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괴물은 쉬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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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터치미
작품등록일 :
2024.08.13 20:39
최근연재일 :
2024.09.01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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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1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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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DUMMY

"죄송합니다."


피거스가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는 고개가 무겁다는 듯 잔뜩 표정을 구기며 얼굴을 들지 못했다.


"침입자인 줄 알았다고. 그야 둥지에 들어와 있었으니까."


"륜!"


피거스의 말에 슬금슬금 상황을 빠져나가려던 암컷 레트. 륜은 억울하다는 듯 표정을 썩히며 무릎을 꿇은 체 바닥만 바라봤다.


"죄송합니다."


피거스가 연신 사과했다. 그러자 목에 붕대를 감고 있던 오딕스가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는 뜻을 보였다. 그럼에도 피거스는 무거운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마치 무거운 돌이 피거스의 머리를 짓 누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옆에 있던 륜은 여전히 씩씩거리며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피거스. 우리가 왜 계속 이렇게 있어야 해? 저놈이 괜찮다잖아."


"륜. 지금은 사과하는 게 맞아."


"우리가 이렇게 고개 숙일 정도로 잘못한 거야? 따지고 보면 저놈들이 둥지에 먼저 들어온 거잖아."


그와 동시에 륜은 고개를 치켜들어 피거스를 째려봤다. 그러곤 모든 레트들이 알고 있는 사실을 말했다.


"남의 둥지에 함부로 쳐들어오는 건 중죄야! 심지어 아이가 있는 둥지라면 더욱 큰 죄고!"


륜은 잔뜩 흥분한 듯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자 얌전히 말을 듣고 있던 피거스가 부들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륜! ...나가 있어."


"..."


피거스의 말에 륜은 표정을 잔뜩 구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곧바로 날카로운 눈으로 창가 쪽에 앉아 있던 베로니카를 노려봤다. 그 시선을 눈치챈 베로니카는 차분한 눈길로 륜을 바라봤다.


두 시선에 알 수 없는 분위기가 생기자, 결국 피거스가 일어나 륜과 아이를 밖으로 내쫓았다.


륜이 나가자 후끈거렸던 분위기가 얼음장처럼 식었다. 가시방석과 같은 분위기에 안절부절못한 오딕스는 영혼이 나간 표정으로 멍하니 베로니카를 봤다.


베로니카는 여전히 어딘가 차분하면서도 차가운 표정으로 이미 어둑해진 창밖으로 보며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후우...죄송합니다."


피거스가 또다시 사과를 입에 담았다. 그러자 얌전히 이야기를 듣던 베로니카가 입을 열었다.


"그대여. 사과는 이제 그만하거라. 시끄럽구나."


그 모습은 베로니카였으나. 베로니카 같지 않았다.


아이 같았던 분위기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오히려 이 모습이 본 모습이라 할 정도로, 베로니카는 굉장히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


모두가 당황한 듯 얌전한 침묵이 길어지자, 베로니카가 피거스를 보며 말했다.


"피거스여. 아를로트 경은 어디 있는가."


"네?"


"두 번 말 하지 않겠도다. 아를로트 경은 지금, 어디 있는가?"


"아... 아."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한 피거스는 곧바로 말했다.


"아를로트 경은... 지금 안 계십니다. 사냥에 나가셔서, 아마 내일 점심쯤에 돌아오실 겁니다."


"그런가?"


말이 끝나자, 베로니카는 곧바로 딱딱한 돌소파에 드러누웠다.


"불 끄거라. 졸립구나."


그 모습은 오딕스 또한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차갑다 못해 싸늘할 정도의 베로니카는 처음 봤다. 이건 완전히 다른 이가 아닌가.


그런 오딕스의 눈에 비친 것은 베로니카의 목덜미에 은빛으로 일렁거리는 무언가였다.


반딧불의 빛에 맞아 환하게 빛나는 역십자가의 로사리오는 흉흉한 무언가를 내뿜는 듯 보였다.


그것을 봤음에도 오딕스는 얌전히 시간이 넘어가길 바랄 뿐이었다.




***




따사로운 햇볕이 은은히 내리쬤다. 눈가에 훤히 들어오는 빛에 오딕스가 눈을 비비며 흐느적거리는 몸을 일으켰다. 자연스레 하품을 내뱉으며 주위를 둘러보자, 오릭스는 이내에 정신이 찌릿거렸다.


그 이유는 베로니카가 섬뜩할 정도의 무표정으로 단검 여러 자루와 동그란 구를 정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에 오딕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동안 닫고 있던 입을 열었다.


"그걸···. 왜 챙기시는 거예요?"


오딕스의 물음에 베로니카는 마치 당연한 말이라는 듯한 어투로 말했다.


"짐의 무기이니라. 뭐, 여차할 때는 이것을 쓰게 될 것이다. 오딕스여 그때는 짐의 말을 잘 따라야 하는 것이다."


"네? 잠시만요. 싸운다고요?"


"확정은 아니느라. 하지만 아를로트 경이 짐의 말대로 따라주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아뇨···. 잠시만요. 뭔가 이상하잖아요."


오딕스가 이상함에 이의를 걸었다. 그러자 베로니카가 닦고 있던 구를 책상에 내려놓으며 차분히 말했다.


"오딕스여. 그대는 짐을 뭐라 생각하는 것이냐. 짐은 마왕이니라. 그러니 착각하지 말거라."


그와 동시에 베로니카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마왕은 뭐든지 가지는 것 이느라. 그것이 힘이든, 부하든, 무엇이든 말이다."


"이건 아닙니다. 적대적으로 나온 것도 아니고, 심지어 우리에게 해를 끼친 건 전혀 없지 않습니까!"


오딕스의 큰 외침에도 베로니카는 여전히 굳은 표정을 한 체 장비를 챙길 뿐이었다.


베로니카는 소매에 단검 여러 자루와 100cm 정도 되는 장검 하나. 그리고 붉은 빛으로 빛나는 원형의 구 하나를 챙겨 들었다.


그러곤 지금껏 숨겨왔던 뿔을 드러내며 말했다.


"가자꾸나. 슬슬 도착했을 것이다."


말과 함께 베로니카는 곧장 방을 나섰다. 오딕스는 정말 가기 싫었으나, 이대로 베로니카를 냅뒀다간 큰 일이 벌어질 것을 알았기에 무거운 발을 떼 베로니카를 따라나섰다.


해가 중천에 뜬 퀘펜사막은 아무리 산맥이라 할지라도 끔찍할 정도로 더웠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인공적인 돌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줘 숨은 쉴 수 있을 정도라는 것이었다.


오딕스는 숨을 헐떡이며 베로니카를 따랐다. 베로니카 또한 얼굴에 땀이 맺힐 정도로 더워 보였으나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은 채 길을 따라 광장 쪽으로 향했다.


거대한 광장에 다다르자 길게 쭉 뻗은 큰 호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천장이 뚫려있어 환한 빛이 비쳐 들어와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호수는 도저히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었다.


호수의 주변에는 높게 솟아오른 회색빛의 건물들이 존재했다.


호수를 둘러싸듯 존재하는 건물들의 높이는 지금껏 봐온 건물 중에 가장 높았다.


그곳에는 여러 레트들이 모여있었다.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레트 부터 헝겊 같은 옷을 입고 있는 레트까지. 가지각색의 레트들이 호수를 중심으로 모여 여러 생활을 하는 듯 보였다.


형형 각색으로 빛나는 호수는 보는 것만으로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으나 오딕스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불안감이 싹텄기 때문이다.


길을 걷다 보니 하늘에서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베로니카가 고개를 들자, 이내에 빠르게 하늘로 내려온 그는 피거스였다.


피거스는 바깥을 돌아다니는 베로니카를 보곤 당황한 눈치를 보였다. 그럼에도 베로니카는 나지막이 말할 뿐이었다.


"아를로트 경은 어디 있는가?"


베로니카의 말에 잠시 뜸을 들이던 피거스는 이윽고 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안 그래도 방금 막 도착하셨어요. 근데···. 그건 뭡니까."


피거스의 시선이 베로니카가 들고 있던 장검과 구에 머물렀다. 그 시선을 눈치챘음에도 베로니카는 태연히 말할 뿐이었다.


"아. 이것 말인가. 별것 아니도다. 그쪽에서 잘만 나와준다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네···?"


"맞다. 그러고 보니 륜이라는 자가 그대를 찾고 있었도다. 얼른 집으로 가보는 것이 어떠하느냐."


"네? 륜이요?!"


그 말에 피거스가 곧바로 날개를 활짝 폈다. 그러곤 곧바로 하늘로 활공하더니 이내에 시야의 밖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던 오딕스는 이상함에 입을 뗐다.


"···.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우리, 그런 말 들은 적 없잖아요."


그 말에 베로니카가 감흥 없이 말했다.


"그대여. 저자는 귀찮도다. 혹시라도 있을 일에 방해되지 않도록 멀리 때어놓는 편이 좋도다."


그리 말하곤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태연하다 못해 이상한 괴리감마저 느껴질 정도의 광경에 오딕스는 확신이 들었다.


지금의 베로니카는. 자신이 알던 베로니카가 아니다.


생각을 마치자, 그들은 곧바로 아를로트를 만날 수 있었다.


본래 레트들이라 한다면 평균 크기가 인간과 비슷하거나 더욱 작았지만. 베로니카와 오딕스의 앞에 선 그자는 얼추 보아도 키가 태산보다도 컸다.


그와 동시에 얼굴과 몸 근처에 자잘한 흉터가 슬어있었고. 얼굴에 드리운 진한 노련함은 그를 처음 본 오딕스 조차 자신의 앞에 있는 자가 아를로트라고 깨달을 정도였다.


이윽고 그의 뒤에 있는 거대한 무언가를 보자 오딕스의 표정이 심히 굳었다.


처음봤을 때 벽인 줄 알았던 그것은 노란빛을 띠는 육중한 살덩이. 이전 자신들을 끈질기게 쫓아왔던 샌드웜의 사체였다.


족히 5m는 되어 보이는 그것을 아를로트는 무심한 듯 줄로 묶어 바닥에 질질 끌고 다녔다.


그때 아무 생각 없어 보이던 아를로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오, 너는 아르테메아서스 쪽 꼬맹이 아니냐."


아를로트는 베로니카를 아는 듯 보였다. 그건 베로니카 또한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이구나. 아를로트 경."


"확실히···. 오랜만이지."


짧게 베로니카의 말에 답하던 아를로트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그래, 오랜만인 건 오랜만인데. 일단 그 칼은 치우고 얘기하는 건 어떤가?"


아를로트가 날카롭게 베로니카가 들고 있던 장검을 쏘아봤다.


"...그러자꾸나."


결국 말에 못 이기는 척하며 베로니카는 칼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 행동을 본 아를로트는 그제야 조금 의심이 풀린 듯 조금은 유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그렇고. 마왕 성에 있어야 할 꼬맹...아니 아가씨가 이곳엔 무슨 일이십니까."


"그대를 보러 왔도다."


"이거 참 영광이군요."


설렁거리며 대꾸하던 아를로트는 이윽고 표정이 점차 굳어갔다. 그 이유는 베로니카의 표정을 읽었기 때문이다.


베로니카의 표정에는 한 치의 허투나 거짓말도 없었다.


"이전 짐의 아비 마왕군 수문장 출신. 하늘을 걷는 자 아를로트여.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도다."


베로니카는 덤덤히 말했다.


"짐의 마왕군에 들어오거라."


작가의말

나른한 오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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