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한 깡패가 너무 유능하다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새글

와천아재
작품등록일 :
2024.08.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9.18 09:00
연재수 :
39 회
조회수 :
27,673
추천수 :
633
글자수 :
206,526

작성
24.08.20 09:00
조회
957
추천
16
글자
12쪽

10화 15,255 배(拜)

DUMMY

“정우야!”


사형스님이 내려주신 '정우'란 이름을 사형스님이 처음으로 불렀다.


“한 잠 자고 일어나서 부처님께 올렸던 큰절이 몇 번이나 되는지? 정확하게 한번 세어 보거라.”


정우는 사형스님의 권유로 운방사에 온 다음날부터 쉬지 않고 부처님께 큰절을 올렸다. 좋은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의지였다. 절을 올리고 나서는 '이정우'라는 자신 이름자를 백지에 반듯하게 써 내려갔다.


따라서 이름 숫자를 세어보면 큰절을 했던 숫자는 자동으로 알 수가 있었다. 그러나 아파서 다 죽어가는 마당에 해야 할 다음 일을 시키다니, 사형스님은 ‘인정머리 없는 땡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사형이라고 부르며 믿고 따르는 절간 스님들이 불쌍하기도 했다.


헌데, 신통하게도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소나기가 그친 후 파란 하늘처럼 땀도 마르고 몸도 날아갈 듯 가벼웠다. 언제 아팠냐는 듯 컨디션이 최고조였다.


사형스님 말대로 구석으로 밀쳐두었던 백지 묶음에서 '이정우'란 이름자가 몇 개나 되는지 세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이렇게 짧은 시간 컨디션이 달라질 수 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백지 위 ‘이정우’란 이름자가 어찌나 많은지 한 자, 한 자 일일이 세다가 노인처럼 중간에 숫자를 잃어 버렸다.


긴가민가 세었던 숫자가 확실치 않았다. 벌써 두 번째 세는 중이었다. 이 방법대로 하다가는 끝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꾀를 냈다. 연필을 가져 와서 이름 상단에 아라비아 숫자를 1부터 적어갔다. 신기하게도 숫자가 늘어날수록 몸이 가벼워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하자 약간 느리긴 했지만 단 한치 오차 없이 자신이 쓴 이름 숫자를 정확하게 셀 수가 있었다.


이정우!

마지막 숫자 15,255!


정우가 3일 동안 죽어라고 부처님께 올렸던 큰절 숫자는 '일만오천이백오십오' 배였다. 부처님께 올린 큰절 숫자를 세는 일 만도 반나절이나 걸렸다. 세상을 이렇게 우직하게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형스님이 해 보라고 권했던 ‘천 배’도 ‘만 배’도 훨씬 넘는 숫자였다. 집에서만 놀던 여덟 살 개구쟁이가 콧수건 달고 입학하듯 자신도 절에 머무를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은 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


다음날 아침,


보국스님이 민가(民家)로 탁발(托鉢)을 나갈 준비를 했다. 하루 종일 민가를 걸어야 한다며 신발을 가장 편한 것으로 골라 신었다.


얼핏 보기엔 수염이나 머리카락도 모근만 남아서 잡히지도 않는 두상을 깨끗하게 다시 면도 했다. 손바닥으로 몇 차례씩 다듬으며 어찌나 공을 들이는지 지루하도록 꽤나 긴 시간이 거렸다. 아침이면 보통 사람들이 세면(洗面)하는 두 배쯤 되는 시간이었다.


지난번 ‘용순’이한테 잔소리 듣던 날, 머리카락이 없는 스님 머리 손질은 간단하겠다고 우습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잘못된 생각이었다.


“스님! 날마다 머리를 그렇게 공들여 손질 하세요? 머리카락도 길지 않는데?”


“부처님을 모시는 정갈한 마음인 셈이지요. 민가를 다니다 보면 여러 사람들을 만나야만 하는데 부처님 심부름꾼이라 예의도 갖춰야 하고요.”


“부처님 심부름꾼이요?”


“그럼요. 대웅전이나 부처님은 주로 높은 산에만 있어서 민가를 한 집, 한 집을 찾아다니며 불경을 외고 좋은 말씀을 전해 드리는 것이니 마땅히 부처님 심부름꾼인 셈이지요.”


“그럼, 나무로 만든 목탁은 왜 치시는 거예요?”


“정우 처사는 땡 중 팔자도 아니라면서, 불교에 관심이 많은 것 같네요. 뭐라 할까요. 굳이 얘기하자면 노래하는데 반주로 나오는 여러 종류 악기 같은 거라고 해 두죠.”


“생각해보니 목소리가 좋은 스님이라도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불경만 한다면 조금은 지치고 외로울 텐데 반주를 하듯 중간 중간 목탁을 치면 불경 외는 것도 듣는 것도 한결 여유가 있을 것 같긴 하네요.”


“정우 처사는 부처님 말씀을 빨리 받아들이는 느낌입니다.”


“그런 것 같긴 해요. 보국스님하고 몇 말씀 나누었는데 벌써 생각이 바뀌었으니.”


“생각이 바뀌어요?”


“네. 스님과 말씀 나누기 전에는 탁발은 순전히 호구지책(糊口之策)으로만 생각하고 부처님 말씀을 설파(說破)한다는 더 중요한 의미는 깨닫지 못했거든요.”


“뭐, 따지고 보면 그 말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지요. 아무리 불심이 깊은 스님이라도 입에 풀칠은 해야 되니까. 그러나 본래 목적은 무거운 짐을 진 불쌍한 중생을 찾아다니며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것이고, 그 답례로 곡식이나 약간의 금품을 시주 받는 것 이지요.”


“보통 사람이 자신의 물건을 내주고 대가를 받는 것처럼, 처음부터 시주 받을 목적으로 탁발을 다니시는 게 아니네요. 저도 지금까지 가졌던 잘못된 생각을 바꿔야겠어요.”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는 스님들 절간 생활은 무척 단조로웠다. 매 끼 공양하는 것과 잠자는 것, 그리고 경전(經典)을 공부하는 것이 전부이다시피 했다.


출가(出家)할 때 바깥 것들과는 관심도 신경도 쓰지 말자고 생 이별을 약속했다. 심지어 부모나 형제도 없는 거와 같다고 생각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승려가 걷는 길은 고독해서 이해되지 않았다.


“그나저나 정우 처사 절간 생활이 벌써 일주일 남짓, 이제 서서히 답답할 때도 됐는데 바깥 세상은 궁금하지 않아요?”


“궁금하거나 그리운 것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요. 하루에도 몇 차례씩 뜨거운 것이 가슴에서 울컥 울컥 올라올 때도 있고.”


“애인이 감방에 있다고 하면 날마다 면회도 다니고 성심성의껏 ‘옥바라지’도 한다던데. 정우처사는 사귀는 여성도 없나 봐요?”


“저, 혼자 몸 살아가는 것도 암담한데 이성과 사귀는 건 사치죠.”


그러고 보니 감방에 가기 전 '구석'이라면 죽고 못 산다는 ‘장미’가 생각났다. 오야붕 식구들이 뒤를 봐주던 룸살롱에서 근무하던 여성이었는데 창피 하지도 않는지 ‘여대생’이라고 순진한 척 잘난 척을 했었다.


겨울철 눈이 내리면 쌓일 정도로 눈썹이 긴, 예쁘장한 여성이었고 깐에는 상당히 집요했었다. 늦은 오후시간 출근하면 이곳저곳 다니며 구석이만을 찾았다.


그 때 정우(구석이)는 하늘의 별이라도 따올 것처럼 시건방으로 똘똘 뭉쳐 싸돌아다니느라 이성엔 관심이 없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신이 최고인 줄만 알았다. 마음만 먹으면 여성은 한 트럭이라도 사귈 수 있다고 자신만만했다.


그런 탓에 진짜로 여대생인지, 장미란 이름 역시 본명인지 가게서 쓰는 예명인지 조차도 궁금하지 않았다.


장미는 사랑한다는 표시로 백화점에서 산 지갑이나 벨트, 넥타이를 선물이라건네며 몇 차례나 얼굴을 붉혔다. 심지어 어느 날은 속옷까지 선물, 자신은 오빠 때문에 2차 손님도 받지 않고 마음을 쓰는데 오빠는 너무한다고 입이 오리 주둥이처럼 나와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사랑하고 좋아한다고 매달렸으면서도 막상 감방에는 면회 한 번 오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화려한 것만 추구하고 입으로만 하는 풋사랑이었던 셈이었다.


“왜 그렇게만 생각해요? 가령 젓가락 한 짝은 아무 짝에 소용없지만, 두 개가 있으면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온전한 젓가락 역할을 하잖아요. 복이 와야만 웃는 것이 아니라 웃고 살아야만 복이 온답니다.”


“하하하 그래선지, 이치를 깨우쳐주는 보국스님이나 사형스님 말씀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껴요. 스님, 탁발 가시는데 저도 따라가면 안 될까요?”


“나무관세음보살! 비구니나 사형스님과 같이 탁발을 나가보긴 했지만 처사와 나란히 가는 것은 처음인데요. 마음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세요. 하루 종일 걸어야 하니 각오는 단단히 해야 하고.”


“감사합니다, 스님. 오늘은 ‘용순’이도 학교에 갔고 긴긴 하루를 어떻게 보내나 따분하던 참인데, 잘 되었습니다.”


***


얼마 후 배낭을 멘 보국스님 뒤를 따라 나섰다. 신발이라야 교도소에서 신고 나온 3년 전 구두였다. 고르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운방사 마당을 나오는데 강아지가 졸졸졸 따라 나왔다.


“쟤는 이름이 뭐예요?”


“누구도 지어주지 않았으니 ‘강아지’나 ‘벅구’지요 뭐.”


“보국스님은 사람한테는 한없이 자상하신데, 강아지한테는 별로 관심 없나 봐요. 아직껏 부르는 이름조차 없고?”


“아무렴, 강아지가 아무리 예쁘다고 사람과 같을 수 있나요. 그런 에너지가 있다면 불쌍한 중생을 도와야 하는 것이 최선이고.”


“허긴 그래요. 사람들이 동물을 예뻐하긴 하지만 사람과 동물은 엄연히 다르지요.”


“맞는 얘기예요. 인간은 자신들 밥그릇을 채우려고 종자가 다른 것들도 억지로 교배나 수정을 시켜서 품종을 개발하는데, 그건 부처님 말씀을 거역하는 일입니다.”


“허긴, 집에서 키우는 가축은 당연히 먹이를 챙기고 보살펴야 하겠지만 애완동물을 필요 이상 돈을 들여 품종을 개발하고 살피는 것은 중생을 도우라는 부처님 말씀을 외면하는 길이겠지요?”


***


마을로 이어진 산길을 얼마쯤 내려왔을까?

절간에서 멀어지자 돌아갈 것이 걱정되는 듯 강아지는 은근슬쩍 꽁무니를 뺐다. 지나온 길을 수 없이 되돌아보더니 어느새 돌아갔는지 눈에 띄지 않았다.

인간에게 생사여탈권을 맡긴, 말 못하는 강아지라도 움직이는 행동 반경은 나름 기준이 있는 셈이었다.


절에서 마을로 내려오는 길은 흙에 시멘트를 깔았다.

양 쪽을 번갈아 가며 밟는 다른 느낌이 발바닥에 전해졌다.


시멘트 길은 돌처럼 딱딱한데 흙 부분은 푹신푹신 느낌이 부드러웠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큰 돈을 들여서 흙 길을 시멘트로 깔았다. 그래야만 눈이 많이 내리거나 큰 비가 오는 장마철이라도 불편 없이 다닐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절간에서 삼십 분 정도 걸었을까? 남촌 방향으로 가는 농촌버스를 탔다.


“스님, 하루 종일 걸어야 한다면서 버스는 왜 타요?”


“하루 종일 걸어야 하는 것은 맞지요. 여기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쯤 가면 남촌리예요. 거리로는 육십리쯤 되고.”


“그럼, 거기서부터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탁발을 해 오는 거예요?”


보국스님은 대답을 하다 말고 명상을 하시는지 차창으로 먼 산을 응시했다. 보이는 것이라곤 농부가 일하는 넓은 들녘과 푸르른 산과 파란 하늘!


산과 하늘은 세상 어디라도 가장 높은 곳에 서로 맞닿아 있었다. 넓은 들녘과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 다닥다닥 이어진 시골 마을이 보였다.


산 자락에선 긴 고삐 달린 염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끼고 꼬리를 흔들어 댔다. 깡패 형님들과 시골로 출장 갔을 때 단 한순간 망설이지 않고 염소를 훔쳐 승용차에 태웠던 지난 일이 생각났다.


겁먹은 염소는 승용차 뒷좌석에서 산 머루 닮은 똥을 쌌었다. 어지럽게 빨리 달려가자 오줌까지 쌌다. 겁에 질린 눈동자를 가까이서 볼 수가 있었다.


이날 '정우(구석이)'는 염소를 마을 회관 전봇대에 묶어 두고, 형님들에겐 알레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거짓말을 했었다.


죽을 뻔한 염소를 돌려주고 오는 길, 파란 하늘은 반짝반짝 별이 빛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귀농한 깡패가 너무 유능하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제목 변경 안내입니다. 24.09.05 262 0 -
39 39화 주지스님! 계세요? NEW 7시간 전 90 6 12쪽
38 38화 도연스님과 연주 암 가는 길 24.09.17 144 7 12쪽
37 37화 VIP 룸 24.09.16 179 9 12쪽
36 36화 변호인 24.09.15 208 8 12쪽
35 35화 막 내린 오야붕 +2 24.09.14 220 10 12쪽
34 34화 이모님!!! 24.09.13 251 10 12쪽
33 33화 운명 24.09.12 269 11 12쪽
32 32화 약장수, 딴따라! 24.09.11 268 7 12쪽
31 31화 이정우 입니다! +2 24.09.10 302 11 12쪽
30 30화 칠순잔치 +1 24.09.09 347 10 12쪽
29 29화 정우와 사형스님은 부자(父子)? 24.09.08 341 13 11쪽
28 28화 단감, 매실나무 24.09.07 372 12 12쪽
27 27화 잡념(雜念) 24.09.06 425 11 12쪽
26 26화 인과응보(因果應報) 24.09.05 432 10 12쪽
25 25화 용순이 실종 +1 24.09.04 410 13 12쪽
24 24화 박수무당은 아니지? +2 24.09.03 410 11 11쪽
23 23화 동가 숙(宿), 서가 식(食) +1 24.09.02 466 17 12쪽
22 22화 운방사 백중 +1 24.09.01 527 15 12쪽
21 21화 지리산 백사 +2 24.08.31 545 19 12쪽
20 20화 지리산 연주암 +1 24.08.30 589 15 12쪽
19 19화 깡패 양아치 +2 24.08.29 610 13 12쪽
18 18화 스님과 재소자 +1 24.08.28 646 14 11쪽
17 17화 회장님 제안 거절 +1 24.08.27 653 17 12쪽
16 16화 원석(原石), 정우 +1 24.08.26 694 18 12쪽
15 15화 서울 나들이 +1 24.08.25 718 19 11쪽
14 14화 오야붕 닮은 회장님 +1 24.08.24 759 17 12쪽
13 13화 망나니 ‘용순’이 아빠 +2 24.08.23 794 20 12쪽
12 12화 별의별 사람들 +1 24.08.22 798 18 12쪽
11 11화 탁발(托鉢) +1 24.08.21 877 2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