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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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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6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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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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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좀 필요해

DUMMY

‘아니, 푸틴이 왜 여기 있는 거지?’

우트칸이 무언가 말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기억을 되살리느라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시기가 아직 푸틴이 정권을 잡지 못하고 있을 때였던가?'

가만 생각해보니,

잡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시장인 소브차크 밑에서 부시장으로 일하다가.

소브차크가 공금 유용 및 리베이트 등으로 선거에 패배하는 바람에 푸틴도 부시장 자리에서도 쫓겨나고,

현재는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로 전전하고 있을 때였다.


즉, 지금의 푸틴은 러시아 대통령과는 아주 거리가 먼 시기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이자가 블랙숄더 용병대를 인수하려 한다는 건가?"

"맞아. 자네가 좀 도와줄 수 있겠나?"


우트칸이 스페나츠소속 내무국 특수 작전 부대에서 활동하던 시절.

레닌그라드에서 KGB와 합동작전을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함께 작전에 참여했던 KGB 요원이 바로 푸틴이었다.


"아직 소식을 듣지 못했나 보군."

"뭘 말인가?"


우트칸의 의문스러운 표정에 푸틴이 깊은 한숨을 내 쉬었다.


"나 부시장에서 잘렸네."

"뭐? 갑자기 왜?"

"소브차크 그 빌어먹을 놈이 뒷돈을 받아 챙긴 게 걸리는 바람에 나까지 휘말렸어."

"저런... 그럼 무기를 구할 수 있게 군부 쪽에 선을 대줄 수 없다는 건가?"

"아무래도 지금은 나도 몸을 사려야 하는 처지라서 말일세."


식당 룸 한켠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우트칸도 뭐라 할 말이 없었던지, 앞에 놓인 술잔만 홀짝거렸다.

이대로 두고 보기만 하다가는 푸틴과 마주할 흔치 않은 기회를 날려버릴 것 같아.

보고있던 내가 정적을 깨트렸다.


"이럴 때일수록 몸을 사릴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움직이셔야죠. 제대로 된 배에 올라타지 못하면, 보수파의 크류츠코프 꼴이 나실 겁니다."

"뭐야?"

독한 보드카를 몇 잔 마신 덕에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푸틴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물론, 그래봐야 현실만 더 자각하게 될 뿐이었다.

크류츠코프는 한때는 푸틴이 존경해 마지않던 KGB국장이었지만, 한순간의 선택으로 지금은 뒷방 늙은이 생활을 하고있는 자였다.

너도 어영부영하다가는 크류츠코프 꼴이 나게 될 것이란 걸 일깨워 준 것이다.


"저라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옐친 대통령 선거캠프에 들어갔을 겁니다."

옐친이라는 말에 푸틴이 콧방귀를 꼈다.

"그 노인네는 끝났어. 심장마비에 걸렸던 자를 대체 누가 대통령으로 뽑겠어."

"그러니까. 더더욱 거기에 동참해야죠. 이미 승기를 잡은 이가 당신을 받아줄 것 같습니까."

"·····"

푸틴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조금씩 내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옐친 측 대선캠프에 참여해서 선거에서 이기고 싶으면, 국회의사당을 날려버린 이미지부터 희석시켜야 한다고 외치세요."

옐친은 몇 년 전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스스로에게 의회 해산권을 부여하고,

인민대표회의와 최고회의를 폐지시켜 버렸다.

그 과정에서 화가 난 의원들이 옐친을 탄핵하고 국회의사당을 점거했지만, 옐친이 T-80 탱크를 보내 국회의사당을 날려버린 것이다.

지금 옐친의 지지율이 바닥을 기고 있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고,

좋지 않은 심장을 포함해서 푸틴이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이미지를 희석시킨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야."

"그러니까요. 그 정도는 해야 옐친이 당선된 이후에도 신임을 받을 수 있지 않겠어요?"

내가 더 큰 목소리로 외쳐서 그런지 푸틴이 묘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좋은 방법이라도 있나?"

"올리가르히들에게 이권을 나눠주고 정치자금을 지원받으세요."

"이권?"

"가즈프롬이나, 루살 같은 국영기업 중 일부를 넘겨주겠다고 하는 거죠."

"국영기업을 재벌한테 넘기라는 말인가?"

"그 방법 말고는 옐친이 공산당 후보인 주가노프를 꺾고 당선될 방법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올리가르히들과 친분을 쌓아두는 것도 나중에 도움이 될 겁니다."

"흠..."

실제로도 내가 말한 방법이 푸틴이 사용하게 될 방법이라.

그가 내 조언을 무시할 가능성은 없었다.


"확실히, 나쁘진 않은 방법 이군."

"나쁘지 않은 방법이 아니라. 올리가르히들에게 받은 정치자금을 이용해 전방위적인 이미지 플레이를 펼치면, 분명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겁니다."

나는 회귀 전 옐친이 올리가르히의 지원을 등에 업고 진행했던 대선 전략을 푸틴에게 세세하게 말해줬다.

러시아 선거 역사상 처음으로 이미지 메이커와 선거 매니저를 도입하고, 스타들을 대거 동원하는 등의 방법에 관한 것들이었다.


"거기에 더해 흑색선전, 여론조작 같은 것들도 추가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겠어."

푸틴은 내가 말해주지 않은 것까지.

스스로 아이디어를 쏟아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대선 이후 국민에게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 엄청난 비판을 받게 되겠지만,

원래 러시아는 승자독식, 이기는 놈이 장땡인 곳이었다.


"제 말이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푸틴이 가만히 나를 쳐다봤다.


"아직 나이가 어린 것 같은데. 블랙숄더를 인수한다는 것도 그렇고, 이런 식의 방법까지 생각할 수 있는 걸 보니, 보통 인물은 아닌 것 같군."

"하하, 내가 알아보니, 제법 규모가 큰 투자사의 대표더군."

언제 세이프 하베스트에 관한 조사까지 했는지.

우트칸에 그에 관한 정보를 푸틴에게 말했다.


"투자사 대표라... 흠."


갑자기 푸틴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무기가 필요하다고 했던가?"

"네."

"조만간 우트칸을 통해서 연락하지."


나와 악수를 나눈 푸틴은 곧장 어딘가를 향해 이동했다.

아마도 옐친의 대선캠프에 발을 걸칠 수 있게 도와줄 누군가를 찾아가는 것일 거다.

······



***



예상대로 푸틴의 도움을 받은 보리스 옐친은 자신의 정적인 주가노프를 꺾고 재선에 당선됐다.

본래 역사에서는 54%대 41%로 13% 정도 앞선 상태로 승리했지만, 이번에는 보리스 옐친의 득표율이 무려 65%나 됐다.

초반부터 이미지 메이킹과 흑색선전을 펼친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공을 인정받은 푸틴은 KGB 제2총국의 후신인 연방보안국 장관으로 임명됐다는 말을 들었다.


‘깜짝 총리로 임명되기까지는 아직 좀 더 시간이 필요한가 보네.’

신문을 보고 있는데.

우트칸이 상기된 표정으로 나를 찾아왔다.


"무기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상하고 있었기에 그리 놀라지는 않았다.

"어떤 것들입니까?"

"...그전에 말씀부터 편하게 하시죠. 용병 일을 하려면, 위계가 분명해야 합니다."

확실히 군인 출신이라 그런지.

상하관계를 먼저 확실하게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하지."

"푸틴이 말하길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각 군부가 빼돌려둔 무기가 상당하다고 합니다. 돈만 제대로 지불하면, 원하는 만큼 무기를 공급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중에 Su-27이나 30같은 전투기도 포함시킬 수 있는 건가?"

"네?"

우트칸이 화들짝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돈만 주면 원하는 만큼 무기들을 공급받을 수 있다면서. 나는 그 대상에 전투기도 포함했으면, 좋겠는데?"

"Su-30은 아직 실전 배치도 안 된 모델이라. 말할 것도 없고, Su-27 또한 러시아의 주력 전투기라 쉽진 않겁니다."

"그래서 전투기는 힘들다는 건가?"

"...확인은 해봐야겠지만, Su-25 정도라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본래라면,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 해도 전투기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겠지만,

푸틴에게 도움을 주고, 그가 연방보안국 장관으로 임명된 덕분에 그나마 이 정도라도 비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블랙숄더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전투기를 확보하는 게 좋을 거야."

"자이르의 정부군은 제대로 된 전투기가 한 대도 없으니. 확보만 할 수 있으면, 확실히 큰 도움이 되긴 할겁니다."

큰 도움 정도가 아니라.

총과 로켓포만으로 무장한 자이르의 군대를 상대로 전투기가 있다면,

나는 어렵지 않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모이세르를 내세워 자이르의 정권을 장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비용이 상당히 많이 필요할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블랙숄더 용병대가 체첸 반군과 전쟁을 벌였을 때는 러시아 정부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지만,

내가 용병대를 인수하게 되면,

온전히 내 돈으로 용병들의 급여를 지급하는 것은 물론, 무장까지 시켜야 했다.

정확히 얼마가 필요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천문학적인 자금이 소요될 것임은 틀림없었다.


"...돈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형 무기 위주로 구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구해봐."

"알겠습니다. 그런데..."


우트칸은 뭔가 할 말이 남았는지.

돌아서는 나를 붙잡았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한국인이신 거 같은데. 민간 군사 기업을 세우고, 러시아제 무기까지 구입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왜, 내가 감옥에 갇히기라도 할까 봐. 걱정되나?"

"제가 보스와 함께하려는 이유를 잘 알고 계시잖습니까."

"아내 때문이겠지."

"그러니 어찌 제가 걱정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혹시라도 내가 잘 못 되면,

아내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트칸의 희망 또한 사라지게 된다.

"그 문제는 모이세르가 자이르의 정권을 장악하게 되면, 대부분 해결될 거니까. 모투부를 몰아낼 계획이나 잘 수립하고 있으라고."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런 게 아니라.

바로 돈이니까.


나는 우트칸에게 블랙숄더의 인수와 무기 매입에 관한 지시를 내린 후,

곧장 월스트리트로 날아왔다.


"대체 뭘 하고 다니길래. 그리 바쁜 거야. 연락도 잘 안되고."

오랜만에 만난 에일린이 보자마자 불평을 쏟아냈다.

"그렇게 됐어."

"할아버지 때문에 대한그룹 일까지 하고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그래도 너무 무심한 거 아냐?"

에일린도 나만큼 일에 치여 살고 있는지.

얼굴에 피곤함이 가득 묻어있었다.

그럼에도 특유의 청초함은 여전했다.

"진짜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빴어."

과장이 아니라. 러시아에서 뉴욕으로 날아오는 동안에도 나는 조금도 쉬지 않고, 내내 업무를 봐야 했다.


"그렇게 바쁘신 분이. 연락도 없이 여기까진 웬일이래?"

"돈이 좀 필요해. 우리가 보유한 자금이 얼마나 되지?"

"얼마가 필요한데?"

"좀 많이."

사용처가 궁금했을 법도 한데.

에일린은 세세하게 따져 묻지 않고, 곧바로 정리된 자료를 가져왔다.

자료에는 유레카의 초기 자본금 30억으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운용한 모든 내역이 세세히 기록되어 있었는데.

자료를 보는 순간.

나는 이곳까지 오면서 했던 걱정이 모두 기우였음을 알 수 있었다.

에일린이 내민 자료의 제일 뒷장에 적힌 숫자가 내 예상치를 아득히 상회했기 때문이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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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이 좀 필요해 +3 24.09.18 1,484 40 11쪽
44 총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무기 +5 24.09.17 1,732 3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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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모든 유보금을 달러로 +5 24.09.15 1,976 40 12쪽
41 그냥 재미 삼아 하는 거잖아 +3 24.09.14 1,983 37 11쪽
40 단군이래 최대 호황 +4 24.09.13 2,014 35 11쪽
39 온라인 서점 사업 +3 24.09.12 2,063 39 12쪽
38 감히 대적할 수 없는 힘 +4 24.09.11 2,185 36 11쪽
37 근데 넌 표정이 왜 그래? +3 24.09.10 2,295 36 12쪽
36 다이아몬드 수저 +2 24.09.09 2,496 3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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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교수님이 저런 표정 짓는 거 처음 봐 +2 24.09.01 3,125 43 11쪽
27 태풍의 나라 개발자 이용식입니다 +2 24.08.31 3,126 44 13쪽
26 대체 이게 다 얼마야? +2 24.08.30 3,155 4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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