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괴물은 쉬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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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터치미
작품등록일 :
2024.08.13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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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1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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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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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DUMMY

골목길의 끈적거리는 공기가 찝찝했다. 썩은 내와 곰팡이 냄새가 지독한 나머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코를 막고 있었다. 그때 앞장서 걸어가던 사내가 뒤돌아 말했다.


"조심해서 들어와. 이 너머거든. 노예 굴이."


그의 말에 내가 되물었다.


"ㄱ···. 괜찮은 거 맞아요? 이게 걸리면 다 사형 아니에요?"


나의 말에 그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사형으로 끝나겠냐? 걸린다면 아마 인간계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기철 산. 이그로프롬으로 끌려갈 거야. 거기서 죽지도 못하고 고문만 받겠지."


"···. 근데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예요?"


나의 말에 남성은 잠시 턱을 어루만지며 고민하다 말했다.


"그거야 당연히 안 걸리면 가장 많은 돈을 벌 수 있으니까. 그리고 남은 것들로 보는 재미도 쏠쏠하단 말이야."


흐흐 거리며 남성은 기분 나쁜 소리를 냈다. 눈빛에 흑심이 가득 차 보였다. 그는 이외에도 손짓으로 그 행동을 묘사했는데 기분이 더러워졌다.


"···. 예."


악인이다.


"그건 그렇고, 너처럼 어린애가 왜 이쪽 세계에 발을 들인 거야?"


"아···. 그러게요."


"···. 너도 참 힘들게 산다."


남성은 돈주머니에서 2 쿠퍼를 꺼내 내 손에 쥐여줬다. 적당히 식사를 때울 수 있는 수준의 돈이었다.


"뭐 지금은 이렇게 굴러도. 나중되면 더 좋은 데로 올라갈 수 있는 거 아니겠어?"


그렇게 말하며 남성은 히히덕 거렸다. 그의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한없이 진지했다.


남성의 발걸음이 어느 벽 앞에 멈췄다. 특별해 보이는 건 없어 보였다.


남성은 벽에 손을 가져다 대곤 세 번. 두 번. 네 번 두드렸다.


쿠그그


벽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어두운 공간이 비춰 보였다. 빛이 없어서 그런지 벽 너머의 공간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소리가 들려왔다.


"죽어라! 죽어! 전부 사형이다!"


그 소리와 함께 입구 쪽으로 무언가가 날라왔다.


철푸덕


토마토가 으깨진 것 같이 생긴 그것. 그건 인간의 머리였다.


"빛이다! 저쪽이구나!"


달려온다. 어둠 너머에 있던 것이 이쪽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 발소리에 남성은 빠르게 소매에서 단검을 꺼내 겨눴다. 그러곤 소리쳤다.


"도망쳐!"


단말마처럼 들리는 말과 함께 서늘한 회식 빛의 무언가가 남성의 가슴팍을 뚫었다.


피가 새어 나온다. 거대한 구멍이 생겨났을 것이다. 살아남기는 불가능하다.


털썩


남성은 힘없이 쓰러졌다.


"오오 명중! 명중했다!"


그 목소리를 끝으로 남성은 생명이 끊어진 듯했다.


이전까지 대화를 나눴다는 게 무색하게. 천천히 식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남성은 내려다보며 알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이 싹텄다.


'분명 악인인데···. 그래 악인이야. 악인은 악이지. 나쁜 놈이야···. 그래 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


그리 말하면서도 나는 주머니에 넣어둔 2 쿠퍼를 만지작거렸다.


서늘히 느껴지는 구리의 감촉에 잠시 생각에 잠겨있자, 어둠 속에서 누군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절그럭


햇빛을 맞았음에도 빛이 새어 나오지 않는 낡은 갑주. 그 위를 흠뻑 적신 붉은 피 때문에 원래 색상을 알아볼 수 없었다.


그 갑주는 흡사 전쟁 군주와 같아 보였다. 허나 그걸 입고 있는 건 고작 해봐야 15살 남짓의 어린 소녀였다.


찰랑거리는 긴 갈색의 장발. 햇볕에 더욱 화려히 빛나는 머리칼이었다. 그와 함께 천진난만한 아이 같은 외모에 거대한 눈. 호기심이 왕성해 보이는 아이 같았다. 자세히 보니 낡은 갑주가 소녀의 몸짓보다 더욱 큰 나머지 헐렁거렸다.


소녀는 얼굴에 묻은 피를 손으로 대충 닦아내며 말했다.


"핫하하. 산초 잘 보았느냐? 이 몸이 홀로 악당들의 본거지를 소탕하는 모습을?!"


잔뜩 신이 난 듯 큰 눈이 번쩍이며 빛났다. 그와 함께 상기된 채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신이 난 어린아이 같았다.


"···. 누나."


그 말에 그녀는 피 묻은 손으로 내 양 볼을 잡고 쭉 늘리며 말했다.


"사안초! 이 몸이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느냐! 내 이름은 돈키호테 데 라만차! 이 시대의 악인을 전부 해치워낼 자의 이름이라고!"


"으으으!"


장갑의 가죽 부분이 피로 젖어 축축해 기분 나빴다. 그러나 아프진 않았다. 단순히 기분이 나빴다. 그뿐이다.


자신을 돈키호테라 말한 그녀는 창이 꽂혀있는 남성에게 다가갔다.


"이 나쁜 놈이! 우리 산초를 나쁜 길로 들이려 했구나!"


그리 소리치곤 발로 마구 밟아대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에는 끝없는 혐오가 비춰 보였다.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혐오를 쏟아내야 저 혐오가 끝날까.


"거기까지 해요···. 힘들지 않아요?"


나의 말에 밟는 것을 멈춘 돈키호테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리 말했다.


"확실히 힘들구나. 그래도 적진을 전부 털어버렸으니, 기분은 좋구나. 음···. 좋다! 오늘은 돌아가는 길에 크림빵을 먹도록 하자꾸나!"


"어제도 먹지 않았나요? 그리고 이제 돈이 없다고요···."


나의 말에 돈키호테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주머니에서 뭔갈 꺼냈다. 그러곤 그걸 머리까지 올려 짤랑거리며 말했다.


"악인 놈들한테서 뺏어왔다. 이 정도 돈이면 크림빵을 100개 사고도 남을 돈이지."


그건 돈주머니였다. 허나 피를 머금어 붉은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가기 전에 집에 들렀다 가죠."


"싫다! 이 몸은 지금 당장 크림빵이 먹고싶다!"


"그러고 가면 이번에는 정말 잡혀간다고요!"


"괜찮다! 이건 악인들의 피지 않느냐! 길거리 사람들도 이해해 줄 것이다!"


"여긴 마을이 아니라 제국수도. 엘리슈제국이라고요!"


"그랬나? 그랬지."


돈키호테가 이해를 끝내자, 내가 말했다.


"하아... 그래서. 갇혀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했어요?"


"아 맞다."


"설마 그냥 냅두고 나온 겁니까?!"


"하하···. 그 악인 퇴치에 정신을 쏟다 보니 그만···. 까먹었구나."


"아아악! 우리는 사람들을 구하러 온 거라고요! 죽이러 온 게 아니라! 그럴 거면 그냥 산적을 하지 왜 용병을 하겠어요!"


"알겠다 알겠다 산초. 그만 소리 지르거라. 지금이라도 구하면 되지 않느냐."


입이 쭉 삐져나온 돈키호테는 들리지 않는 소리로 뭐라 투덜거렸다. 그러곤 더 이상 잔소리를 듣기 싫다는 듯 양쪽 귀를 막으며 다시 벽 너머로 걸어 들어갔다.


나는 피로 물든 그녀의 뒤를 따라 걸어 들어가기 전. 바닥에 쓰러져있던 남성의 시체가 보였다. 나는 그 시체에 받았던 2쿠퍼를 다시 던져주고,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


그 뒷모습은 시체와 피로 젖은 15살의 소녀와 13살의 소년이었다.




***



제국에서 조금 떨어진 산의 봉우리. 그곳에는 신비한 힘이 깃들어있다. 이전 세계를 잇는다 전해진 최초의 왕의 검이 꽂혀있던 장소였기에, 그 검은 사라진 지 오래임에도 그 힘은 여전히 그곳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밤의 다섯 딸 중 하나인 '꿈'이 만들어냈다고 들려오는 그 장소는. 산의 봉우리에 자리 잡아 올라오는 이들을 테스트한다. 착한 이에게는 자연스레 비교적 쉬운 길로 인도를. 나쁜 이에게는 거센 칼바람과 환각을 부려 절대 그 장소에 도달하지 못하게 만드니. 착한 이만 올라올 수 있는 그 산의 봉우리에는 어두운 밤에도 훤히 빛나는 무지갯빛의 신전이 존재했다.


신전은 밤의 딸 중 하나인 꿈이 만들었기에, 하늘은 항상 어두운 별들로 가득했고. 거기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전부 꿈으로 치부됐기에 정상적인 물리법칙은 허용되지 않았다.


우리들은 환상 속에만 존재하는 그 신전의 이름을. 잠 못 이루는 신전이라 부른다.


"라고 하는구먼."


"동화책이에요?"


산초가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돈키호테를 바라봤다. 하긴 밤의 다섯 딸이니. 산의 봉우리니. 그런 이야기는 어렸을 때 읽고, 이제 끊을 때가 됐다. 속으로 그리 생각한 산초는 이 이야기가 무척이나 우스워졌다.


그 표정을 읽은 것인지. 돈키호테는 산초의 머리를 세게 내려치며 말했다.


"이건 고대 현자님이 남기신 귀중한 정보란 말이다! 배우지 못한 농부면 조용히 하고 있거라!"


"악! 으으... 고대 현자님의 귀중한 정보가 왜 길거리 노점에서 5쿠퍼에 파는데요!"


돈키호테가 들고 있는 책은 바로 하루 전까지만 하더라도 길거리 노점에서 잘 안 팔리던 악성 재고 중 하나였다.


책의 겉면은 가죽 부분이 너덜너덜하게 해져 조금만 잘못 쥐더라도 가죽이 뜯어져 나왔고. 종이는 노랗게 변색되어 있었다.


관리를 잘못한건지. 아니면 굉장히 오래된 것인지. 그 책은 퀘퀘한 기분 나쁜 냄새를 풍기며, 미심쩍으면서도 수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 겨우 그 책 때문에 이 시간에 산을 오르는 거예요?!"


산의 지평선에서 노란빛의 해가 떠올랐다. 불그스름한 기운을 담은 그 태양은 지평선 너머를 훤히 비췄다.


"후후. 산초 잘 듣거라. 우리가 그 신전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들의 직위를 하사받는 것이지."


"···."


산초는 속으로 말을 삼켰다. 뭐라 하고 싶은 건 사실이었으나. 어차피 뭐라 해도 제대로 듣지 않고 막무가내로 움직일 게 뻔했다.


결국 마지못한 산초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말했다.


"하아... 알겠어요."


"좋다! 출발이다!"


당돌하게 출발한 것과는 달리 시작하자마자 고전을 면치 못했다.


"ㅎ...허억...헥..."


돈키호테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근처에 있던 나무를 붙잡았다. 퍼렇다 못해 창백해진 얼굴로 위를 올려다보니 아직도 산은 길게 남았다.


그녀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몇 번 다그쳤지만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이윽고 걷던 와중 그대로 나자빠져 일어나지 못했다.


그런 그녀를 본 산초가 급히 달려가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상태는 당연 최악이었다. 산초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일단 그녀가 입고 있던 갑옷이 굉장히 무거웠다는 점이다.


본래 갑옷을 입고 돌아다닐 때는 비교적 괜찮았으나, 경사가 가파르고 공기도 얼마 없는 산을 오르기에는 15살 소녀의 몸은 너무나 허약했다. 아마 여기까지 올라온 것도 그녀의 오기 때문이겠지.


"이제 돌아가자고요. 예?"


"산초, 얼마 남지 않았다. 좀 만 더 가자꾸나."


"얼마 안 남은 건 당신 생명줄이라고요!"


실제 당장이라도 단명할 것 같은 몰골로 그리 말하는 그녀의 말에는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그럼에도 돈키호테는 산초의 옷깃을 붙잡고 '좀 만 더. 저 앞까지만 가보자꾸나.' 라 중얼거렸다.


그런 그녀는 내버려둘 수 없던 산초는 속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부축해 걸음을 옮겼다.


속도는 굉장히 더뎠다. 몸 상태가 말이 아닌 돈키호테를 부축해가며 움직여야 했기에 산초의 상태 또한 말이 아니었다.


온 몸이 들 끓듯 힘들었고. 눈이 빠질 것 처럼 힘들었다.


"하아... 음?"


어쩔 수 없이 걸음을 옮기던 산초에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따금 불어오던 거센 바람이 순식간에 멎은 것이다. 그와 동시에 주변 환경이 점점 변해가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나무들로 울창한 숲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점점 나무들이 줄었고. 이윽고 주변이 뻥 뚫린 돌산의 모습이 되었다.


산초와 돈키호테는 길이 나 있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발길이 옮기는 데로 움직이니 크게 불편한 것 없이 올라올 수 있었다.


주변의 거대한 바위가 허공에 둥둥 떠 올랐고. 몸의 무게가 사라진 듯 붕 뜨는 기분이 들었다.


이윽고 산초가 하늘을 올려다보자 큰 소리로 경악하듯 말했다.


"ㅁ···.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밤이 찾아온다.


이전까지는 화창했던 푸른 하늘이 순식간에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하나둘. 숨어있던 별들이 빼곰 거리며 얼굴을 보였다.


그렇게 하늘은 순식간에 밤이 되었고. 산의 경사가 줄었다.


그때 하늘을 멍하니 보던 돈키호테가 말했다.


"산초···. 여기서 왼쪽이다."


"예? 그게 무슨 말이에요?"


"별이다. 별들이 내게 그리 말해주고 있어. 얼른 그쪽으로 움직이거라."


하늘의 별들이 자리를 잡아 돈키호테와 산초를 안내했다.


그들은 몽롱한 정신으로 길을 따랐다.


그리고 그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목적지는 가깝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작가의말

세계관 정리를 끝내니 글에 불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뜨거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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