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괴물은 쉬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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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터치미
작품등록일 :
2024.08.13 20:39
최근연재일 :
2024.09.01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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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3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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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UMMY

하늘이 뜨겁게 타올라 붉게 물든 날. 나는 모든 걸 잃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 이전의 영광을 볼 수 없이 무너져 내린 성의 앞.


검붉은 하늘에서 낙뢰가 쏟아져 내렸다. 바닥에서부터 솟아오른 수많은 기형물 사이로 붉은 피가 흘러넘쳤다. 수많은 시체가 산처럼 쌓여나갔다.


그때 저 멀리, 소녀가 소음에 귀를 막았다.


어리디어린 소녀는 가냘픈 신음을 내뱉으며 성을 버리고 도망쳤다.


사방에서 폭발이 일궈오고, 불과 철의 노래가 끊임없이 들려올 때.


소녀는 붉은색의 눈빛을 빛내며 무언가 큰 다짐을 한 듯했다.


'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리라.'




***




나무들의 사이에 거대한 호수가 있다. 호수에는 3개의 탑이 얼비친다. 그 탑들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듯 대부분이 무너져 속을 훤히 드러내고 있다.


그럼에도 탑들은 저마다의 웅장함을 가지고 있었다. 이전 불과 얼음의 노래로 불리우던 것이었다.


허나 이젠 앙상히 뼈만 남아버린 채 버려진 곳.


불과 얼음의 노래로 불린 지 500여 년은 더욱 지나버린 곳이었다.


한참이나 인간의 흔적이 닿지 않아 차갑게 식어버린 장엄한 공간.


그리고 그 3개의 탑 가운데.


그곳에 누군가 살고 있다.


초라하기 그지없는 천막이었다.


꾸며진 것 없이 자그마한 천막 하나만이 존재했고, 천막의 근처에는 생활의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모닥불을 지핀 지 꽤 되었는지 검은색과 흰색의 재가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저 멀리 바람이 불어오자, 나뭇잎이 얼마 없는 나무들은 바람을 막지 못했다. 매달려 있던 나뭇잎이 떨어져 내렸다.


그 나뭇잎은 춤을 추듯 횡을 그리며 서서히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전까지는 흰색의 눈이 소복이 쌓여있던 바닥이 이제는 황토색의 흙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었다.


저번 주에 쌓인 눈이 전부 녹은 것을 보니 슬슬 봄이 올 시간 같았다.


이윽고 천막이 열리고, 그 안에서 나온 것은 어린 소녀였다.


고작 13살 남짓의 어린아이였다.


그 소녀는 불어오는 칼바람을 정통으로 맞으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소녀는 시선을 아래로 옮겨 차갑게 식어버린 모닥불을 바라봤다.


'···. 지금 불을 지펴봤자, 다시 사그라들겠지.'


무엇보다 아직 몽롱한 느낌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일어나기엔 이른 시간이다.


하지만 슬슬 움직이지 않으면 나중에 더 힘들 수도 있다.


소녀는 몽롱함을 떨쳐내기 위해 세수를 하기로 했다.


호수까지 터벅터벅 걸어가 차가운 호숫물로 얼굴을 적시며 자신의 얼굴을 확인했다.


덥수룩하게 자란 흰색의 더벅머리가 눈을 가리고 있다.


오랫동안 자르지 않았기에 길게 자라 슬슬 땅바닥에 끌릴 지경이었다.


이리저리 까진 흉터가 남아있는 몸뚱아리에 누더기와 같은 너덜너덜한 옷을 걸치고 있다.


이전의 모습이 뭐였는지 가늠조차 잘 될 정도로 해지고 낡은 옷이었다.


그 옷의 아래에 갈비뼈가 비칠 정도로 얇고 허약한 몸이 보였다.


숲에 들어온 이후로 잘 챙겨 먹지 못했기에 몸이 가면 갈수록 점점 얇상해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영양실조로 죽어버리리라.


그리고 그 무엇보다 강렬한 진노랑의 눈동자. 동공이 마치 염소의 눈처럼 길게 찢어져 있다.


저주받은 눈이다.


끔찍한 흉물의 것이다.


당장이라도 뜯어버리고 싶다.


소녀는 천천히 손을 눈 쪽으로 가져다 댔다.


“우욱...!”


눈을 볼 때마다 무언가가 떠올라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깜짝 놀란 소녀는 호수에서부터 떨어졌다. 그러자 호수에 비친 3개의 탑이 마치 소녀를 노려보듯 비춰 보였다.


“ㅈ···. 죄송합니다.”


누구에게 사과하는지 모르겠지만, 소녀는 연신 사과했다.


피해망상으로 썩어 문드러진 소녀였다.


더러운 자신의 몸 만큼이나 더러워진 머리가 소녀를 연신 괴롭혔다.


아무런 자극을 받지 않았음에도 머릿속에서 과한 해석을 술술 내뱉게 돼버린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몸을 구부리고, 팔로 얼굴을 가리며 연신 사과를 내뱉는다.


그때 목 쪽에서 찰랑거리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검과 같은 모양의 로사리오였다.


마치 십자가를 뒤집어 놓은 듯한 생김새였다.


소녀는 그것을 양손으로 꽉 부여잡으며 뭐라 중얼거렸다.


허나 그 중얼거림은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 후로 얼마나 땅바닥에 누워있었을까.


소녀는 몸을 일으켰다.


텅 비듯 공허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모닥불을 지피기에 쓸만한 땔감은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꽤나 멀리까지 나가야 할 것이다.


소녀는 짧게 생각했다.


'...괜찮도다. 더 이상 심각해질 일도 없도다.'




***




죽음이 늘 근처에 도사린다.


소녀는 짧게 생각했다.


그리 생각하는 대에는 이유가 있다.


자신 때문에 부모가 죽었다.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죽은 게 확실하리라.


또한 주변의 모든 것들이 죽었다.


부모를 포함한 모든 것들···. 나의 친구들, 동료들···. 트라우마처럼 좋지 않은 기억들이 자꾸만 나를 괴롭힌다.


차라리 안 좋은 기억이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생각난다면 얼마나 좋으리.


항상 애매한 곳에서 끊기니 미칠 지경이다.


생각을 마치니 소녀는 어느새 거대한 공터에 도착했다.


무릎까지 자란 긴 풀들이 스쳐 지나가고, 하늘보다 높게 자라올란 나무들이 듬성듬성 보였다.


이따금 멀리 보이는 나무만 한 체구에 코끼리와 닮은 록소돈타들이 짝을 지어 걸어 다녔다. 초식동물이기에 위협은 안 될 것 같았다.


털썩하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눈을 감는다.


소녀는 늘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다.


초원에 앉아 시원쌀쌀한 바람을 느끼며 찝찝한 기분을 달랜다.


그럴 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을 받고는 한다.


저벅


뒷가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철의 마찰음이 들렸다.


소녀는 눈을 게슴츠레 떠 뒤를 바라봤다.


거대한 나무의 그림자에 한 존재가 서 있다.


2m 정도의 키를 가진 그것은 그림자에서 소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낡고 해진 풀 플레이트 아머를 입은 체 퍼렇게 서린 칼날을 쥐고 있다.


그것의 서 있는 자세가 삐딱했다.


갑옷의 이음 세에서 너덜너덜한 살 조각이 흘러나왔다.


그것이 풍기는 분위기, 마나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죽음이 다시 날 찾아왔구나.'


죽음은 늘 근처에 있다.


그림자에 숨어 항상 나의 목숨을 노린다.


허나 나의 목을 가져가지 않는다.


그저 계속, 저 그림자에 숨어 항상 나를 노려보기만할 뿐.


그 이상의 무언가는 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미칠 지경이다.


'차라리 죽고싶구나. 더 살아 뭐하랴.'


저것은 분명 나를 죽이러 온 것이 분명하다.


허나 나를 왜 죽이지 않고 지켜보기만 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마치며 소녀는 그대로 드리누웠다.


코가 근질거리는 풀내음이 얼굴을 스치며 지나갔다.


이따금 풀 벌래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니 눈이 서서히 감기는 느낌이 들었다.


소녀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오늘도 살아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매워갈 때 소녀는 잠에 빠졌다.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거대한 그림자를 뒤로한 체 말이다.



***



'제기랄.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검은 깃털단 단장. 아슈발트가 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다. 뒤에는 사색으로 퍼렇게 질린 표정을 한 서너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굉장히 지쳐 보였다.


'우리들은 분명 초입부에 들어온 게 아니었나?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그는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지며, 기억을 곱씹듯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정리하였다.


우리 검은 깃털단은 국왕의 명이란 말로 이곳 '안개의 벽'에 도달했다.


안개의 벽.


공간 자체가 외부와는 단절된 신비한 구역.


푸른 초원과 빽빽한 숲으로 가득 찬 생태계.


공간 자체가 던전인 곳.


그리고, 인간이 공략해 내지 못한 던전 중 하나···. 하지만 안개의 벽은 초반부까지는 굉장히 안전한 공간이라 들었다.


이곳은 말 그대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는 던전이기에.


안개의 벽 초입부에 사는 마물들은 그다지 쌘 놈들이 아니다.


기껏 해봐야 나무에 달린 풀이나 뜯어 먹는 록소돈타들이 전부였는데···.


속으로 생각을 이어가던 중 팔을 심하게 다쳐 피를 흘리던 대원이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대로 계속 안으로 들어갈 겁니까? 미치신 거예요?!"


그는 참다 참다 이내 폭발한 듯 울분을 터트렸다.


그의 말에 다른 대원들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푹 숙이며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아슈발트는 그의 말에 대꾸하지 못한 채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생각했다.


'그래 내 잘못이 맞다. 왜냐면 나는, 20명을 사지로 내몬 무능한 지휘관이기 때문이다.'


우리 대원들은 들어가기 전에는 분명 24명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게 뭔가? 고작 4명밖에 남지 않았는가.


그놈의 꽃. 그 꽃이 문제다.


"···. 꽃만 찾아서 나가면 돼."


아슈발트는 희미하게 중얼거렸다.


그러곤 생각이 정리되었는지 뒤로 돌아 대원들에게 크게 소리쳤다.


"우리들이 지금 포기하고 나간다면, 우리들을 위해 죽은 대원들의 죽음이 뭐가 되는가! 우리들은 전진한다. 죽어버린 그들의 뜻을 이어받아 우리들은 그 꽃. 부르디아를 찾는다."


개소리다. 사실 나의 욕심이다.


아슈발트는 품속에 있는 스크롤을 만지작거렸다.


하나당 10골드를 웃도는 가격을 가진 스크롤이다.


그렇기에 아마 이 스크롤은 아슈발드만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래 여기까지 왔는데 이대로 포기하면 동료들의 죽음이 뭐가 되겠어. 꽃만 찾아서 나가자. 여차하면 이 스크롤을 쓰면 돼.'


끈질긴 자기세뇌를 마친 그는 차가운 무표정을 유지하며 다시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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