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 마카롱으로 시작하는 조선 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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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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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6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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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식의

DUMMY

코스 요리의 진행을 성공적으로 끝마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셰프의 역량이었다.


코스 요리를 진행하는 것은 귀성길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과 같아서 언제 어디서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다.


분명 고객의 식사 속도에 맞춰 요리를 준비하였는데, 갑자기 식사 속도가 늦춰진 탓에 준비한 요리가 싹 식어 버린다거나, 요리에 사용해야 할 재료의 재고에 문제가 생겨 요리의 레시피를 급히 바꿔야 한다거나 하는 일들은 의외로 자주 발생하는 변수다.


이러한 변수가 발생할 경우, 그 변수를 책임지고 해결해야 하는 것은 당연히 총책임자인 셰프의 몫이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흐음, 뭐 얼마나 거창한 대접을 해 주나 싶어 기대했건만. 고작 이게 전부요?”

코스 요리라는 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고객이 클레임을 걸어오는 일은 왕왕 발생하는 일.


이런 일이 익숙했던 나는 이자춘을 바라보며 불평 어린 목소리를 내뱉고 있는 그의 손님을 향해 나직이 입을 열었다.


“손님께 설명이 부족했던 점 정중히 사죄드립니다. 지금 내어 드린 냉채는 여행으로 지치셨을 손님의 입맛을 돋워주기 위해 내어놓는 차가운 전채(前菜)이니, 가볍게 즐기시고 앞으로 나올 요리를 기대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거, 내가 할 말을 빼앗겨 버렸군. 숙수께서 말씀하신 대로요. 이것이 끝이 아니니, 일단 맛부터 보십시다. 이게 또 술안주로 그만이라오.”


그리 말한 이자춘은 미리 준비해 두었던 술을 꺼내어 손님의 잔을 채워 주었다.


분위기가 어느 정도 풀어진 것을 확인한 나는 조용히 자리를 빠져나와 주방으로 향했다.


다음 요리를 준비해야 했으니까.


전채 요리로 입맛을 돋웠으니, 이제 남은 것은 구상한 요리들을 순서대로 조리하여 손님에게 내어 가는 일만 남았다.


“덕보야! 스프는?!”


“여기 있슴다!”


주방에 도착한 나는 잠시 제자에게 맡겨 놓은 스프의 상태를 확인했다.


두 번째 요리는 새끼 양을 도축하고 나온 잡고기들과 뼈가 붙어 있는 정강이살을 모아 끓인 콩소메 스프.


정강이뼈를 따로 구워 국물을 진하게 우려내, 진하고 맑은 갈색빛을 띠고 있는 스프의 상태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새끼 양의 고기와 뼈를 사용해 우려낸 진한 국물입니다. 차갑고 새콤한 맛으로 입맛을 돋우셨으니, 따듯한 국물로 속을 데우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준비했습니다.”


“호오··· 방금 전 냉채도 훌륭했는데, 이것 또한 훌륭해 보이는구료. 그럼 어디··· 음, 으으음···. 이, 이건··· 새끼 양을 통째로 들이켜는 느낌이로군! 내 지금껏 살아오며 많은 국물을 마셔 왔지만, 이처럼 진한 고깃국물은 처음이외다!”


“흐하핫, 내 뭐라 했소?! 아주 진기한 맛을 경험하게 될 거라 그리 말하지 않았소!”


이야기를 들어 보니 냉채 역시 스프만큼이나 반응이 괜찮았던 모양이었다.


좋아, 이대로만 가자고.


* * *


이자춘과 범차의 그릇에 담긴 스프가 바닥을 드러낼 즈음, 문이 열리고 새로운 요리가 담긴 접시와 함께 이인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생긴 게 꼭 순대 같군.”


“손님께서 정확히 보셨습니다. 이번에 준비해 드린 요리는 새끼 양의 머릿고기와 고기를 해체하며 생긴 잡육들을 잘게 다져, 다진 마늘과 생강 같은 향신료와 함께 버무린 뒤 양의 창자에 채워 넣은 순대로, 평소 드시던 방식과는 달리 삶거나 찌지 않고 짚불에 구워 마무리했습니다.

함께 준비한 것은 얇게 부쳐 낸 메밀전과 달콤한 양념을 버무린 상추 무침입니다. 준비한 메밀전으로 구운 순대와 상추 무침을 싸서 드셔 보시지요. 색다른 맛을 즐기실 수 있으실 겁니다.”


“양념이 새하얗군, 마를 갈아 넣어 버무린 것인가?”


“계란 흰자에 식초를 섞어 만든 수제 양념입니다. 완성된 양념에 꿀을 섞어 달콤한 맛을 강조했지요.”


“호오···”


이인수의 설명을 들은 범차는 추천받은 방식대로 요리를 음미해 나갔다.


메밀전의 쫄깃한 식감과 씹는 순간 톡 하고 터져 나오는 육즙의 달콤짭쪼름한 맛, 상추 무침에서 느껴지는 기이한 부드러움과 달콤함이 모두 뒤섞인 오묘한 맛이 범차의 혓바닥을 유린해 나갔다.


범차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표정이 떠오르는 것을 확인한 이인수는 가볍게 묵례를 마친 뒤 방을 빠져나갔다.


요리의 맛을 음미하던 범차는 이인수가 방을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이자춘을 향해 말을 건넸다.


“흐으음··· 좋군, 처음 나왔던 냉채부터 이어진 국물, 지금 이··· 구운 순대까지. 전부 익숙하지만 처음 맛보는 듯한 진기한 맛이오. 헌데, 이 생소한 식사법은 그대가 고안해 낸 것이오?”


“가문의 식객이 고안해 낸 것이라오.”


“호오, 그렇소? 고명한 숙수를 식객으로 데리고 있는 줄은 몰랐는데?”


“얼마 전 새로 들인 식객이라오. 음선정요의 비방을 꿰고 있는 유능한 숙수지.”


황실에 ‘음선정요’라는 비방이 전해져 내려오며, 그 비방을 익힌 황실의 숙수가 황실의 건강을 책임지는 의원의 역할을 겸한다는 사실은 초원의 귀족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


오도리부의 투먼으로서 그 비밀을 잘 알고 있던 범차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이자춘을 바라봤다.


“그게 사실이오? 황실의 식의(食醫)를 식객으로 들였다고?”


“사실이오. 본인은 그 정체를 숨기고 싶어 하는 듯하지만 무슨 사연이 있는 모양이라 따로 그 사연을 캐묻지는 않았다오.”


이자춘의 대답을 들은 범차의 얼굴에 자못 비장한 표정이 떠올랐다 순식간에 사라졌다.


“대체 어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귀인과 인연을 맺으셨군. 축하드리오.”


“하하 고맙소. 헌데, 인연이라··· 생각해 보면 우리의 인연도 참 오래되지 않았소? 내가 다루가치직을 계승하기 전의 일이니···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가는 인연 아니오!”


“반란으로 인해 부족에서 도망쳐 나왔을 무렵에 그대와 만났으니··· 그쯤 되겠구료.”


“그렇지요? 참··· 투먼께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십니다. 듣자 하니 조소생의 초청을 받아들였다지요?”


이자춘의 입에서 그 이야기가 흘러나옴과 동시에 방금 전까지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급변했다.


온기가 가득하던 식탁에는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았고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던 범차는 곧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소. 허면 내가 무슨 이유로 그 초청을 받아들였는지도 잘 알고 있겠지.”


“역시 그런 거였군. 뭐, 좋소. 투먼께서 이리 나올 것은 이미 각오한 일이니까. 무엇을 원하는지 말씀해 보시오. 내 최대한 들어드리리다.”


“내가 바라는 것은 두 가지요. 하나는 재산, 그대가 바라는 대로 부족의 근거지를 쌍성 근방으로 옮길 테니, 거기 드는 비용의 일부를 부담해 주시오.”


“일부라면?”


“절반.”


“과하오. 삼 할(割). 삼 할로 합시다.”


“사 할. 우리 부족이 쌍성 근방으로 근거지를 옮기고, 그대를 지지해 주는 값치고는 과한 편이 아니라 생각하오만.”


“···좋소. 상세한 액수에 관해서는 추후 논의하는 것으로 하고, 다음 조건을 말해 보시오. 원하는 것은 두 가지라 하지 않았소.”


이자춘의 말을 들은 범차는 접시에 남아 있는 요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남아 있는 요리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범차는 남은 요리를 단숨에 비워 버린 뒤 예의 조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원래는··· 그대의 믿음을 요구하고자 했소. 우리 부족이 새로운 거점에 정착할 때까지, 그대의 차남을 우리 부족에 보내어 생활하게 해 달라 요구할 작정이었지.”


“내 아들을 볼모로 내어달라?”


그리 말하는 이자춘의 목소리에는 은은한 분노가 배어 있었고, 그를 감지한 범차는 급히 입을 열어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원래는 그럴 생각이었다는 거요. 원래는!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고.”


“···잘 생각하셨소. 그 조건을 고집하였더라면 협상이고 뭐고 할 것 없이 이 자리를 파할 생각이었으니.”


“아들을 무척이나 아끼시는 모양이로군.”


“가장이 되어 자식을 아끼는 것이 그리 이상하오?”


“아니, 오히려 안심이 되어 그러오. 그대가 나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 말을 들은 이자춘은 의아한 표정으로 범차를 바라봤고, 범차는 그런 이자춘의 시선을 마주한 채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대도 잘 알다시피, 내게는 늦둥이 아들이 하나 있소. 올해로 일곱 살이 되었지.”


“우리 둘째 놈과 딱 여덟 살 차이로군. 해서, 그 아이가 어쨌다는 거요?”


“최근··· 그 아이에게 병이 생겼소. 부족의 샤만(šamán)에게도 보여 보았고, 심양의 용한 의원에게도 아이를 보여 봤지만, 병을 고칠 방법을 알지 못하였지.”


“···속이 말이 아니시겠소.”


“이를 말이겠소. 부족을 이끄는 투먼으로서 아랫것들에게 속내를 드러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아주 죽을 맛이라오.”


“무척 안타까운 일이오만··· 지금 그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뭐요?”


“정말이지 지독하군. 꼭 내 입으로 대답을 드려야겠소?”


“그대도 이해해 주리라 믿소. 부족을 이끄는 그대나, 가문을 이끄는 나나. 다 똑같은 처지 아니오.”


“···하아, 좋소. 내 입으로 말하리다. 그 식객을 만나게 해 주시오. 그게 내 두 번째 부탁이오.”


“혹시나 하는 말이오만, 그치는 내 수하가 아닌 손님이오. 만일 그가 거절한다면 나는 더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소.”


“···잘 알겠소. 내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건네 보리다. 그럼, 그 숙수는 언제쯤 만나게 해 주시겠소?”


“아, 그거라면···”


이자춘이 무어라 이야기를 이어가려던 그때였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번 요리는 오늘의 메인, 아니, 주요리로 양의 갈빗살과 업진살을 다져 만든···”


갓 구워진 요리와 함께 이인수가 그 모습을 드러냈고, 이자춘은 그런 이인수를 가리키며 이야기를 마저 이어 갔다.


“지금, 본인에게 직접 말해 보시오.”


“본인? 설마, 이 젊은이가···!”


범차는 생각 외로 젊은 이인수의 얼굴을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메인 요리를 준비하느라 주방에 박혀 있는 사이에 이자춘과 범차,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를 알지 못했던 이인수는 어째서 범차가 저런 표정을 짓는지 알지 못해 어리둥절했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요리에 대한 설명을 이어 나갈 뿐이었다.


* * *


“부디,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메인 요리의 설명을 이어 가는 내내 나를 바라보는 손님의 시선이 느껴져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었으나, 어떻게든 설명을 끝마칠 수 있었다.


설명을 끝마친 나는 살짝 물러나 손님이 식사를 시작하기만을 기다렸다.


내 요리를 맛본 손님의 반응을 확인하고, 손님의 식사 속도를 확인하여 다음 요리의 준비하는 데 사용할 시간을 어림잡아 계산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성함이 이인수라고 하시었소?”


갑자기 손님이 내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아마 내 요리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요리에 문제가 있어 부르는 것일지도 모르지 않냐고?


그럴 리가, 내 요리는 완벽하다.


내가 직접 운전대를 잡고 준비한 코스에 문제가 있을 리 없잖나.


“예, 무슨 일이십니까?”


“다른 게 아니라···”


다른 게 아니라?


“내, 방금 전 저질렀던 무례에 대해 사죄를 하고 싶어 불렀소. 이씨 집안의 손님인 줄 알았더라면, 말을 놓지 않았을 텐데, 내 이리 사죄드리오.”


난 또,


무슨 말을 하려나 했더니 그거였구만.


“하하, 괜찮습니다. 지금은 손님께 요리를 서비··· 아니, 대접하는 일개 요리사일 뿐이니까요.”


“그렇··· 군. 이해해 주어 고맙소. 그리고, 한 가지만 더··· 할 이야기가 있는데.”


이 손님은 인사치레를 끝낸 뒤 본론을 꺼내는 타입인 모양이었다.


이번에야말로 내 요리에 대한 극찬을 늘어놓으려는 것이겠지.


그리 짐작한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여유로운 태도를 고수한 채 입을 열었다.


“기탄없이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럼··· 편히 말하리다. 혹, 내 아들의 병세를 좀 봐주실 수 있겠소? 내 사례는 톡톡히 하리다.”


···


뭣?


작가의말

*영어로 무당을 뜻하는 '샤먼'이라는 단어는 사실 퉁구스어 '샤만'에서 유래된 단어입니다.

퉁구스어족인 여진족들은 무당을 샤만이라 불렀다 전해지지요.


오늘도 재밌게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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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4. 거식증 +5 24.09.06 1,060 59 12쪽
» 13. 식의 +4 24.09.05 1,118 57 12쪽
12 12. 코스요리 +4 24.09.04 1,155 60 12쪽
11 11. 함박 스테이크(2) +2 24.09.03 1,172 54 12쪽
10 10. 함박스테이크 +5 24.09.02 1,182 4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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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 오믈렛 +5 24.08.29 1,272 61 12쪽
5 5. 쌍성 +3 24.08.28 1,329 67 12쪽
4 4. 카간의 요리사 +5 24.08.27 1,457 66 14쪽
3 3. 스테이크 +4 24.08.27 1,431 68 12쪽
2 2. 증명 +5 24.08.27 1,606 67 16쪽
1 1. 프롤로그 +11 24.08.27 1,819 7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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