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괴물은 쉬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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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터치미
작품등록일 :
2024.08.13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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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1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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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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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DUMMY

나는 후회가 굉장히 많은 편이지만, 아침이 되면 항상 눈을 뜬다. 죽어야지 하며 후회하는 내가 아침마다 눈을 뜨고, 저녁에 눈을 감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후회하기 위해서.


눅눅한 바닥에서 일어나자, 천막이 걷히고 누군가 들어왔다.


"오딕스. 나와."


그는 부족장 지트였다. 붉은 피부에 거대한 체구를 가진 전사였다. 낮고 굵은 목소리엔 아무런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는 들고 있던 거대한 몽둥이를 어깨에 들쳐매며 마저 말을 이었다.


"정찰 나가."


여전히 그의 말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예···."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부스르르


그와 함께 푸른 무언가가 떨어졌다. 빛을 맞아 희미하게 빛나는 그것은. 옥처럼 아름다우면서도 우아하게 생긴 비늘.


내 몸에서 떨어져 나온 비늘이었다.


그걸 본 지트의 눈이 조금 구겨졌다. 그는 조용히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조용히. 정리한 뒤. 나와."


천막이 서서히 닫히자 빛이 사라졌다. 나는 흐르는 비늘과,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조금 늦게 나갔다.


바깥으로 나가자 비릿한 지대가 날 반겼다. 사방이 잿빛이었고. 이전 울창했던 나무는 기괴하게 뒤틀려있었다. 마치 인간을 꽃처럼 엮어 놓은 듯한 흉물들이 나무를 대신해 숲을 만들고 있었다.


'더 이상 예전의 부락이 아니야.'


"야. 오딕스."


생각을 채 마치기도 전에, 뒤에서 들려오는 말에 나는 빠르게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보인 것은 날카로운 발이었다.




"윽...!"


날 걷어찬 전사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피어올라 있었다. 푸른 피부를 가진 그는 나와 같은 전사였다.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그는 순수 혈통이었다는 거고. 나는 아니라는 거다.


그렇기에 이런 취급을 당해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아···. 미안."


"혼종. 느린 주제에."


다음 말을 잇기도 전에 그는 몇 차례나 나를 밟았다. 비늘인 곳은 맞아도 아프지 않았지만, 비늘이 까진 곳은 너무나 아팠다. 그럼에도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한 체, 시간이 지났다.


"오딕스. 잘 봐라."


그리 말하곤, 부대장 지트는 창을 쌔게 쥐어들었다. 그러곤 저 멀리 창을 내 던졌다. 내 눈에는 도저히 그 창을 쫓을 수 없었다. 그저 눈을 깜빡이니 어느새 그의 손에는 창이 없었고. 저 멀리 창이 꽂혀있을 뿐이었다.


"이제. 해봐라."


그는 나에게 창을 건넸다. 서늘하면서도 묵직했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게 느껴졌다.


창을 쥐곤. 최대한 세게 내 던졌다.


휘우욱


멀리 날아가지 못한 채 바로 앞에 꽂혀버렸다.


"아···. 아 그···."


얼버무리려 입을 뗐지만, 그는 아무 말 없이 내 앞에 꽂힌 창을 뽑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몸짓에는 나에 대한 실망감이 묻어나왔다.


역시···. 후회된다.


나는 왜 살아있는 걸까. 멀어져가는 지트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본래 이 숲은 아름다운 푸른 색으로 빛나고 바닥은 물이 차 있는 늪지였으며, 나무들로 울창한 숲이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우리 고대 양서류들은 이곳에 정착해 오랜 시간을 보내왔고. 그건 내가 태어날 때도 같았다.


그리고 내가 태어난 날. 모두가 후회하게 된다.


자세한 설명은 듣지 못했지만, 부족의 할멈 말로는 내가 태어나고 거대한 불길이 일궜다고 한다. 푸른색의 불길이 부락을 덮쳤고. 모든 게 타버렸다고 한다.


나무가 타올랐고. 바닥은 메말랐다. 그리고 전사들이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모두를 구해준 자가 바로 저 전사. 지트였다.


그 사건의 이후로 그의 피부는 푸른색에서 붉은색으로 물들었지만. 그러면 어떠하랴. 그는 영웅인 것을. 그리고 나는 모든 것을 태울 뻔한 악당. 심지어 정상적인 몸도 아닌 다른 종족과 섞인 혼종.

기괴한 비늘이 너덜너덜하게 달라붙어 있는 나는...


이따금씩 비늘이 벗겨져 허연 핑크빛의 맨살이 드러났다. 굉장한 수치다. 심지어 몸 또한 다른 전사들과 달리 굉장히 연약한 데다. 겁도 많아 전투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마치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하다.


나는 어째서 죽지 않은 거지?


멍을 때리다 보니 어느새 해가 져 있었다. 나는 다음번 근무자와 자리를 바꾼 뒤. 오늘도 할멈을 만나러 갔다.


"아이야. 넌 불이란다."


"그게 무슨 말인데요···?"


온갖 동물들의 살갗으로 엮은 거대한 모자를 눌러쓴 할멈. 스텅이 말했다.


"말 그대로란다. 넌 불이야. 그 누구도 너를 품을 수 없고. 너조차 너를 제대로 품지 못하잖니."


"어려운 얘기 말고 쉽게 해주면 안 돼요?"


할멈은 항상 어려운 얘기로 나를 더욱 어지럽게 만든다. 하지만, 이 부락에서 유일하게 나와 말이 잘 통하는 동족이었기에 매일 근무가 끝날 때마다 찾아오는 편이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구나."


할멈의 표정이 바꼈다. 스탕은 뒤편에 새워뒀던 낡은 스태프를 집어 들었다. 그러곤 그것으로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우리가 불을 품지 못하는 것은 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을 품으려면 거대한 그릇이 필요한 법이지. 언젠가 이걸 깨닫는 날이 올 거다."


"...할멈은 항상 말을 어렵게 해."


"그러면 이곳에 안 오면 되는 거 아니니?"


"그래도···."


"왜, 다른 아이들은 말을 이상하게 해서 그렇니?"


"맞아요! 항상 그렇다. 아니다. 맞다. 틀리다. 이런 식으로 말하니까.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다니까요?"


"하하. 하지만 그건 네가 특이한 거잖니. 네가 적응해야 하는 게야. 나도 그랬단다."


그렇게 말하는 할멈의 표정이 잠시 어두워졌다. 그러곤 천막의 바깥을 조용히 응시했다.


풀벌레 우는 소리가 미세히 들려오자. 할멈은 나지막이 말했다.


"내일 손님이 오겠구나. 정중히 맞이해주거라."


"제가요?"


"무조건 네가 가야 한단다."


"지트님보고 가시라 그래요... 제가 뭘..."


"어허! 내 말을 들어야지. 무조건 네가 가야 해! 다른 아이들은 안된단다."


말하는 할멈의 뜻은 아무리 봐도 진심이었다. 나를 상처 주려 하는 얘기가 아닌 진심. 그 진심이 나를 더욱 아프게 한다.


"알겠어요···."


나는 덜렁거리는 비늘을 만지작거리며 천막을 떠났다. 아무래도 밤이 깊을 듯하다.


여전히 후회 깊은 밤이다.



***



어두운 밤. 별 하나 없어 어둠이 드리운 끈적거리는 기운이 감도는 곳이었다. 여긴 말 그대로 소름 끼치는 장소다. 땅바닥은 잿가루처럼 흩날리는데 질척거리고, 나무들은 사람이 뒤틀린 모습 같았다. 그런 나무들을 볼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끼친다.


그건 일개 병사 녹스만이 그런 게 아니었다. 그의 주위엔 표정이 밝은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모두 죽으러 가는 사형수들처럼 표정이 죽도록 어두웠다. 단 한 사람. 예외가 있기는 했다.


"이 새끼들 왜 이렇게 죽상이야? 우리 죽으러 가는 거야?"


양 갈래로 땋은 푸른색의 머리에 왜소한 체구를 가진 그녀. 차나가 말했다.


그녀는 짧게 친 앞머리에 아이 같은 큰 눈과 입을 가졌지만. 창백할 정도로 허연 피부에 눈을 찡그리고 입을 크게 찢어 웃는 특유의 표정 때문인지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작은 악마를 보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근처에 자라있던 기괴하게 뒤틀린 나무에 손을 가져다 댔다. 차가우면서 서늘한 감촉이 느껴졌다. 소름 끼치는 느낌이다.


차나의 표정이 순간 구겨졌다. 왠지 불안한 느낌이 났다.


그녀는 나무에서 손을 때며 말했다.


"새끼들아. 일할 시간이다."


그러곤 근처에 있던 병사의 다리를 가볍게 걷어찼다.


일반 병사의 허리춤밖에 오지 않는 체격을 가진 그녀의 발차기에 병사가 순식간에 꼬꾸라져 넘어졌다.


꼴사나운 자세로 넘어진 병사를 보며 차나가 표정을 구기며 중얼거렸다.


"···. 다 쓸 데가 없네."


중얼거리곤 퉤하고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러곤 수많은 대원 앞에 선 그녀가 큰소리쳤다.


"쓰래기들아! 이거 다 상태가 왜 이래? 우리 죽으러 가는 거냐? 난 살고 싶거든? 죽을 거면 니네들끼리 죽어! 그리고 살고 싶은 새끼 있으면 내 말 잘 들어! 작전대로 하면 적어도 죽진 않을 거야! 내가 있으니까! 알겠냐, 쓰레기들아!"


그리 말하곤 주머니에서 껌을 꺼내 우물거렸다. 그녀의 표정은 답답 미묘한 감정을 담고 있었다.


'이 새끼들을 데리고 어떻게 살아서가지?'


"...후우."


속으로 생각을 끝마친 그녀는 입고 있는 갑주를 세게 두드리며 말했다.


"겁먹을 거 없어. 쓰래기들한테 내려지는 임무라 해봐야 어차피 청소야. 정보는 다 알고 있잖아? 이제 작전 데로만 하면 돼."


우물우물


껌은 단물이 다 빠져 맛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계속해서 껌을 씹어대며 대원들의 장비 점검을 끝냈다.


그녀의 표정은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그녀를 보며 병사들은 모두 비슷한 생각을 했다.


'우리···. 살아서 갈 수 있을지도?'


뒤편에서 걸어가던 녹스가 주머니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 적기 시작했다.


장비 점검이 끝난 우리들은 곧바로 발걸음을 뗐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발에서 사브락 거리며 사라지는 바닥의 질감에, 근처에서 계속 내려다보는 듯한 시선이 정신력을 깎아 먹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우리들의 앞에서 꿋꿋이 걸어가는 그녀를 보며, 우리들은 다시금 다짐을 끝냈다.


저벅저벅


걸음이 끝나자, 누가 뭐라 하지 않았음에도 우리들은 끝이 다가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섬뜩한 마경 속에 숨겨진 빛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눈으로 봐도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부락이 있다. 그들은 부락의 입구 근처에서 작전을 준비했다. 불나방의 가루를 횃불 끝에 비비니 순식간에 불이 일궜다. 그걸 나무로 된 바리게이트에 가져다 대며, 차나가 큰 소리로 말했다.


"새끼들아! 청소 시작이다!"


작가의말

순식간에 10화를 넘겼습니다. 여기까지 제 글을 봐주신 모든 분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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