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괴물은 쉬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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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터치미
작품등록일 :
2024.08.13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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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1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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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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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부르디아.


국왕 슈타르크 데이벌른 디 아브렐슈드가 직접 명명한 신비한 식물.


던전에서만 피어난다는 환상의 꽃.말에서 말로만 전해져오는 꽃으로 책에 실리긴 했으나, 그 실체를 본 사람 자체가 거의 존재하지 않기에 몇몇 학자들은 그저 헛소문일 뿐이라고 치부한다는 전설 속 꽃.


엘리슈 제국에서는 이 존재할지도 모르는 꽃에 사람들이 목숨을 내던지고 있다.


그 이유는 국왕이 직접 명을 내렸기 때문이다.


'부르디아를 찾아오는 이에게는 막대한 부와 직위를 하사하겠다.'


이 이야기는 순식간에 제국 전체에 퍼져 용병단을 제외한 수많은 모험가. 유명 길드부터 신생 길드까지.


수백수천의 사람들이 이 부르디아에 목숨을 걸고 찾기 시작했다.


그건 우리 길드. 검은 깃털단 또한 마찬가지였다.


'분명 우리 대원들의 문제가 아니었어. 특출나게 강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디서 얕보이는 사람들은 아니었어. 그럼 뭐가 문제였지?'


타오르는 모닥불을 바라보며 아슈발트는 계속 해서 고뇌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날이 어두워져 주변이 코 앞도 보이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던전에서 밤을 보낼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말이야.'


쌀쌀히 부는 바람이 코를 스쳐 갔다.


그는 바지에 묻은 흙먼지를 털며 일어섰다. 그러곤 주위를 잠깐 둘러봤다.


불안감에 짙은 표정으로 조잡한 장치를 꼭 휘어잡고 있는 대원 베른.


팔에서 흐르던 피는 멈췄지만 안색이 창백한 대원 아인베르츠.


다크서클이 드리운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스태프를 만지작거리는 대원 아크린 펄프.


그리고 나.


심각한 상황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모두가 살아서 나갈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이다.


"아인베르츠. 이리 와보게."


아슈발트는 짧고 굵게 말했다.


팔이 다친 대원.


아인베르츠가 일어나 터벅터벅 걸어왔다.


그의 표정은 무언가를 다짐한 듯했다.아인베르츠가 옆으로 와 앉았다.


아슈발트는 뭔가를 말하기 꺼려하면서도, 침착히 상황을 설명했다.


그 후 나지막이 말했다.


"그럼 아인베르츠. 우리가 모두 살아 나갈 수 있을 거로 생각하나?"


아인베르츠는 탄식섞인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아뇨. 다 죽을 겁니다. 죽는다면 저부터 죽겠죠."


그는 살덩이가 덜렁거리는 자신의 팔을 바라봤다.


붕대로 칭칭 감았지만, 그 너머로 살이 너덜너덜한 게 보일 지경이었다.


그는 고통을 감내하며 마저 말을 이었다.


"대장. 우리는 나방이었던 겁니다. 부르디아라는 불에 몸을 던진 작고 약한 나방···."


아슈발트는 조용히 그 말을 들으면서 모닥불에 마른 땔감을 밀어 넣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을 보며 그는 아인베르츠의 말을 되뇌었다.


"나방···. 나방이라···."


중얼거림을 뒤로하고, 아슈발트는 옷깃 소매에서 뭔갈 꺼내 아인베르츠에게 건내며 말했다.


"아인베르츠. 그대는 부르디아가 실존한다고 생각하나?"


그의 말에 아인베르츠는.


"그딴 게 있겠습니까."


라고 되받아쳤다. 그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하면서도. 절망적이었다.


모든 걸 포기한 표정이었다.



***



잠에서 깼을 때는 아직 한참 밤이었다.


소녀는 천막에서 천천히 기어 나왔다.


온몸이 땀으로 축축이 젖어 기분 나빴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소녀는 숨을 헐떡이며 허공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악몽을 꾼 모양이었다.


빠른 속도로 쿵쾅대는 심장은 소녀에게 방금 꾼 꿈이 사실이라 말하는 듯 보였다.


소녀는 손으로 가슴을 몇 번 내리쳤다.


그러고는 차오르는 눈물을 차마 닦아내지 못해 흑흑거리는 소리와 함께 속으로 되먹으며 중얼거렸다.


"짐은... 어째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냐."


짧은 외마디와 함께 무언가가 달빛에 비췄다.


그것은 거대한 체구의 그림자로 소녀를 가렸다.


그 사이즈는 가히 성벽만 한 체구였다.


소녀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애써 땅바닥만 바라봤다.


그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놈은 뭐냐?"


저음보다도 더 낮고, 두꺼운 목소리였다.


무엇보다 인간의 언어가 아니었다.


그것은 흥미롭다는 듯 그르렁거렸다.


그러곤 거대한 몸을 움직였다.


한번 움직이는 것만으로 땅바닥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그것은 소녀의 바로 앞에서 멈췄다.


"고개를 들어라."


그것의 말에 소녀는 빠르게 고개가 들렸다.


본인의 의지가 아니었다.


마치 공기가 의지를 갖고 머리끄댕이를 잡아당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건 마치.


용언.


소녀가 본 그것은 수 천개의 비늘로 뒤덮인 파충류였다.


붉은색과 푸른색이 동시에 빛나는 신비하면서도 두꺼운 비늘.


피는 것만으로 눈이 가득 메워지고도 남는 두 짝의 날개.


거대한 나무 같은 팔과 다리.


그리고 길게 쭉 튀어나온 주둥아리에 4개의 눈동자.


노란빛으로 빛나는 4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소녀를 내려다봤다.


그 매서운 시선은 위압감마저 느껴질 정도의 시선이었다.


마치 주변의 공기가 순식간에 무게를 가지게 된 느낌이었다.


"어째서 그대가 이곳에 있는 것이냐."


드래곤은 본래 자신의 둥지를 지키는 생물.


허나 이 근처에는 둥지를 지을만한 장소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고지대에 사니까.


그렇다는 건 지금 둥지를 버리고 이곳까지 내려왔다는 것이다. 설마 도망친 건가? 그 드래곤이?


"그게 중요한가?"


심기가 불편한 듯 그것의 목소리는 한껏 더 낮아져 있었다.


그 말에 온몸이 짓눌리는 듯했다.


컥 하는 소리와 함께 소녀는 부들부들 떨었다.


그것의 말 한마디에 숨쉬기조차 버거웠다.


"살고 싶은가?"


드래곤의 말에 소녀는 대꾸하지 않았다.


다크서클이 짙은 눈으로 얌전히 드래곤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그러자 드래곤은 재밌다는 듯 아가리를 길게 찢어 웃었다.


그것의 눈빛은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 그렇구나. 그렇다면 여기서 내가 너를 먹어버린다면, 너는 어떻게 반응할까. 굉장히 기대되는구나."


드래곤의 시선이 마지막에 소녀가 아닌 어딘가를 향한 듯싶었다.


그것은 거대한 아가리를 쩍 벌렸다.


온천 향이 났다.아가리에서부터 침이 길게 늘어졌다.




소녀의 얼굴에 침이 뚝뚝 떨어졌다.


소녀는 그것을 가만히 맞으면서도 눈가에는 아무런 빛이 들지 않았다.


소녀는 얌전히 눈을 감았다. 자신이 생각하던 죽음은 아니었지만, 이것도 괜찮으리라.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가 귓가에 가득 찼다.




무언가가 소녀의 앞에서 빠르게 멈췄다.


거대한 바람이 소녀를 스쳐갔다.


깜짝 놀란 소녀는 빠르게 눈을 떠 앞을 바라봤다.


푸른 밤하늘. 셀 수 없을 정도의 별들. 거대한 달빛 아래.


바람에 실렁거리는 잡초들. 그리고 기사.


어디선가 나타난 낡은 갑주를 입고 있는 기사가 소녀의 앞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다.


그것의 해진 검과 드래곤의 아가리가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그는 날이 다 나간 검을 드래곤의 아가리에 찔러넣었다.


피가 울컥하고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붉은색의 방울이 하늘에 떠 오르고, 푸른색의 달빛에 맞아 희미하게 빛나니 그 광경은 흡사 그림 같았다.


드래곤은 큰 굉음을 내지르며 빠르게 뒤로 빠졌다.


그 기사는 검에 묻은 피를 탁탁 털어내며 정면을 바라봤다.


2m의 체구.소녀는 단번에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깨달았다.


"···. 죽음?"


드래곤이 말했다.


"역시 네놈이 나오는구나. 그림자에 숨어 음침하게 보고만 있을 줄 알았다. 네놈은 뭐냐. 죽어서까지 지키려 하는 것이냐?"


퉤 하고 피를 뱉었다. 상처는 흔적도 남지 않았다. 드래곤의 치유력이었다.


언데드 기사는 빠르게 도약해 순식간에 드래곤의 앞까지 달려갔다.


그러곤 칼로 다리를 내리찍었다. 허나 무딘 칼은 박히긴 커녕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힘을 견디지 못한 칼은 이내에 뽀각하는 소리와 함께 부러졌다.


드래곤이 기사를 걷어찼다.


차마 피하지 못한 기사는 뒤로 던져지듯 날아갔다.


데구르르 하고 땅바닥에 몇 번 구른 기사가 몸을 일으키자 울컥하고 갑옷의 이음 세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갑주의 가슴 부분이 심히 파여있었다.


그가 언데드가 아니었다면 진즉에 죽었을 것이다.


"생각보다 단단하구나. 좋다."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기름 향이 코를 가득 메웠다.


드래곤의 아가리가 이글거렸다.


그것을 알아차림과 동시에 아가리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그 모습은 거대한 화산이 폭발하는 느낌이었다.


기사는 팔로 얼굴을 막은 채 버텨보았지만, 불의 온도를 견디기에는 몸이 너무나 허약했다.


갑주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불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갑옷은 더 이상 버틸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투구가 떨어졌다.


짙게 깔린 은은한 달빛 아래 언데드 기사의 얼굴이 훤히 드러났다.


긴 흰색 머리. 얼굴을 가로지르는 큰 흉터. 각진 얼굴. 용맹한 눈동자.


이미 죽은 자였음에도 얼굴에 생기가 가득 차 보이는 얼굴이었다.


소녀는 그것을 똑똑히 지켜봤다.


그러자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이 맞춰지자, 소녀의 눈가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소녀는 짧게 읊조렸다.


"···. 맥 클라인 장군."


어째서 이걸 잊고 있었던 거지? 아니, 나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있었던 거지?


짧은 물음을 끝으로 소녀가 맥 클라인 장군이라 명명한 존재는 녹아내렸다.


살이 타들어 갔고, 뼈가 녹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녀의 눈가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동안 꾹 눌러놨던 것이 그대로 폭발해 버린 것이다.


"안된다···. 안된다! 그대는 짐을 지켜야 하지 않는가!"


소녀의 감정 섞인 목소리에도 맥 클라인 장군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한 줌의 가루가 되어 흩날릴 뿐이었다.


드래곤의 브래스가 끝나자, 맥 클라인 장군은 바닥에 그을린 흔적만을 남긴 채 사라졌다.


"시시하구나. 역시 이곳은 나랑 어울리지 않아."


드래곤의 입가에서 검은 연기가 새어 나왔다.


그때 소녀가 살기 어린 눈으로 드래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짐이 무조건 죽일 것이다! 알겠느냐!"


소리를 내지르는 소녀의 울분에 드래곤이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동요하는구나."


그 말과 함께 드래곤은 짧고 나지막이 말했다.


"살고 싶은가?"


히히덕거리며 웃었다. 정말이지 오만한 종족이다.


"짐은 살아야 한다. 아니, 살 것이다."


소녀의 눈엔 결의가 가득 찼다. 피부에 생기가 돌았다.


"그런가?"


드래곤의 짧은 말과 함께 그것은 빠르게 달려들었다.


거대한 아가리를 쭉 찢어 소녀를 향했다.


소녀는 가만히 서 그것에 대응하며 크게 소리쳤다.


"아아아악!"


서로의 눈이 마주한다. 그는 곧 죽음을 의미한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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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13 폭거
    작성일
    24.08.18 01:27
    No. 1

    작가님 글에 대해 조예가 깊으시네요!! 앞으로도 화이팅 입니다! 완결까지 가보자구요!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 돈터치미
    작성일
    24.08.18 02:53
    No. 2

    제 글을 재밌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제 글에서 뵐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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