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괴물은 쉬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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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터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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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3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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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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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DUMMY

베로니카가 표정을 구기곤 뭐라 중얼거렸다. 그 이유는 여전히 태산이 자신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허나 이를 깨닫지 못한 태산이 다시금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거기가 왜?"


태산의 말에 베로니카는 한숨을 푹 내쉬며 이전 했던 말을 다시 했다.


"퀘펜 사막은 안되는 것이다. 거기에 갔다가는 꼼짝없이 말라 죽어 버릴 것이다."


"그 정도야?"


"그대는 정녕 모르는 것이냐?"


"난 별로 안 덥던데."


"그건 그대라 가능한 것 아니냐!"


인간의 몸으로는 퀘펜 사막에 가본 적 없던 태산의 말이었다. 이전의 태산에게 있어 그런 것은 사치에 불과했기에 느낄 시간이 없었다. 그렇기에 인간의 느낌에는 무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베로니카는 들고 있던 종이 뭉치를 다시금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허나 느릿하게 움직이는 베로니카의 손짓에서는 뭔가 망설임이 느껴졌다.


이윽고 꺼림직한 표정을 짓던 베로니카가 뭔가를 깊이 고민하는 듯했다. 결국 말해야겠다 다짐한 것인지 목소리를 다듬고는 태산에게 말했다.


"···. 그대여. 그러고 보니, 우리 마왕군은 테마가 무엇이느냐."


"테마? 그런 게 필요해?"


"당연한 것 아니느냐! 옛날 옆집에 살던 하급 마왕도 테마에 맞춰 벌레들로 마왕군을 만들었도다!"


그리 말한 베로니카는 태산과 오딕스를 번갈아 쳐다보며 생각했다.


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강한 검은 짐승과. 왜 불을 뿜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강한 양서류···.


"이게 무슨 개판인 것이냐!"


"개판이라니. 얼마나 깔끔해."


태평한 태산의 말에 베로니카는 땅바닥이 가라앉을 듯한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곤 이내에 생각을 포기했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렇게 될 바엔 그냥 드래곤을 영입하는 게 좋을 수도 있겠구나···."


그 말을 제대로 들은 태산이 말했다.


"그럴까."


"···. 그게 무슨 소리인가?"


"드래곤을 영입하자. 몇 대 때려주면 알아서 말 듣겠지."


"하하. 가끔 보면 그대도 정말 미친 것 같도다. 그 드래곤을 영입시키려 한다니."


태산의 말을 단순한 장난이라 여긴 베로니카는 어색한 웃음을 몇 번 뱉으며 이야기를 넘겼다.


그러고 보니 베로니카의 눈에 뭔가가 계속 밟히는 듯했다.


베로니카는 자연스레 시선을 옮겨 바닥을 내려다봤다. 붉은 종이가 아른거렸다.


베로니카는 조금씩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았다. 미세한 기억의 파편 사이로 뭔가가 떠오르려 했다.


결국 태산이 바닥에 버린 종이를 다시금 주워 내용을 여러 번 읽어내렸다. 그러자 찜찜했던 감정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퀘펜이라... 잠만, 그러고 보니 퀘펜 사막에는...'


"그대여. 정했도다."


베로니카의 진지한 어투에, 의자에 반쯤 걸터앉아있던 태산이 자세를 바로잡으며 물었다.


"뭔데."


태산의 물음에 베로니카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전 자신이 버렸던 종이를 들고는 말했다.


"가는 것이다. 퀘펜으로!"



***



베로니카의 발언 이후, 시간은 물 흐르듯 흘렀다.


그들은 곧바로 퀘펜으로 향할 방법을 찾았으나. 대부분이 실행 불가능한 일들이었기에 그들은 간단한 방법을 찾기로 했다.


그리 생각한 베로니카는 여관의 방 한쪽에 있던 의자를 밟고 올라서 태산에게 말했다.


"인간들의 영토에는 키보렌이란 벽이 있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뭐 간단하지 않느냐. 벽을 넘으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쉬웠으면 인간들이 전부 손쉽게 다니지 않았을까?"


태산의 당연한 말에도 베로니카는 뜻을 굽히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별 다른 방법이 있겠느냐. 어쩔 수 없는 것이느리라."


그리 말하며 베로니카는 태산에게 말을 덧붙였다.


"저기 있는···. 아 이름을 모르겠구나."


"저거?"


태산이 구석을 가리켰다. 손가락을 따라가자, 방구석에 처박혀있는 오딕스가 보였다.


한동안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는지 벌서 삐쩍 말라 갈빗대가 보일 정도였다.


오딕스는 지난 며칠 동안 여관의 방구석에 박혀 나오지 않았고. 항상 공허한 눈으로 허공만 바라볼 뿐이었다.


허약함에 허덕이는 오딕스를 보며 베로니카가 말했다.


"그대여. 뭐가 그리 고민이길래 식사마저 거부하는 것이냐."


베로니카의 말에 오딕스는 힘겹게 입을 뗐다.


"제...집, 스텅 할머니..."


길게 늘어지는 오딕스의 말에 베로니카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축축이 젖은 목소리는 슬픔으로 가득 차 보였다. 그 느낌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베로니카라고 감정이 없는 게 아니다. 그리고 소녀 또한 이전 저런 적이 있었기에 공감은 할 수 있었다.


'뭐···. 따지고 보면 인간들이 먼저 쳐들어오긴 했다만. 마지막은 우리가 난리를 친 건 맞도다. 어색한 것도 무리는 아니도다.'


그렇기에 오딕스의 눈에는 태산과 베로니카 또한 인간들과 같이 혐오의 대상으로 보일 것이다. 그걸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해는 한다만, 더 이상의 어리광을 받아줄 수는 없었다.


'짐은 이런 어리광이나 받아주려 마왕군을 모으는 게 아니란 말이다.'


그와 동시에 슬슬 말할 때도 되었다. 더 이상 시간을 끌기에는 시간이 많지 않다.

생각을 마친 베로니카는 표정이 어두운 오딕스를 향해 말했다.


"잘 듣거라. 그대의 동족들은 전부 죽었도다. 인간들에 의해. 그대가 말했던 스텅이란 자 또한 죽었다더구나."


그리 말하며 베로니카는 보여주지 않으려 했던 신문을 꺼내 오딕스의 앞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그것을 본 오딕스가 빠르게 달려가 떨어진 신문을 읽어내렸다.


종이의 사브락 거림과 함께 오딕스의 흐느끼는 소리가 점차 커져갔다.


오딕스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내뱉었다.


"아···. 악...!"


오딕스의 흐느낌과 동시에 종이의 마법은 은은히 빛난다. 마법으로 그려진 신문의 한 페이지에는 스텅으로 보이는 양서류 전사의 시체가 힘없이 쓰러져있었다.


그리고 아래에는 인간의 언어로 이리 적혀있었다.


포트거스 제국 출신의 용사. 전장의 작은 악마. 이시리스 에스테반 차나가 공략 불가였던 고대 양서류 전사들을 괴멸시켰다.


그 이야기의 아래에는 이번 전투에서 전사한 어린 것들의 이름이 리스트에 올라 있었고. 이에 슬퍼하는 이들의 모습이 그러져있었다.


오딕스는 신문을 보며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아···. 안돼... 할머니···."


사무치게 드리우는 슬픔에 몸 둘 바를 몰라 방 안을 배회하듯 걸어 다니는 오딕스를 보던 베로니카는 태산에게 눈길을 보냈다.


태산은 그 눈길의 의미를 알았는지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아...이제야 힘이 나나보네."


그리 말하곤 한 손으로 오딕스를 붙잡아 그대로 침대에 내리꽂았다. 그리 세게 내리친 것은 아닌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침대는 오딕스를 받아주었다.


그리 좋은 침대는 아니었지만, 오딕스가 눕기에는 충분했다.


뜬 눈으로 며칠을 새우던 오딕스의 눈이 서서히 감겨왔다. 그동안 밀어놨던 잠이 한꺼번에 밀려온 것이다.


"그대여. 영입은 원래 이런 것이냐."


베로니카는 복잡한 감정을 목소리에 실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태산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내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



그 후로 며칠의 시간이 지나, 그들이 움직일 수 있었던 건 오딕스의 상태가 멀쩡해진 후였다.


오딕스는 여전히 말이 없었으나.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던 베로니카와 태산은 곧바로 키보렌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엘리슈 제국에서 3일이나 걸어가자 그들은 겨우 키보렌의 근처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고요한 숲속은 어둑한 밤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여타 다른 숲이라면 가지고 있을 푸릇함도 밤이 되니 알아보기 어려웠다.


태산은 늘어지는 하품을 내뱉으며 모닥불에 땔감을 밀어 넣었다. 그러곤 가늘게 뜬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오딕스는 숲에 도착해 짐을 풀고 텐트를 치자마자 그 안으로 들어가 밤이 짙게 깔린 지금도 밖에 나오지 않고 있었다.


베로니카는 아직도 종이 뭉치를 만지작거리며 여전히 마왕군 후보를 찾는데 사색인 듯 보였다.


태산은 모닥불 근처에 끓여놓은 물에 잎을 타 마시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전에는 가까웠던 밤하늘이 이렇게 멀게 느껴지는 것은 처음이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어째서 여기에 있는지 생각해 본다.


처음에는 불시착이었다. 내가 의도 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모든 시작은 항상 예상 못 하게 시작되었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살기로 했다.


언제는 모든 것의 위에 서 보기도 했고. 언제는 모든 것의 아래에 서 보기도 했다.


또한 호기심에 온 대륙을 돌아다니며 세상의 비밀을 깨달았고. 그 이후로는 쭉 이 상태다.


모든 비밀을 깨달아버리니 더 이상 어떤 호기심도 안 생겼고. 늘 지루한 인생이 되었다.


그렇기에 나는 아마, 그 선택을 한 거겠지.


태산은 마저 차를 들이켜며 마지막 생각을 읊조렸다.


"앞으로 3년···. 인가."


"그대는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앞에서 사부작거리며 종이 뭉치를 넘기던 베로니카가 말했다. 그녀는 여전히 종이에 눈을 때지 못한 채 아직도 마왕군 선택에 빠져있었다.


그 모습을 본 태산은 베로니카를 향해 말했다.


"마왕군을 모은다 치면. 복수는 언제 할 거야?"


태산의 말에도 여전히 종이만을 보며 베로니카는 말했다.


"흐음...그건 아마 짐이 만족할 때가 아니겠느냐? 대충 보아도 아 이 정도면 충분하겠도다. 싶을 때 일 것 같도다."


"그러면 복수한 다음에는?"


"뭐···. 그다음에는···."


베로니카의 손이 멈췄다. 자신이 흘렸던 말의 다음 말을 이어가지 못한 채. 그녀는 허공에 흩어져가는 말의 꼬리를 놓쳤다.


그러고 보니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다. 지금 당장의 일만 생각해 왔기에, 그다음 일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뭐···. 마왕군을 꾸렸으니 그걸로 근처 성에 들어가서 살면 되지 않겠느냐?"


"그게 끝이야?"


"···. 음. 그러고 보니 여행도 하고 싶구나."


"여행이라···. 어디로?"


태산의 말에 종이 뭉치를 잠시 아래로 내려둔 베로니카는 노란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북쪽의 '드래곤의 묘'라던가. 남쪽의 쿤타들이 사는 '랑비에' 에도 가보고 싶도다."


"음···."


태산이 미적지근한 말을 흘렸다. 그 후 베로니카가 잠시 고민하더니 마치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대여. 복수가 끝나면 여행을 떠나는 것은 어떠한가? 마왕군을 모은다는, 복수를 한다는 그런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여행을 하는 것이다!"


"여행이라···."


태산은 베로니카를 보며 잠시 생각을 이어갔다. 머릿속에서 여러 생각을 하곤 결론이 도달되자 그는 짧게 읊조렸다.


"괜찮네."


'하지만 안돼.'


목 끝까지 올라온 말이었으나, 태산은 그 말을 다시 목 아래로 밀어 넣었다.


이 말은 차마 입 밖으로는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베로니카에겐 희망이 필요하다. 이 이야기를 끝까지 이끌어갈 희망이. 아주 작을 지라도 그 희미한 티끌 같은 희망이 베로니카를 마지막 까지 인도할 것이다.


그러니 아직은 안된다.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는 걸로 하자.


신난 듯 방방 뛰는 베로니카를 니긋이 바라보며 태산은 다시 차를 한 입 훌쩍였다.


상쾌한 민트향이 은은히 퍼지는 게 느긋한 밤이 흘러가는 듯싶었다.



***



모두가 잠든 늦은 새벽. 숲마저 잠에 빠진 듯 고요했다.


모닥불마저 꺼버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에 미세히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조금씩 앞으로 다가오는 그 소리에 낮고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바스락거리던 소리가 멈추고. 그 존재가 뒤를 돌아보자 보인 것은 검은 남성. 태산이었다.


털이 복슬하게 나 있었으며 네발로 걸어 다니는 그건 소름끼치게 생긴 검은 고양이었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거야."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말투에 고양이가 몸을 떨었다. 태산은 여전히 무표정으로 고양이를 내려 볼 뿐이었다.


"역시 알아보시는군요."


고양이의 입에서 들려온 사람의 말이었다. 이윽고 고양이가 몸을 털자, 순식간에 모습이 변하였다.


바닥에 끌릴 정도로 긴 흰머리에 매혹적인 외모를 지닌 여성의 모습으로 변한 그녀는 의연한 미소를 지으며 태산을 바라봤다.


그럼에도 태산은 여전히 끝없는 무표정으로 차갑게 일렀다.


"너지. 그 애한테 마녀의 눈을 준 게."


그녀는, 눈이 없었다.


작가의말

잠시 쉬다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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