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이병으로 각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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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한량이
작품등록일 :
2024.08.13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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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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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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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DUMMY

후루룩.


조용히 차를 마셨다.

너무 맛있어서 세 잔을 연달아 리필했다.


“차가 마음에 든 거 같아서 다행이군. 대접한 걸 잘 먹어주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지. 허허허허.”


지금까지 싸워왔던 이들하곤 다르다.

지능도 있고.

아니 사람보다 훨씬 높고.


호전적이지는 않고.


“물어보면 다 대답해준다는 거지?”


“그건 아니고. 할 수 있는 선에서는 말이지.”


후룩.


먼저 뭘 물어봐야 할까.


손가락을 탁탁 테이블에 두드렸다.


“디스트로이어. 너의 주인에 대해 알고 있는 거 알려줘.”


“나의 주인은 말이지. 사실 나도 잘 몰라. 그저 엄청 강하다는 거 정도? 나도 살던 세상이 주인에 의해 멸망 당했거든. 그 때 내가 끝까지 싸웠다고 하더라고. 엄청 잘 싸우던 모습을 보고 부하로 삼으면 괜찮다고 생각한 모양이지. 그래서 지금의 관계가 된 것이고 말이야.”


레이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저 제3자의 일을 이야기하는 느낌이다.


“전에 마그마를 다루는 녀석을 만났는 데, 알고 있는 거 있나.”


“아, 그 녀석을 만난건가. 어쩐지. 주인의 부하는 총 넷으로 구성되어 있네. 그 녀석도 하나고. 나도 그 중 한 명이고 말이야.”


미치겠다.

검은 용 자신도 강한데.

강한 부하도 넷이나 된다고?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지만.


“나 제일 궁금했던 건데. 내 재능은 어떻게 안거야?”


“그거야 말로 대답하기 쉽지. 자네도 알지 않는가. 너처럼 중이병 재능을 각성한 자는 항상 있었네. 그들은 항상 위기가 닥칠 때 각성하지. 금방 강해지기도 하고. 그러나 그 짧은 시간 동안 강해져봤자 얼마나 강해지겠나. 결국 그렇게 사라져가는 거지.”


그런 건가.

처음 봤던 선배가 이야기했던 것들이 이런 것이었군.


문제는 그런 강자도 이기지 못한 걸 내가 어떻게 해결하냐.


“하아···.”


레이는 차를 리필해줬다.


“너무 근심하지 말게나. 자네는 확실히 다른 존재니까 말이야. 아까 자네를 봤을 때 보인 마력을 보고 느꼈지. 너의 강함은 다른 이들과는 속도가 다르다고. 거기에 그 눈. 그 눈과 함께 또 다른 게 필요하네. 그걸 구한다면 자네는 더 한층 성장하겠지.”


정석은 자신의 손으로 눈을 만졌다.

별로 쓸 일도 없던 눈이지만.


그래도 돌파구가 보인다는 게 다행이다.


“또 궁금한 것이 있나?”


사실 던전이 왜 생기나.

왜 세상을 멸망시키나 그런 것들도 물어보고 싶지만.


느껴진다.


슬슬 싸워야할 거 같은 분위기를.


“마지막 한 가지만 더 물어보자.”


“물어보게.”


“디스트로이어는 신이 되어서 뭘 하고 싶은 거지?”


레이는 웃었다.


“허허. 벌써 거기까지 알게 된 건가. 그거야말로 나는 모르네. 나보다 더 오래된 고대의 존재의 목표를 어찌 알겠나. 무언가 복수를 원한다는 것 정도 밖엔 알 수 없었네. 애초에 우리 부하들도 그와 말을 많이 나눌 정도로 친한 것도 아니거든. 그럼 이제 시간이 됐으니 준비하게나.”


레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나는 다른 셋에 비하면 꽤 온화한 편이지. 그래서 이명도 말 그대로 ‘온화한 리치’라네. 허나 그의 종속이 되면서 제약이 생겼어. 적은 꼭 처리하라는 명이거든. 특히 그의 앞길을 막는 용사 같은 것들은 말이지. 미안하네.”


[용의 침식]


레이가 주문을 읊었다.

손에서 검붉고 기분 나쁜 마력이 피어오르고.


그 마력을 눈치 채고 피하기 전에 레이의 손이 먼저 정석의 머리에 닿았다.


털썩.


정석은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머리에 굵은 핏줄들이 피어오르고.


두쾅. 두쾅.


주변에도 들릴 정도로 심장 소리가 크게 들린다.


“꺅.”


“정석아!”


수영이 정석에게 다가가 힐을 하고.

제인이 검을 뽑아 리치를 상대한다.


공격이 닿지는 않지만.


“허허허. 그렇게 분노에 맡겨 검을 휘두르면 안 되지 않나.”


레이는 검은 한 손가락으로 막고.

반대 손가락으로 제인의 복부를 찔렀다.


쿠왕.


제인은 뒤로 날아갔다.


쿨럭.


커다란 바위에 부딪혀 피를 쏟아낸다.

허나 피를 슥 닦고 일어나 다시 덤빈다.


“아직도 분노에 맡기다니. 그럼 공격이 단조로워진다. 거기에 마력도 출력비가 나빠지지 않나.”


“시끄러!”


몇 번의 충격 때문일까.

제인은 정신을 차리고 평소대로 돌아왔다.


점점 공격이 좋아지기 시작하고.


“잘하는 군. 거기 광녀 친구. 그 저주는 어짜피 본인이 풀어야 하는 거니까 싸움에 가세하는 게 어떤가?”


수영이 힐을 하지만 효과가 없다는 건 눈치채고 있었다.

이건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을 넘은 저주다.


수영은 눈물을 멈추고 창을 쥐었다.


#


“으윽. 갑자기 뭐야. 뭔가가 머리에 닿은 건 알고 있었는 데.”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켰다.


아무것도 없는. 붉은 땅.

붉은 하늘.


“뭐냐, 진짜. 뒤진건 아닌 거 같은데.”


일어나 걸었다.

딱히 목적지가 있는 건 아니지만.


감이 이끄는 대로.


쾅. 쿠구궁.


걸어가다 진동이 느껴졌다.


엄청난 마력도 느껴진다.


그곳으로 달려갔다.


“잡아!”


“으악. 너무 강하잖아. 다른 놈들은 뭐하고 있어!”


“몇 명은 저 녀석 잡다가 죽었고, 몇 명은 고위 마법 준비한대. 우린 못 도망가게 막기만 하면 돼.”


“X발.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니까 문제지. 상대는 그 용이라고.”


거대한 검은 용. 그리고 그걸 저지하는 몇 인간.


말로는 힘들다고 하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검과 마법은 용을 저지하기 충분했다.


날개를 펼치면 날개를 공격하고.

몸을 일으키면 다리를 정확히 조준했다.


브레스를 날리려고 입을 열면 곧바로 입 안쪽을 찔렀다.


용의 공격은 죄다 피하면서.

인간들의 공격은 죄다 적중하니.


‘저 정도면 거의 괴롭힘 아닌가.’


그 정도로 인간들의 움직임은 장난 아니었다.


먼 발치에서 무언가에 홀린 듯이 그들의 움직임을 쳐다봤다.

눈에 통증이 느껴지는 것도 잊은 채.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흘렀을까.


또 다른 인간이 튀어나왔다.


“준비 됐대. 최대 화력 때려붓고 빠지래.”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놈과도 작별이구만.”


검을 든 인간들의 마력이 팽창한다.

검에서 엄청나게 크고 강대한 마력이 흘러나왔고.


그런 검 세 개가 용의 등을 내리쳤다.


“크아악.”


상처 투성이인 용은 그 공격을 뿌리치지 못하고 그대로 맞았다.

울부짖는 그 목소리는.


마치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듯 했다.


검기가 사라지고 그 뒤에 있던 인간 두 명이 마법을 사용했다.

커다란 불덩이와 얼음 덩어리가 직격했고.


용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와, 역시 이 정도로는 안 죽는 구나. 쨋든 미션은 달성했으니 튀자.”


피융. 팡!


인간이 하늘에 불꽃을 터트리고 피했다.


구구구궁.


시간이 지나고 하늘에서 커다란 운석 여러 개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운석들은 용이 있는 곳 한 쪽으로 몰렸고.


쾅!


터졌다.


신기하게도 그 충격이 정석에게 전해지진 않았지만.


‘환상인가?’


정석은 그저 쳐다만 보았다.

연기가 사라지고.


용은 죽어가면서도 특유의 붉은 눈을 번쩍였다.


그리고 정석을 바라봤다.


‘환상 아냐? 그런데 나를 본다고?’


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현실인지 환상인지 모르겠어서.


다 죽어가는 용이 하늘을 향해 입을 크게 열었다.


“빌어먹을 신 놈들. 언젠가 다시 돌아와 복수하리라.”


분명 인간의 말은 아니었지만.

그 용의 울부짖음이 전해졌다.


치지직.


노이즈가 낀 것처럼 주변 풍경이 바뀌고.


검은 공간.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는다.

자신이 걷고 있는 건지. 떠있는 건지.


“여긴 또 뭐야.”


일단 걸어본다.

걸어진다.


앞으로 나아간다.


어둠 속에서 붉고 커다란 눈동자가 보인다.


그 커다란 눈동자에 입에서 커다란 입이 벌어진다.

정석을 한 번에 삼켰다.


콱.


실제로 잡아먹힌 건 아니지만.

그 공포가.

엄습해온다.


“크윽.”


몸 속에 있는 무언가가 올라온다.


몸이 뜨거워지고, 눈이 터질 듯 아프다.


머리를 쥐어싸매고.

주저 앉았다.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모든 것을 다 죽이고 불태우라고.

앞을 막는 것을 집어삼키고.


복수하라고.


‘무엇에 대한 복수?’


뭘 복수하라는 거야.


아까 봤던 용의 기억이 조금 들어왔다.


‘그렇구나.’


아까 봤던 용이 디스트로이어였구나.

신들이 자신을 배신하고 공격했고.


‘힘을 잃고 다시 힘을 얻기 위해 그 지랄을 떤 거였구나.’


이해가 됐다.

이해는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잘 살고 있는 남의 세상을 멸망시켜?’


생각해보니까 화가 난다.


저 녀석 때문에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고생을 하고 있는 거니까.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분노.

분노가 머리 끝까지 차오르다.


마치 끓어서 소리 내는 주전자처럼.

점점 차분해진다.


‘그렇구나.’


이해했다.

이것이 분노.


이것이 디스트로이어의 힘의 원천이라는 것을.


힘이 점점 심장으로 들어간다.

원래 있던 마력과 합쳐진다.


소용돌이 치던 마력이.

차분하게 자리에 안착한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니 세상이 점점 무너져 내려간다.


“네 녀석. 어떻게···.”


“어떻게는 무슨. 기다려라. 내가 정신 차리게 해줄 테니까.”


두려움을 주던 붉은 눈동자는 사라졌다.

검은 공간도 사라져간다.


“으윽.”


두통이 몰려온다.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켰다.


콰광.


옆을 보니 둘이 싸우고 있는 게 보인다.

다들 상처투성이지만.

눈동자에는 두려움과 불안보단.


희망과 투지가 보였다.


“허허허. 이제야 좀 제대로 공격하는 구려. 이 몸은 매우 만족스러운 것이야.”


레이는 공격을 피하면서도 웃고 있다.


“오야? 정신을 차린 것인가? 대단하군, 대단해. 진짜 자네는 내가 봤던 그 누구보다도 대단하군.”


레이는 천천히 박수를 치며 정석에게 엄지를 척 올렸다.


리치에게 집중하던 제인과 수영도 그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깨어났구나.”


다들 안도의 한숨과 함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다들 고생이었구나. 이제 괜찮아.”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몸이 가볍다.


그 어느 때보다도.


그리고.


처음엔 두렵게 느껴졌던 레이의 마력이.

이젠 작게 보인다.


정석의 금빛 눈이 그를 응시한다.


레이는 잠시 멈춰섰다.

그의 눈빛에 담긴 자신의 주인과 같은 시선.


그 두려움에 잠시 정지한 것이다.


‘허허허. 벌써 저기까지 도달하다니. 도박이었지만 한 번 해보길 잘했군.’


정석은 천천히 레이에게 다가갔다.


“제약이다, 뭐다, 얘기했지만. 당신의 뜻은 이런 것이었군요.”


“허허허. 알아주다니 기쁘군.”


“바보가 아니라면 눈치 채죠. 고맙습니다. 당신의 소원. 제가 들어드리죠.”


순식간에 사라진 정석은 레이의 눈 앞에 나타났다.

두 눈동자가 레이의 눈을 바라본다.


“부탁하지.”


레이는 눈을 감았다.

마치 삶에 미련이 없는 듯한 미소를 짓는다.


‘말로는 삶에 대한 미련과 연구로 인해 리치가 되었다지만, 아마 느꼈겠지. 자신이 하는 일, 디스트로이어가 하는 일이 얼마나 잘못됐는 지.’


아마 그래서 준비한 것일 거다.

그를 막아줄 누군가를 찾기 위해.


자신의 모든 힘을 주어서라도.

자신이 하지 못한 일을 부탁하기 위해.


마력을 받아들일 때.

느껴졌다.


뒤에서 몰래 디스트로이어의 힘을 연구하고 정제했다는 사실을.

사람에게 최대한 부담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사도라지만 연구했다는 사실을.


‘고맙습니다.’


그런 그를 위해.

조용히 보내줄 거다.


레이의 머리를 왼손으로 잡았다.


주변의 환한 빛이 나타난다.


성 마법을 어떻게 사용할 지 감이 잡힌다.

마법의 원리는 거의 비슷하다.


단지 어떤 필터를 거치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거기에 중이병이란 무엇인가.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힘.


그렇기에 알 수 있다.


[엑소시즘]


파앙.


빛이 주변을 환하게 뻗어나간다.


레이의 미소는 그 어떤 때보다 환하게 웃었다.


그의 몸이 사라지고.


털썩.


정석은 자리에 쓰러졌다.

아무리 힘을 얻었다지만.


처음 사용하는 힘은 몸에 안 맞기 마련.


거기에 레이는 강하다.

그런 강자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마력을 써야한다.


지금까지 몸에 담아온 모든 마력을 사용했기에.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정석아.”


둘이 달려서 다가온다.

정석의 몸을 껴안고 눈물을 흘린다.


있는 힘을 다해 팔을 움직인다.

두 사람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쓰다듬는다.


자신을 믿어준 두 사람에게.

지켜준 두 사람에게.


그리고 승리한 자신들에게.

이 빛은 위로를 해주는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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