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 마카롱으로 시작하는 조선 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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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뢰야
작품등록일 :
2024.08.06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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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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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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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거식증

DUMMY

이자춘의 손님, 오도리 여진의 부족장 범차는 나를 붙잡고 자신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늘어놓았다.


손님의 하소연을 매몰차게 거절해 잘 진행되고 있던 코스의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묵묵히 그 사연을 들어 주었다.


“···해서, 실례를 무릅쓰고 귀하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 것이외다.”


솔직히, 상황이 좀 딱하긴 했다.


정체 불명의 병에 걸려 고생하는 자식을, 그것도 늘그막에 얻은 늦둥이 아들이 앓고 있는 것을 손 놓고 지켜봐야만 하는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는가.


하지만.


“으음··· 그렇군요. 죄송합니다만, 도움을 드리긴 힘들 것 같습니다.”


사연을 모두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범차의 부탁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어야 하는 법이다.


나는 요리사지 의사가 아니다.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얼마든지 도움을 주겠다 나섰을 테지만 이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분야가 아니란 말이다.


그리고, 다른 것도 아니고,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에 관여했다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그 책임을 어떻게 지겠는가.


“그러지 말고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시오. 단순히 병세를 봐주기만 해도 괜찮으니···.”


한 번 부탁을 거절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범차는 포기하지 않고 거듭하여 아들의 병세를 살펴 줄 것을 부탁해 왔다.


나는 끝까지 그 부탁을 거절할 생각이었지만···


“늘그막에 얻은 아들이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대로 허망하게 보낼 수는 없는 노릇 아니오. 할 수 있는 것은 뭐든 해 보고 싶은 심정이라 이리 부탁을 드리는 것이니, 제발···.”


“투먼께서 저렇게까지 나오는데, 계속 부탁을 거절하는 것도 그렇지 않소? 그러지 말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는 게 어떻겠소. 병을 고쳐 달라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병세를 봐달라는 정도이지 않소.”


“···아드님의 병을 고칠 수 있다 장담해 드리진 못합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결국, 나는 결정을 번복하고 말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후원자인 이자춘이 나서 ‘그냥 좀 도와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은근히 등을 떠밀어 대는데, 어떻게 그걸 모른 척할 수 있겠느냐고.


“무, 물론이오! 내 약조하리다. 아들의 병을 고치지 못하더라도 아무런 불평을 하지 않겠소!”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마지막 요리를 준비하러 잠시 물러가 보겠습니다.”


그리 말을 남긴 나는 주방으로 돌아갔다.


“미안하다, 좀 늦었지?”


“아임다. 고명은 전부 준비해 뒀고 면도 다 삶아 물기를 빼 뒀슴다. 이대로 말아 올리면 되겠슴까?”


“삶은 지는 얼마나 됐는데?”


“제가 숫자를 잘못 센 것이 아니며는··· 한, 5분 정도 되었을 검다.”


“어디··· 좋아, 이 정도면 새로 삶을 필요는 없겠네, 국물 상태는?”


“국물을 담근 그릇을 찬물에 담가 최대한 차게 만들어 뒀슴다. 확인해 보시겠슴까?”


“이것도 이 정도면 충분해. 좋아, 시작하자.”


“예, 스승님!”


모든 것은 마무리가 중요한 법.


마지막으로 내갈 요리의 상태를 꼼꼼히 확인한 나는 완성된 요리를 들고 주방을 나섰다.


“코스 내내 기름진 육류를 섭취하셔서 입안이 기름지실 겁니다. 새콤한 육수로 입안을 씻어 내시고, 목 넘김이 좋은 메밀국수로 모자란 포만감을 보충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 요리는 처음 뽑아 두었던 콩소메 스프와 이씨 가문에서 담가 놓은 무김치 국물을 적정 비율로 섞어 만든 육수에 직접 뽑은 메밀면을 말아낸 미니 냉면.


마지막 요리를 받아 든 두 사람은 순식간에 냉면이 든 그릇을 비웠고,


식사를 모두 마친 범차는 거듭하여 내게 잘 부탁한다는 말을 건네며 나를 부담스럽게 만들었더랬다.


하아, 이젠 팔자에도 없는 의사 흉내까지 내게 생겼구나.


미치겠네 정말.


* * *


며칠 뒤.


범차가 이끄는 여진족 무리와 함께 쌍성을 나설 준비를 하고 있던 나는 생각지도 못한 문제를 맞닥뜨리게 되었다.


“우와앗!!!”


“야 이놈아! 네놈이 모셔야 할 귀인이 어떤 분인지 알고 이렇게 앙탈이야!!!”


푸르르르―


“으으··· 정말 미안하게 되었소. 이놈이 원래 이런 녀석이 아닌데···.”


“괘, 괜찮습니다. 그냥 다른 녀석으로 타고 가면 되죠.”


“으음··· 우리가 데리고 있는 녀석들 중에는 이 녀석이 가장 순한 녀석이라···.”


“···꼭 말을 타고 이동해야 합니까? 그냥 걸어서 이동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는 너무 늦소. 말을 타고 달려도 족히 열흘이 걸리는 거리거든.”


“···.”


이 시대의 보편적인 이동 수단이 나를 거부한 탓에 출발 단계에서 문제가 생겨 버린 것이었다.


예전에 예능에 출연했을 때 타 봤었던 말들은 무척이나 순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왜 이 동네 말들은 이렇게 사나운지 모르겠다.


가장 순한 녀석이 저렇게 지랄 맞다니 이게 맞냐고 진짜.


“이래서야 오늘 안에 출발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냥 이렇게 하시지요.”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 것은 이자춘이 내 호위로 붙여 준 이성계와 이씨 가문의 가병들이었다.


“저어, 둘째 공자. 이거, 너무 민망하지 않습니까?”


“달리는 말에서 떨어지는 것보다는 이편이 나을 겁니다.”


“그래도 이건 좀···.”


“이게 싫으면 얼른 말 타는 법을 배워 두십시오. 저도 썩 유쾌하지만은 않으니.”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바로 이성계가 탑승한 말에 내가 동승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뒷좌석이 아닌 앞좌석에.


···


이 여정에 걸리는 시간이 대략··· 한 달 정도라고 했었지 아마?


최대한 빨리 말 타는 법을 배워 놔야겠다.


돌아올 때도 이성계의 품에 안겨 돌아올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다들 준비된 듯하니 슬슬 출발합시다.”


그렇게 나는 범차가 이끄는 여진족 무리와, 나를 호위하기 위해 배정된 이씨 가문의 가병들과 함께 쌍성을 나섰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열흘 하고도 이틀이 지날 즈음.


“저어기, 숭가리 울라(ᠰᡠᠩᡤᠠᡵᡳ ᡠᠯᠠ)의 강줄기가 보이시오? 저곳만 건너면 우리 부족의 영역이오.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기나긴 여정 끝에 우리는 오도리 부족의 영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 * *


오도리 부족의 근거지에 도착한 우리는 열렬한 환대를 받았다.


손님을 후하게 대접하는 것이 초원에 내려오는 불문율이라나 뭐라나.


“요리사님은 안 드십니까?! 투먼께서 우릴 위해 준비한 음식인데···.”


“···입맛이 좀 없어서 말입니다. 저 대신 많이 드셔 주십시오.”


“하하핫, 알겠습니다! 그럼 좀 더 쉬시다, 몸이 괜찮아지시면 나오시지요!”

12일간의 강행군에 지친 나는 오도리 부족의 환대를 받는 대신 휴식을 택했다.


부드러운 모피가 깔린 침대에 몸을 누인 나는 그대로 곯아떨어지고 말았고,


그렇게 눈을 떠 보니 어느덧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


“일어나 계셨구료. 잠은 잘 주무셨소?”


밖으로 나와 아침 공기를 마시며 잠을 깨고 있으려니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범차의 얼굴이 내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제 아들의 병세를 확인해 달라 부탁하기 위해 나를 찾아온 것이리라.


마음 같아서는 어제저녁, 부족에 도착한 그 즉시 아들의 병세를 봐달라 부탁하고 싶었겠지만, 내가 곯아떨어진 탓에 차마 그 부탁을 하지 못했던 것이겠지.


“예, 덕분에 잘 잤습니다. 모피가 참으로 부드럽더군요.”


“곰의 가죽을 다듬어 만든 특별한 융단이라오. 원한다면 돌아갈 때 따로 챙겨 드리리다.”


“선물을 받을 만한 일이 생긴다면, 기꺼이 받도록 하겠습니다. 아드님 때문에 오신 것이겠지요?”


“···여독이 남아 있는 손님께는 죄송한 일이오만 조금이라도 빨리 아들의 병세를 살펴주었으면 하여 이리 무례를 범하게 되었소. 미안하오.”


“괜찮습니다. 그게 부모 마음 아니겠습니까.”


“···고맙소.”


“고맙기는요. 그래서, 아드님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직접 안내해 드리리다. 이쪽으로···.”


범차의 뒤를 따라 도착한 곳은 마을 어귀에 지어져 있는 허름한 건물이었다.


흙과 나무로 지어진 듯한 허름한 건물은 나무로 만들어진 조잡한 울타리에 둘러싸여 있었는데,

울타리 위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글씨가 휘갈겨진 종이가 덕지덕지 붙여져 있는 상태였다.


“울타리에 붙어 있는 저건 다 뭡니까?”


“우리 부족의 샤만이 써 붙인 부적이오. 부족이 망하지 않으려면 우리 아들에게 씐 귀신을 이곳에 묶어 놓아야 한다더군.”


“···.”


범차와 나는 부적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울타리를 지나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빠···?”


“···일어나 있었느냐. 이 숙수. 이 아이가 내 아들 휘호라오. 인사드리거라 휘호야. 우리 부족을 찾아 주신 손님이시다.”


“아, 안녕하세요···.”


“어, 그래···.”


범차의 아들을 마주한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족장의 아들쯤 되는 아이라면 굶을 일이 없을 텐데, 어쩌다 저렇게 비쩍 여위게 되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귀신에 씌었니 뭐니 하는 말을 들었다고 하더니··· 설마 이 작자···


“투먼, 혹시 아이를 일부러 굶기신 겁니까?”


“그럴 리가. 억지로 밥을 먹이려 한 적은 있어도, 일부러 굶긴 적은 한 번도 없소.”


“그런데 아이가 왜 저렇게···.”


“···잠깐, 밖으로 나갑시다. 내 천천히 설명해 드릴 테니.”


“예.”


나를 데리고 건물 밖으로 나온 범차는 한숨을 푹 내쉬며 이야기를 이어 갔다.


“우리 휘호에게 이상이 생긴 것은 대략 반년 정도 되었소. 처음에는 단순히 반찬 투정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말 그대로요. 어느 날부터 식사를 하지 않게 되었소. 억지로 뭘 먹이려 해도 먹자마자 음식을 바로 토해 내고, 뭘 제대로 먹질 않으니 하루가 다르게 아이가 야위어 가더이다.”


음···?


“부족의 샤만은 아이에게 굶어 죽은 아귀가 씌어 그리된 것이라 말하며 휘호를 이곳에 격리하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라 말하더이다. 그리고 제물로 바친 떡을 식사로 먹이라 하더군. 문제는 먹는 양이 그리 늘지 않았다는 거요. 하루 온종일 떡 두 조각이 전부요. 이해가 되오? 한창 자랄 아이가 떡 두 조각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단 말이외다.”


어라?


“샤만의 처방도 소용이 없는 듯하여 다음에는 심양을 찾아가 실력 있는 의원을 수소문했지. 대도에서 일했다던 의원이 있다기에 그치를 초청하였는데, 그자 역시 아무런 소용이 없었소.”


···


처음에는 내가 무슨 도움을 줄 수 있겠나 싶었는데···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이게 무슨 증상인지 알 것 같았다.


이거···

아무리 봐도 거식증이잖나.


정확히는 거식증으로 인한 영양실조라 할 수 있겠다.


어떻게 그걸 알고 있냐고?


예전에 출연한 예능에서 이것과 똑같은 증상을 가진 아이를 본 적이 있거든.


어쩌다 저 아이가 거식증에 걸렸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거식증은 그 원인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병이었으니까.


21세기의 첨단 의학 기술로도 그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지 못한 병의 원인을 내가 어떻게 알고 있겠는가.


하지만.


거식증을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때 함께 예능에 출연한 패널들을 도와 거식증에 걸린 아이를 치료한 적이 있었거든,


아마 그때부터 였을 거다.


내가 ‘국민 셰프’라는 칭호를 듣기 시작한 것 말이다.


거식증에 걸린 아이를 위해 진심이 담긴 요리를 만드는 장면이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더랬지.


“···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귀하를 초빙한 거요. 직접 보니 어떻소? 무슨, 방법이 있겠소?”


방법이 있겠느냐고?


그야, 당연하지.


한 번 해 봤던 일을 어디 두 번이라고 못 하겠나.


까짓거, 해 보는 거다.


작가의말

*동치미는 삼국시대의 무짠지를 기원으로 두고 있으며 지금과 같은 국물 형식의 동치미의는 고려시대에 와서 정착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숭가리 울라(ᠰᡠᠩᡤᠠᡵᡳ ᡠᠯᠠ)는 숭화강을 일컫는 만주 말입니다. '숭가리'는 은하수를 뜻하는 단어이며 '울라'는 강을 뜻하는 단어이지요.


*거식증은 보통 심리적인 요인에 많이 영향을 받는다고 알려져있지만,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는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늘도 재밌게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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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거식증 +5 24.09.06 1,061 59 12쪽
13 13. 식의 +4 24.09.05 1,118 57 12쪽
12 12. 코스요리 +4 24.09.04 1,155 60 12쪽
11 11. 함박 스테이크(2) +2 24.09.03 1,172 54 12쪽
10 10. 함박스테이크 +5 24.09.02 1,182 46 13쪽
9 9. 적응 +3 24.09.01 1,179 57 12쪽
8 8. 주방 +3 24.08.31 1,219 59 13쪽
7 7. 식객 +5 24.08.30 1,260 65 12쪽
6 6. 오믈렛 +5 24.08.29 1,272 61 12쪽
5 5. 쌍성 +3 24.08.28 1,329 67 12쪽
4 4. 카간의 요리사 +5 24.08.27 1,457 66 14쪽
3 3. 스테이크 +4 24.08.27 1,431 68 12쪽
2 2. 증명 +5 24.08.27 1,606 67 16쪽
1 1. 프롤로그 +11 24.08.27 1,819 7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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