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괴물은 쉬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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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터치미
작품등록일 :
2024.08.13 20:39
최근연재일 :
2024.09.01 12:15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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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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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DUMMY

검은 눈을 부라리며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던 브렌은 이윽고 자신이 뭘 하려 했는지 깨달았다.


그는 끼고 있던 팔 장을 풀며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 후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판단한 브렌은 빠르게 인간의 제국을 벗어났다.


숲으로 들어간 그는 주머니에서 나침반을 꺼내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브렌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브렌은 계속해서 나침반과 주변을 번갈아 쳐다보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 이유는.


'제길 길을 잘못 찾았잖아.'


나침반의 침이 브렌이 보던 방향에 반대편을 가르켰다. 브렌은 그럴 리 없다며 애꿎은 나침반을 손톱으로 툭툭 건드렸지만, 아쉽게도 나침반의 뜻은 굳건했다.


"또 잘못 온 거야?"


저벅거리는 소리와 함께 축 처진 브렌의 뒤에서 등장한 것은 그였다.


그는 지저분하게 자란 머리를 뒤로 묶으며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브렌을 봤다. 그러자 브렌이 나침반을 가리키며 '이거 고장 난 것 같아.'라 말했다.


그러나 그는 그 말을 들은 체 안 하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잘 들어. 제국에서는 내가 나왔다는 사실을 알면 안 돼. 설령 동생이라도 말이야."


그가 진지한 어투로 말하자 브렌 또한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 정신 차려. 우리는 이제 어리지 않아. 모든 걸 책임져야 한다고."


그리 말한 브렌은 자신의 몸을 살피곤 마저 말을 이었다.


"나도 예전 같지 않아. 발톱은 눈에 띌 정도로 무뎌졌고. 몸도 점점 무거워지는 것 같아. 그건 너도 그렇잖아."


그는 붕대로 감아놓은 물건을 만지작거렸다. 그 길이는 브렌과 비슷하거나 조금 작은 정도의 엄청난 길이였다.


그는 그것을 어깨에 들쳐매고는 나지막히 말했다.


"확실히. 예전이랑 다르게 슬슬 무겁네."


"아니, 그건 원래 무거운 게 맞아."


그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브렌의 표정은 저 물건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짐작하게 해줬다. 그 낌새를 알아차린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비유가 그렇다는 거지. 이건 예전에도 무거웠어."


그리 웃으며 그는 브렌과 서로 간의 대화 끝에 슬슬 걸음을 옮겼다.


오랜만에 만난 브렌은 껄껄거리며 자신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는 그 이야기에 적당히 반응해 주며 잠시 좋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 시간은 길지 않았고. 브렌이 자신의 마지막 이야기를 끝낸 다음 갑작스레 말을 멈췄다.


"왜 그래?"


그의 말에 브렌이 잠시 딱딱거렸다. 그건 브렌의 감정을 대신해 나타내는 행동이다. 이번의 딱딱거림은 아마, 불안함일 것이다.


"...아브렐슈드는 어떻게 됐지?"


브렌의 말에 그는 아무 말 없이 제국 쪽을 바라봤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좋은 뜻은 아닐 것이다. 그것을 알아차린 브렌은 나지막이 그에게 말을 건넸다.


"그건 아직도 못 찾았어?"


"···."


그건 이라는 말에 순간 그가 몸을 움찔거렸다.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사색으로 썩어가더니 이윽고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그러자 브렌이 그에게 다가가 등을 툭툭 쳐주며 말했다.


"아! 미안! 야야 괜찮냐?"


좋지 않은 생각이라도 난 듯 그는 옆에서 열심히 말을 거는 브렌을 보지 못한 채 계속해서 헛구역질을 뱉었다.


끈적한 흰 침이 주르륵거리며 떨어지고. 마치 내장이 쏟아질 것 같은 고통을 감내하며 시간을 보내자. 그는 애써 진정되었는지 근처 나무에 주저앉았다. 그러곤 혼이 나간 표정으로 브렌을 보며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내 동생이 어떻게든 할 거야."


그 말에 브렌이 화들짝 놀라며 그에게 따지듯 말했다.


"네 동생?! 그 핏덩이가?!"


소리가 너무 크다는 듯 그는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제야 소리를 줄인 브렌은 점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그 네 동생은 아직 어리기도 하고. 그걸 찾을 수는 있을까?"


"어리긴 하지만 그게 뭐 어때서. 그래도 성인이야. 무엇보다 이쪽 핏줄이기도 하고. 그리고 어리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건 아니야. 세상은, 어린 걸 봐주기에는 너무 매정하거든."


그 말에 브렌은 차마 다음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가족상의 문제이니 끼어들 구석도 없었고. 무엇보다 그의 고집을 꺾기에는 브렌의 언변 실력은 화려하지 못했다. 말이라도 잘했다면 다행이었겠지만. 아쉽게도 브렌은 그런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의 매정한 말에 브렌은 안타깝다는 뜻의 딱딱거림을 조용히 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 핏덩이가... 부르디아를...'



***



오랜만에 본 인간들은 꽤나 볼만 했다. 하나하나가 마치 잉어 같았다. 형형색색의 옷들을 입어 자신들을 치장한 채 물결을 따라 움직이는 물고기들. 인간들 또한 그리 보였다.


태산의 노란 눈동자가 인파들을 지나쳐 어느 한 곳을 바라봤다. 그곳은 특히 사람들이 모여 있던 곳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랜만에 본 인간 놈들의 마을은 전부 처음 보는 것투성이다.


'원래 인간들은 동굴에 불 지피고 살지 않았나? 아 그건 너무 옛날인가.'


근래에 자주 깜빡깜빡한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기억은 잘 까먹는 성격이기에 그런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렇게 잊어버린 기억들이 수두룩했던 것 같다.


길을 걷던 태산은 그만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거대한 다리가 그의 앞길을 막았기 때문이다.


두 눈으로는 그 사이즈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다리가 평범히 나 있었다. 특이점이라 한다면 아무도 그 다리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상함을 느낀 태산이 조심스레 다리를 향해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앞은 안 가시는 게 좋을 거예요."


누군가 태산에게 말을 걸었기 때문이다.


태산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뒤를 돌아보자, 그 뒤에는 한 남성이 서 있었다.


그다지 특색있게 생기진 않았다. 오히려 평범하다면 평범할 정도로 특색 없이 생긴 사내였다. 그가 풍기는 분위기는 평민 같기도 했고, 이따금 움직이는 것에서 품격이 느껴져 귀족 같기도 했다. 머리 또한 길지도 짧지도 않은 애매한 길이를 지녔으며. 몸 또한 적당히 운동해 균형 좋은 몸을 지녔다.


특별한 점이라고 해봐야 진한 연둣빛의 눈을 지녔다는 점이었다.


그 사내는 눈을 빛내며 태산을 바라봤다. 그러곤 손으로 뒤의 다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앞엔 바벨탑이 있거든요."


"···. 바벨탑?"


태산의 짧은 말에 그 사내가 목소리에 조금 힘을 줘 말했다.


"저희 엘리슈 제국에는 세상을 잇는 다리가 있거든요. 그리고 그곳에 이어진 이름 없는 신이 잠시 머물렀다 가는 곳이 저기고요."


도통 이해 안 되는 말투성이였기에 태산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 인간이 다가가면 어떻게 되는데?"


태산의 얼빠진 말에 사내가 잠시 고민하더니, 이윽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죽죠."


"아무리 강한 인간이라도?"


"지금 설마 신을 이기겠다고 한 거예요?"


"으흠... 그렇구만."


태산이 미적지근한 반응을 내자 그 사내가 뭔가 답답하다는 듯 태산에게 물었다.


"더 궁금한 거 없어요?"


그 말에 태산이 단호하게 말했다.


"응. 없어."


그러곤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곤 그 사내의 옆을 지나쳤다. 그때 뭔가 화한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약간 씁쓸한 향기. 진한 카카오의 향이 났다.


사내는 별것 아니겠지 라는 생각으로 근처에 작게 손짓하며 다리를 바라봤다.


다리의 끝에 거대한 탑이 있다. 그 탑은 하늘에 맞닿아 그 경계를 구분할 수 없었고. 그 사이즈는 도저히 인간이 만들었다고는 상상되지 않았다. 또한 주변에 여러 가지의 언어로 글귀가 적혀있었으나 사내의 눈에 잘 보이지 않았기에 뭐라 적혔는지 알아 볼 수 없었다.


사내는 그것을 보며 입에서 소리를 굴렸다.


"저게 안 보이나···."


그러고 보니 사내에게는 할 일이 있었다. 요즘 깜빡깜빡하는 일이 잦아졌다. 설마 벌써 늙은 것인가? 라는 생각에 사내는 급히 자신의 몸을 살폈다. 아직 앞자리가 2로 시작하는 풋풋한 나이였기에, 벌써 늙었다고 하는 것은 너무 빠르다 생각됐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사내는 잊었던 기억 중 하나가 떠올랐다. 그 일은 사내에게 있어서 무조건 해야하는 것이었다.


그건, 옆 제국 포트거스로 향해야했다.


사내는 느긋이 주머니를 뒤져 어떤 종이를 찾았다.


꼬깃꼬깃하게 접혀 축축히 젖은 종이를 발견한 남성은 순간 표정이 침울해졌다. 그러곤 본래 평평했을 종이를 애써 풀어해치며 그 속에 적혀있는 글귀를 읽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날이 점점 더워져 그런지 몇몇 잉크가 번져있었고. 이리저리 접힌 글자들은 도저히 알아볼 수 없었다.


'이게 뭐라 적힌걸까요...'


눈이 빠져라 종이를 훑어보자 단 하나. 탁하게 번진 잉크 사이로 보이는 단어가 있었다.


그건 그 사내를 꽁지 빠지게 달리게 하기 충분했다.


사내는 빨리 그 장소로 향해야했다. 그러지 않는다면 일을 시작하긴 커녕. 제국으로 도착하지도 못할 것이다.


단단한 벽돌의 질감을 느끼며, 당장이라도 바닥에 꺼질 듯한 기묘한 느낌을 받을 때. 사내는 겨우 그 장소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곳은 여러 말들이 묶여 있었다. 묶여있는 줄의 끝에는 말의 몇배는 되는 거대한 마차를 매고 힘겹게 서 있었다. 뚱뚱한 마부는 두툼한 턱살을 긁적이며 늘어지는 하품을 내뱉었다. 그 모습은 아직 마차가 출발하지 않았음에도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게 해줬다.


사내는 속에 드러찬 불안감에 차오른 숨을 내뱉고는 다시 들이마셨다. 그러곤 모든 게 귀찮다는 듯 멍 때리고 있는 마부에게 다가가 말했다.


"저... 포트거스행 마차가 맞나요?"


"티켓.'


마부는 사내에게 시선도 비추지 않은 체 덤덤히 말했다.


"아아. 여기요."


사내가 꼬깃한 종이를 건내자 마부는 사내의 손에서 빠르게 종이를 가져갔다.


마부는 눈가에 걸어놓은 안경을 올려 알아 볼 수 없는 내용을 살폈다. 도저히 인간의 언어 같아 보이진 않았으나. 마부는 그 글귀를 전부 알아봤는지 사내에게 단호히 일렀다.


"포트거스 행 맞소. 안 그래도 출발하기 직전이었는데 운이 좋소."


티켓을 근처에 있는 통에 넣으며 무심히 손짓하는 마부를 보며 사내는 마차에 몸을 실으려 걸어갔다.


그때 마부가 잠시 그를 불러세웠다.


사내는 무슨 일 있나 싶어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말했다.


"ㄴ...네? 무슨 일 있나요?"


사내의 불안한 목소리에 마부가 말했다.


"아니. 이름 말이오. 마기 맞소?"


"아...네?"


마기. 그건 사내의 이름이 아니었다. 정감가는 이름이긴 했으나, 그렇다 해서 사내가 태어나면서 부터 달고 살던 이름이 아니었다. 마부가 그에게 마기라 한 이유는 아마 잉크가 번져 글자가 뭉개졌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사내는 차마 아니라 할 순 없었다.


더 이상 시간을 끌 수도 없었을 뿐더러. 무엇보다 겨우 타게 된 마차를 놓칠 순 없었다.


사내는 들리지 않는 소리로 잠시 중얼거렸으나. 이내에 마음을 먹은 듯 마부를 뻔히 바라보며 당당히 말했다.


"네. 맞아요."


사내. 마기는 거짓말로 시작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거짓말은 항상 끝이 쓰다.


아무래도 힘든 여행이 될 것 같다.


작가의말

역시 바깥은 위험합니다. 에어컨 아래에서 글 쓰는게 가장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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