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이 너무 어렵다
일반적인 환생, 회귀자는 아무리 어린 시절로 회귀했다 하더라도 빠르게 돈을 긁어 모으려고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복수를 위해서, 혹은 행복한 인생을 위해서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게 기본적인 이유였지만 그들이 그렇게 돈을 버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었다.
‘미래에 대한 정보를 다 알고 있으니 당연히 돈을 벌겠지.’
안 벌면 손해니까.
그런데 나한테는 그런 게 없었다.
‘기억이 안나.’
내가 고아원에서 살았다는 사실도 잊고 있었는데 어떻게 돈을 벌 방법을 기억한단 말인가.
‘그리고 기억하고 있다고 쳐도 써 먹기도 어렵지.’
내 나이가 고작 8살이다.
이 나잇대에 갑자기 어떤 주식을 산다느니 뭐라니 하면 무슨 말이 돌아오겠는가.
딱히 용돈을 받는 것도 없으니 투자하기도 쉽지 않고.
실제로 기획사에서 계약금으로 받은 돈은 원장님이 만들어주신 내 계좌안에서만 썪어갈뿐 주식 계좌 같은 건 만들지도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돈을 벌 필요가 딱히 없어.’
당장 주식으로 돈을 불리는 것 보다 미래의 내가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높으니까.
‘그런데 말이지.’
성공이 확실한 투자요소를 안 쓸 이유는 없단 말이죠.
“진짜 네가 사주는 거야?”
“물론이지.”
“내것도?”
크게 고개를 끄덕이니 두 소녀는 곧장 피자를 주문했다.
‘사람이 미래다 이말이야.’
아이돌로 성공할 확률 100%인 서아누나와 기타리스트로 성공할 확률 100%인 예슬이와 친해지는 게 미래를 위한 투자였다.
“그런데 돈은 어디서 난 거야?”
“노래 팔아서 받았지.”
“진짜 작곡가 됐어?”
노래에 대해서는 실장님과만 이야기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모르는 게 당연했다.
“어떤 분이랑 계약했는데?”
“그건 비밀.”
한예지 가수님이 내 노래를 낼 때 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았기에 다른 가수분에게 다른 노래를 드렸는데 이 경우는 바로 계약이 완료돼서 몇 개월 정도만 기다리면 노래가 나올 것 같았다.
“역시 천재는 다르다니까.”
돈을 번다는 말을 듣자 예슬이의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피자 나왔어요~”
조금 있으면 퇴근이라도 하는 걸까?
알바누나의 말투가 굉장히 사근사근했다.
“감사합니다.”
어린이 세 사람이니 피자 한 판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쪼오오오옥!”
일단 콜라부터 쭈욱 들이키는 서아 누나와 가장 큰 조각을 선점하는 예슬이.
나는 적당히 옆에 있는 조각을 골라 먹었다.
‘맛있군.’
하지만 돈까스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왜 부른 거야?”
오늘 약속은 서아 누나의 주최하에 이루어졌다.
방학이 되면서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완전히 쉴 수 있게 되었다는데 그 귀중한 날 하루를 우리에게 투자한 것이다.
“딱히 별 일 없어. 그냥 같이 놀자고 부른 거야.”
‘그럴 리가 없는데.’
독심술까지 쓰지 않아도 그녀는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어서 우리를 부른 게 분명했다.
‘알아서 알려주겠지.’
예슬이가 절반, 나머지 절반을 각각 먹어 치운 뒤 향한 곳은 노래방이었다.
‘이게 목적인가?’
자의식 과잉 아니게 순수하게 팩트로만 따져도 내 노래는 이걸 듣기 위해서 따로 약속을 잡을만한 정도였다.
“첫 곡은 누가 부를래?”
“하람이가 부르자”
“왜?”
“누나 말 안 들을거야?”
정말 아이 다운 무논리였지만 마땅히 막아 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나이로 따지고 드는 데 어떻게 막나.
“알았어.”
이제는 이세상의 노래도 많이 알고 있고 어느 정도로 감정 조절을 해야 하는 지도 잘 알고 있었다.
“이거 불러줘.”
서아 누나의 선곡은 저번에 보컬 트레이닝할 때 내가 불렀던 그 노래였다.
누나와 붙어서 깔끔하게 산산조각을 내어 버린 노래였는데 나름 감정을 담아서 부른 노래라 그런지 앵콜이 들어온 모양이다.
“알았엉.”
다만 이번엔 감정을 너무 담지 않게 조심했다.
“뭐야 왜 이렇게 불러? 더 잘 부를 수 있잖아.”
“감정 담아서 노래를 부르면 안 좋은 기억이 떠올라서.”
“언니는 왜 애를 울리고 그래!”
-짜악!
“아악! 잠만! 이거 진짜 아파!”
예슬이가 등 한 번 내리치자 그대로 넉다운이 되어 버린 우리 서아누나.
“너 손이 왜 이렇게 매워?”
“운동해서 그래.”
기고 만장해져 있는 예슬이에게 팩트 폭력을 날렸다.
“운동 배우는 사람이 일반인 때리는 거 아니야. 나는 때려도 되지만 서아 누나는 때리면 안돼.”
“하람이 일반인 아니야?”
예슬이가 갑자기 이상한 데에서 반문해 왔다.
“그게 아니라 나는 예슬이랑 친하잖아.”
“나랑 예슬이 안 친해?”
이번에는 서아 누나가 반문해 왔다.
“아니 때리는 거 막아 줘도 난리야.”
그렇게 우리는 한 시간 정도 노래방을 즐긴 뒤 밖으로 나왔다.
“혹시 너희들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어?”
‘이제야 본심을 드러내는 구만.’
“물론이지!”
나 대신 먼저 선 대답을 해 버린 예슬이.
“들어보고 판단할게.”
“우리 사이가 그것 밖에 안돼?”
두 사람의 시선이 매우 따가웠기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이거 봐봐.”
역시 부잣집 딸래미라 그런가, 서아 누나는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내민 화면에서 가장 처음 보인 글자는 바로 UCC였다.
‘이런 게 유행할 때도 있었지.’
그런 마음으로 자세히 읽어보니 주최지가 SH엔터테이먼트였다.
그러니까 지금 서아 누나가 소속되어 있고 나 또한 노래를 납품하는 그 업체 말이다.
자세히 읽어보니 학생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대회였는데 상위 입상자는 연습생으로 들어올 수도 있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직접 노래를 만들거나 안무를 만들면 가산점이 들어간데. 둘 다 직접 만들면 당연히 훨씬 더 가산점이 크겠지?”
“나가서 뭐가 좋은데?”
상금이 있긴 하지만 서아 누나한테 의미가 있을 정도는 아닐테고 연습생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도 의미가 없다.
이미 연습생이니까.
“울 엄마한테 자랑할 수 있어.”
“그래 자랑은 중요사항이긴하지.”
그런데 아는 누나 자랑한 번 시켜주려고 나가기에는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
‘이런 데 나갈 거면 진작에 데뷔를 했지.’
UCC라고 무시하면 안된다.
나중이면 모를까 현 시대에서는 아직 죽지 않은 퇴물이니까.
‘게다가 유튜브로 영상이 올라가긴 할테니까.’
영구 박제될 위험도 있다.
“나 혼자 춤을 출 수도 있지만 그러면 너무 횅해 보이잖아? 예슬이랑 나랑 춤을 추고 하람이 너는 카메라 맨 겸 안무 담당 겸, 작곡 겸 작사겸 편집을 해주면 돼.”
춤 빼고 다 추라는 뜻이었으나 오히려 좋았다.
‘내 얼굴 팔릴 일 없다는 뜻이잖아.’
“좋아 그 정도는 도와줄 수 있어. 대신 카메라는 누나가 사야한다?”
“카메라를 왜 사 스마트폰이 있는데.”
자기 폰을 흔들며 헤실 거리는 이서아씨, 확실히 UCC는 저화질 감성이 있기는 하다.
“예슬이는 어떻게 생각해?”
“나 춤 못추는데.”
“운동신경이 있으니까 금방 배울 거야.”
“나 노래도 잘 못부르는데.”
“노래는 나랑 하람이 듀엣으로 부를거니까 걱정하지 마.”
“난 언니처럼 예쁘지도 않은데.”
“무슨 소리니 예슬이 엄청 예쁜데.”
“이럴 거면 왜 물어 본거야?”
요즘따라 느끼는 건데 예슬이 말투가 점점 나를 닮아가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라더니.’
나는 어른의 말버릇과 근묵자흑의 상황을 모두 가지고 있었으니 특별히 말 조심을 더해야 할 지도 몰랐다.
“그래서 할 거야 말거야.”
“으으...”
“상금 다 예슬이 줄게.”
“좋아!”
예슬이 너도 속물이었구나.
“일단 어떤 노래를 원하는 지 말해봐.”
“그건 하람이 네가 알아서 해야지.”
“좋아. 그러면 장르는 트로트로 간다. 안무는 로봇 합체로 가도 되지?”
말을 꺼내자 마자 나를 째려보는 두 명의 소녀들
“그러니까 어떤 노래를 원하는 지 말해줘야 할 거 아니야.”
“너무 흔하진 않고...그렇다고 너무 티나지도 않고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곡!”
“그만큼 오글거리는 안무가 나올텐데 괜찮겠어?”
“문제 없지!”
“나는 문제가 있을 것 같은데.”
아까부터 그래왔듯 예슬이의 의사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
“좋아.”
사실 별로 안 좋았다.
‘한 번도 작곡해 본 적 없는 개념의 노래긴해.’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노래?
들어본 적이 없는 건 아니다.
대부분 지구에서 들은 거라 그렇지.
성인이 된 이후에 저런 계통의 노래를 부를 이유가 없으니 어린이일때만 부를 수 있는 노래인데 수많은 인생 중에서도 어릴 때 유복하게 부모님을 꼬실 수 있는 인생이 많이 없었어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노래였다.
‘새로운 도전이 되겠네.’
어지간한 노래는 다 마스터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아예 새로운 장르의 노래를 시험받게 됐으니 가슴이 두근두근 떨려왔다.
“누가봐도 아이돌이라는 느낌이 팍팍 나게 만들어줘.”
“알겠어.”
그날 저녁 실장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어 하람아 잠시시간 되니?
“물론이죠.”
-혹시 서아가 너한테 UCC같이 찍자고 안하든?
“네, 오늘 같이 만나서 노는 도중에 같이 만들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같이 만들기로 했어요.”
-잘 됐네.
잘 되었다는 것을 보니 회사 차원에서 막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이왕이면 곡 멋지게 뽑아줘. 네가 만드는 노래니까 아마 우승권에 들어갈 것 같은데 UCC로 만들어진 이미지가 나중에도 중요하게 작용할 지도 모르거든. 서아는 냉철하고 고고한 이미지니까. 부탁 좀 할게.
“누나는 귀엽고 예쁜 곡을 만들어 달라고 하던데요?”
-서아가?
“네.”
-데뷔한 이후에도 귀여운 컨셉 유지할 수 있으면 상관 없는데, 아마 안될텐데.
우리끼리 같이 있을 때는 상당히 밝은 서아 누나였지만 본판이 냉미녀 스타일이라 귀여운 컨셉과는 잘 안 어울리긴 했다.
-일단 서아한테 한 번 이야기해 볼게.
“넵.‘
그리고 잠시 뒤 서아 누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미션이 추가됐다. 예쁘고 귀엽고 아름답고 고고하고 도도한 노래여야 해. 만들 수 있지?
되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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