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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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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5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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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모든 유보금을 달러로

DUMMY

“으으아아아악!! 사... 살려줘.”


고요한 양초 빛이 흔들리고 있는 재단 앞.

십수 명의 남녀가 무릎이 꿇린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들의 눈엔 공포와 절망이 가득했고,

자신들의 미래를 예견했는지.

살려달라는 말을 끊임없이 외쳤다.


잠시 후,

한 남자가 그들을 향해 걸어왔다.

그의 손에는 펜던트 하나가 들려 있었는데.

펜던트 한 가운데 박힌, 눈동자 형상의 루비.

그것이 붉은빛을 번득일 때마다.

스산한 공포가 사람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저벅저벅-


성스러운 신전에서 치러지는 의식인 마냥.

순백의 수단을 몸에 걸친 남자가 서슬 퍼런 단검을 들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묶여있는 이들의 경동맥을 찔렀다.


푸학-


뽑혀 나온 단검과 함께 분수처럼 솟구친 피가 남자의 수단을 붉게 물들인다.

그럼에도 남자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쏟아지는 피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더 이상 물들 수 없을 만큼 수단이 젖어 들자. 놀랍게도 손에 들린 펜던트가 그 피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마치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이 물을 흡수하듯.

십여 명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를 엄청난 속도로 흡수했고, 마지막 한 방울의 피까지 모두 흡수하고 나자.

괴기하게도 펜던트가 신비로운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후욱.”


잠시 후, 의식을 끝낸 남자가 깊은숨을 토해냈다.


“뭐 좀 알아냈어?”


수단을 벗어 던진 블루머를 향해 레이첼이 다가갔다.


“혼란스럽군.”

“왜, 계획이 잘못됐어?”


블루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호루스의 눈은 중남미 다음으로 동아시아를 가리켰다."

"다음 차례가 동아시아라는 거야?"

"그렇다."

"흠... 동아시아라면, 중국, 일본, 한국 같은 나라를 말하는 것 같은데. 우리가 고금리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지만, 게네들은 생각보다 펀더멘털이 나쁘진 않잖아?"


레이첼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블루머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투로 대답했다.


“일본은 몰라도 홍콩과 한국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해. 하지만, 그전에 우리가 먼저 노릴 곳은 태국과 인도네시아 같은 신흥국이어야겠지.”

“그러니까 태국하고 인도네시아 같은 곳을 먼저 쓰러트려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자는 거지?”

"맞아."


투자는 심리라는 말이 있듯.

제아무리 견실한 국가라고 해도 심리가 꺾이는 순간.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거기다 한국은 군사정권을 무너트리고, 문민정부를 표방하는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는 국가가 아니던가.

그는 절대 국민들한테 군사정권 시절보다 경제가 나빠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경제가 침체기에 빠져들고 있는 지금 같은 시기에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금융 시장에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 틈을 노린다면, 아시아의 용이라고 불리는 한국을 무너트리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왠지 모르게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블루머를 레이첼이 의문스럽게 쳐다봤다.


“호루스의 눈이 ‘주인’이라는 단어를 거론하더군.”

“주인? 무슨 주인 말이야?”

“글쎄, 그것까진 알려주지 않았어. 근데, 이상하게 그 말이 자꾸만 마음에 걸려.”

“너무 과민한 거 아냐? 그 주인이 우릴 말하는 것일 수도 있잖아. 세계의 주인 혹은 돈의 주인 이라고 말이야.”

“흠....”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가슴 한켠의 불안감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다시 한번 호루스의 눈을 사용하고 싶었지만, 이것은 자신이 사용하고 싶다고,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



***



대한전자 부회장실.


“이... 이럴 수가.”


성남기 부회장이 경악성을 토해냈다.

장태준의 예견대로 정말 반도체 가격이 미친 듯이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회장님, 이러다가 정말 16메가 D램 가격이 30불 이하로 떨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박수천 전무의 말에 성남기가 고개를 돌려 한쪽 벽면에 표기된 설비 가동률을 확인했다.


[설비 가동률: 88.1%]


50여 일 만에 설비 가동률이 무려 10%나 떨어져 있었다.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메모리 반도체의 수요가 급감하고 있다는 신호로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성남기가 불안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가격이 얼마야?”

“...32불 정도입니다.”


지난달만 해도 55불 선에서 거래되던, D램 가격이 벌써 절반이나 떨어졌다.

이런 속도면, 30불이 아니라.

그 아래까지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이제는 언론에서도 매일 같이 쏟아내던,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이라는 말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자취를 감췄고, 그 대신 위기라는 단어가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그때,

기획실 소속 직원 하나가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달려들어 왔다.


“부회장님! NEC가 D램 메모리 가격을 28불로 인하한다고 합니다.”

“뭐야?”


성남기가 기함한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무래도 줄어든 수요 때문에 재고를 털어내려는 조치인 것 같습니다.”

“다른 곳들은?”

“도시바, 히타치제작소, 후지쓰 등 다른 곳들도 경쟁적으로 가격을 인하하려는 움직임입니다.”

“빌어먹을!”


작년까지만 해도 높은 엔화 환율 때문에 이런 식의 가격 인하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미국의 금리 인상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역플라자 합의까지 진행되는 바람에 너도나도 반도체 가격을 떨어트리고 있었다.

이번 기회를 틈타 시장을 다시 장악하겠다는 일본 반도체 기업들의 의도가 분명했다.


“이러다가 고객사들이 저희 제품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통보해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저희도...”

“가격을 내리자고?”


신경질적인 성남기의 반응에 기획실 직원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손실을 최소화하려면, 힘들어도 빠르게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알았으니까. 그만 나가봐!”

“...네.”


기획실 부장이 나가고 나자.

듣고 있던 박수천 전무가 다가왔다.


“아무래도 중국 측과의 일을 좀 더 빨리 진행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빨리고 나발이고, 당장 연락해서 오늘이라도 거래하자고 해.”

자신보다 더 급하게 움직이려는 성남기의 말에 박수천이 난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건 좀... 아직 자료들을 전부 빼내지 못했습니다.”

“자료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일단 약속부터 잡아!”

“네.”


본인이 직접 자료를 챙기겠다는 말에 박수천이 급히 중국 측과 약속을 잡았고,

그들은 자료만 주면 돈은 언제든지 줄 수 있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



같은 날 저녁.

대한전자 본사 정문 게이트.


대한전자의 임직원들은 오직 걸어서만 정문 게이트를 드나들 수 있었지만,

임원급 이상은 회사에서 제공한 차를 타고 게이트를 통과하는 게 가능했다.

물론, 정문을 지키는 보안 담당자가 차량 내부를 점검하긴 하지만,

요식 행위에 불과했기에 임원들이 약간의 위험만 감수하면, 회사 물품 정도는 어렵지 않게 빼돌릴 수 있었다.


반도체 관련 자료를 통째로 복사한 성남기가 하드 디스크가 담긴 가방을 시트 밑에 숨겨둔 채.

차를 타고 정문으로 향했다.


매번 통과하는 곳이지만,

이전과는 달리 오늘은 그의 심장이 상당히 '쿵쿵'대고 있었다.

어찌 안 그렇겠나, 혹시라도 자신이 반도체 기술을 빼돌리려 했다는 걸 들키기라도 하는 날에는 처벌도 처벌이지만, 그동안 자신이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저곳만 무사히 통과하면, 자신은 천문학적인 돈을 가지는 것은 물론이고, 더 이상 애송이인 회장 손자와 신경전을 벌일 일도 없을 것이다.


한 차례 크게 심호흡을 한 성남기가 정문 게이트를 향해 진입했다.


“잠시 확인 좀 하겠습니다.”

“그러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창문을 살짝 내린 채 보안 담당자에게 대답했다.

처음 보는 보안 담당자 같았지만, 형식적인 검문은 변함이 없을 거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보안 담당자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죄송하지만, 보안 기준이 강화되서. 잠시 차에서 내려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뭐?”


성남기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담당자를 쳐다봤지만, 그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차에서 내릴 것을 재차 강요했다.


“위에서 내려온 지시라. 예외는 없습니다. 수고스럽겠지만, 차에서 내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위라면, 장태준 그놈의 지시가 분명했다.

순간적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성남기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대로 게이트를 부수고 달아날까?’


슬쩍 앞을 보니, 보안 담당자 여러 명이 그의 차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허락 없이 통과하는 차는 몸을 던져서라도 막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평생을 회사 일만 해온 성남기에게 그런 자들을 뚫고 달아날 용기가 있을 리 만무했다.

계속해서 재촉하는 담당자의 말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시동을 끄고 주춤거리며, 차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다.

······



***



대한병원 VIP병동


“회장님, 성남기 부회장이 중국에 기술을 빼돌리려 한 정황을 발견했습니다.”

“그게 정말이야?”

“64메가와 128메가 D램 기술을 통째로 중국에 넘기려 한 것 같습니다.”

“이런... 버러지 같은 놈. 제 놈이 이제껏 누구 때문에 먹고 살았는데. 감히 나를 배신해?”


기술 유출이라는 말을 들은 장우진 회장의 안색이 급격히 나빠졌다.

최근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동으로 이동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잘 못 하다간 다시 중환자실로 가야 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상황이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김성재가 급히 지금까지 있었던 일에 대한 추가 설명을 덧붙였다.


“....그렇게 된 거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이제 건강을 회복하는 데만 집중하시면 됩니다. 회장님.”


태준의 활약을 모두 전해 들은 장우진 회장이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렸다.


“허허, 내 손주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그놈이 돈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맡질 않나?”


김성재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회장님이 늘 손자 자랑을 하길래 내심 너무 과한 게 아닌가 싶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저도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계열사 사장들이 전부 만류하는데도 태준이 그놈 혼자 반도체 가격이 폭락할 거고, 그에 관한 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단 거지?”

“정진택 사장조차 극렬하게 반대했었는데. 지금은 전부 태준군의 선견지명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으허허허허허. 그놈이 바로 내 손주네. 이 장우진이 손주 말이야.”


장우진 회장이 웃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김성재가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태준군이 사장단 회의에서 또 이상한 지시를 내렸습니다.”

“이상한 지시?"

“네.”

"그 녀석이 또 뭐라 했길래?”


장우진 회장이 기대 어린 표정으로 김성재를 쳐다봤다.

자신의 손주가 또 어떤 엉뚱한 말을 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태준군이 전 계열사에 투자를 최소화하고, 그룹 내 모든 유보금을 달러 자산으로 바꿔서 보유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투자를 최소화하고, 달러를 확보하라 했다고?”


지금 같은 급변하는 세계화 시대에서 기술 확보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고, 투자비를 아끼기 위해 기술 개발을 등한시했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기업들의 숫자는 손으로 꼽을 수조차 없었다.

장우진은 자기 손자가 이러한 사실을 모를 리 없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투자를 최소화하고,

달러를 확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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