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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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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6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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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4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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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재미 삼아 하는 거잖아

DUMMY

“내기?”

성 부회장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저는 부회장님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거든요.”

“·····”

조용한 회의실을 한 차례 둘러본 뒤,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미국의 고금리 정책이 멕시코와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중남미 국가에 큰 피해를 입혔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아시아에까지 그 영향이 미치고 있습니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모든 언론이 국내외 경제 상황을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라고 외치고 있는 거 모르십니까?”

“미국의 고금리 정책의 여파로 전 세계의 달러가 빠른 속도로 미국으로 쏠리고 있고, 그것은 조금 전 정진택 사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환율을 급등시키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상관이라는 겁니까?”


계속 답답한 소리만 쏟아내는 성남기를 무심한 눈길로 쳐다봤다.


“급등한 환율은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의 경제를 침체에 빠트릴 겁니다. 하지만, 경제관료를 비롯한 자칭 전문가라고 자부하는 기업가들까지 작년에 있었던 호황에 눈이 멀어 그러한 상황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경기침체로 반도체 가격이 폭락할 거라는 말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네. 그것도 상당히 많이요.”

“근거가 있는 말입니까?”


급기야 성남기 부회장의 표정에 짜증이 묻어났다.

정작 짜증 낼 사람은 난데 말이다.


하지만, 처음 참석한 사장단 회의에서 화를 낼순 없었으니,

화를 내는 대신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환한 미소를.


“조금 전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미국 강달러의 여파로 전 세계의 경기가 급속하게 얼어붙고 있다고요. 아직 이해를 못 하신 것 같으니. 한 가지 질문을 더 드리겠습니다.”

“·····”

“저희 대한전자 반도체의 가장 큰 경쟁자가 어디입니까?”

“당연히 일본이죠?”

“잘 알고 계시네요. 저희 대한전자가 후발 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같은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1985년 미국과 일본의 플라자합의와 반도체 협상 덕분이라는 것을 모르시는 분들은 없을 겁니다.”

“그게 반도체 가격 하락과 상관이 있다는 겁니까?”

“상관이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

“작년 엔화 강세를 조정하기 위해 미국과 일본은 다시 역플라자 합의를 체결했고, 그로 인해 엔화 환율은 달러당 80엔 수준에서 100엔까지 상승(엔화 가치 하락) 했습니다. 이 말인즉슨, 저희 대한반도체 최대 경쟁자인 일본 반도체의 가격 경쟁력이 좋아졌다는 말입니다.”

“경기침체와 엔화 가치 하락. 이 두 가지로 인해 반도체 가격이 하락할 거라는 말을 하고싶으신 겁니까?”

정진택의 물음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경기침체로 세계시장에서 반도체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이라는 막강한 경쟁자와 다시 경쟁을 벌여야 하니, 가격은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처음 내가 말을 꺼냈을 때만 해도.

애송이 취급을 하던 사장 중 일부가 내 말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진택 사장. 16메가 D램 판매 가격이 얼마나 하나?”

김성재 실장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정진택 사장을 쳐다봤다.


“...55불 정도입니다.”

“55불? 지난달만 해도 62불 선에서 거래된다고 하지 않았었나?”

“그렇긴 한데. 원래 D램 가격은 연말보다는 연초에 조금 낮게 형성되는 경향이...”

“그 차이가 10%나 된다는 말인가?”

“그게... 일반적으로는 3~4% 수준이 떨어지는데. 올해가 좀 많이 빠지긴 했습니다.”


정진택 사장의 말이 끝나자.

계열사 사장들의 웅성거림이 커졌다.


“그럼 태준군의...”

“태준군이 아니라. 사장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총수 대행직을 맡고 계시니, 호칭을 제대로 하시게.”

사장 중 한 명의 말에 김성재 실장이 짐짓 언성을 높였다.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장태준 사장님의 말씀대로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겁니까?”

“없는 게 아니라. 앞으로 반도체 가격이 무섭게 떨어질 겁니다.”

62불에 거래되던 16메가 D램 가격이 몇 달 만에 10불까지 떨어지게 되니,

‘무섭게’라는 단어도 사실은 좀 부족했다.

x폭락 정도는 돼야 알맞은 단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겁니까?”

“16메가 D램 라인 증설을 최소화하고, 투자는 64메가와 128메가 D램 개발에만 집중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게 무슨...”

x소리냐고?

뒷말을 참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표정만 봐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런 성남기가 불안해 보였던지.

정진택이 서둘러 말을 받았다.


“16메가 D램은 지금 없어서 못 파는 물건입니다. 한 개라도 더 만들어서 팔아야 하는 상황에서 라인 증설을 하지 않으시겠다니요. 말도 안 됩니다.”

“D램 가격이 떨어지더라도. 이익률이 40%나 되기 때문에 어쨌든 많이 만들어서 파는 게 유리하다는 겁니까?”

“네.”

“판매 가격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더라도요?”

“네? 그게 무슨...”

“D램 가격이 50%나 빠질 거라는 말입니까?”

“저는 그 이상 빠질 거로 생각합니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던 이들도.

이번에는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회의적인... 아니,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인 이가 성남기 부회장이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 회장님 대신 총수 대행직을 맡으신 건 알겠지만, 우선은 돌아가는 상황부터 파악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제 말을 못 믿으시는 거 같으니. 정말 내기라도 한 번 해보시겠습니까?”

“자꾸만 무슨 내기를 하자는 겁니까?”

“저는 향후 두 달 안에 16메가 D램 가격이 30불 이하로 떨어진다는데. 제 자리를 걸겠습니다.”

“자... 장 대표!”

예상치 못한 발언에 김성재 실장이 급히 나를 불렀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리고 성남기 부회장을 보자.

표정에 웃음을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말 정말이십니까?”

“네. 제 말이 틀리면, 할아버지가 돌아오실 때까지 총수 대행직은 부회장님이 맡으시죠. 대신.”

“....?”

“제 말이 맞으면, 제 말에 반대하신 성남기 부회장님의 인사는 제 임의대로 결정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16메가 D램 라인 증설은 보류하는 걸로 하죠.”

회의에 참석한 사장들의 웅성거림이 커졌지만, 그럼에도 내 말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경험도 없는 애송이가 그룹을 통째 말아먹는 것을 지켜보는 것보다는 당분간 성남기 부회장 체재로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



“크하하하하, 본인 입으로 그런 말을 할 줄이야.”

“정말 장태준이 그런 소리를 했다는 겁니까?”

박수천 전무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성남기를 쳐다봤다.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애송이라 그런 게지. 그룹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는 있지만, 본인 입으로 물러나겠다고 할줄은 나도 몰랐어.”

“아무튼 저희한테는 잘된 일 아닙니까? 안 그래도 중국 측에서 자료를 언제 보내줄 거냐고 묻던데. 이참에 규모를 좀 더 키워도 될 것 같습니다.”

“당연하지. 어차피 자료를 빼돌릴 거. 이왕이면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도록. 규모를 키워서 추진해봐. 내가 총수 대행을 맡게 되면, 그깟 자료쯤은 얼마든지 빼돌릴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그런데 설마, 장태준의 말대로 되는 건 아니겠죠?”

“무슨 말? 16메가 D램 가격이 30불 아래로 떨어질 거란 그 말 말이야?”

“네.”

“이봐 박 전무.”

“네, 부회장님.”

“자네 눈엔 지금 이 설비 가동률이 안 보이나?”


성남기 부회장이 자신의 사무실 한쪽 벽면에 표시된 설비 가동률 수치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설비 가동률이 무려 98.7%를 가리키고 있었다.

98.7%라는 수치는 셋업 중인 신규 설비와 점검 때문에 일시적으로 가동이 중단된 설비를 제외한 모든 기계가 원활히 작동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 말인즉슨 지금 반도체가 만드는 족족 팔려나간다는 의미였고, 없어서 못 판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했다.


“하하, 너무 예상밖이라서 그러는 거죠. 보통 오너가 자신의 자리를 거는 일은 잘 없잖습니까.”

“·····”

사실 성남기 부회장도 이상하긴 했다.

어리다곤 해도 자신이 알기로 장태준은 한국대를 수석으로 입학한 수재 중의 수재였고,

장우진 회장을 만날 때면, 자신의 손자가 얼마나 잘났는지. 귀가 닳도록 자랑했었다.

그런 자가 첫 회의 때부터 자신의 자리를 건 내기를 하자고 했다?

가슴 한켠에서 찝찝한 무언가가 솟구쳤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고작 두 달 만에 16메가 D램 가격이 30불 아래로 떨어질 것 같진 않았지만,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르는 법.

만약을 대비해둘 필요가 있었다.


“중국 측과의 거래 시기를 좀 앞당겨 봐.”

“네!”

·····



***



얼마 전, 회의에 참석했던 계열사 사장 중 대다수가 반도체 가격이 급락할 거라는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오직 한 사람 정희원 차장만은 태준의 말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녀가 경제 상황을 잘 알아서가 아니라.

태준의 능력을 누구보다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대한건설에서 태준을 도와 안광희 전무와 대결을 벌였을 때.

그때 봤던 태준의 모습이 그녀는 아직도 머릿속에서 잊히지가 않았다.

상한가 제한이 4%밖에 안 되는 한국 주식시장에서 한 달 만에 238%나 되는 경이적인 수익률을 올렸는데. 어찌 놀랍지 않겠는가.

하루에도 몇 번씩 주식을 사고파는 족족.

모든 종목이 상한가를 찍었고, 당시 정희원은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모든 종목이 하루 종일 상한가만 찍는 것 같다는 착각을 느꼈었다.

그때 봤던 태준의 모습은 그저 투자를 잘하는 사람의 모습이 아닌, 주식의 신 혹은 미래를 알고 있는 자의 모습이었다.

물론, 미래를 알고 있진 않겠지만,

그만큼 놀라웠다는 말이다.

비서실 내에서도 사장단 회의에서 있었던 태준의 발언이 화제가 되어 서로 맞느냐 틀리느냐를 놓고, 내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정 차장. 정말 안 걸 거야?”

“뭘 그리 심각하게 생각해 그냥 재미 삼아 하는 거잖아.”

“맞아요. 차장님. 날이면 날마다 오는... 아니, 하는 것도 아닌데. 한번 걸어보세요.”


정희원 차장이 슬쩍 메모지를 보자.

대부분의 이들이 태준이 질 거라는데 돈을 건 것 같았는데.

의외로 이길 거라는데 돈을 건 사람도 있긴 했다.


“여기 이긴다는데 돈을 거신 분은 누구죠?”


정희원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묻자.

진기훈 대리가 손으로 누군가를 가리켰다.


“박봉식 부장님이요.”


이름을 듣는 순간.

정희원 차장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예전 자신과 함께 대한건설에 파견 나가 장태준 대표를 도왔던 이라.

자신만큼이나 그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눈을 마주한 박 부장의 미소를 보며,

정희원이 펜을 들어 박 부장의 이름 아래 자신의 이름을 적어넣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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