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 마카롱으로 시작하는 조선 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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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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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6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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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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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쌍성

DUMMY

<城雙>


도저히 세트장이라 생각할 수 없는 거대한 성벽과 성문.


그리고 그 성문 위에 당당하게 걸려 있는 현판 하나.


인정하겠다.


미쳐 있던 것은 저 두 사람이 아닌.


나였다.


[이성계? 이름이 이성계라고요?]


[그렇습니다 요리사님.]


[···]


며칠 전,


사내의 자기소개를 들은 나는 이 사내가 스스로를 이성계라 생각하는 미치광이라 확신했었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이성계의 조선 건국 과정을 담은 대하드라마 ‘이성계’를 너무나 감명 깊게 본 나머지 스스로를 이성계와 동일시하게 된 미치광이일 것이라고,


그리 생각했었단 말이다.


산을 내려가도 전파가 터지지 않는 이유는 근처의 기지국이 모종의 이유로 무너졌기 때문일 것이고,


산을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보이는 초가집들과 사극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허름한 옷을 걸쳐 입은 이들은 모두 세트장과 세트장에 고용된 배우일 것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눈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성벽과 ‘쌍성’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현판이 내걸려 있는 성문을 바라보니,


이제는 더 이상 현실을 외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무슨 불편한 곳이라도 있으십니까 요리사님?”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으십니까?”


“성니메는 딱 보면 모르시우꽈?! 누가 봐도 속이 불편한 것 아님메! 그러게 식사는 전부 요리사님께 맡기자니까네 괜히 손을 대서 아까운 식재들을 돼지 먹이만도 못하게···”


“두라이 너 이 새끼 안 닥치니?!”


“내 뭐 없는 말을 지어내기라도 했슴메?!”


“이이익···!”


전부, 전부 인정하겠다.


내가 서 있는 이 시대는 여말선초의 시기가 맞으며 내가 세트장이라 생각하며 외면해 왔던 모든 것들은 전부 명백한 현실이었다.


그리고 지금 저기서 자신의 의동생과 다투고 있는 저 사내는 15세의 이성계가 분명했다.

그렇게 현실을 인정하고 나니 불현듯 걱정이 몰려왔다.


이성계에게 좋은 쪽으로 오해를 사게 되어, ‘카간의 요리사’라는 존칭을 받으며 이곳 쌍성까지 안전하게 도착한 것은 좋은데···


그다음은?


이젠 뭘 어떻게 해야 하지?


21세기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봐야··· 아니, 아니지.


어쩌다 이 시대에 떨어졌는지조차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돌아갈 방법을 어떻게 찾겠나.


그렇다면 결국 이 시대에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는 건데,


21세기의 첨단 문물을 맘껏 누리던 내가 이 시대에 적응할 수 있을까?


설사 적응했다손 치더라도.


뭘 하면서 먹고살아야 할지가 문제다.


출퇴근하며 읽었던 어느 소설에서처럼 향신료가 무한정으로 나오기라도 한다면 이런 걱정 따위는 할 필요도 없을 텐데···


아쉽게도 그런 특전은 전무.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조리 도구들에 향신료를 담은 가방 하나와 요리 실력,


그리고, 괴팍한 스승의 변덕 때문에 알아야 했던 온갖 잡다한 상식과 교양 지식 정도가 전부였다.


뭐?


권력자들에게 접근해 역사를 바꿔 보지 않겠느냐고?


글쎄··· 굳이 그래야 할까?


그걸 바꾼다고 해서 나한테 뭐 돌아오는 것도 없는 데다, 역사를 바꾸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여말선초의 정치에 관여해야만 한다.


대한민국 여의도에서 일어나는 정치 싸움이 룰이 있는 UFC라면 여말선초의 정치 싸움은 룰이 없는 스트리트 파이팅.


문자 그대로 자신의 목을 걸어야만 하는 아사리판이 바로 이 시대의 정치판이다.


그런 위험한 곳에 발을 들이라고?


내가 왜?


손이 데일 것을 알면서도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향해 손을 뻗는 사람이 있던가?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향해 몸을 던지는 것은 부나방 정도의 수준을 지닌, 딱 곤충 수준의 지능을 지닌 사람이나 할 법한 짓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부나방 같은 사람이 아니고.


그럼 남은 방법은···


“요리사님, 들어가시지요. 제가 저택까지 모시겠습니다.”


역시, 저 녀석인가.


이성계.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살짝 조숙한 얼굴을 지닌 소년이지만 언젠가 여말선초의 난세를 끝내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 시대의 이름이 될 사나이.


고려를 무너트리고 조선을 건국할 운명을 지닌 약속된 시대의 승리자.


저 녀석의 뒤에 붙어 간다면··· 어지간해서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목숨을 부지하는 것을 넘어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인정받아 말년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다 저 녀석의 가문인 전주 이가는 쌍성에서 손꼽히는 명문가가 아닌가.


드라마 ‘이성계’에서 봤다.


쌍성의 총관인 조소생조차 이성계의 가문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었지 아마.


총관조차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쌍성의 명문가 ‘전주 이가’의 식객 겸 요리사로 취직할 수 있게 된다면 이 시대에 적응하는 일 정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터.


역시, 저 집안의 요리사로 취직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요리사님?”


“아, 예. 따라가겠습니다.”


내 요리를 맛봤기 때문인지 이성계는 나에 대한 막연한 호감을 품고 있는 상태였다.


아마 나를 ‘카간의 요리사’라 철석같이 믿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나에 대한 이성계의 호감과, 이성계가 가지고 있는 내 신분에 대한 오해를 적절히 활용한다면 전주 이가의 요리사로 취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 뻔했다.


뭔가 어린아이를 속여 이득을 취하는 것 같아 조금 껄끄럽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뭐, 맹수와 도적이 득시글대는 난세에 홀몸으로 던져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아니지.


이성계는 이 시대에서는 맛보지 못할 맛있는 요리를 맛볼 수 있으니 좋고, 나는 전주 이가의 이름으로 보호받을 수 있으니 어떻게 보면 이거 윈-윈 관계라고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음,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좀 편해지는구만.


그렇게 마음을 정리한 나는 이성계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 * *


1350년

쌍성.

전주 이가 저택.


얼핏 보기에는 이성계 못지않게 험상궂은 인상을 지닌 듯하지만, 그 눈빛이 보다 깊고 현명해 전혀 험상궂은 느낌을 주지 않는 기이한 느낌의 사내.


전주 이가의 가주 이자춘은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자신의 차남 이성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개경 상인 놈들과 붙어먹는 초피 밀수꾼들을 처리하고 뭘 주워 왔다고?”


“주워 왔다니요! 제가 몇 번이나 간청하여 초빙하였다고 방금 말씀드리지 않았슴까!”


“···슴까?”


“어, 그, 그거이···”


“내 일전에 뭐라 말하더냐. 가급적 개경말에 익숙해지라 하지 않았더냐!”


“그, 그거이··· 죄송합니다. 아직도 익숙지가 않아···”


“···되었다. 억지로 말투를 바꾸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 그보다··· 네가 데려온 그 꺽다리 놈. 놈이 정말 황가를 모시는 숙수란 말이냐?”


“숙수가 아임다. 요리사임다.”


“요리사?”


“예, 스스로를 요리사라 불렀슴다.”


“요리사··· 요리사(料理士)라. 스스로를 선비라 칭하는 숙수라니, 재밌군. 옛 상나라 이윤(伊尹)의 흉내를 내기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이성계의 대답을 들은 이자춘은 썩 흥미로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리 중얼거렸고,


그 중얼거림을 들은 이성계는 이자춘을 향해 무척이나 조심스런 태도로 질문을 던졌다.


“저어, 아바지 이윤이 뭐 하는 사람임까···?”


“명군으로 꼽히는 탕왕의 재상이자 숙수가 바로 이윤이다. 그 유명한 공자도 그를 성인이라 칭송하였다 전해지지.”


“아, 아바지는 어찌 그런 것들을 알고 계십니까?”


“이 자리에 앉으면 알고 싶지 않아도 알아야 하는 것이 있으며, 배우고 싶지 않아도 배워야만 하는 것이 있는 법이다.”


“으음··· 솔직히 말씀드리자며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슴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너도 나이를 먹고 네 사람들을 만들게 되면 이해할 날이 올 게다. 해서, 그 ‘요리사’의 이름이 뭐라고?”


“어···”


이자춘의 질문을 받은 이성계의 얼굴에 아차 싶은 표정이 떠올랐고,


그런 이성계의 표정을 마주한 이자춘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를 이어 갔다.


“너 설마, 그자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게냐?”


“그, 그거이···”


“나 원 어이가 없어서. 야 이 녀석아. 이름도 알지 못하는 상대를 카간의 요리사라며 데려와 대접해 주고 있다는 말이냐 지금?!”


“길치만 실력 하나는 확실했단 말임다! 그때 먹어 본 사슴 고기는 제 평생 먹어 본 사슴 고기 중에 제일이었슴다. 그런 맛을 낼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슴까?!”


“이제 겨우 열다섯밖에 되지 않은 놈이 사슴 고기를 먹어 봤으면 얼마나 먹어 봤다고 그런 말을 하느냐!”


“···”


“내 누누이 말했지? 한번 꽂히면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일단 몸부터 움직이는 그 버릇! 그 버릇을 좀 고치라 내 몇 번을 말하지 않았어?! 그런데, 대체 이게 무어냐?!”


이자춘은 이성계의 경솔함을 꾸짖기 시작했고, 이자춘의 꾸중을 가만히 듣고 있던 이성계는 살짝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임다.”


“뭐? 아니긴 뭐가 아니라는 게냐?!”


“경솔히 행동한 것이 아니란 말씀임다.”


“···뭐야?!”


“제가 본 그 ‘요리사’의 칼놀림과 요리는 제가 보아 온 그 누구보다 뛰어났슴다. 두라이 그 아새끼도 옆에서 함께 보았으니 불러 물으면 대답해 드릴 수 있을 검다.”


“그래서, 이번 일은 네 잘못이 아니다?”


“그렇슴다. 정 못 미더우시면 직접 겪어 보시면 될 일 아님까?!”


“직접?”


“예! 지금 객관에서 쉬고 있는 요리사를 불러 그 실력을 검증해 보시면 제가 경솔했던 것인지, 아니었던 것인지를 바로 확인하실 수 있으실 것 아님까!”


이성계의 항변을 들은 이자춘은 생각지도 못한 것을 본 양 놀란 눈으로 이성계를 마주 바라봤다.


이성계와 눈을 마주친 채 가만히 이성계의 눈빛을 읽어 내려가던 이자춘은 피식 웃음을 터트리고는 나직이 입을 열었다.


“좋다, 성계 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그 사기꾼인지 아닌지 모를 놈의 실력을 한번 검증해 보도록 하마.”


“알겠슴다. 그럼 당장 사슴을···”


“사슴이 아니다.”


“···예?”


“사슴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고작 사슴 구이 정도로는 놈이 카간의 숙수였는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없지.”


“허면··· 어쩌겠단 말씀이심까.”


“어쩌기는, 황실의 숙수가 아니고서야 다룰 수 없는 재료를 사용해 그 ‘요리’란 놈을 만들어 보라 할 생각이다.”


“황실의 숙수가 아니고서야 다룰 수 없는 재료라니. 그런 귀한 재료가 쌍성에 있었슴까??”


“당연히 있고말고. 아마 너도 한 번쯤은 입에 대어 봤을 게다. 대부분은 공물로 올라가지만, 우리가 쓸 정도는 남겨 약으로 쓰고 있는 물건이니까.”


“공물···? 약···? 아바지 설마···”

“그래, 네가 생각이 맞다. 건락(乾酪)과 수유(酥油). 이 두 물건은 온 천하의 공물을 거둬들이는 황실이 아니고서야 마음껏 쓸 수 없는 귀물들이지. 놈이 두 귀물을 익숙히 다뤄 훌륭한 식물(食物)을 만들어 낸다면 방금 전 네게 했던 말을 취소하고, 네 말을 인정하도록 하마.”


“실패한다면, 어찌 됨까?”


“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법이니 원하는 것에 정신을 팔지 말고 어떤 위험이 따르는지를 먼저 확인해 보라 하셨잖슴까. 해서 여쭙는 검다. 제가 초빙한 손님께서 아바지의 성에 차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땐 어찌 되는 검까?”


“그걸 묻는 이유가 무엇이냐?”


“아바지께서 더 잘 아시지 않슴까.”


“뭐라? 흐핫, 하하하하핫!!!”


이성계의 당돌한 대답을 들은 이자춘의 입에서 만족스러운 듯한 너털웃음이 터져 나왔다.


한바탕 웃음을 터트린 이자춘은 여느 부모와 다를 바 없는,


장성한 자식을 기특해하는 부모의 얼굴로 이성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데려온 그 ‘요리사’가 실패한다면, 그때 알려 주도록 하마.”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검다.”


그리 답한 이성계는 자신이 데려온 요리사가 쉬고 있을 저택의 객관으로 향했고,


이자춘은 그런 이성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그래, 나도 그럴 것 같구나.”


작가의말

지식채널2 님 후원 감사합니다!


이성계의 셰프는 매일 18시 00분 정시 연재됩니다!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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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 식객 +5 24.08.30 1,259 65 12쪽
6 6. 오믈렛 +5 24.08.29 1,271 61 12쪽
» 5. 쌍성 +3 24.08.28 1,328 6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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