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괴물은 쉬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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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터치미
작품등록일 :
2024.08.13 20:39
최근연재일 :
2024.09.01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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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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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DUMMY

들고 있던 메이스를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손끝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서 있는 게 고작이었다.


그녀는 시선을 돌려 주위를 둘러봤다. 전투에서 살아남은 병사 10명 남짓. 젠장 시간을 너무 끌었다. 벌써 병사들의 코 앞까지 불길이 다가왔다. 탈출은 불가능하다.


"하아 젠장. 산 채로 타죽기는 싫은데 말이야."


아무리 둘러봐도 탈출할 만한 길은 보이지 않아. 여기까지인가 보네. 그래도 죽긴 싫은데.


그녀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천천히 걸어가 병사들의 근처에 슨 그녀는 전사와 병사들의 사이를 벌리며 말했다.


"어차피 사이좋게 뒤질 텐데 굳이 힘 뺄 필요 있어? 이제 그만해. 끝났어."


그 말에 녹스가 빠르게 주위를 둘러봤다. 검은 연기가 퀘퀘했다. 사방이 불길에 저 너머마저도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ㅇ···. 이게 무슨···."


녹스는 천천히 무기를 내려놨다. 그러자 주위의 병사들 또한 하나 둘 씩 무기를 내려놓았다. 그것을 본 전사들은 빠르게 뒤로 도망가 거리를 벌렸다.


"수고 많았다. 쓰래기들아."


차나는 자리에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후들거리는 다리가 더 이상 몸을 지탱하지 못했다. 눈꺼풀이 무거워 점점 눈이 감겼다.


"대장님!"


이를 본 녹스가 빠르게 달려가 차나의 상태를 살폈다. 피투성이의 몸에 수많은 상처와 흉터가 보였다. 흉부가 들썩거릴 때마다 몸이 뒤틀리는 게 보였다. 아마 숨 쉬는 것도 괴로울 것이다.


"정신 차리세요!"


녹스가 외쳤다. 그러곤 매고 있던 작은 가방을 뒤적거렸다. 하지만 쓸 만한 것은 나오지 않았다.


'젠장, 젠장. 뭔가 없나? 진짜 이대로 끝나는 거야?'


녹스는 차나의 옆에서 머리를 부여잡았다. 여러 가지의 미래를 상상해 보고, 여러 가지의 해결 방법을 떠올려봤지만.


끝이 쓰다.


모두가 살아가는 그런 동화책 같은 내용은 도저히 떠 오르지 않았다.


어느새 불길이 코 앞까지 다가왔다. 전사들과 병사들이 비명소리가 들렸다.


녹스 또한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꾹 참으며 대장의 옆을 지켰다. 그게 지금 녹스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녹스는 곧바로 옷을 벗어 근처로 다가오는 불길을 쳐냈다. 허나 불길은 점점 좁아지고, 전사와 병사는 점점 가까워진다.


코 앞까지 다가온 불길에 녹스는 잠시의 고민 끝에 차나를 엎었다. 그러곤 빠르게 뛰어 병사들과 합류했다.


그들은 서로 무기를 내려놓고 코 앞에 들이닥친 불길을 끄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크게 번진 불길은 점점 커져 와 숨통을 조여왔다. 온몸에 땀이 흘러 눈앞이 가려졌다. 검은 연기가 피어올라 숨 막힐 지경이었다. 그들은 어느새 서로 등을 맞대게 되었다.


"...녹스. 내려놔."


"싫습니다."


힘없이 들려있는 차나의 말에 녹스가 단호히 말했다. 그러자 차나가 툭 하고 녹스의 어깨를 쳤다. 아프지 않았다.


꿀꺽


녹스가 마른침을 삼키며 생각했다.


답이 나오지 않는다. 당장이라도 눈물을 터트리고 싶다. 온몸에 찌든 피로에 쉬고 싶다. 하지만 안된다. 나 같은 일개 병사라도 힘을 줘야 한다. 나라도. 나라도···.


···. 아니. 저기, 저게 뭐지?'


녹스는 눈을 껌뻑였다. 그건 녹스뿐만이 아니었다. 모두가 눈을 껌뻑이며 한 곳을 쳐다봤다.


"ㅂ···. 불이···!"


아지랑이처럼. 혹은 용오름처럼.


푸른색의 불길이 붉은색의 불길을 삼켜 덩치를 키웠다. 갑작스레 하늘에서 뚝 떨어진 푸른 불길이 순식간에 불길을 전부 삼켰다.


그 불길은 마치 무언가를 형상화한 듯 어떠한 거대한 형체가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압도적인 무언가가 느껴졌다. 온몸의 털이 쭈뼛 서고, 피가 얼어붙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아..."


숨을 내쉬자, 허연 잇김이 새어 나왔다. 이전까지는 땀이 날 정도로 더웠던 공간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순식간에 몸이 덜덜 떨려왔다. 땅바닥이 미끌거려 녹스가 바닥을 내려다봤다. 그러자 벌써 바닥이 딱딱히 얼어있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가는거지?'




'우리는 산 건가? 아니면, 더욱 확실하게 죽어가는 건가?'


라는 생각이 녹스의 머리를 가득 메웠다.


지금 저 앞에 있는 푸른 불길은 우리를 살려주려는 것인지. 아니면 더욱 확실하게 우리를 죽이려는 것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온몸을 떨며 차나를 엎고 있는 녹스. 그리고 힘겹게 업혀있는 차나는 감겨오는 눈으로 무언가를. 그들은 보고 말았다.


차라리 보지 않았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고, 두고두고 생각한 것을 보고 말았다.


불길을 빨아들이고 있는 푸른 비늘의 파충류. 그건 흡사 드래곤과 닮아있었다.


이를 본 녹스가 이전 들었던 이야기를 생각해냈다.


하늘을 불사르던 드래곤의 노여움에 세상에 갈라졌고. 브레켄을 포함한 선대의 모든 종족이 힘을 모아 그들을 서쪽의 땅까지 밀어붙이니.


드래곤의 큰 노여움을 산 종족들은 저주를 받았고. 그 저주의 내용은.


드래곤을 본 이는 무조건 죽을 것이며. 드래곤이 다시 하늘에 날아오를 때, 세상은 멸한다.



***



초원에 눕는다. 푸른 하늘이 보였고.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그곳에 나는 느긋이 누워 시간을 보낸다. 이따금씩 심심하면 책을 읽거나, 풍경을 감상하기도 했다.


누나가 다가와 나에게 따뜻한 차를 건넸다. 한 모금 마시니 속이 편안해졌다. 나는 차와 함께 그동안의 답답했던 마음도 함께 넘기며. 그동안의 갈증을 달랬다.


머리도 조금 시원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근데 좀 졸리다.


아무래도 바깥에 너무 오래 있었나 보다. 나는 누나에게 말했다.


"이제 슬슬 들어갈게요."


그러자 누나가 말했다.


"아니, 넌 여기에 있어. 누나가 다 해결해 줄게. 좀 자고 있어."


그와 함께 말을 덧붙였다.


"그동안 힘들었지?"


굉장히 상냥하면서도 따뜻한 어투···. 마치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확실히, 힘들었던 것 같기는 하다. 좀 쉴 때도 된 것 같다. 그래 그동안 얼마나 시달려왔는가. 조금은 쉴 때도 됐지.


나는 눈을 감았다. 그러자 따뜻한 기분이 몰려왔다.


따뜻하면서도, 조금 쌀쌀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뭘 하고 있었더라···. 아, 이거···.


"큰일 났네..."


차나가 말을 흘렸다. 그 말에 녹스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들은 눈을 흘겨 앞을 바라본다.


그들의 앞에는 푸른 비늘을 가진 전사가 몸 안에 푸른 불길을 가둔 체,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푸른 비늘들 사이에 일렁거리는 푸른 불길은 검고 매캐한 연기가 아닌 수증기 같은 허연 연기를 내뿜었다.


차나가 눈을 찡그려 그것의 형체를 살폈다.


'저거···. 그 애새끼잖아. 분명 내가···.'


상태가 불안정했다.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그것의 몸속 불길이 크게 일렁거렸다. 그럴 때마다 그것은 몸을 감싸안아 몸 안에 있는 불길을 가뒀다.


이따금 그것이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는 듯 보였다. 검은 눈덩이로 발견한 그건 붉은 지트의 머리였다.


그것은 빠르게 그것을 향해 뛰어갔다.


이윽고 제빨리 그것은 지트의 머리를 발로 뭉개버렸다.




그건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것은 즐겁다는 듯 미소 지었고. 이따금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를 흘렸다.


지트의 머리는 형체를 잃어갔다. 더 이상 눈으로는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뭉개지고 나서야, 그 존재는 발을 멈췄다.


바닥이 끈적거리는 피로 질퍽거렸다. 허나 질퍽거렸던 피가 순식간에 딱딱히 얼어붙었다. 다른 이의 피 또한 얼어붙는 느낌이다. 등골이 서늘하다 못해. 압도적인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것은 이쪽을 향해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ㅈ···. 저게 뭡니까···!"


떨리는 목소리로 녹스가 소리쳤다. 그의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그러자 등에 매달려있던 차나가 미약하게 말했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내가 해결할게. 슬슬 괜찮아졌어."


그러곤 조심스레 등에서 내려온 차나는 조심스레 심호흡하며 그 존재를 바라봤다. 순간 차나가 중심을 잃고 바닥에 넘어졌다. 급하게 녹스가 일으켜 세우려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차나는 그 손을 쳐내며 사납게 말했다.


"ㅈ···. 정신 차려 이 ㅆ···. 쓰레기 새꺄. 지금 남부터 신경 쓸 때야? 넌 영웅이 아니야."


죄악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는 생각한다.


'강하게 나가야해. 강하게... 안 그러면 저 녀석 금방 죽을거야.'


그리 말하는 차나의 표정은 어두웠다. 이전 같은 익살스러운 웃음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차나가 몸을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부들거리는 입가에서 서늘한 한기가 새어 나왔다.


그녀의 안색이 굉장히 창백했다. 그럼에도 두 발로 온전히 자신의 몸을 지탱한다. 그녀는 속으로 끈질기게 생각한다. 버텨야 한다.


"흡...! 후우..."


그래도 상태가 꽤나 괜찮았다. 확실히 '선택받은 몸' 이라 그런지 회복력이 굉장히 빨랐다.


그럼에도 아직 완전히 낫지 않았고. 지금 더욱 무리한다면 아마 회복이 힘들 정도로 몸이 망가질 수도 있다.


그래도 해야 한다. 나는 대장이니까. 몸을 불살라서라도. 내 대원들을 지킨다.


그녀는 흘깃하고 뒤를 바라봤다. 뒤에는 10명 남짓의 병사들이 두려운 눈빛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정말 죽도록 어두웠다. 그를 본 차나가 속으로 생각했다.


'내 뒤에는 무거운 게 너무 많아. 다 버려버리고 싶지만, 어쩌겠냐. 그걸 알면서도 들고 있는 건 난데.'


그렇게 생각하니 속이 시원했다.


그녀는 다시 한번 앞으로 발걸음을 내디딘다. 몸이 가라앉을 듯 무거웠고. 정신은 당장이라도 꺼질 듯 희미했다. 그럼에도 앞으로 한 걸음씩 걸어간다.


당장이라도 꺼질 듯이 희미한 불꽃. 하지만 절대 꺼지지 않는 전장의 작은 악마.


이시리스 에스테반 차나. 용사다.


작가의말

확실히 주인공이 너무 안 나오는 것 같기도 하네요 확실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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