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가 사랑하는 괴물 천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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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퍼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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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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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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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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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티가 살아난다 (2)

DUMMY

“내가 꼭 잘 만들어서, 나중에 네 시나리오 값 갚을게.”

“영화제 상으로 갚아주면 좋겠는데.”


내 말에 피식 – 윤태준이 웃었다.


“해볼게. 보여준다.”


이대로 영영 꺼내지 못했을 법한 단편 습작을 건드려주는데, 교수까지 붙는다니.

위를 채운 피자보다 든든한 말이었다.


“일단 좀 먹어.”

“안 먹어도 배불러.”

“뻥 치지 말고.”




그 시나리오에는 ‘청춘’이라는 시기에 찬란하게 허우적대는 캐릭터들이 들어있다.

저마다의 기쁨과 슬픔을 주변과 나누며 성장한다.


그렇게 하나의 습작을 누군가에게 보냈다.

믿을만한 또 하나의 청춘에게.


윤태준이라면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특별히 그걸로 골랐단 말이지.


어떤 장면으로 승화될지, 기대된다.


좋은 곳에 보낸다고 생각하니 속이 후련하기도 하고 설레임이 솟아올랐다.



* * *



어쩌다가 내 시나리오로 촬영장이 2개나 열렸다.


하나는 윤태준의 단편.

하나는 임원태의 장편.


손이 빨라지면 몇 개도 더 열릴 수 있는 건가. 갑자기 촬영이 게임판 같단 생각을 했다.


오늘은 장편 <검은 손> 촬영 현장으로 향했다.


촬영 현장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고,

장면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관하며 또 다른 영감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


인적 없는 시장 거리, 형광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몇몇 늘어서 있었다.

보아하니 영화 통제팀 같다.

길을 제대로 찾은 게 맞나 보다.


빨간 경광봉을 든 젊은 남자 한 명이 나를 막았다.


“죄송합니다. 여기 촬영 중이라 저쪽 길 이용해주시겠어요?”


그러자 무전기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 이름 여쭤봐. 작가님일 수도 있어. 오늘 오신다고 그랬거든.


저 멀리 직선 길 끝에 있는 스탭이 내 쪽을 보고 하는 말 같았다.

그가 눈대중으로 나를 확인하는 듯했다.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내가 이름을 말했다.


“도민준입니다.”


남자가 전달하자, 다시 무전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어, 그럼 작가님이야. 들여보내!

“아. 작가님이세요? 안녕하세요.”


꾸벅, 남자가 예의 있게 고개를 숙였다.

나도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이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낮인데도 어둑한 분위기를 내는 낡은 거리는 범죄물의 분위기를 담기 충분했다.


“길 양옆에 잘 깨지는 소품들 있어요. 조심하세요.”

“그럼 45씬인가요?”

“오. 네네. 맞아요.”


45씬이라면, 좁은 길목을 마구 헤집으며 달리는 컷을 촬영할 것이다.

주의해서 발을 옮겼다.


주변을 유심히 살피면 스탭들 포지션이 보인다.


미술팀은 물감 통을 들고 벽면을 낡아 보이게 덧칠하고,

소품팀은 제작한 소품들을 확인하고 배치하며 미술팀과 협력하고,

촬영팀은 커다란 박스에서 카메라 렌즈를 꺼내 갈고,

제작팀은 배치된 차량을 정리한다.


이 중 스탭 하나가 나를 향해 소리쳤다.


“거기 누구세요? 그쪽으로 최대한 다니지 말라고 했잖아요!”

“작가님이야. 모니터실 안내해드려.”

“아? 작가님...? 제가 안내해드릴게요.”


소리치던 사람이 총총거리며 내게 달려왔고, 모니터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몰라봬서 죄송해요.”

“괜찮습니다.”


더 안쪽으로 깊이 들어가자, 제작팀이 빌린 듯한 작은 방이 나왔다.

방 안에는 큰 모니터가 있었다.


“작가님 오셨네요!”

“도민준 작가님!”


모니터 앞, <검은 손>의 배우들이 일어나 반겼다.

고윤재 역의 송석구, 신하진 역의 이준형이었다.

이준형의 얼굴에는 큰 흉터가 분장일지 모를 정도로 실감나게 박혀있었다.

이 흉터는 등장인물 신하진의 어둠을 표현하는 트레이드 마크였다.


두 사람은 내가 캐스팅 리스트에 담았던 배우들로 대본 리딩 때부터 몇 번 얼굴을 봤었다.

이미지 합은 가히 천상 조합이라 할 수 있었다.

다부진 인상과 달리 서글서글한 성격들이었다.


“안녕하셨어요. 배우님들.”


뒤이어 현장에서 회의를 하던 임원태가 불쑥 들어왔다.

그가 나를 보고 두 팔을 벌렸다.


“도민준 작가님! 얼굴 보니 힘이 나네요.”


그는 격하게 환영하듯 내 어깨를 턱 잡았다.

멋쩍게 웃음으로 화답했다.


박하향이 나는 껌을 씹고 있는 송석구 배우가 무쌍의 눈을 반틈 접으며 물었다.


“작가님도 껌 드실래요?”


그러자 옆에 이준형이 대신 대꾸했다.


“작가님 젤리 파야. 내가 소문 들었어.”

“아... 젤리는 나한테 없는데. 저기 간식 박스에 있나.”


무슨 젤리 좋아한다는 소문이 났나.


그때, 외부에서 들린 콜.


“리허설 갈게요!”


그 소리에 배우들이 임원태를 따라 천막을 나섰다.

나도 그 뒤를 따랐다.

모니터로 보는 것보다 현장의 연기를 생생하게 눈으로 담고 싶었다.


배우들이 잘 보이는 곳, 스탭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곳에 눈치껏 자리를 잡고,

조용히 숨을 죽였다.

직관할 준비를 마쳤다.


송석구, 이준형 두 사람의 표정이 모니터실 안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마스크의 선이 바뀌었다.

시나리오 속 고윤재와 신하진이 적절하게 스며든 것 같았다.


“리허설이니까 액션은 동선만 볼게요. 저기서 달려오고, 표시된 위치에서 대사 쳐주세요.”

“예!”

“예.”


두 배우가 힘있게 대답했다.


연출팀이 안내한 첫 시작 스팟으로 이동한 두 배우.

둘은 슬렁슬렁 달리면서 소품들을 치는 시늉을 하더니 카메라 가까이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는 감정을 잡으며 숨소리를 냈다.


고윤재 역 송석구가 거칠게 어깨를 잡아 세우며 대사를 쳤다.


“왜 날 보고 도망쳐? 너...”


신하진 역 이준형이 서서히 돌아보고...


“너 신하진 맞지.”


탁, 송선구의 손을 차갑게 뿌리치는 이준형.

볼을 가득 채운 흉터가 아프게 묻어있는 얼굴에 송선구의 눈빛이 흔들린다.


“그 이름은 오래전에 버렸어.”

“개소리하지 말고. 맞으면 맞다, 아니면 아니다 말을 하라고. 이 새끼야!”


눈을 부릅뜬 송석구의 감정이 고조된다.

다음은 이준형의 대사.


“내가 맞다고 하면 달라지는 건 뭔데. 넌 김 형사한테 연락해서 내 위치를 말하겠지. 난 발각될 거고 그 새끼들한테 죽임당할 거고.”


그 말에 당황할 줄 알았던 송석구가 시선을 떨구더니, 다시 들고 태연자약하게 묻는다.


“너도 전으로 돌아가고 싶잖아.”


그러자 이준형의 자존심이 동요하고.


“뭐라고?”

“사라진 이유도, 예전처럼 잘 살고 싶어서지. 솔직하게 말해.”

“네가 뭘 안다고...”

“내 선택에 네 목숨이 달렸다면 나도 가만히 못 있을 테니까.”


이준형의 모든 동작과 표정이 멈춘다.


컷의 마지막 대사.


송석구의 한마디가 이준형을 스르륵 무너뜨린다.


“어떻게든 살자, 같이. 우리가 그때로 돌아가진 못하더라도. 살긴 살자.”


잠시 정적.


임원태의 목소리가 좁은 시장길을 매웠다.


“리허설 컷이요. 좋았어요. 그대로 슛 갈게요.”


촬영장이 아니었다면 박수를 쳤을 거다.


대본 리딩 때보다 연기가 훨씬 자연스럽게 밀착됐다.

리허설이 끝나고는 송석구가 나를 보고 씨익 웃었다.

나도 좋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리고 두 사람은 촬영이 시작되는 지점에 다시 돌아가 섰다.


“저기서 조금 더 내가 밀칠게.”

“그럼 내가 고개 좀 더 돌리고.”

“오케이.”


합이 잘 맞는 두 사람을 주시했다.


내용은 음침하나,

진중함이 기저에 깔린 현장 분위기 속.


“자, 슛 들어갈게요.”


이제 본 촬영.

두 배우가 사력을 다해 달릴 차례.


“레디, 액션!”


확성기를 든 조감독이 비장하게 외쳤다.


쨍그랑 - !

와장창...


거친 추격.

그들의 발에 닿은 술병 모양 슈가글라스가 깨지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만들었던 콘티 그대로 실현되고 있다.

이후에는 저 병들의 인서트를 따겠지.

중간중간 인서트를 끼워서 컷을 연결하면 더 드라마틱 해질 거다.


“하아...”

“후우.....”


고윤재와 신하진이 한 자리에서 덜컥 멈추고.

예정된 대사를 뱉었다.


“하... 왜 날 보고 도망쳐? 너... 너 신하진 맞지.”


좋다.

소름이 온 팔을 훑었고, 쾌감을 느꼈다.

상상에서만 뛰놀던 글자가 현실이 되는 순간은 언제나 짜릿했다.


아, 이게 시나리오를 쓰는 묘미지.



* * *



대중들은 추측했다.

연세호가 <감시의 비밀>로 천상예술대상 감독상을 수상할 것이라고.

디팡과 좋은 손도 마찬가지로 추측했다.

도민준의 쓴 스토리가 수상까지 안겨줄 거라고.

이는 현실이 되었다.


수상을 하자마자 발 빠르게 관련 기사를 내는 기자들.

희소식을 불티나게 글자로 옮기던 중.


사방팔방으로 예술계 소식에 귀를 열고 있던 그들 사이에,

새로운 이슈가 돌았다.


이번에는 영화 쪽.

임원태랑 심종우가 활동한다는 소식이었다.


그 둘이라면 영화관을 살릴 가망성이 있지 않을까.

희망의 펌프질이라는 의견.

반대로, 실패를 일컫는 자극적인 기사가 나갈 수도 있겠다.

극장가의 패망이 확인될 것이라는 의견.

두 개가 맞붙었다.


그 중.

화영일보 내부에서도 영화 쪽 소식이 언급되었다.


“드라마야, 각광 받는 게 한둘이 아니라지만 영화가 문제네. 뭐가 됐든 관객 수가 관건이겠어. 다들 천만, 천만 기대하다가 안 되고 손익분기도 못 넘어... 이런 기사 써야 하나... 벌써 여러 가지 말이 많다고.”

“그쵸. 그게 쉽지 않아서 그렇죠.”

“임원태 감독은 범죄물 너무 많이 해서 질린다는 얘기도 있어. 새로운 시도면 좋을 텐데.”

“저는 심종우 감독 의외로 기대돼요. 실패한 영화가 없지 않나요. 다 상업적이고.”

“너무 상업적이기만 해서 개인적으로 난 늘 불호더라고.”


이견이 오갔다.


“편집장님. 맞다, 임원태 감독 작품 작가 정보 아세요?”

“제목이 <검은 손>이라고 했지? 누구래?”

“도민준 작가요.”

“도민준이라면... 이번에 연세호 감독이 수상했다고 난리 난 <감시의 비밀> 작가?”

“아시네요! 맞아요.”

“연세호 감독이 수상소감에서 작가 얘기했었잖아. 이름 기억해. 도민준.”


OTT의 판도를 뒤집은 드라마의 작가가...

이번에 하는 작품이 영화에 범죄물이라고?

그것도 임원태 감독이랑?

확 당기는 정보인데.


“연세호랑 작업하고 곧바로 임원태라... 거물들이 꼬이는 작가네?”

“그러게요. 그 작가, 장르 스펙트럼도 특이해요. 처음에 휴머니즘, 다음 SF, 다음 범죄물? 설마 이것까지 잘하려나? 싶기도 하고요. 참. 그리고 나이 의외로 어리대요. 20대라고 한 것 같아요.”


화영일보 편집장이 간간하게 입을 다셨다.


“20대에 데뷔해서 상업 메인으로 뛰는 작가는 손에 꼽는데... 살면서 몇 명 본 적도 없어.”

“저도 그래요. 신기하죠.”

“흠... 작가 스토리 살려서 인터뷰 가보는 게 어때? 섭외 넣어보자고. 어차피 예술인 인터뷰도 예정된 4명 하면 공석 아니야?”

“오! 좋은데요. 그렇게 할게요.”

“흠... 아마 젊은 나이에 이 바닥 들어왔으니, 연륜보다는 튀는 아이디어들이 작가 아이덴티티겠지. 그런 쪽으로 질문 넣어보면 되겠는데.”


핸드폰을 꺼내 메모를 하던 신하영이 고개를 기울였다.


연륜이 없다?

그런 느낌은 아니었는데.


“편집장님, 혹시 <올드 비즈니스>나 <감시의 비밀> 중에 보신 거 있으세요?”

“<감시의 비밀>은 대강 훑어봤어.”

“안 봤다는 말씀이시죠?”

“내가 봐야 할 작품들이 몇 개냐. 눈이 6개라도 모자라.”

“보시면... 깊이가 있다고 해야 할까요. 아이디어나 상상력도 뛰어난데, 대중성이랑 예술성 다 잡은... 그러니까 사기캐 느낌이에요. 제가 링크 보내드릴 테니까 댓글들 조금만 훑어보셔요.”

“사기캐?”


편집장이 뻣뻣한 목을 긁었다.


“너무 재밌다, 잘 썼다, 튀는 아이디어 이상이 있다... 이 말이지?”

“그쵸.”


두 사람은 눈을 마주쳤다.


“일단 컨택부터 해봐.”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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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강한 혜성 같은 작가 (1) +9 24.09.08 7,915 19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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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박차를 가하다 (1) +14 24.09.04 8,655 221 13쪽
29 신선함을 넘어서 (4) +10 24.09.03 8,903 215 11쪽
28 신선함을 넘어서 (3) +15 24.09.02 9,030 214 14쪽
27 신선함을 넘어서 (2) +4 24.09.01 9,378 227 13쪽
26 신선함을 넘어서 (1) +6 24.08.31 9,542 228 12쪽
25 좋은 선택지 (2) +12 24.08.30 9,462 237 13쪽
24 좋은 선택지 (1) +5 24.08.29 9,737 218 13쪽
23 기막힌 캐스팅 (3) +14 24.08.28 9,853 23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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