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가 사랑하는 괴물 천재 작가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새글

마스크퍼슨
작품등록일 :
2024.08.13 14:00
최근연재일 :
2024.09.18 19:00
연재수 :
44 회
조회수 :
447,360
추천수 :
10,104
글자수 :
253,125

작성
24.09.13 19:00
조회
7,061
추천
225
글자
12쪽

꺼내고 발굴하고 (4)

DUMMY

소속사 대표 이석형의 차 안.

조수석에 앉은 하정후는 긴장, 그 이상으로 심장이 조이는 듯했다.


‘도민준 작가님... 직접 볼 수 있다니.’


후... 떨리는 호흡을 뱉자, 이석형이 힐끗거렸다.


“괜찮은 거 맞지?”

“네. 괜찮아요.”

“오랜만이야. 정후 네가 내 차 타는 거. 그치?”


차창 밖으로 푸른 하늘과 맞닿은 회색 건물들이 고요히 스치는 것을 보며 하정후가 옅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네요. 대표님.”


<검은 손>을 보러 극장에 다녀온 이후, 밖을 돌아다니는 게 약간은 자연스러워졌다.

치유되었다기보단 두려움과 불안감을 잊었다.

이야기의 기능이 그것 아닌가.

현실의 고통을 완화시켜주는 것.

‘약’ 같은 것.


작품의 무궁한 힘을 느낀 순간이었다.


쭈뼛쭈뼛, 그가 사무실로 들어갔다.


“하정후 씨! 캬... 작품들 너무 잘 봤습니다.”

“귀한 배우님께서 와주시다니, 어떻게 이 감격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하하.”


최태인 대표, 차대성 피디와 차례로 반가운 인사를 나눈 뒤.


팬심을 가까스로 가라앉힌 후.

시선을 들어 그의 얼굴을 봤다.


“안녕하세요. 하정후 배우님.”


과장 섞어, 후광이 비치는 것 같다.

눈꺼풀을 연신 깜빡거렸다.


도민준에게 둘러진 신비스러운 아우라가 하정후를 휘감는 듯했다.

깊은 눈길은 누구든 꿰뚫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도민준 작가님... 배우 하정후입니다.”


다가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직접 보니 열망은 더 끓었다.

도민준 작가가 쓴 대사를 읽고 풀어내고 해소하고 싶다는 갈증이 피어올랐다.




하정후, 그는 16살에 데뷔했다.

첫 역할로는 주인공을 괴롭히는 일진 역할을 맡았었다.

본드를 마시고, 눈이 돌고, 그 누구보다 소름 돋게 연기하며 악역을 찍다가,

연기력을 인정받고 곧바로 주연급을 맡았다.

함께 출연한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씹어먹고 삼키는 그의 연기에 대중들은 열광했다.


연기는 그의 자아였다.


몰입을 할 때만큼은 숨통이 트였고, 행복했고, 재밌었다.

닥치는 대로 연기를 하면서 더욱 강렬하고, 특이하고, 정신이 이상한 캐릭터를 소화시켰다.

특히 미친놈, 또라이, 싸이코패스 연기를 잘한다는 호평이 있었고, 편승하듯 그런 역을 더 맡게 됐다.

매소드 연기라는 평은 받았지만, 높은 성적과 비례해 심적 타격이 심했다.


성질이 괴팍해지고, 예민해졌으며, 나쁜 생각도 차올랐다.

과일 깎는 과도만 봐도 들어서 피를 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그러니까 캐릭터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진짜 연기와 진짜 자아를 구분하지 못해버린 것.


언제부턴가 살아있다는 게 울렁거리고 메스껍고 숨이 막히더라.


내가 잘하는 연기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연기가 뭘까.

나한테 맞는 연기가 뭘까.


은둔하면서, 이 고민을 너무 늦게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간단한 인사를 담백하게 마친 도민준이 자리에 앉았다.

은은하고 상냥하고 천사처럼 미소를 짓더니...


“그럼 연기를 한번 볼 수 있을까요?”


이 공간을 휘어잡듯 연기를 부탁했다.


이석형 대표가 하정후를 쳐다본다.

괜찮겠냐는 듯.

동시에, 잘해줬으면 좋겠다는 듯.

묵히기 아까운 네 재능을 펼치라는 듯.


맞은 편 차대성 또한 숨을 가다듬고 기다렸다.

정말 탐나는 배우라고 생각하며 침을 삼켰다.


‘연기를 처음 했을 때가 생각나. 그땐 어떤 것이든 해보겠다며 간절했었지. 지금도, 그만큼 간절해.’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다.

하정후의 앞에는 도민준 작가가 있다.


“...잠시만요.”


후...


하정후의 컨디션을 우려스럽게 보던 이석형 대표가 슬쩍 나섰다.


“오늘은 저희가 준비보다도 얘기를 나누고 싶었기에, 연기는 다음에...”


그때 하정후가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응? 이석형이 눈썹을 까딱했다.


관객, 감독, 작가, 피디, 대표, 투자자, 선배 배우, 후배 배우...

지금껏 얼마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다양한 자리에서 연기를 선보여왔나.

억지로 한 연기가 아니다.

진심으로 재밌었기에 했던 것이었다.


신인 때는 회식 자리에서 원숭이 연기도 즉각 펼쳤었지.

갑자기 그 장면이 머리에 스치며 픽- 웃음이 나왔다.


얼마 전 외워두었던 자유연기 대사를 뱉기 시작했다.

설정은 극악무도한 싸이코패스.

가장 호평을 많이 받았던 연기의 톤을 펼쳤다.


“신지 병원. 개새끼야.”


첫 마디부터 사무실의 모두를 얼어붙게 만드는 목소리.


“내가 널 죽이려고 어디까지 갔는지 알아? 만삭인 네 아내가 있는 병원. 거기잖아. 막 분에 겨워 씩씩대면서 네 아내 이름을 외치는데, 어쩌냐, 이미 죽었다네? 아냐. 진짜로 이미 죽어있었다니까. 애 낳다가 갔대.


푸흡, 워워- 진정하고 들어봐.


그럼 여기서 질문. 그날 그곳에서 죽은 사람은 한 명일까, 두 명일까? 아니면... 한 명의 죽음이 두 명으로 불어났을까?”


자극적인 대사가 공기의 흐름을 확 바꿨다.

하정후의 안면은 서늘하고 차가웠으며 살벌했다.


“정답은... 킥킥. 세 번째. 살아있을 때도 너라는 남편 때문에 외로웠는데... 저승길에서도 외로워하면 안 되잖아. 왜 이래? 애랑 엄마랑 붙여준 건데... 나 칭찬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어후, 씨...”


순간 최태인이 공포스런 반응을 뱉어버렸다.


“여기까집니다.”


연기를 끝내니 순한 음색으로 돌아온 하정후가 눈을 아래로 떨궜다.


어후, 떨려.

가장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연기를 뱉었는데 반응이 어째 영...

싸하다...?


.

.

.


연기를 마치고 10초간의 정적.

소속사 대표마저도 입술을 꽉 다물고 있다.


너무나 뛰어난 연기였기에 그런 듯했다.


“사, 살벌한데요?”

“캬... 오랜만에 하정후 배우님 연기를 보다니. 영광입니다.”

“이런 말씀 드려도 되나요. 미쳤네요.”


잠깐의 대사로 공포를 조성하고 분위기의 흐름을 뒤집었다.


나도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연기력은 미쳤다고 할 수 있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

팔에 오돌토돌 소름이 돋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버거워 보이지?

무거운 옷을 입고 있는 것 같달까.


“흠...”


저런 어두운 역할보다는 다른 역을 추천해보고 싶었다.

지금 쓰던 것, 정의로운 주인공과 잘 맞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가방에서 <블루 아이즈>를 뽑아놓은 인쇄본을 꺼냈다.


그래, 역시 이 역할을 시켜보고 싶었어.

하정후 배우에게도 연기적인 변신이겠지.

이런 역할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으니까.

보편적인 감정선을 폭발시키는 것.


사람에게 맞는 옷이 있듯, 맞는 연기라는 게 있다.

내 생각에는 확신이 있었다.


“하정후 배우님, 자유연기를 해주셨네요. 잘 봤습니다. 혹시 여기 있는 대본으로 연기해주시겠어요?”


나는 대본을 건넸다.


하정후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받아들었다.


“34페이지 18씬 장우신 역 대사 한번 해보시겠어요? 상대역은 제가 맡겠습니다.”


한번 쭉 읽어보더니,

분위기를 캐치한 듯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입이 열렸다.


“우리가 체면도 없고, 가오도 없고, 돈도 없는데... 꿈까지 없겠냐? 세상을 정의롭게 하는 건... 네가 가지고 있는 그 진실이야. 그게 이 판을 뒤집을 거라고. 험한 척, 거친 척, 쎈 척 다 해라. 하고 싶은 대로 해. 대신 우리 줏대 하나만 지키자. 할 것만 하자. 엉?”

“네가 뭘 안다고. 나에 대해서...”

“알아... 나 다 안다고... 우리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까지 병원 들러서 틈틈이 말동무해주던 사람이 너라는 거... 어떻게 알았냐고? 너 눈에 다 써 있어.”


자유연기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조금 더 의자를 당겨 앉은 하정후가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 밑에도 해볼까요?”

“네네. 그래주시면 감사해요.”

“어...”


또 읽는다.

푹 빠져서.


“난 어디 있는지도, 뭘 하고 있는 지도 모를 사람보다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이 소중해. 네가 아무리 흙밭에서 구르고 상처가 나고 만신창이가 되어도... 날 찾아온다면... 그 불안, 내가 나눠 가질게.”


끄덕이던 도민준이 피드백했다.


“호흡을 조금 더 가다듬고 해보실까요. 좋았는데, 조금 더 차분하게. 속도가 약간 빠르네요.”

“네!”


하정후는 다시 눈빛을 갈아 끼웠다.


우리의 대화를 주변은 숨죽여 지켜봤다.


“눈 씻고 톡톡히 둘러봐. 너는 두 눈, 코, 팔, 다리 멀쩡하게 붙어있고, 큰 소리 내서 말할 수 있는 목청도 있고, 재수없지만 똑똑해. 이 새끼야. 너한테 감사할 거리가 얼마나 많은데 그걸 다 놓치고 사냐. 그래서 죽으면 아 – 별 볼 일 없던 인생 빨리 끝나서 다행이다... 할 거냐? 아깝지 않냐고. 네가 직시해야 할 건 저런 문제들이 아니라 너 자신이야.”


“나도 그렇지만, 너도 참 투명한 놈이야. 그러니까 세상 살기 편하냐? 난 존나 편하다!”


“웃어, 웃으며 살자고! 크하하하!”


.

.

.


최태인, 차대성, 이석형이 편안한 웃음을 냈다.


소름 돋는 연기만 잘하는 게 아니다.

정의감 빵빵한 대사들도 하정후에게 잘 어울렸다.

아니, 찰떡이었다.


“오랜만에 선한 역할 대사를 해봤네요. 하하, 도민준 작가님 덕분에...”


연기가 끝났다.


어떤 감정이 해소된 걸까,

위축되어 있던 그의 안면 근육이 티 나게 올라가며 한층 밝아졌다.


차대성은 속에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잔잔한 도민준의 말들이 하정후의 다른 연기적 매력을 들춰내고 발전시키고 있다는 것에 대해.


배우의 잠재력을 대본과 매치시키는 능력.

바로 하정후를 캐치하고 파악했다는 것인데...


‘어후, 주인공 맡으면 매력 제대로 뿜어내겠는데? 저 작가 능력은 대체 어디까지야?’


이 작품을 맡기 전까지 있던 회의감? 식은 열의? 작품에 대한 슬럼프?

다 필요 없다.

차대성과 최태인은 기쁨에 겨웠다.


이 자리에 보물들이 있다.




해산 후.


오늘 재밌는 드라마 한 편을 시청한 듯한 최태인 대표가 의자에 몸을 푸욱 기댔다.


“아... 차 피디님. 지금껏 숱한 미팅을 했지만... 오늘이 가장 강렬했네요. 후...”


노트북을 덮으며 정리하던 차대성이 동의했다.


“그쵸. 연기력으로 치면 하정후 씨는 그 나이대에서는 손에 꼽죠. 오늘 그걸 증명했구요.”

“도민준 작가님 보고 하정후가 붙다니. 그렇게 섭외하기 어렵고 까다롭고 섭외 거의 불가능이라고 판명 난 배우 하정후가...”

“요 며칠 피곤함이 싹 풀리는 것 같습니다.”

“나도 그래요. 지금 나온 대본도 워낙 재밌게 읽어서 요즘 힐링한단 말이죠. 가끔 내가 제작사 대표가 아니라 시청자가 된 것 같다고 생각해 버린다니까. 일을 해야 하는데 감상을 하고 싶어져요.”

“저도 그럽니다. 하하.”


편안해진 최태인이 마른 세수를 했다.


“이번 드라마, 역대급이 될 수도 있겠어.”


두 사람은 흐뭇하게 잠시 현실의 시간을 즐겼다.


모니터에는 <블루 아이즈>의 기획안이 틀어져 있었고, 내용은 이랬다.



<블루 아이즈>.

직역하면 파란 눈.


살인미수 용의자를 쫓다가 크게 다친 후, 사람들의 눈동자 색깔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 형사 장경한의 이야기.


초록색 눈동자는 ‘곧 죽을’ 인간.

파란색 눈동자는 ‘남을 살렸거나, 살리려고 애쓰는’ 인간.

보라색 눈동자는... ‘남을 해치며 이득을 얻으려는’ 인간.

그리고 빨간색 눈동자는... ‘살인을 했거나, 할 가능성이 있는’ 인간.


거리를 둘러보면 형형색색의 눈들이 보인다.


핏빛 기운을 내는 ‘빨간색’ 눈동자를 찾아야 한다.


.

.

.


한편, 극장을 뜨겁게 달군 <검은 손>이,

관객 수 천만 명을 돌파하고 있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7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톱스타가 사랑하는 괴물 천재 작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시간은 매일 저녁 7시 00분 입니다 24.08.26 9,437 0 -
44 기세를 몰아 (5) NEW +9 20시간 전 3,786 155 13쪽
43 기세를 몰아 (4) +17 24.09.17 5,353 181 14쪽
42 기세를 몰아 (3) +7 24.09.16 5,931 213 14쪽
41 기세를 몰아 (2) +5 24.09.15 6,415 211 12쪽
40 기세를 몰아 (1) +9 24.09.14 6,949 231 13쪽
» 꺼내고 발굴하고 (4) +7 24.09.13 7,062 225 12쪽
38 꺼내고 발굴하고 (3) +7 24.09.12 7,459 229 14쪽
37 꺼내고 발굴하고 (2) +9 24.09.11 7,829 221 12쪽
36 꺼내고 발굴하고 (1) +8 24.09.10 7,986 230 13쪽
35 강한 혜성 같은 작가 (2) +8 24.09.09 8,238 232 13쪽
34 강한 혜성 같은 작가 (1) +9 24.09.08 8,586 204 13쪽
33 콘티가 살아난다 (2) +7 24.09.07 8,531 207 12쪽
32 콘티가 살아난다 (1) +11 24.09.06 8,858 216 13쪽
31 박차를 가하다 (2) +8 24.09.05 9,125 225 12쪽
30 박차를 가하다 (1) +14 24.09.04 9,303 233 13쪽
29 신선함을 넘어서 (4) +10 24.09.03 9,545 226 11쪽
28 신선함을 넘어서 (3) +15 24.09.02 9,673 224 14쪽
27 신선함을 넘어서 (2) +4 24.09.01 10,007 237 13쪽
26 신선함을 넘어서 (1) +6 24.08.31 10,164 238 12쪽
25 좋은 선택지 (2) +12 24.08.30 10,074 247 13쪽
24 좋은 선택지 (1) +5 24.08.29 10,352 228 13쪽
23 기막힌 캐스팅 (3) +14 24.08.28 10,463 244 12쪽
22 기막힌 캐스팅 (2) +6 24.08.27 10,371 241 13쪽
21 기막힌 캐스팅 (1) +11 24.08.26 10,538 225 13쪽
20 장르물의 향연 (3) +9 24.08.25 10,464 223 13쪽
19 장르물의 향연 (2) +6 24.08.24 10,311 229 13쪽
18 장르물의 향연 (1) +8 24.08.23 10,513 215 12쪽
17 개척 (3) +7 24.08.22 10,805 225 13쪽
16 개척 (2) +9 24.08.21 10,847 223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