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괴물은 쉬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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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터치미
작품등록일 :
2024.08.13 20:39
최근연재일 :
2024.09.01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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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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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DUMMY

"윽 더럽도다."


"···. 반박은 못 하겠네."


거대한 장벽 키보렌의 앞에는 여전히 시체가 즐비하다. 바닥에 흐르는 피를 먹어 대던 파리 떼가 오딕스의 앞을 스쳤다.


오딕스는 그런 파리 떼를 보며 경악하듯 표정을 구겼다.


"이걸 어떻게 넘어야할까···."


태산이 짧게 고민했다. 그도 그럴 것이, 높디높은 키보렌은 인간의 몸으로 봤을 때는 답도 없을 정도로 거대했기 때문이다.


"그냥 부숴버릴까."


그리 생각하곤 장벽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태산의 손이 빠르게 뒤틀리며 부글거렸다.


뿌드득


팔이 점점 끓어오르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기괴한 소리를 내며 터져 살점이 흩날렸다.


"어우."


태산의 잘린 팔에서 검은 무언가가 흘렀다. 그것에 끌린 파리가 순간 태산 쪽으로 몰렸으나. 이윽고 그곳에 있던 모든 파리가 전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태산이 팔을 몇번 흔들자 다시금 팔이 자라있었다.


"물리적으로 다가가는 건 안 되겠구나."


뒤에서 보던 베로니카가 말을 흘렸다. 확실히 이전의 태산이라면 이런 벽 따윈 밟고 지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허나 인간의 몸이라면 평범한 방법으로 키보렌을 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악한 것은 쳐낸다. 선한 것은 받아들인다···. 이건 도저히 인간의 기술력이 아닌데?'


벽이 내포한 의미를 파악한 태산은 더욱 단순히 들어가기로 했다.


"후우..."


이전의 몸으로 돌아갈 순 없다. 하지만, 비슷하게 만들 수는 있다.


물론 한번 만들고 나면 한동안은 굉장히 졸리겠지만, 별 수 있겠는가.


태산은 지금까지 모아둔 모든 마나를 풀었다.


몸 전체가 끝없는 어둠으로 물들었다.


심장이 뛰듯, 팽창과 수축이 반복되며 크기가 점차 거대해져 갔다.


그 사이즈가 도저히 끝도 가늠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그 형체는 모습을 드러냈다.


키보렌의 거대한 벽을 가볍게 넘기는 검은 짐승이 깨어났다.



***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도다."


베로니카가 치를 떨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옆에 서 있던 오딕스 또한 퍼렇게 질린 얼굴로 멍때리며 서 있을 뿐이었다.


그 이유는 아마 태산의 이형 몸에 직접 닿았기 때문이다.


보는 것만으로 몸이 떨려오는 그 거대한 형상이 몸의 안을 파고드는 소름 끼치는 경험은 한번으로 족하다. 더 이상은 비슷한 일은 당하고 싶지 않았다.


"마치, 온몸의 치부가 하나하나 만져지는 느낌이었도다···."


"···."


오딕스는 무겁게 소리를 흘렸다. 베로니카의 말에 차마 반박하지 못한 것이다.


그들의 이런 말에도 태산은 바닥에 누워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벽을 넘어온 직후. 태산은 다시금 크기가 줄어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와 동시에 바닥에 철퍽하고 쓰러져 시간이 좀 지난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주위에 시체가 놓여있어도 잘만 자는구나.'


"그건 그렇고, 그... 오딕스여. 이제 슬슬 말을 해도 괜찮지 않겠느냐."


베로니카의 어색한 말에, 오딕스는 아무 말 없이 검은 눈으로 앞만 응시할 뿐이었다.


그런 오딕스의 반응은 벌써 3일이나 이어지고 있다. 그 반응에 베로니카는 슬슬 참는 것에 한계점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게 있다.


그리 생각한 베로니카는 잠시 주위를 둘러봤다.


시체들의 사이로, 알 수 없는 거대한 형체를 볼 수 있었다.


베로니카가 눈을 가늘게 더 자세히 그쪽을 응시하자 그건 육중한 몸을 가진 언데드같아보였다.


그 형체는 힘없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바닥에 검은 피가 흐르는 것을 봐 죽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별로 신경 쓰지 않은 체 베로니카는 깊은 한숨과 함께 중얼거렸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냐."




***



아네슨 영토에서 동쪽으로 걷다 보면 그보다 적합한 이름이 없는 '마지노'란 장소가 존재한다.


마지노는 거대한 바위 위를 점령한 듯 넓게 퍼져있는 주막이었다. 아네슨 영토에서 들를 수 있는 마지막 주막이라는 뜻으로 마지노란 이름을 지닌 것으로 보였다.


물론 걸어오는 과정에서 수많은 마을을 지나치게 되지만, 마차나 말을 타고 이동한다면 무조건 이곳에서 멈출 수밖에 없게 만드는 주막은. 아네슨과 퀘펜의 사이에서 키보렌과 같은 느낌으로 존재하고 있다.


“후우...저 사람들은 뭐지?”


밖에서 마력 향을 피우던 주인이 말을 흘렸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주막을 물려받은 이래 살면서 여러 사람을 봐온 베테랑이었다. 그럼에도 지금 주인의 눈에 들어오는 저 광경은 지금까지 살면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아네슨 영토에서 마지노까지 오는 길에는 시야를 방해하는 다른 방해물이 없기에 이곳까지 올라오는 이들의 모습이 확실하게 보이는 편이었다.


그리고 지금 주인의 눈에 비친 사람은 총 3명이었다.


어리디어린 소녀 한 명과. 헝겊을 뒤집어 쓴 채 키는 가볍게 2M는 넘을 것 같은 사람 하나. 그리고 그 사람의 등에 업혀있는 거지 같은 몰골의 남성 하나.


수상한 사람들은 원래 많은 편이다. 주인 또한 지금까지 주막을 운영하며 여타 신기한 사람들은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주인이 놀란 이유는 그들의 행색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바로, 마지노와 제일 가까운 마을의 거리가 적게 잡아도 50km는 되기 때문이다.


그 거리를 말도 안타고, 쉬지도 않은 체 이틀이 지난 지금까지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아네슨 영토가 쾌적하고 시원한 편이라 해도, 저녁은 춥고. 낮은 더운 곳을 쉬지도 않고 걷는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리 단언한 주인은 오늘치 마력향을 마저 다 피우곤 곧바로 아래로 내려갔다.


그들이 슬슬 주막의 근처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아래로 내려온 주인은 코 앞까지 다다른 이들에게 말했다.


"어서 오세요. 여기가 마지노입니다. 아네슨에서 들를 수 있는 마지막 주막이자 여관이지요."


"···. 그러냐."


여자아이의 반말에 주인이 잠시 당황했으나, 침착함을 잃지 않은 채 말했다.


"이 주막을 넘어가면 바로 퀘펜사막인데. 어찌, 잠시 쉬다 가시겠습니까?"


주인의 살가운 말투에도 소녀는 여전히 표정을 구긴 채 옆에 서 있던 둘을 살폈다.


이윽고 거대한 사람이 고개를 주억이자, 소녀가 말했다.


"알겠도다. 방 하나만 주거라. 돈은 미리 주겠도다."


소녀의 사나운 말투에도 주인은 여전히 미소를 풀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돈이면 뭐든지 됐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불과 이틀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기사처럼 보이는 거대한 이와 부랑자처럼 보이는 남성이 함께 이곳에 들른 적이 있다. 그들 또한 말없이 이곳까지 쉬지도 않고 도착해. 하루 만에 떠난 것으로 기억한다.


뭐,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닐 것이다.




***



"드디어 주막이구나···!"


베로니카가 침대를 보자마자 곧바로 침대를 향해 달렸다. 이전의 여관과는 달리 이곳의 침대는 꽤나 고급져 베로니카를 폭신하게 받아줬다.


침대에 고개를 박은 베로니카는 옆에 멀뚱거리며 서 있는 오딕스에게 말했다.


"그자는 근처 침대에 눕혀두고. 그대도 얼른 쉬거라. 오딕스여."


이름을 불린 오딕스는 아무 말 없이 베로니카의 옆 침대에 그동안 업고 있던 태산을 눕혔다. 그러곤 입고 있던 누더기 같은 헝겊을 벗어 던졌다.


푸른색의 비늘이 방 안의 빛에 맞아 반사되어 무지갯빛을 내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오딕스의 표정이 약간이나마 풀렸다.


인간 마을에서 지내는 동안 맨날 헝겊을 쓰고 있었기에 슬슬 한계가 오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오딕스의 표정은 아직도 어두웠다. 시키는 대로 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시키는 것만 할 뿐. 그 외에는 아무 말 없이 묵묵히 허공만 바라볼 뿐이다.


그 사실을 모르던 베로니카가 아니었기에. 베로니카는 조금이라도 더 침대에 고개를 박고 싶은 욕심을 배재하며 고개를 들었다.


"오딕스여. 불만이라도 있는가?"


걱정심에 물어보는 베로니카의 말에도 오딕스는 여전히 아무 말 없었다.


그 모습에 슬슬 답답함을 느끼던 베로니카가 조금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그렇게 입만 다물고 있으면, 해결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도다."


베로니카의 말에도 오딕스는 아무 말 없이 자연스레 방의 구석으로 가 자리잡았다. 여전히 오딕스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러고보니, 그대는 이 다음으로 뭘 하고 싶으냐?"


"..."


"아, 그렇다면 가보고 싶은 장소라도 있느냐?"


"..."


"...그대여 슬슬 아무 말이나 해보는 게 어떤가."


"..."


베로니카의 끊임없는 말에도 오딕스는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제 한계다.


결국 베로니카는 참지 못한 채 호통치듯 소리쳤다.


"오딕스!"


그와 동시에 곧바로 오딕스에게 달려가 뺨을 때리며 말을 덧붙였다.


"언제까지 그리 아이처럼 나올 것인가! 현실을 직시하거라! 그대의 동족들은 전부 죽었도다! 헌데 그리 기죽은 채로 언제까지 살 것이냐 물었다! 아니면 그대마저 죽을 것이냐?"


숨을 헐떡이며 잔뜩 상기된 채 말을 잇던 베로니카는 다시금 목적을 말했다.


"그대는 짐이 장난같느냐? 이 앞으로는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험난한 여정이 될 것인데 언제까지 계속 그런 태도로 나올 것이냐?! 제발 정신 좀 차리거라! 왜 계속 그대의 동족이 죽은 것을 짐과 저 이의 탓으로 넘기려 하느냐?"


말없이 이야기를 듣던 오딕스의 눈이 더욱 침울해졌다. 자세히 보니 이전엔 없던 다크서클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오딕스는 조용히 시선을 올려 베로니카를 올려봤다. 그 눈빛은 진한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은 베로니카는 그동안 오딕스가 자신을 보던 혐오의 눈빛을 지적하며 말했다.


"그 눈···! 후, 오딕스여. 짐과 저자가 그대를 데려오지 않았다면 그대는 어찌 되었을지 아느냐? 모든 걸 불태운 그대에게 뭐가 남는지 아느냔 말이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인간을 죽인다고 하면, 그대에겐 뭐가 남느냔 말이다!"


그 말에 얌전히 있던 오딕스가 움찔거렸다. 그럼에도 베로니카는 말은 끝까지이었다.


"후회를 살지 말고, 지금을 살거라. 앞을 보고 똑바로 정신을 차리는 것이다. 그대는 강하다. 우리가 그대를 괜히 살려준 게 아니다."


그 말을 끝으로 베로니카는 다시 침대로 돌아가 누웠다. 오늘따라 몸이 무겁게 느껴져 함부로 일어날 수 없었다.


베로니카의 마음은 그동안 응어리진 덩어리를 빼낸 듯 개운했으나.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오딕스는 몸을 웅크리곤 고개를 푹 숙였다. 이는 더 이상 자시니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뜻이다. 이에 그동안 무겁게 닫혀있던 입이 열렸다.


"저도 모르겠어요. 뭐가 어떻게 됐는지 하나도 모르겠단 말이에요."


베로니카는 그 말을 제대로 들었으나,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얌전히 누워 오딕스의 이어지는 말을 경청했다.


"왜···. 나만 산 거죠? 어째서, 왜. 왜! 왜!"


오딕스는 조용히 말을 흘렸다.


"···. 돌아가고 싶어···. 집으로···."


그 소리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말은 없었다. 베로니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그저 아려오는 가슴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소녀 또한 비슷했기에.


작가의말

시간이 너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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