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괴물은 쉬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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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터치미
작품등록일 :
2024.08.13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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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1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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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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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DUMMY

바닥에는 차갑게 얼어붙은 시체들이 즐비했다. 인간과 전사들이 이리저리 섞여 그저 단순한 고깃덩어리로 보일 지경이었다.


그녀는 폐에 드러찬 찬 공기를 내뱉으며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검 하나를 쥐었다. 차갑고 서늘한 검의 손잡이가 오늘따라 더 무겁게 느껴졌다. 그래도 이게 딱 적당했다.


그녀는 앞에 서 있는 그것을 보며 생각했다.


'못 이기겠다. 이건. 절대로.'


그래도 도망가진 않는다. 그것의 힘이라면 아마 이 숲 전체를 불태우고도 남을 것이다.


'그래도, 죽긴 싫은데 말이야.'


그때. 그것이 바닥을 짚어 사족보행 자세를 잡았다. 그러곤 순식간에 차나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화르륵


"아아악!"


"대장님!"


눈으로 볼 수조차 없는 빠른 속도로 차나를 베어 넘겼다. 피가 울컥거린다. 깊게 베인 상처가 붉게 지져졌다. 눈이 해까닥 돌 정도의 고통이 이를 뒤따랐다.


"오지 마!"


그녀는 뒤에서 당장이라도 달려올 듯한 녹스에게 큰소리쳤다. 그러곤 당혹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생각했다.


'저게 마법이 아니었다는 거야?'


마법으로 이뤄진 불이 아닌, 순수한 불꽃. 그렇기에 차나에게 공격이 닿는다. 최악이다.


그녀는 들고 있는 검으로 그것을 겨눴다. 순간 피가 쏟아져나왔다. 이미 이전의 싸움에서 피를 한 바가지로 흘린 차나에겐 최악의 소식이었다.


순간 차나가 휘청거렸다. 하지만 이윽고 정신을 차린 차나는 그것을 향해 달렸다. 그러곤 검으로 그것의 머리를 빠르게 내리쳤다.




제기랄. 비늘에 검이 튕겨 나갔다. 무엇보다 그것의 몸에 닿았던 검이 순간 서늘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젠장!'


차나가 빠르게 검을 바닥에 내던졌다. 그러자 검에서 얼음결정이 솟아올라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닿으면 확실히 죽는다.


무엇보다도 지금. 차나의 배에 큰 상처에서 계속해서 피가 흐르고 있다. 더 이상 피를 흘리면 아무리 용사라 해도 위험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도망갈까?'


라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그녀는 이내에 자신을 다그치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육탄전은 무리다. 지금의 몸 상태로는 공격을 피하는 것조차 무리다. 무엇보다 지금. 배에서 이상한 이질감이 들기 시작했다.


차나는 욱신거려오는 배를 확인했다. 크게 갈라진 상처 사이로 날카로운 결정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직은 사이즈가 작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그녀는 근처에 있는 나무를 바라본다. 그들이 어째서 인간과 닮았는지. 어째서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는지 깨달아버렸다.


본래 인간이었던 나무들이 차나를 내려다본다. 그녀 또한 그들을 본다.


'가지가지 한다.'


여기까지 할까. 너무 멀리 왔어. 적당히 달렸어야하는데. 딱딱히 얼어붙은 바닥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뱉는다. 허연 잇김이 퍼져나가고. 나는 눈을 감는다.


손에 들린 게 없고. 앞으로 나아갈 의지도 없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을 구했다는 알량한 정의감에 취해가는 걸로 하자. 알딸딸한 게 딱 좋다.


그것이 자세를 잡는다.


...아니지. 아니야. 이렇게 끝나면 안 돼. 적어도 이렇게 끝나는 건 아니야.


그녀는 허벅지에 걸어놓은 마지막 남은 단검을 꺼내 쥐었다. 작고 무딘 단검이다. 이것으로 뭘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할 수 있다는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그녀는 숨을 들이마시고. 내쉰다.


그것이 순식간에 달려든다. 이번엔 보였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검을 휘두른다. 그러자.




거대한 폭발이 일궜다. 차나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가운데에 떨어진 것은. 인간이었다. 그 인간들은 거대한 구덩이를 만들었다. 다친 곳이 없는지 거대한 구덩이 에서 터벅터벅 걸어 올라왔다.


자세히 보니 그들은 어린아이와 남성이었다. 그리고 그걸 보고 있는 이가 하나 더 있었다.


검은 그림자에 숨어있는 늙은 전사. 늙은 할멈 스텅이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말을 흘렸다.


"손님이 오셨다."



***



검은 밤하늘이 비췄다. 별들에 손이 닿을 듯 가까운 하늘. 날개가 달린 흰 괴형물체가 위태롭게 하늘을 날고 있다.


그 이름은 이클립스. 과거 3학자가 만든 호문클루스 중 한 마리였다.


그것은 몸에 비늘이나 깃털 없이 허연 맨살을 드러낸 체. 인간의 살갗을 엮어 탄생한 기형물 중 하나로. 과거 인간이 탄생시킨 괴물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것의 등에 누군가 타고 있었다.


"이쪽이 맞는 것이냐."


"몰라."


"그게 무슨 소리인 것이냐!"


베로니카가 크게 소리 질렀다. 그러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아있던 태산이 순간 비틀거렸다. 하마터면 떨어질 뻔한 태산의 반응에도 베로니카는 입을 쭉 내민 채 투덜대는 투로 말했다.


"이 방향이 아니라면 우리들은 또 시간을 버리는 것이다. 광장의 승강기가 고장 나지만 않았어도. 우리가 이런 괴상한 것을 타는 일은 없었을 것이도다···."


"이거라도 구한 게 어디야. 그리고 그건 세상이 너무 발전한 거라고. 인간 놈들 제국에 오고 나서 전부 처음 보는 거투성이야. 어떻게 한 번에 던전 근처 마을까지 보내주냐고. 그건 반칙이지."


태산이 그리 말하며 아래를 내려다봤다. 아득 할 정도로 거대한 숲. 길게 펼쳐진 날카로운 나무들이 가시처럼 솟아올랐다. 그 나무들이 길게 이어져 하나의 덩어리를 만들고 있었고. 그 덩어리는 지평선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앞으로 가도, 뒤로 가도 산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광경에 베로니카가 말을 흘렸다.


"그대여. 우린 이대로 미아가 되버리는 것이냐."


"그럴지도."


"그게 무슨 소리냐!"


잠깐의 대화가 이어졌지만.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산의 일정 부분을 넘어가고 나서부터는 갑작스레 조용해졌기 때문이다.


베로니카가 말을 잇지 못한 채 조용히 아래를 내려다봤다. 태산 또한 아무 말 없이 그저 느긋이 아래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펄럭이는 이클립스의 날갯짓 소리와 함께 그들의 귀에 들려오는 것은 이글거리는 불소리. 타닥거리며 튀어 오르는 거대한 불이 환하게 피어올랐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이냐!"


"아무래도 미리 선수 친 놈들이 있었나 본데?"


"아무래도 저쪽인 것 같구나! 미래의 마왕군을 빼앗길 수는 없도다!"


베로니카가 잡고 있던 이클립스의 줄을 더욱 세게 당겼다. 그러자 이클립스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빠르게 하늘을 활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야 이거 너무 빠른 거 아니야?"


"어? 이놈! 멈추거라!"


이클립스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안 그래도 위태롭게 날던 이클립스의 날개에서 우두둑하고 불안한 소리가 나더니. 이윽고 날개가 그대로 부러져버렸다.


그와 함께 이클립스가 추락하기 시작했다.


"으아악! 살려주거라!"


"···. 젠장."


아쉽게도 그들은 하늘을 날지 못했기에 그대로 떨어지는 수밖에 없었다.


"으그극!"


공기저항을 그대로 받은 베로니카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머리가 잔뜩 헝클어졌고. 눈과 입에서 흐른 침과 눈물이 얼굴을 더럽혔다.


차라리 낙법이라도 배웠다면 좋았겠지만. 정말 그들은 그조차 배우지 않았기에 이대로 간다면 바닥에 뭉개져 고깃덩어리가 될 위기에 처했다.


그때 땅바닥에 닿기 바로 직전, 태산의 몸에서부터 검은 무언가가 터져 나왔다. 그 검은 무언가는 기체와 같이 하늘에 가루를 날리며 일렁거렸지만. 동시에 물체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바닥의 충격을 흡수해 줘 다행히 고깃덩어리가 될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쿨럭! 뭐느냐?!"


바닥에 떨어진 베로니카가 빠르게 주위를 둘러보자 아무래도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투성이의 인간계집과 여러 인간이 우릴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앞에는 이상하게 생긴 불덩어리 같은 것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쪽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 하하, 그···. 그렇게 보면 좀 부끄럽도다."


베로니카가 얼굴을 붉히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뒤에서 머리를 긁적이던 태산이 베로니카를 제치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태산은 표정을 구겼다. 그 이유는 주변 황경이 썩이나 불쾌했기 때문이다.


바닥은 얼어있어 미끄러웠고. 공기는 잇김이 나올 정도로 추웠으며. 주변 나무들은 기괴하게 생긴 데다 이상한 마나를 지니고 있어 기분 나빴다.


그때 피투성이의 인간이 큰 소리로 외쳤다.


"피해!"


그와 동시에 태산과 베로니카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와 함께 그것이 빠르게 돌진해 전방에 있던 것을 전부 얼어붙게 했다.


그것을 본 태산과 베로니카가 입에서 소리를 굴리며 말했다.


"이야, 이거 대단한데?"


"생각보다 강력하구나."


이윽고 태산이 어깨를 풀며 그것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허나 아직도 걸음걸이가 어색해서 그런지 걸어가던 중 얼음 부리에 걸려 꼴사납게 넘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모든 걸 보고있던 차나는 혼란스러웠다. 갑작스레 하늘에서 떨어진 인간. 분명 처음 보는 마물에도 쫄지 않고, 오히려 호기심을 가진다고? 애초에 저들이 당장 같은 편이라는 확신도 없었다.


그럼에도 차나는 목이 떨어져 나갈 정도의 큰 소리로 외쳤다.


"그놈은 강해! 도망가라고! 귀먹었냐?! 못 이긴다고!"


차나의 울부짖듯 한 외침에 태산이 발걸음을 멈췄다. 그러곤 발걸음을 돌려 차나에게 다가갔다.


피로 흥건히 샤워를 한 듯한 그녀의 상태를 본 태산은 눈을 구기며 말했다.


"너, 너무 시끄럽다 야. 귀 떨어지겠어."


그와 함께 차나의 정신이 덜컹거렸다. 스위치를 끄듯. 순간 앞이 거멓게 물들었다.


털썩


관절 없는 인형처럼 차나가 힘없이 쓰러졌다. 베로니카는 그런 차나를 나무막대기로 툭툭 건들이며 물었다.


"이거 죽은 것이냐?"


"걔? 안 죽였어. 걘 죽이면 안 돼."


"어차피 인간들은 전부 죽이는 게 아니었던 것이냐?"


"그놈은 건드리면 좀 귀찮아져. 지금 설명할 얘기도 아니고."


"그럼 다른 인간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


그 말에 태산이 들리지 않게 조용한 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그 소리를 들은 베로니카가 미약한 웃음을 지었다.


끝소리를 먹으며 중얼거리던 태산이 다시금 정면을 응시했다. 너머에는 그것이 여전히 이글거리고 있었다. 동시에 차갑게 서리진 것 같기도 하다.


"그놈은 죽이면 안 되는 것이다."


"노력은 해볼게."


태산이 마나를 꺼냈다. 기체 같으면서도, 동시에 고체와 같이 형질감을 가진 그것은. 여전히 이질적인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작가의말

드뎌 나왔다!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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