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 마카롱으로 시작하는 조선 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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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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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6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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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코스요리

DUMMY

이자춘과 마주 앉은 나는 머릿속으로 내가 대접해야 할 ‘손님’에 대한 정보를 하나하나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일단, 내가 대접해야 할 여진족 부족장의 이름은 범차.


40대 후반의 남성으로 젊은 시절 부족 내의 반란으로 인해 목숨을 잃을 뻔했으나, 어떻게든 살아남아 배신자들을 숙청하고 지금의 자리에 오른 의지의 사내였다.


홀로 사냥을 나설 정도로 건강하다고 알려져 있으며 선호하는 식재는 양고기···


흠, 함박스테이크에 들어갈 고기를 바꿔야겠군.


“이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전부요. 어떻게, 도움이 좀 될 것 같으시오?”


“예, 충분한 것을 넘어 차고 넘칠 정도로 도움이 되었습니다.”


“좋소. 내 그대만 믿고 있으리다.”


나를 믿고 있겠다는 저 말.


지금 당장은 아무 의미도 없는 인사치레에 불과한 말이었지만, 내가 어떤 성과를 내느냐에 따라 저 말이 인사치레로만 끝날 것일지, 아니면 저 말이 진심이 될지가 결정될 것이 분명했다.


이번 일은 이씨 집안에서 내게 처음으로 맡기는 공식 업무였으니까.


엄밀히 따지자면 나는 지금 시험대에 올라 있는 것이었다. 내가 지닌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 주어야 하는 그런 시험대 말이다.


뭐, 다르게 생각하자면···


일종의 기회를 잡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으리라. 이자춘의, 나아가 이씨 집안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기회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놓치고 싶어도 놓칠 수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어째서냐고?


그야 내가 만든 요리가 맛이 없을 리가 없잖아?


어디··· 메인 요리는 함박스테이크로 정했으니 나머지는 천천히 구상해 봐야겠다.


아직 시간이 2주나 남아 있으니 말이다.


2주면 제대로 된 코스를 하나 만들고도 남을 시간이고말고.


뭐? 코스는 갑자기 무슨 코스냐고?


그야, 손님을 대접할 접대용 코스지.


말했잖나, ‘메인은 부드러운 고기 요리로 결정이다’라고.


처음 이성계에게 여진족 부족장을 대접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나는 코스 요리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결국 이 만남은 이자춘과 범차라는 여진족 족장의 회담이다. 회담에 어울리는 요리라면, 역시 코스 요리 아니겠는가.


이번 일, 조금 진심을 내 볼 생각이다.


원래 첫인상은 강렬할수록 좋은 법이니까.


* * *


이자춘에게 ‘손님’에 대한 정보를 전해 들은 그날로부터 2주가 흘렀다.


지난 2주간 나는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코스 요리의 완성을 위해 사용했다.


재료들이 그득 담겨 있는 식자재 창고를 들락거리며 끊임없이 코스의 구성에 대한 고민을 거듭했고, 고민을 시작한 지 1주일이 되었을 무렵 나는 코스에 대한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양 한 마리’.


이것이 내가 붙잡은 실마리였다.


나는 새끼 양 한 마리에서 나오는 모든 부위를 사용하자는 컨셉을 기반으로 하여 코스에 사용할 요리를 구상해 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양고기로 시작해서 양고기로 끝나는 구성을 갖춘 코스를 완성할 수 있었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기 위해 완성된 코스의 리허설을 한 차례 진행하기도 하였는데 코스의 리허설 결과는 말 그대로 완벽했다.


누구를 대상으로 코스의 리허설을 진행했느냐고?


누구긴 누구야.


내게 이 일을 맡긴 장본인이지.


[처음에는 뭐 이런 식사법이 있나 싶었는데, 이거··· 나쁘지 않군. 이대로 진행하게. 비용이 조금 과하긴 한 것 같지만 뭐어,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이 정도 지출은 감당해야겠지. 당일 날에도 이대로만 부탁하네.]


손님보다 먼저 내 코스 요리를 경험한 이자춘은 극찬을 금치 못했다.


곧 이 코스를 맛볼 범차라는 여진족 족장 역시 이자춘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반응을 보여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준비는 모두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손님이 도착하는 것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 * *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어느 오후.


굳게 닫혀 있는 쌍성의 성문을 지키고 있던 경비병들은 저 멀리서 한 무리의 인파가 다가오는 것을 목격했다.


“저건 또 뭐이야?”


“어디··· 저거이 여진 놈들이구만. 가죽 팔아 겨우내 먹을 양식을 구하러 온 여진 놈들 아니겠니?”


“흠··· 다 첨 보는 얼굴들인데···”


“뭐 윗동네에서 밀려난 자그마한 부족이겠지, 가끔 있잖니, 다툼에서 밀려나 쌍성에 정착한 아새끼들.”


“길타기에는 저놈들 무장이 너무 좋은 것 아니니? 옷차림부터 뻔드르르한 거 안 보이니?!”


“윗동네를 빠져나오기 전에 챙길 걸 최대한 챙겨 도망이라도 왔나 보지, 여 정착하려면 뭐라도 있어야 할 것 아니니.”


“쓰읍··· 그거이 아닌 것 같은데···”


“그럼 내기라도 할 테니? 나는 저 여진 놈들이 여 정착하러 온 놈들이다에 탁주 한 병 건다.”


“좋아, 난 그거이 아니다에 탁주 한 병 걸갔서.”


병사들이 그렇게 잡담을 나누고 있는 사이 멀리서 나타난 여진족 무리가 성문 앞에 도착했고,


방금 전까지 한껏 해이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던 병사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삼엄한 기세를 내뿜으며 여진족들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쌍성을 찾은 목적과 그대들의 신분을 밝히시오!”


“우리는 오도리부에서 온 사람들로 쌍성에 사는 친우의 초청을 받아 왔소!”


병사들의 목소리에 답한 것은 얼굴에 흉터가 가득 새겨져 있는 중년의 사내였다.


“들었지? 친구를 만나러 왔다 했다.”


“···잡담하지 말라, 업무 중이잖니.”


“흐흐···”


얼굴에 흉터가 가득한 여진족 사내의 대답을 들은 병사들은 내기의 결과를 놓고 짤막한 잡담을 주고받은 뒤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대들이 오도리부의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있소?! 그리고, 쌍성에 사는 친우가 누구인지도 밝혀 줘야겠소!”


“···”


“왜 대답이 없으시오?!”


“잠깐 기다리시오! 이는 나 홀로 결정할 수 있는 바가 아니오!”


그리 말한 여진족 사내는 무리에서 가장 화려한 가죽을 걸치고 있는 온화한 인상의 사내를 향해 무어라 말을 건넸다.


흉터가 가득한 여진족 사내의 말을 들은 온화한 인상의 사내는 턱을 긁적이며 무언가 고민하는 듯하더니 곧 중년 사내를 향해 뒤로 물러나 있으라는 듯 휘휘 손을 내저었고,


중년인을 뒤로 물린 온화한 인상의 사내는 성문 앞으로 나아가 크게 소리를 내질렀다.


“오도리부의 사람임을 증명하라 하였는가?! 나는 오도리부를 책임지고 있는 투먼 범차라고 한다! 오도리 투먼임을 증명하는 징표를 가지고 있으니, 의심이 간다면 내려와 확인해 보라!”


사내, 아니 범차의 목소리가 성벽을 울리자 성벽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시작된 성벽 위의 소란은 곧 잠잠해졌고 소란이 잦아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쌍성의 성문이 열렸다.


열린 성문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잘 무장된 한 무리의 병사였다.


병사들의 선두에는 비단옷을 입은 사내가 서 있었는데, 그 사내의 얼굴을 확인한 범차는 비단옷을 입은 사내를 향해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조 총관이 직접 나와 주셨구료! 쌍성의 총관께서 직접 나와 이리 환대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소이다!”


비단옷을 입은 사내의 이름은 조소생.


대대로 쌍성총관직을 세습해 온 조씨 가문의 가주였다.


“아랫것들이 무슨 헛소리를 하나 싶었는데, 정말 본인이시로군. 늦게 얻은 아들을 키우는 맛에 빠져 영 움직이질 않으시던 분이 어쩐 일로 그 무거운 발걸음을 하셨소?”


“부처님이 맺어 주신 옛 인연이 나를 찾는다기에 이리 한달음에 달려왔지 뭐요”


“옛 인연이라··· 오도리 투먼이 쌍성의 인물과 연을 맺은 적이 있다는 이야기는 내 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소만.”


“지극히 개인적인 인연이니 모를 수밖에. 헌데, 언제까지 우리를 성문 밖에 세워 놓을 참이오? 확인은 모두 끝나지 않았던가?”


“···실례가 많았소.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묻고 문을 열어 드리리다.”


“허허, 몇 년간 못 본 사이에 참으로 무례해지셨구료. 뭐어 좋소. 바쁘게 오느라 총관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지 못하였는데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선물을 대신하리다. 그래, 뭐가 그리 궁금하시오?”


“그대가 연을 맺었다는 자의 이름이··· 혹 이자춘이요?”


조소생의 질문을 받은 범차는 여유로운 미소를 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범차의 미소를 마주한 조소생은 와락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입을 열었다.


“충분한 대답이 되었소.”


“그렇다니 다행이외다.”


“···쌍성에서의 볼일이 끝나고 돌아가기 전, 우리 조씨 저택을 찾아 주시오. 쌍성의 주인으로서 후히 대접해 드리리다.”


“그거 좋지요. 내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리 말한 조소생은 가볍게 손짓하여 병사들을 물렸다. 범차는 자신들의 무리를 이끌고 열린 문을 통해 발걸음을 옮겼다.


조소생과 그 무리들의 시선을 뒤로한 채 쌍성에 진입한 범차와 일행은 곧장 이씨 가문의 저택을 향해 말머리를 돌렸다.


그들이 이씨 가문의 저택으로 향하던 중, 얼굴에 흉터가 가득한 사내가 범차에게 다가와 조심스레 말을 건네왔다.


“투먼, 옛 인연이 있는 울루스부카의 손을 잡으시기로 결정하신 것 아니셨습니까?”


“그랬지.”


“그런데 왜 울루스부카와 적대하고 있는 총관의 초대를 받아들이신 겁니까? 이 일로 울루스부카가 우릴 의심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야 울루스부카가 우리 부족의 가치를 더 높게 쳐줄 테니까. 아무리 친밀한 관계라 하더라도, 계산은 언제나 확실히 해야 하느니라.”


“예? 무슨 말씀이신지 속하는 잘···”


“하핫, 너는 어쩜 이리 변하질 않느냐, 이러니 내가 널 좋아할 수밖에.”


“너무하십니다, 투먼. 속하의 멍청함을 놀리시는 것이지요? 저도 이제 그 정도는 알아듣습니다.”

“그럴 리가, 세상에 자신의 손발을 조롱하는 사람도 있다더냐?”


“크흠··· 그렇게까지 말씀해 주시니, 이번엔 그냥 넘어가 드리겠습니다.”


“흐하핫, 그래, 고맙구나.”


범차는 자신의 수하와 가볍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계속해 말을 몰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이씨 가문의 저택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서 오시오 투먼. 오느라 고생 많으셨소!”


저택에 도착한 범차의 일행을 맞이한 것은 이씨 가문의 가주 이자춘이었다.


말에서 내린 범차를 두 팔 벌려 껴안는 것으로 범차와의 친밀함을 과시한 이자춘은 가벼운 안부 인사를 건넸고 범차는 호의적인 대답으로 그 인사에 답해 주었다.


“자아, 이쪽으로. 멀리서 온 손님을 위해 아주 특별한 자리를 마련해 두었다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범차와 이야기를 주고받던 이자춘은 미리 준비해 둔 장소로 범차를 안내했다.


“여기가 그 특별한 자리요?”


“그렇소. 그대와 나. 두 사람만을 위해 준비된 아주 특별한 자리지. 여지껏 느껴 본 적 없는 진기한 맛을 경험하게 될 거요.”


“빈말을 하지 않는 그대가 그리 거들먹거릴 정도라니, 대체 무얼 준비해 두었는지 무척 기대되는군.”


“무엇을 기대하건 그 이상일 거요. 내 장담하리다.”


그리 말한 이자춘은 크게 두 번 박수를 쳐 신호를 보냈다.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고, 손에 접시를 든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자춘과 범차 두 사람에게 가볍게 묵례를 한 사내는 두 사람의 앞에 접시를 내려놓은 뒤, 나직이 입을 열었다.


“오늘 두 분을 모시게 된 이인수라고 합니다. 첫 요리는 삶은 양고기를 얇게 저며 미나리와 함께 새콤하게 버무린 냉채입니다. 부디, 편하게 즐겨 주시길 바랍니다.”


작가의말

‘메인은 부드러운 고기 요리로 결정이다' 라는 대사는 10화에 등장한 대사입니다.


오늘도 재밌게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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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 오믈렛 +5 24.08.29 1,271 6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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