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 마카롱으로 시작하는 조선 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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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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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6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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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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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오믈렛

DUMMY

이성계의 뒤를 따라 도착한 곳은 이성계의 본가인 이씨 가문의 저택이었다.


“둘째 도련님 오셨습니까?”


“그래, 별일 없었니?”


“며칠 사이에 무슨 별일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뒤에 계신 저··· 분은 누구십니까?”


“내 손님. 귀한 분이시니 무례한 짓 하지 말고 잘 모시라. 그보다, 아바지는 안에 계시니?”


“막 돌아오셔서 쉬고 계십니다.”


“좋아, 아바지께 말씀 올리고 올 테니, 손님을 방으로 안내해 드리고, 절대, 절대 무례를 저지르지 말라.”


“예, 도련님.”


저택의 문지기로 보이는 사내와 짧은 문답을 주고받은 이성계는 보고할 것이 있다며 이자춘을 찾아갔고,

이성계의 명령을 받은 문지기는 나를 손님용 방까지 안내해 주었다.


“여길 쓰시면 됩니다 대인.”


내가 안내받은 방은 한 사람이 사용하기에는 제법 널찍한 곳이었는데 방에 비치되어 있는 가구와 준비되어 있는 침구의 감촉으로 미루어 볼 때 아마 귀빈을 대접할 용도로 준비된 장소인 모양이었다.


“흐아암··· 아직···자면··· 안 되는데···”


여독이 쌓인 탓일까.


방 안으로 발을 들이자마자 졸음이 확 몰려왔다.


결국 졸음을 이기지 못한 나는 방 안에 깔려 있는 비단 이불에 몸을 뉘었고.


다음 날.


꼬-꼬오옥-!


새벽 닭이 우는 소리에 눈을 뜬 나는 저택의 하인들이 가져다준 밥상을 깨끗이 비워 나가는 중이었다.


메뉴는 김치로 추측되는 야채 절임과 보리의 비율이 매우 높아 보이는 잡곡밥, 정체를 알 수 없는 구운 고기 한 덩이, 그리고 누린내가 살짝 흘러나오는 탁한 국물 한 그릇.


맛은···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고기구이와 국물에서 누린내가 조금 흘러나오기는 하지만,


뭐, 어쩌겠나.


내가 살던 21세기처럼 향신료가 넘쳐나는 시대도 아니지 않은가.


밥상을 깨끗이 비운 나는 아침상을 치우러 돌아온 하인들에게, 식사를 준비해 준 이에게 맛있게 잘 먹었다는 감사의 말을 대신 전해 달라 이르고,


방 안에 틀어박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정확히는, 이 저택의 요리사 자리를 꿰차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할 즈음,


“요리사님, 안에 계십니까?”


이성계.


내가 거머쥐어야 할 황금 동아줄이 나를 찾아왔다.


“제 요리를요?”


“예에, 요리사님과 있었던 일을 전해 들으시더니 요리사님의 요리를 꼭 한번 맛보고 싶어 하십니다.”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굴러들어왔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더니 그 말이 정말이었던 모양이다.


이자춘.


이성계의 아버지이자 이씨 가문의 가주의 입맛을 사로잡는다면 자연스레 이씨 가문의 요리사 자리를 꿰찰 수 있으리라.


이자춘의 입맛을 사로잡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미 아침상을 통해 저택 주방의 수준이 어떤지를 확인해 보지 않았던가.


내게 밀려 실업자가 될 이씨 가문의 요리사에게는 조금 미안한 일이지만,


요식업계는 본디 무한 경쟁 사회다.


엄밀히 따지자면 이씨 가문의 요리사도 이쪽 업계의 동업자라 할 수 있으니,


나와의 수준 차이를 알게 되면 순순히 인정하고 자리를 내려놓지 않을까?


“저를 환대해 주신 분께서 바라신다는데 당연히 해 드려야지요.”


이런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하는 법이다.


나는 기꺼이 이성계의 부탁을 받아들였고 내 대답을 들은 이성계의 얼굴에는 왠지 모를 안도감이 떠올랐다.


“감사합니다 요리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하하, 아닙니다. 아, 그렇지. 혹 아버님께서 어떤 음식을 좋아하시는지 알고 계십니까?”


사자는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하는 법.


아침 식사를 통해 이씨 가문의 요리사와 나 사이에 명백한 상하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기왕 할 것 확실히 하기로 마음먹은 나는 이성계에게 이자춘이 선호하는 음식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내 질문을 받은 이성계는 살짝 화색을 띠는 듯하더니 다급한 어투로 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저희 아바지께서는 건락과 수유를 무척이나 즐기심··· 아니, 즐기십니다. 기왕 말이 나왔으니 드리는 말씀인데, 혹 건락과 수유를 사용한 ‘요리’를 부탁드릴 수 있겠습니까?!”


건락?


수유?


그게 대체 뭔데?


* * *



좋은 요리를 만들기 위한 기본은 요리에 사용하는 재료의 특성을 완벽히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바꿔 말하면 재료의 특성을 알지 못하고서는 좋은 요리를 만들지 못한다는 뜻이다.


건락과 수유.


처음 들어 보는 재료를 사용한 요리를 해 달라는 이성계의 부탁을 받은 나는 태연한 말투로 그 재료들을 볼 수 있겠느냐는 말을 꺼냈고,


내 말을 들은 이성계는 나를 이씨 가문의 식자재 창고로 안내했다.


한 가지 이상했던 것은 나를 창고로 안내하는 이성계의 표정이 어쩐지 침울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것이려나?


식자재 창고에 도착한 이성계는 창고의 관리자를 불러 ‘건락과 수유를 가져오라’ 명했고,


이성계의 명을 받은 관리자는 창고 한구석을 뒤적거리더니 종이로 꽁꽁 싸여 있는 물건들을 찾아내어 이성계에게 그것을 건네주었다.


“저희 집안에서 보관하고 있는 건락과 수유는 이게 전부입니다.”


“어디···”


창고지기에게 물건을 건네받은 이성계는 물건을 싸매고 있는 포장지를 조심조심 벗겨 내용물을 드러내었고,


건락과 수유.


이 두 재료를 직접 마주한 나는 살짝 긴장이 풀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처음 들어 보는 재료기에 무슨 기상천외한 재료인가 싶었는데,


겨우··· 이거였다고?


“왜··· 그러십니까?”


“아뇨 그냥··· 조금 우스워서 그렇습니다. 건락과 수유. 그렇군요. 여기선 이걸 이렇게 부르는 모양이로군요.”


“아, 황시··· 아니, 계셨던 곳에서는 이 재료들을 다른 이름으로 불렀던 모양이지요?”


“예, 아예 다른 이름으로 불렀었지요.”


미지의 재료라 생각했던 것들의 정체는 치즈와 버터였다.


건락이 치즈, 수유가 버터더라고.


내가 가장 먼저 배운 요리는 한식이지만, 가장 체계적으로 배운 요리는 바로 프렌치 요리다.


프렌치 요리에서 버터와 치즈는 한식에서의 된장과 간장과도 같은 기초 중의 기초.


툭 건드리면 재료가 지닌 특성과 종류에 대해 줄줄 쏟아낼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져야 하는 재료가 바로 버터와 치즈라는 말이다.


이러니 허탈해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이 두 가지를 사용한 요리라면 눈 감고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니 맡겨만 주시지요.”


“저, 정말임까?!”


···뭐지,


이성계의 말투가 변했다.


방금 전까지는 표준어에 가까운 말투로 대화를 이어 나갔는데, 갑자기 함흥식 사투리가 튀어나오는 것 아닌가.


···


가만 보니 바뀐 건 말투만이 아니었다.


표정.


창고에 도착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살짝 침울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던 이성계의 표정이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뭐랄까··· 끝까지 몰리다 간신히 역전의 기회를 잡은 도박꾼 같은 표정?


코와 턱이 조금 뾰족해지기도 한 것 같은데···


뭐어, 기분 탓이겠지.


방금 전까지 멀쩡하던 사람 얼굴이 어떻게 세모나게 변할 수 있겠느냐고.


“예, 정말이고말고요. 그보다, 아버님이 어떤 식재를 선호하는지 알고 계십니까? 버터와 치즈를 사용한 요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말입니다.”


“어···”


“···?”


“그··· 잘 모르겠습니다. 평소 뭘 맛있게 잡숫는지 관심이 없어서···”


에잇, 이런 불효자 같으니라고.


자기 아버지가 뭘 좋아하는지 모른다는 게 말이나 되는 건가?


···


[야, 니가 아빠랑 사이 안 좋은 건 알고 있는데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냐?]


[안 그래도 일하느라 바빠 죽겠는데 갑자기 전화해선 뭔 개소리야?! 하여간 누나는 옛날부터 자기 말만···]


[미친새끼··· 갑각류 알러지 있는 양반한테 랍스타를 보내? 뭐, 아빠보고 먹고 죽으라고?!]


[···]


···


다시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다 싶다.


자식이 부모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생각은 에고라니까?


뭐 아무튼,


이성계를 통해 이자춘의 기호 식품을 알아내는 것은 실패.


그렇다면, 플랜 B다.


“아버님의 춘추가 어찌 되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건 알고 있습니다. 올해 서른다섯이 되십니다.”


“서른다섯··· 한창 건강하시겠군요.”


“그렇습니다. 아직도 저 못지않은 완력을 자랑하시니까요.”


“혹 술은 좋아하십니까?”


“술이요? 원래는 좋아하셨는데 요즘은 영 드시지 않으십니다. 아, 그러고 보니 기름진 음식도 영 드시질 않으시는군요.”


정리해 보자면 이자춘은 20대 못지않은 완력을 자랑하는 30대 중반의 사내로, 본래 술과 기름진 안주를 즐겼지만 최근에는 그 빈도를 줄이는 상태다.


저 말대로라면···


좋아,


그게 좋겠군.


* * *


평소와 같은 저녁이었다.


바깥일을 마치고 돌아온 이자춘은 허기를 달래고자 식사를 준비하라 이른 뒤, 휴식을 위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어떻게 잘하면 조가 놈들을 버리고 우리 쪽으로 붙도록 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어렵군 어려워···”


방 안으로 들어간 이자춘은 오늘 하루 만났던 이들과 나눈 대화를 복기하며 머릿속을 천천히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확실히 우리 쪽의 손을 들어줄 놈들은···’


복잡했던 머릿속이 어느 정도 정리되어 갈 즈음, 문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님, 저 성계입니다. 명하신 식사를 대령했습니다.”


둘째 아들. 이성계의 목소리였다.


“들어오너라.”


이자춘의 입에서 들어와도 좋다는 말이 나오자마자 문이 열리고, 소반을 든 이성계가 방 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이성계가 들고 있는 소반 위에는 식사가 아닌 자그마한 나무 상자가 올려져 있다는 것이었다.


이성계는 나무 상자가 올려져 있는 소반을 이자춘의 앞에 내려놓았고, 이성계가 소반을 내려놓는 것을 가만 지켜보던 이자춘은 소반 위의 나무 상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요상한 짓을 하는구나. 평범하게 식사를 가져오면 될 일이지 소반 위에 놓인 이 상자는 대체 무어냐?”


“아버님께서 내린 명을 받아 만든, ‘요리’입니다. 상자를 엎어 놓은 이유는 요리의 온기를 최대한 보존하여 옮기기 위함이고요.”


“그냥 밥상보를 사용하면 될 것을.”


“온기를 보존하기에는 이편이 더 낫다고 하더군요. 원래는 철로 된 그릇을 쓰는 것이 좋다고도 하였습니다.”


“사치스러운 행태 하나는 가히 카간의 숙수라 할 만하구나. 고작 음식의 온기를 위해 그 귀한 철을 사용한다니.”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맛 역시 카간의 요리사라 할 만합니다.”


“뭐 좋다. 맛을 보면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있겠지.”


그리 말한 이자춘은 소반 위의 나무 상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렇게 나무 상자가 열리고,


상자 안에 가둬져 있던 온기와 향이 확 피어올라 이자춘의 콧잔등을 간질이기 시작했다.


고소하고 기름지며 어쩐지 달콤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온갖 그윽한 풍미가 혼재된 따스한 향 너머에서 이자춘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투박하게 생긴 도자기 접시 위에 올려져 있는 샛노란 빛의 ‘요리’였다.


요염할 정도로 둥그렇고 오동통한,


당장이라도 저 볼록하게 튀어나온 부분을 찔러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만드는 샛노란 빛의 ‘요리’를 마주한 이자춘은 제 차남인 이성계를 향해 다급히 입을 열었다.


“대체, 이것이 무어냐?”


“요리사가 말하길, 거위의 알을 사용한 치즈 오믈렛이라 하였습니다.”


작가의말

오늘도 재밌게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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