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괴물은 쉬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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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터치미
작품등록일 :
2024.08.13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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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1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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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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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DUMMY

"...자네. 악인이구만."


돈키호테가 그 존재를 향해 말했다. 그럼에도 그 존재는 여전히 유연한 미소를 띄우며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자 돈키호테는 그 존재에게서부터 점차 거리를 벌렸다. 그러곤 옆으로 따라온 산초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산초. 창."


장난기 빠진 진지한 목소리에 산초는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ㅇ···. 여기서 싸우시게요? 저희 잡혀간다고요. 심지어 갑옷도 안 입고 있는데···."


산초의 나약한 소리에 돈키호테가 말했다.


"창."


그러곤 산초를 똑바로 내려다봤다. 갈색의 눈동자에는 생기 없이 끝없는 혐오와 증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눈은 산초를 보고 있지 않았다. 산초가 비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더욱 멀리를 보고 있을 것이다. 더욱 멀리···.


마지 못한 산초가 보따리에서 삐쭉 튀어나와 있던 창을 건넸다. 원뿔 형태로 길게 뻗어 2m가 넘는 창이었다. 그걸 본 검은 존재. 태산이 말을 흘렸다.


"···. 그건 어린애가 가지고 놀 장난감이 아닌데?"


태산의 눈에 비친 그 창은 흉흉한 기운을 담고 있었다. 그와 함께 푸른 마나의 선이 이리저리 엮여있어 절대 평범한 물건이 아님을 짐작게 했다.


"누가 어리다는 것이냐. 내가?"


돈키호테가 크게 웃음을 흘렸다. 그러곤 크게 소리쳤다.


"이 몸의 이름은 돈키호테 대 라만차! 세상의 악을 없앨 사내의 이름이다!"


그 말에 태산이 '넌 사내가 아니잖아.'라 말하려 했으나 타이밍을 놓친 관계로 그냥 말하지 않기로 했다.


돈키호테는 창의 손잡이를 꽉 쥔다. 사실 이것이 창인지 렌스인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때리고, 찌르면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확실하다.


태산은 멀찍이 떨어져 있는 돈키호테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 그냥 죽여버릴까.'


마나가 일렁거린다. 검은 마나가 흉측하게 뒤틀려 전진하기 시작한다. 그건 도저히 마나라곤 부를 수 없는 물질이었다.


서로의 의지가 맞닿고.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볼 때. 이는 전투의 시작을 의미한다.


이마에서 흐른 땀이 바닥을 향해 떨어질 때. 돈키호테는 발을 뗄 예정이었다.


그래, 예정이었다.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것이냐?"


돈키호테의 뒤에서 들려온 말이었다. 빠르게 뒤를 돌아보자, 그 소녀는 자신보다 더욱 어린아이를 보게 되었다.


돈키호테의 입가에서 얼빠진 소리가 흘러나왔다.


"···. 어라?"


철컹


돈키호테는 순간 손에 힘이 빠져 그만 창을 놓치게 되었다. 그러곤 말도 안 된다는 듯한 표정으로 멍하니 소녀를 내려다봤다.


그러자 태산은 재미없다는 듯 하품을 내뱉으며 다시 마나를 거두었다.


꾀죄죄한 어린 소녀. 베로니카는 돈키호테를 지나쳐 태산에게 다가갔다.


"자는 거 아니었어?"


그 말에 베로니카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소란스러워 깼도다. 여관에서부터 길거리까지 시끄럽길래 뭔 일 난 줄 알았도다."


라며 하품을 내뱉는 베로니카는 아직도 졸린 듯 반쯤 뜬 눈을 비비며 태산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것을 보고 있던 돈키호테가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잘못 본 듯하구나 산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됐다. 그냥 가자꾸나."


의욕을 잃었는지. 아니면 더 이상 뭔갈 할 의지를 억제했는지. 돈키호테는 멍한 표정으로 뒤돌아 사라졌다.


'같이 가요!'라고 소리치며 산초 또한 함께 사라지자. 베로니카가 말했다.


"그래서. 저 인간 놈들은 뭐느냐?"


그 말에 태산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몰라? 이상한 놈들이네."


"흐름···. 그래서 할 일은 다 끝냈느냐?"


"아."



***



"잠깐, 잠깐만요!"


산초가 앞서 걷던 돈키호테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럼에도 돈키호테는 멍한 얼굴로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돈키호테는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는 정처 없는 발걸음을 옮겼다. 결국 질릴 대로 질린 산초가 참지 못한 채 돈키호테의 옷가지를 잡고 뒤로 끌었다.


갑작스레 발걸음이 끊긴 돈키호테는 멀뚝이 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산초여. 나는 졌다."


돈키호테의 무미건조한 한마디에 순간 산초가 의아하다는 듯 소리쳤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대치만 하다 끝났잖아요! 싸움은 시작하지도 않았다고요!"


산초의 말에도 돈키호테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이리 말할 뿐이었다.


"그 검은 것이. 진심으로 싸울 생각이었다면, 어쩌면 우린 전부 죽었을지도 모르겠구나."


"네? 그 사람이요?"


"사람이라니. 무슨 소리냐 산초. 너의 눈에는 그게 정녕 사람으로 보였던 것이냐?"


"무슨 얘기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대화를 끝낸 돈키호테는 속으로 곱씹어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 어린것이, 꾀죄죄했던 그 소녀가. 내게는 하얗게 보였다. 하얀 것은 선하다. 하지만, 내 직감이 말하기를 그 소녀는 위험했다. 그러면 도대체 뭐가 맞는 것인가···.'


머리가 복잡하게 얽혀 지끈거렸다. 생각이 너무 많아 그런 것이다. 돈키호테는 잠시 숨을 고르며 생각을 끝냈다.


"산초. 잠시 둘시네아를 보러 가자꾸나."


"...네?"


의아하다는 듯 표정을 구기는 산초를 보는 체 안 하며. 돈키호테는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당장이라도 둘시네아를 만나 위안을 얻지 못하면, 이대로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산초는 옆에서 '오늘따라 이상하셔요.' 같은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



제국에는 보이지 않는 허공이 존재한다. 허공에는 무엇이든 뜰 수 있었고. 무엇이든 가라앉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허공에는 거대한 성당이 존재한다.


누가 지었는지 불명인 그 건물은 허공에 떠 있는 것만으로 신비한 느낌을 자아낸다. 특이점이라 한다면 어떻게 들어가야 하는지 감이 안 잡힌다는 것이다.


허공에 떠 있는 성당은 입구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저 거대한 외벽으로 둘러싸여 안쪽에 높게 솟아오른 꼭대기만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제국 주민들. 나아가 인간들은 그곳에 어떻게 들어가는지 단번에 깨달았다.


건물이 떠올랐다는 것은, 말 그대로 무엇이든 떠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돈키호테와 산초가 허공에 발을 내디뎠다. 그러자 허공에 바닥이 존재하듯 돈키호테와 산초는 다음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그때 몸을 부들부들 떨던 산초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소리쳤다.


"여긴 올 때마다 무섭단 말이에요···. 으악! ㄸ...떨어지는 거 아니죠?!"


산초가 큰 소리로 지레짐작 겁먹으며 돈키호테에게 바짝 달라붙었다. 돈키호테는 그런 산초를 적당히 껴안아 주며 발걸음을 옮겼다.


확실히 아직 어린것에게는 무서울 만하다. 그 이유는 발 아래, 허공의 바닥에 가라앉은 것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허공에 떠 오르지 못한 건축물의 잔해나, 다른 종족의 사체. 나아가 인간의 것까지 보일 지경의 가라앉은 것들은, 마치 위를 올려다보며 저주를 퍼붓는 듯 보였다.


그럼 잔혹한 광경은 성당과 전혀 맞물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성당은 묵묵히 그곳에 존재한다.


벽에 다다르자, 누군가 아래를 향해 소리치는 게 들렸다.


"누구십니까!"


외벽의 위에 슨 그 존재는 하얀 두건에 네모난 정육면체를 그려 넣은 성령을 입은 교단이었다.


교단의 날카로운 소리에 돈키호테가 소매에서 패를 들어 보여줬다. 그러자 벽에서 순간 요란한 소리를 내더니 이윽고 빛이 새어 나왔다. 빛의 너머에는 바닥이 존재했다.


마치 착지하듯 발이 딱딱한 바닥에 닿자, 마음이 풀린 것인지 산초가 사르르 녹아내리듯 주저앉았다.


그러곤 위를 올려다보자, 성당이 거대한 위용을 뽐내며 서 있었다. 그 모습에 산초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감탄을 내뱉었다.


"우와···."


돈키호테는 그런 산초를 그곳에 내버려둔 체 급히 성당의 안쪽으로 향했다.


성당의 문을 지나치자 건물의 안 임에도 은은한 꽃향기가 풍겼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했다. 돈키호테는 호흡을 가다듬고 더욱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회색빛의 벽돌들을 지나 들어간 성당의 안은 단촐한 구색을 갖추고 있었다. 거대한 건축물을 중심으로 여러 대의 의자가 있었고. 2층 정도 높이에는 단상으로 보이는 탁자가 보였다. 존재하는 것은 단순히 그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은 그 자체만으로 완벽한 성당이었다. 하늘에서부터 내리쬐는 따스한 햇볕을 쬐어 금빛으로 빛나는 조각상을 향해 급히 달려든 돈키호테는 이윽고 무릎을 꿇었다.


그러곤 자신의 믿음을 확인하듯 재차 그 조각상. 석상을 향해 말을 건넸다.


"아아. 둘시네아. 나의 여인. 나는 오늘 당신의 믿음을 저버릴 뻔했다오."


아래에서 올려다본 석상은. 돈키호테에게 온화한 미소를 지어보며 따뜻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듯했다. 돈키호테는 그 석상을 이리 묘사했다.


그 손짓은 언제 어디서라도 나를 부르는 듯싶었다. 인자한 눈빛은 언제나 나를 용서해 주는 것 같았고. 오똑한 콧선과 도톰한 입술은 당신의 미모를 뚫어져라 쳐다보게 만들었으니. 당신은 나의 여인. 둘시네아이니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연신 기도하는 돈키호테를 바라보던 산초는 의아한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저게...둘시네아?"


마을에서도, 제국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일 중 하나였다. 산초는 표정을 구기며 석상을 바라봤다.


산초의 눈에 보인 그것은. 단순한 정육면체의 돌멩이였을 뿐이었다.



작가의말

돈키호테는 여러번 읽어도 명작인 것 같습니다. 대신 너무 방대한 분량 때문에 한번에 다 못 읽는 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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