었다.


‘성계에게 들었소. 오도리 투먼의 아이를 요리로 고쳐 주었다지.’


‘운이 좋았지요. 마침 제가 아는 증상과 비슷했던 덕에···’


‘우연히 얻은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는 자들뿐이지. 너무 겸손해할 필요 없소.’


‘하하··· 감사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부르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음, 말을 빙빙 돌리는 것은 내 성미에 맞지 않으니 툭 터놓고 말하리다. 조만간 손님들을 초청할 예정인데, 그 손님들을 접대하는 데 그대의 재주를 빌리고 싶소. 당연히 대가는 지불할 거요.’


‘대가라면 얼마나···?’


‘오도리 투먼에게 명마를 한 필 얻었다 들었소. 그런 명마를 마구간에서 썩혀 두는 것은 안 될 말이지. 명마를 기르기 위한 목장과 그에 더해 기름진 밭 백 마지기를 떼어 드리리다. 이 정도면 그대의 재주를 빌리기에 충분한 값이 되지 않겠소?’


거절하기에는 너무나 과한 대가였다.


한 마지기가 대충 200평이니 백 마지기면 2만 평에 달하는 규모의 땅.


손님 접대를 맡아 주는 대가로 목장 하나와 2만 평 짜리 밭 하나?


이걸 어떻게 참아?!


“덕보야, 전채 준비는?”


“예. 말씀해 주신 방법대로 쏘오―스도 만들어 뒀슴다.”


“그래, 고생했다. 그거 젓는 게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니었을 텐데···”


“아임다, 많이 해 봐야 실력이 늘지 않겠슴까!”


“그렇게 생각해 주면 고맙지. 전채는··· 이 정도면 됐네. 슬슬 메인 준비 시작하자. 지금 준비해 놔야 나중에 시간에 맞춰 내어 갈 수 있을 테니까.”


“예! 스승님!”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라.


사내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목숨을 다한다 했다.


이는 요리사도 마찬가지다.


요리사는 자신의 기술을 인정해 주고 자신의 요리의 가치에 걸맞은 대가를 치러 주는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같은 손님이라 하더라도 그 가치를 알아주는 이를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더 맛있는 요리를 내어 주고 싶은 것이 요리사의 마음.


그렇기에 나는 내 요리의 가치를 알아봐 준 이자춘을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해 요리를 해 나갈 뿐이었다.


* * *


오늘 준비한 코스는 근처 산에서 캐어 온 버섯과 겨울 채소, 그리고 근처 강에서 낚은 겨울 송어를 사용한 가벼운 요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오늘 찾아온 손님은 고려 사람으로 독실한 불자라 고기보다 채소와 생선을 선호하는 식성을 지닌 사람.


그러니 그 식성에 맞춰 코스를 준비할 수밖에.


“첫 요리는 겨울 무를 채 썰어 양념에 버무린 무 생채와 메밀면입니다. 새콤하게 버무렸으니, 입맛을 돋워 드릴 수 있을 겁니다.”


“이번 요리는 특별히 제조한 양념장을 사용해 쪄낸 배추찜입니다. 배추에서 우러나온 배추 특유의 단맛을 즐기시길 바라며 만들었습니다.”


“다음으로는 늦가을에 수확한 송이를 사용한 송이 솥밥입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고 밥만 떠 밥알에 배인 송이의 향을 즐겨 보시지요. 솥밥은 한 번에 모두 드시지 말고 반을 남겨 두신 뒤 추후에 나올 송어구이와 함께 곁들여 드시길 추천드립니다.”


“으음··· 으으음···! 과연, 이 천호(千戶)가 그리 자랑할 만한 맛이구료! 입안에서 느껴지는 이 향취··· 마치 가을 산에 올라 있는 듯한 기분이외다.”


“하하, 그렇지요? 우리 이 선생의 솜씨는 천하제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오. 이 선생이 온 뒤로는 나도 매일 끼니때를 기다리게 될 정도란 말이지.”


“과연, 천하제일을 논할 만한 맛이오! 특히 이 송어구이! 이 송어구이가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군! 구워진 송어에서 흘러나온 고소한 기름과 밥알에 스며든 송이의 향이 어우러지니··· 이 한경, 지금껏 인생을 잘못 살아왔음을 통감하오! 이런 맛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어찌 지금에 와서야 알게 되었단 말인가!”


오늘 찾아온 손님의 이름은 한경.


원래부터 이씨 집안과 교류해 오고 있던 한씨 집안의 가주였다.


엊그제 찾아온 손님은 쌍성 근방에 자리를 잡고 있는 여진 부족의 족장이었고,


지난주에 찾아온 손님은 이씨 집안과 조씨 집안 둘 중 어디의 손도 들어주지 않는, 소위 말하는 ‘중립’을 표방하는 가문의 가주였다.


이렇듯, 이자춘을 찾아오는 손님들은 크건 작건 쌍성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쌍성의 유력자들이었다.


그래 맞다.


이 접대 자리는 이자춘이 쌍성의 유력자들을 포섭하고, 그들과의 유대를 끈끈하기 위해 마련한 정치적인 자리였다


첫 접대를 시작할 때부터 나는 이 접대에 이자춘의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식사 자리에서 나누는 이야기의 내용이 하나부터 열까지 정치적인 이야기였단 말이다.


그걸 듣고도 이 자리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눈치채지 못한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하지 않을까?


부담스럽지는 않냐고?


여의도로 출퇴근하는 금배지들 앞에서도 코스를 진행해 봤었는데, 이제 와서 뭘 이런 걸로 부담을 가지겠는가.


뭐,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실수를 하기라도 하면 칼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없잖아 있기는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괜한 불안감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쌍성의 왕이나 다름없는 이자춘이 내 뒷배가 되어 주고 있잖나.


쌍성 총관과 맞먹을 정도의 위상을 지니고 있는 천호이자 다루가치.


21세기식으로 표현하자면 쌍성의 야당 대표쯤 되는 사람이 내 뒤에 버티고 있다.


최소한 쌍성에서는 나를 함부로 건드릴 수 있는 놈이 없단 말씀이다.


하루아침에 이씨 집안이 망해 버린다면 또 모르겠는데··· 이 집안이 망할 리가 없잖아?


이 집안은 앞으로 최소 500년은 건재할 예정이다.


말년이 조금 추하게 끝나긴 할 테지만···


뭐, 그건 한참 미래의 일이니 지금의 내가 신경 쓸 바가 아니다.


내가 신경 써야 하는 것은 지금 당장 찾아온 손님의 접대를 훌륭히 끝마치는 것.


나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최선을 다해 손님의 입을 즐겁게 해 주었고, 마지막으로 준비된 요리를 깨끗이 비운 손님은 무척이나 만족한 얼굴로 식사를 끝마쳤다.


“오늘 내 새로운 세상을 보았소. 고작 무와 배추, 그리고 버섯으로 이런 맛을 낼 수 있으리라 누가 상상할 수 있었겠소!”


“마음에 드셨다니 참으로 다행이오. 아, 그런데 일전에 제안했던 그 이야기 말이오만 언제쯤 대답을 들을 수 있겠소?”


“안 그래도 그 이야기를 슬슬 꺼낼까 싶던 참이었소. 객을 보면 그 주인의 성세를 알 수 있다고들 하지. 오늘 이 자리를 보아하니, 이 천호의 손을 뿌리쳤다간 내 평생 후회할 것 같지 뭐요.”


“그 말씀은···?”


“그 제안, 받아들이겠소. 이 천호의 차남이라면 우리 한씨 집안의 사위로 손색이 없고말고.”


“가주의 결단에 감사드리오. 내 결코 후회하지 않게 해 드리리다.”


“흐하핫, 그럼 이 솥밥이나 좀 더 내어 주시오. 고작 한 그릇만 먹고 돌아가면 내 평생 후회할 것 같으니.”


식사를 끝마친 두 사람은 본제로 돌아가 정치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합의를 끝마친 두 사람은 추가로 솥밥을 주문하여 그릇을 깨끗하게 비워 내었다.


“하아··· 꿈에서도 이 맛이 생각날 것 같아 발이 떨어지질 않는구료. 이런 기쁨을 또 언제쯤 맛볼 수 있을는지···”


“하하, 이제 곧 사돈이 될 사이이니, 언제든 편히 찾아오시오. 내 선생께 부탁해 최고의 요리를 준비해 놓으리다.”


“오오, 그래도 되겠소?! 그럼 염치 불고하고 종종 찾아오리다. 이 선생, 내 앞으로 잘 부탁드리오.”


“하하, 아닙니다. 다만 오시기 며칠 전에 미리 기별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귀한 손님을 모시려면 며칠 전부터 미리 준비를 해 두어야 하니까요.”


“내 반드시 명심하리다. 그럼 이만 돌아가 보겠소. 혼인에 관해서는 조만간 기일을 잡아 따로 기별하리다.”


“기다리고 있으리다. 그럼, 살펴 가시오.”


식사가 끝난 뒤, 나는 이자춘과 함께 저택의 문 앞까지 나가 손님을 배웅해 주었다.


그렇게 손님을 배웅하고 저택 안으로 돌아온 그 순간. 내 옆에 서 있던 이자춘이 내게 말을 건네왔다.


“오늘도 훌륭했소. 덕분에 일이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오.”


“당연한 일입니다. 받은 만큼 값을 해야지요.”


“하하, 받은 만큼이라··· 그대는 받은 것 이상의 일을 해 주고 있소. 마음 같아서는 밭을 백 마지기 정도 더 떼어 주고 싶은 심정이라오.”


이전부터 느끼는 거지만 이자춘 이 사람에게는 타고난 보스 기질이 있다.


상대가 들었을 때 기분이 좋은 말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그 부분을 찌르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하하, 그리 말씀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라오. 지금 당장은 합당한 보상을 해 줄 수 없지만, 내 언젠가 그대의 헌신에 걸맞은 보답을 해 드리리다. 아 그런데, 내 궁금한 것이 있어 그런데,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소?”


“대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얼마든지요. 무엇이 그리 궁금하십니까?”


“아 별건 아니라오. 혹 혼인을 할 생각이 있나 싶어서.”


혼인? 결혼???


아니, 갑자기 그 이야기가 왜 나오는 거람?


“평생을 떠돌아다니며 사는 것보다야, 적당한 처자를 만나 가정을 꾸려 자리를 잡아 사는 것이 낫지 않겠소.”


“그건 그렇지만 아직 혼인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 본 것이 없어서 말입니다.”


“그리 차일피일 미루다간 평생을 홀로 보내기 십상이라오. 그러지 말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떠시오?”


에둘러 거절의 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이자춘은 거듭하여 내게 중매를 서 주겠다는 제안을 건네왔다.


이건··· 거절할 수 없겠군.


이자춘 정도 되는 사람이 내가 에둘러 거절하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중매를 제안해 온다는 것은 이 제안을 거절하지 말라는 의미일 터.


어쩔 수 없이 나는 ‘중매를 부탁한다’는 답을 내어 놓았고, 내 대답을 들은 이자춘은 자못 기쁜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이어 갔다.


“하하, 잘 생각하셨소. 중매를 받겠다 하셨으니 내 편히 말씀드리리다. 내게 과년한 딸이 하나 있는데, 빈말로라도 아름답다 할 수 있는 용모는 아니지만 제 어미를 닮아 참으로 마음씨가 곱고 총명한 아이라오.”


뭐?


“선생께서도 좋다고 하셨으니, 내 조만간 자리를 한번 만들어 보리다. 그럼, 먼저 들어가 보겠소.”


방금, 뭐라고 했지?


누굴, 누굴 소개시켜 주겠다고?


자기··· 딸?!


작가의말

*이자춘에게는 네명의 아들과 한명의 딸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딸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으며 추후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뒤 정화공주라는 칭호를 받게되지요.

정화공주는 이성계와는 같은 어머니를 두고 있는 이성계의 동복 누나로 생몰년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이성계보다 적게는 2살 많게는 5살 정도 연상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고 합니다.


오늘도 재밌게 봐 주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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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6. 횡운골 +4 24.09.08 1,067 5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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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4. 거식증 +5 24.09.06 1,061 59 12쪽
13 13. 식의 +4 24.09.05 1,118 57 12쪽
12 12. 코스요리 +4 24.09.04 1,155 60 12쪽
11 11. 함박 스테이크(2) +2 24.09.03 1,172 5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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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프롤로그 +11 24.08.27 1,821 7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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