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괴물은 쉬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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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터치미
작품등록일 :
2024.08.13 20:39
최근연재일 :
2024.09.01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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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7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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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DUMMY

탁 타다닥


빗방울이 바닥을 때리고, 거기서 튄 방울이 소녀를 흠뻑 적셨다.


소녀는 자리에서 일어슨다.


기억이 오락가락했다. 손끝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의 차가운 감촉을 느끼며, 소녀는 서서히 정신을 차렸다. 아마 이전의 굉음으로 인해 잠깐 정신을 잃은 듯했다. 뭐. 상관없다.


소녀는 발걸음을 옮긴다.


자신이 뭘 해야 할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눈에는 강한 삶의 의지와 힘이 느껴진다.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눈빛으로 소녀는 걸어간다.


그것의 근처로 향할 때마다 강한 칼바람이 불어와 소녀를 때렸다.


머리가 헝클어지고, 정신이 사나워져도 소녀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따금씩 검은 마나가 소녀를 할켜 이곳저곳에 상처를 남겼지만, 이미 상처투성이인 몸이기에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았다.


소녀는 거대한 폭풍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것의 바로 앞. 그래 저기가 좋겠어.


소녀는 높은 바위 위에 섰다. 그러곤 머리를 쓸어내렸다.


그러자 마나로 이루어진 껍질이 벗겨지고, 그 너머에 있던 것은 거대한 두 짝의 뿔이었다.


붉은색의 뿔이 마나를 머금어 더욱 붉게 물들어 있었다. 소녀는 그것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짐의 이름은 아르테메아서스 12데손 베로니카 데 세실 리안솔리! 모든 마물의 정점에 슨 생물체의 정점이자! 현세대를 넘어 다음 세대까지 세상을 지배할 마왕도다!"


소녀. 베로니카는 그렇게 명명했다. 그 말에 한 치의 거짓말도 없다는 듯. 베로니카의 눈에는 이후에도 없을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 마치 긴 잠에서 깬 듯 그 어느 때보다 개운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그것의 아가리에서부터 서서히 말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공간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울리는 그것의 말은 분명. 이리 말하고 있었다.


"내 집에서 나가."



***



마녀들은 숲으로 향한다. 그 숲의 이름은 불과 얼음의 노래. 위대한 자의 마법을 쓰던 마녀들의 집은 그곳에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잊혀져 버린 그곳은 더 이상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아 던전으로 변해버렸으니. 허연 안개가 숲의 외각을 둘러싸, 겁이 많은 숲은 몰래 숨어버렸다. 현재 우리들은 그곳의 이름을 안개의 벽이라 부른다.


"드디어 깨어나셨군요. 태산이어."


끈적거리면서도 간질거리는 저음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달빛이 길게 내리쬐는 넓은 공동에 울렸다.


천장에는 종유석이 우수수 솟아있었고, 바닥에는 이따금 날카로운 돌부리가 나 있었다. 그리고 거대한 바위 위. 돌처럼 굳어있었던 그녀는 오랫동안 써 왔던 누더기 같은 검은 망토를 벗어 던졌다.


그러자 서늘한 달빛에 허연 살갗이 드러났다. 그와 함께 흰색의 긴 머리칼이 툭 하고 떨어져 땅바닥에 끌렸다.


그녀는 길게 늘어 뚝 떨어진 앞머리를 들어 묶었다.


달빛에 드러난 그녀의 외모는 마치 하나의 그림 작품 같았다. 긴 속눈썹에 잘 정돈된 짙은 눈썹. 살짝 솟은 눈고리. 오똑히 솟은 코. 붉은색의 도톰한 입술. 그녀의 매혹적인 몸매까지 합쳐져 완성된 조각품 같았다.


그녀는 가늘디가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산소를 맛보듯 몸을 들썩였다. 그러곤 게슴츠레 뜬 눈으로 위를 바라봤다.


실오라기 걸치지 않은 몸에서 물이 뚝뚝하고 흘러내렸다. 비가 오기 시작한다.


좋지 않은, 오싹한 기분이 든다.


그녀는 미연히 미소를 짓는다. 노란 안광이 은은히 빛난다.


그렇게 마녀는 빗자루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



마녀는 딱 질색이야. 그놈들이 얼마나 지독한지 알아? 귀찮고 끈질기게 늘어붙어서 원하는 건 뭐든지 이뤄내는 놈들이야. 심지어 죽여도 죽지 않고, 먹어버리면 배속에서 떠들어 댄다니까. 그야말로 불사신이지.


하긴···. □□□-□□의 화신이니까 뭐 당연한 건가.


아 그래서 갑자기 이 얘기를 왜 하냐고?


눈을 굴려 아래를 내려다봤다.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은 그것. 어린 마왕. 베로니카가 서 있다.


속으로 길게 늘어지는 한숨을 내쉬며 검은 그것. 태산은 마저 생각을 이었다.


본인 입으로는 마왕이니 어쩌니 했지만···. 저 눈. 저 눈을 잊을 수가 없지. 저건 마녀들의 눈이잖아. 분명 또 마녀들이 수를 쓴 게 분명해. 다시 나를 괴롭혀 먹으려고 하는 거야. 하지만 똑같은 불평등 계약에 억지로 어울려줄 필요는 없지.


"내 집에서 나가."


낮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땅이 울렸다. 이 세상의 언어가 아니었다. 그 목소리는 인간이 낼 수 없는 저음보다 더 아래인 목소리였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목소리에 베로니카의 귀에서 붉은 피가 흘렀다. 낮은 생명체가 듣기에는 좋은 소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베로니카는 꿋꿋이 서 그것을 올려다봤다.


'아 제기랄 못 알아듣잖아···. 이것만은 쓰기 싫었는데.'


[■■마■-폴■■프]


그것의 형체가 꿀렁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액체처럼 녹아내리듯 몽글몽글 솟아올라 이네에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거대했던 형체가 녹아내림과 동시에 거대한 물 같은 것이 파도 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베로니카는 피하지 않고 그것을 계속해서 응시했다.


검은 물이 베로니카를 덮쳤다. 숨이 턱 막힐정도의 물이 베로니카의 몸 안으로 파고 들었으나 이상하게도 별 다른 느낌은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물들이 곧 바로 희석되어 증발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나로 이루어진 허물의 껍데기가 벗겨지고, 베로니카의 눈에 비친 것은 영락없는 인간의 모습이었다.


그 인간의 형상은 베로니카를 향해 걸어왔다. 걸음이 익숙치 않은지 걸음거리가 어색했고, 중간중간 비틀 거리며 넘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다시 일어서 태연히 걸어온 그것은 어느새 베로니카의 앞에 섰다.


다듬지 않은 검은 더벅머리가 콧등까지 가릴 정도였다. 그럼에도 얼굴은 갸름해 마치 귀족 같은 고급진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와 함께 큰 키와 그에 비한 체격이 있어서 그런지 남성스러움이 묻어나왔다.


그것은 입고 있던 검은 로브를 털며 눈을 부라리듯 베로니카를 째려봤다. 가려져 있어 보이진 않았으나 분명 원망의 눈빛으로 보고 있었으리라.


대충 정리가 끝난 그것은 몇 번 목을 가다듬으며 짧고 굵게 말했다.


"내 눈앞에서 당장 꺼져. 여기 내 집이야."


베로니카는 굴하지 않는다. 노란빛의 눈빛이 더욱 밝게 빛난다.


그러자 그것은 베로니카의 머리를 툭툭 건드리며 마저 말을 이었다.


"야 꼬맹이. 내 말 안 들리냐? 어? 야 남의 집에 몇백 년 동안 얹혀살게 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지. 이렇게 나오면 나도 힘들어요. 어? 어른을 공경할 줄 알아야지."


같잖은 도발이다. 마치 어린애들이 한 살 차이 가지고 나이 부심을 부리는 것과 같다.


그러니 절대 넘어갈 리 없다. 절대···.


"ㄴ···. 네놈이 뭔갈 착각한 것 같구나! ㅈ···. 짐은 의뢰 봐도 나이가 굉장히 많다만?"


베로니카의 볼이 붉게 물들었다. 그와 함께 뭔가 분 하다는 듯 팔과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태산은 귀찮다는 듯 한숨을 크게 내쉬며 말했다.


"그래, 네가 천 살이든 만 살이든 상관없으니까 얼른 내 집에서 나가···. 아니다. 아니지? 백 년 동안 밀린 월세를 받아야겠어."


"돈 없도다."


"···. 음?"


"돈이 없다고 했도다."


순수한 표정으로 당당히 말하는 베로니카의 말에 태산은 잠시 벙찐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썰렁한 바람이 불어간 뒤, 태산이 말했다.


"···. 그럼 나한테 빚진 거로 하고. 이제 슬슬 네 원래 집으로 돌아가."


"이곳이 짐의 집이도다."


"뭔 소리야. 내가 쭉 살고 있던 곳인데."


"짐은 마왕이지 않으냐."


"···. 뭐 그렇지?"


"마왕은 마왕 성에 살지 않느냐?"


"대부분 겁쟁들이니까···. 그렇지?"


"그러니 짐이 사는 곳이 곧 마왕 성이란 말이도다!"


"아니 그건 아니지."


"하찮은 마물이구나. 좋다 짐이 다시 설명해 주겠노라."


"..."


2류를 넘어선 3류급 만담이 끝나서야 다시 정신이 돌아온 베로니카는 어흠 하곤 분위기를 다시 되돌렸다. 그러자 태산이 팔짱을 끼곤 말했다.


"원하는 게 뭐야."


"···. 원하는 거라."


베로니카는 한 단어를 입에 곱씹듯 굴렸다. 이 말을 그대로 할까 말까 고민하는 듯한 소녀의 표정은 점점 굳어갔다.


정리가 끝났다. 말해야겠다.


"짐은, 복수가 하고 싶도다. 다른 마왕들에게."


베로니카의 말에 태산은 잠시 표정이 굳는가 싶더니 이내에 짧게 되물었다.


"···. 어떻게?"


그 말에 베로니카는 태산에게 손을 내밀며 명쾌하게 답했다.


"짐의 계획은 마왕군을 만드는 것이다. 강한 자들을 모아 짐과 함께 다른 마왕들에게 복수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긴 여행을 떠나야 할 것이다. 그래서 묻는다. 그대 짐과 함께 여행을 떠나지 않겠는가?"



***



목이 타들어가다 못해 말라갈 때. 그는 발걸음을 멈췄다. 그 이유는 몸이 굉장히 무거웠기 때문이다.


그는 몸에 덧댔던 철판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나서야 발걸음을 옴길 수 있었다.


비가 온 바닥이 축축히 젖어 진흙이 되어 발을 내딛을 때마다 걸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그럼에도 그는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윽..."


욱신거리는 팔을 바라봤다. 비에 젖은데다 진흙이 상처의 이곳저곳에 파고들어, 아마 치료를 한다 해도 팔을 잘라내야할 것이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깨닫고있던 그. 아인베르츠는 창백한 몰골로 숲을 걸었다.


아인베르츠는 잿가루가 되어 하늘에 흩날리는 스크롤을 바라보며 그는 짧게 생각했다.


'대장이 탈출스크롤을 주지 않았다면 지금쯤...'


상상하기로 싫은 최악의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아인베르츠는 생각을 깊게 하지 않기로 했다.


단순히 머리를 정리하자 드는 생각은 하나 뿐이었다.


살아야한다. 도움을 요청해야한다.


아인베르츠는 그곳에 있었다. 안개의 벽에 있었고. 그 존재를 봤다. 산과 같이 거대한 존재.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


이 사실을 알려야한다.


태풍이 깨어났다고.


아인베르츠의 시아가 순간 휘청거렸다.


철푸덕


그는 진흙을 넘지 못한 체 그만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진흙을 온 몸에 뒤집어 쓴 그의 몸은,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나마 들어지는 고개를 갸웃거려 주변을 둘러봐도 온통 나무 뿐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몸에 힘을 주려노력해봤지만, 정신은 점점 아득해져갔고.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더 이상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몸과 정신이 몽롱해져갔다.


'젠장...안되는데...'


그는 눈을 감는다. 비가 온 몸을 때리고. 몸이 차갑게 식어갈 때. 누군가 그를 내려다본다.


그는 이리 말한다.


"뭐야 이거."


작가의말

좀 늦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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