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괴물은 쉬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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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터치미
작품등록일 :
2024.08.13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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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1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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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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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DUMMY

"뭐야, 아직 한 놈 남았어?"


차나의 말에도 스텅은 아무 말 없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지트의 머리를 바라봤다. 이윽고 스텅은 터벅터벅 걸어가 지트의 머리를 주웠다. 그러곤 초점 없이 허공을 보는 지트를 향하여 스텅이 나지막이 말했다.


"내가 많이 늦었구려."


그건 인간의 말이었다.


"뭐···. 뭐야?"


차나의 말이 허공에 흩어지자. 불이 피어올랐다.


말이 발화제가 된 듯, 허공에서부터 거대한 불길이 순식간에 일궜다. 차나는 그걸 피할 수 없었다.


뜨겁게 타오르면서도, 물질처럼 단단해 보이는 불탑의 앞에 선 스텅이 나지막이 말했다.


"어찌 너희 인간들은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느냐."


스텅은 눈을 부라리며 꾸짖듯 말했다. 그러곤 전장의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가며 크게 소리쳤다.


"인간! 지금 항복하면 살려는 주겠다! 만일 이에 승복하지 않는다면 전멸을 면치 못할 것이다!"


전장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져 가는 가운데. 스텅이 스태프를 높게 치켜들었다. 그러곤 뭐라 중얼거리자, 순식간에 스태프에서 마력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중급마법-기가스]


스텅은 곧바로 근처에 있던 병사 하나를 향해 스태프를 겨누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스태프가 번쩍거리며 푸른 마나구체가 날아갔다. 병사는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뭉개져 고깃덩어리가 되버렸다.


"항복! 항복하거라! 실로 전멸하고 싶은 게냐!"


그러면서 스텅은 속으로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인간들을 몰아낼 수 있지? 전사들을 더 돌격시켜야 하나? 여전사들까지···? 젠장 지트까지 죽어버렸으니···.'


허풍을 부렸지만. 사실 스텅 홀로 이 모든 인간을 죽이기란 불가능했다. 예전이라면 몰랐어도, 지금은 너무나 늙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되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 애를 위해서라도...


스텅은 다음 마법을 영창해 인간들에게 쏘아댔다. 제대로 된 갑주도 입지 못한 병사들은 마법을 견디지 못했다.


이는 아슬아슬한 줄다리기와 같았다. 한 치의 양보 없이. 지는 쪽은 전부 죽는다. 힘이 빠지는 쪽이 먼저 지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인간 쪽의 힘이 점점 빠지기 시작한다. 단 한 명의 마법사. 스텅에 의해서.


'젠장. 저 법사. 저 자식이 문제야.'


앞에 있던 전사를 겨우 쓰러뜨리며 숨을 헐떡이던 녹스가 생각했다. 그는 근처에 떨어지는 마법을 피해 구르며 주위 상황을 살폈다.


'남아있는 병사들은 고작 해봐야 10명 남짓···. 하지만 전사들 수도 얼마 남지 않았어.'


주위를 둘러보자 표정들이 좋지 않았다. 바로 옆에서는 전사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앞에서는 마법에 의해 사람이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린다.


녹스를 포함한 모두의 표정이 죽더록 어두웠다. 앞을 보고 있는 눈빛에서는 아무것도 비춰지지 않았고. 표정은 경악에 가까웠다. 그들은 전부, 죽음을 예감했다.


단 한 사람. 예외가 있기는 했다.


저벅


발소리.


위화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스텅이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그 인간 놈이 죽었는지 확인했던가?'


"따뜻하네. 하마터면 그대로 잠들 뻔했어."


스텅은 곧바로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보인 것은 몸을 풀며 천천히 걸어오는 차나였다. 만신창이인 몸으로 비틀비틀거리며 걸어오는 그녀의 표정에는 진한 살기가 드러차있었다.


"어떻게 살아있는 것이냐! 불길에 타버렸을 텐데!"


스텅이 큰 소리로 말했다. 목소리의 끝이 미세히 떨려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허나 차나에게는 잘 들리지 않았다. 그저 머릿속에서 미친 듯이 도파민을 생성해 기분이 찢어질 정도로 좋았다. 쾌락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녀는 의미불명의 쾌락에 몸을 흠칫 떨며 큰 소리로 외쳤다.


"내 몸은 특별해서 말이야. 마법은 통하지 않거든. 마력이 담긴 건 뭐든지! 하하하!"


차나는 입고 있던 철 부스럼 같은 갑옷을 벗으며 드러난 자신의 몸을 두드렸다. 옷과 갑옷은 녹아내렸으나, 그녀의 살갗은 자잘한 생채기와 흉터뿐. 그 외에 별다른 상처는 없었다.


"그 뻘건 놈이 대장인 줄 알았는데! 너구나? 네가 여기 대장이었어! 그러니까 너만 죽이면 된다는 거지?!"


그녀가 발을 절뚝거리며 천천히 스텅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자 스텅이 그녀를 향해 마법 몇발을 날렸지만, 그녀는 멀정했다.


한걸음.


한걸음.


점점 가까워지는 차나의 모습에 스텅이 스태프를 놓아버렸다.


스텅은 자신이 죽는다는 걸 직감했다. 작은 악마가 다가오고 있다. 아니. 거대한 악마가 자신을 집어삼키려 한다.


코 앞까지 다가서자 차나가 못 참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스텅을 향해 천천히 왼손을 뻗었다.




그 손은 스텅이 아닌 다른 이에게 닿았다.


차나의 손에 딱딱한 감촉이 느껴졌다.


"ㄱ···. 그만!"


드래곤과 같은 비늘을 가진 그것은 오딕스였다.



***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진 일이었다. 갑작스레 붉어진 바깥. 소란스러운 분위기. 천막을 걷고 나갔을 때는 이미 사방이 불바다였다. 뜨거운 열기가 온몸에 느껴져 몸이 말라갔다. 눈을 굴려 주위를 둘러보니 전사들과 인간들이 싸우고 있었다.


도대체 왜? 우리가 뭘 했다고?


산에서 내려간 적도, 인간을 덮친 적도, 돈과 보물을 가지지도 않았는데. 왜? 어째서?


그 후에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마치 본능처럼 도망가 근처 상자에 숨어있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본 모습은 지트가 급히 뛰쳐나가는 모습이었다. 그 사실에 조금 안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지트니까. 지트는 지지 않으니까.


'근데···. 죽어버렸지.'


상자의 조그만 틈 사이로 봐버리고 말았다. 인간놈이 지트의 머리를 들고 있는 모습을···.


근데···. 아주 살짝이지만, 속이 시원해졌다.


사실 전사들이 죽어갈 때. 막혀있던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사실 전사들이 죽어도 상관없었다. 오히려 다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사들이 부러웠다. 지트가 부러웠다. 부락에서 영웅으로 지켜 새워지는 게 부러웠다. 서로 사이좋고 친하게 지내는 게 부러웠다.


모두가 부러웠고. 모두가 싫었다.


그 느낌에 왠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더 싫어졌다.


고개를 푹 처박고 귀를 막았다. 이대로 웅크린 체 모든 게 지나가길 바란다. 나는 또 도망친다.


할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아마도 쭉, 웅크리고 있었을 것이다.


"뭐냐, 너?"


비늘 사이의 살갗이 따끔거릴 정도의 살기가 느껴졌다. 그 인간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어째서인지 절대 이길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 인간은 살벌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ㅇ···. 여기까지 하면 안 될까요? ㅈ···. 저희가 뭔 잘못을 했다고 그렇게까지 하는 거니...까!"


오딕스의 말에 인간은 허공을 보며 큰 소리로.


"하, 하하! 하하하! 이제는 미친 마물 새끼가 나한테 말을 거네?!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라며 웃는 그녀의 표정에는 아무런 감정도 실려있지 않았다. 그녀는 곧바로 표정을 굳히곤, 오딕스의 어깨를 부여잡은 체 그와 눈을 마주하며 차분히 말했다.


"잘 들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들에게 우리는 그저 단순한 장기 말에 불과해. 윗 대가리들이 두는 체스일 뿐이야. 그놈들은 어떻게 하면 킹이나 퀸을 잡을 수 있지? 라는 생각만 하지, 그 과정에서 죽어 나가는 폰이나 나이트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안 해. 우리는 폰이야."


그러곤 뒤쪽에 주저앉아있는 스텅을 눈길로 힐끗거리며 그녀는 마저 말을 이었다.


"저기 저 자식이 다른 애들은 신경 썼을 것 같아? 아니지, 아니야. 저놈은 어떻게 하면 나를 죽일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인간들을 전부 죽일 수 있을지만 생각하지, 그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애들을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는지는 생각하지도 않았을걸?"


"ㄱ···. 그게 무슨."


"자 뒤를 봐. 네 뒤에는 뭐가 있지?"


오딕스가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허망한 표정의 스텅이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저 늙은 노인내에 불과했다.


"우리라고 목숨을 버리고 싶은 줄 알아? 너네들도 죽기 싫듯이, 우리도 죽기 싫어. 왜 항상 우리는 침략하는 악인이 돼야 하지? 어째서 너네는 침략당하는 불쌍한 얘들이 되어야 하는 거지? 우리도 불쌍하지 않나?"


그리 말하던 그녀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고깃덩어리를 보며 말했다.


"빌 한스텐.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농가에서 감자를 캐던 애 이름이야. 나이는 17살 정도고. 오늘 죽었어. 그 애의 17년이 이 짧은 글로 끝나. 어때, 이제 실감이 나···?"


그녀는 마지막으로 어디를 보는지 모르겠는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내 인생도, 이 짧은 글로 끝나는 거야."


그녀가 메이스를 집어 들었다. 오딕스는 그녀를 바라보고는 아무 말 없이 응시했다. 어째서 우리들은, 저들은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걸까.


불길이 코 앞까지 다가와 온몸이 화끈거렸고. 치열했던 전장의 열기는 점점 식어가는 가운데. 오딕스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해냈다.


'모두가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인간은 밉다. 죽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전사들도 밉다. 죽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더 이상 누군가가 죽는 건 보기 싫다.


차나는 마지막 힘을 짜내 메이스를 들어올린다. 찰랑거리며 메이스의 체인이 흔들렸고. 오딕스는 얌전히 눈을 감았다.


뜨겁고 길었던 밤이 슬슬 밝으려 한다.


승자 없는 싸움의 끝이 쓰다.


작가의말

의미 없는 싸움은 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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