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시청 웹소설국 로맨스판타지과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새글

견내리화
작품등록일 :
2024.08.17 21:54
최근연재일 :
2024.09.19 17:01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265
추천수 :
15
글자수 :
118,664

작성
24.09.16 17:20
조회
3
추천
0
글자
11쪽

23) 노인

DUMMY

“그러니까 어떤 미친놈···, 아니 악의 무리들이 업무 방해와 직원 위협을 했다는 건가요?”


“그렇죠!”


안립 팀장이 박수를 치며 맞장구를 쳤다. 심각한 이야기인데 왜 이렇게 해맑냐.


“뭐 하는 놈들이길래 우리를 방해해요? 플루토키아 씨는 왜 건들고요?”


줄곧 조용했던 낙뢰 과장이 타자를 잘못 친 듯, 백스페이스 키를 연달아 누르며 말했다.


“저승시청 안에서 웹소설국을 탐탁지 않게 보는 이들은 많이 있어요. 가끔 이런 방해 공작이 들어오지요.”


왜? 옛날에 웹소설국이 미움이라도 샀나? 나는 눈을 끔뻑이며 낙뢰 과장에게 되물었다.


“···망자가 제2의 삶을 개척하는 중요한 업무를, 본인 눈에 거슬린다고 이렇게 망가뜨리려 든다고요? 직원 하나 아프게 하면서?”


“이승이든 저승이든 속 좁은 인간들은 널렸으니까.”


낙뢰 과장이 스산하게 웃었다. 묘하게 악에 받쳐 보이는데. 평소 온화했던 그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어, 나도 모르게 안립 팀장 뒤로 슬쩍 숨었다.


“어디 신고라도 못 하나요?”


“노골적으로 방해한 게 아니라서 대응이 힘들어요. 또 이런 일은 윗분들이 눈감아주는 경우도 많고···. 항의는 넣긴 했지만요. 증거 불충분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아무래도 크달까···.”


말꼬리를 흐리던 안 팀장이 어깨를 쭉 폈다. 일부러 한 톤 올린 목소리가 유독 낭랑하게 들렸다.


“뭐, 데이지 황녀 이야기에 약간의 억지는 생겼지만 결말은 잘 마무리됐어요. 황녀를 죽이려는 이들도 제압되었고, 3 황자가 약초 군락지를 찾아 전염병 치료제를 만드는 데에 성공했거든요.


이제 억지스러운 화재와 반동분자의 등장은, 과장님이 잘 포장해서 웹소설로 쓰실 일만 남았죠.”


“···외전도 남았어.”


순식간에 평소 모습으로 돌아온 낙뢰 과장이 책상에 축 늘어졌다. 틱X 즐겨보는 청소년이 공부하기 싫어 뭉그적대는 것 같군. 어쩐지 나도 마음이 약해졌다.


창작의 고통에 몸부림치는 상사를 지켜보던 안립 팀장이 아주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난 과장 아니어서 다행이다.”


그걸 부하직원 앞에서 말해도 되냐. 나는 허허 웃으며 안 팀장을 따라 사무실을 나갔다.


운 좋게도 엘리베이터는 우리 층에 멈춰있었다. 내가 버튼을 누르자 경쾌한 알람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저희 어디로 가면 되나요?”


“1층이요. 거기에 병실이 조그맣게 마련되어 있거든요. 그 뭐냐, 이승 학교에 있다는 보건실 같은 느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안 팀장도 내 뒤를 따라 안쪽에 발을 디뎠다.


“엘리베이터 오랜만에 타보네요, 평소에 계단으로 다녔더니.”


어쩐지 설레어하는 말투다. 나는 1층 버튼과 닫힘 버튼을 연달아 누르며 물었다.


“평소에 운동하시나 봐요? 계단 은근히 힘들던데.”


근육이 적당히 붙은 안 팀장의 팔뚝을 보고 있자니 내심 부러워졌다. 타고난 근수저라는 게 이런 걸까.


뼈만 있는 것 같던 설 팀장과 확실히 캐릭터는 다르다, 하고 스스로 납득하고 있을 때 태연한 말이 들려왔다.


“아~, 따로 운동하는 건 아니고, 제가 엘리베이터 버튼이나 문짝을 여러 번 부숴 먹어서 금지 먹었거든요. 지금 이거 타고 있는 것도 들키면 안 돼요.”


왓 더···? 아니 마지막 말 뭔데? 천장에 달린 CCTV는 장식이야? 졸지에 조력범이 된 나는 경악에 차 추궁했다.


“왜 뿌수셨어요?”


내 반응에 살짝 당황한 안 팀장이 손을 이리저리 휘저어 보였다.


“아니 잠깐만, 그런 눈으로 보지 마요! 난 그저 엘리베이터를 사용하기 위해 버튼 좀 누르고, 너무 천천히 열려서 좀 당겼을 뿐이라고요! 그랬더니 제멋대로 부서지던데요!”


“힘이 얼마나 장사이신 거예요!?”


나도 모르게 비꼬는 말이 나갔지만, 안 팀장은 단 1도 신경 쓰지 않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제 별명이 ‘아기장수 안투리’거든요. 힘쓰는 일은 좀 자신 있죠. 엘리베이터는··· 아무래도 생전에 사용해 본 적이 없다 보니, 작은 비극이 몇 번 일어났을 뿐이에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저승사자 태반이 생전 엘리베이터 사용은커녕 발명되기도 전에 눈 감은 양반들일 텐데!


안 팀장 정도면 저승사자들 중에서도 젊은 축에 속하지 않나? 고조선과 통일신라를 생각하면 대한제국 정도야 아기로 보인다.


벽에 이마를 박고 싶어지는 충동이 일었지만, 다행히 실행으로 옮기기 전에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문이 열리자마자 머리만 내밀어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후다닥 내렸다.


난 아직 이 건물 1층을 제대로 둘러본 적이 없었다. 매일 출퇴근하면서 엘리베이터 버튼 누르느라 바빴지.


잠시 목적지를 잃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어두침침한 로비가 서늘하게 느껴져 팔뚝에 닭살이 돋았다.


어디가 병실 쪽일까, 하고 주변을 휘둘러보는 사이 안 팀장이 느긋하게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어디 으슥한 구석으로 날 이끌기 시작했다.


“1층에 편의점도 있는 거 알아요?”


“편의점이요??”


야, 저승에 진짜 별 게 다 있다. 농담이 아니라 장례식장 빼곤 이승에 있는 것들 여기에도 있을 것 같은데?


“저승사자들이 잠도 식사도 불필요한 존재긴 한데, 생자 시절에 자고 먹는 습관을 들였다 보니 종종 찾는 경우가 있거든요. 심신 안정용으로 만들었다고 해요. 가서 음료수병이라도 사서 가죠.”


어, 음, 아. 무슨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르겠군. 나는 최대한 예의 바른 표정을 짓기 위해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도 저승사자 복지를 아예 안 챙겨주는 건 아닌가 봐, 일을 24시간 365일 돌리긴 하지만···.


안 그래도 어두운데, 천장에 달린 형광등 불빛이 점차 옅어지기 시작한다. 어쩐지 공포영화 촬영장을 걸어 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저승 시청 안에 있는 편의점은 예상한 만큼 허름했다. 이승처럼 삐까뻔쩍한 브랜드 편의점이 자리 잡은 게 아닌, 어디 미국 시골 국도에 덜렁 놓인 주유소 편의점 같은 외관이었다.


온 세상이 좀비로 뒤덮인 아포칼립스 세계관에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폐쇄된 편의점을 찾아가는 듯한 느낌.


난 머릿속에서 좀비의 머리를 효율적으로 후려칠 수 있는 무기들을 상상하며 조심스럽게 문손잡이를 당겼다.


문에 다닥다닥 붙어 있던, 잉크가 다 날아가서 내용을 전혀 알 수 없는 신문 기사 스크랩 조각들이 서로 부딪혀 파닥파닥 요란한 소리를 냈다.


그 소란에 카운터에 앉아 있던 노인이 고개를 들어 우릴 발견했다. 나는 읽던 책을 신경질적으로 탁! 접는 소리에 움찔했지만, 안 팀장은 떳떳하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무천 선생님. 병문안용 음료 세트 사러 왔어요.”


그 말에 노인이 고개를 끄덕하더니 도로 책을 펴 읽기 시작했다. 안 팀장은 카운터가 보이지 않는 구석으로 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여기 올 땐 살 것을 미리 저 선생님께 말해두는 게 좋아. 안 그러면 계속 쳐다보시거든.”


“왜요?”


“본인 영역인 편의점에 누가 들어오는 걸 싫어하셔. 그나마 온 목적을 알고 나면 덜 쳐다봐.”


뭐? 편의점에 손님 오는 걸 싫어하면 장사를 어떻게 해? 나는 목소리를 낮추다 못해 입모양으로만 말하며, 최대한 손짓발짓으로 의문을 재기했다.


“옛날 분이시니까 네가 이해해.”


꼰대 같은 발언에 숨이 턱 막혔다. 설 팀장이 저런 말을 했다면 충격이 덜 했을 텐데, 안 팀장이 하니까 타격이 있다.


나는 살짝 실망스러운 기분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렇지만 안 팀장의 이어진 말에 도로 고개를 번쩍 들렸다.


“동예 출신이시거든. 거긴 책화 문화가 있었잖아.”


“어우···, 진짜 옛날 분이시네요.”


고조선과 삼국시대 사이에 배우는 나라가 옥저, 동예 이런 나라였지. 저 영감님이 낙뢰 과장보다 연하구나···.


공무원 시험 준비하면서 외운 기억이 있다. 동예는 책화라고, 남의 마을을 멋대로 침입할 시 재물로 보상하는 문화가 있다고 그랬지.


이 편의점은 저 어르신의 마을인 셈인가 보다. 그치만 장사는 해야 하지 않것어요···?


나는 먼지가 살짝 앉은 음료 세트를 이리저리 꺼내 보는 안 팀장의 어께 너머로, 패키지들의 이름을 읽었다.


토마토, 알로에, 사과, 포도, 종류도 많다. 견과류도 있고. 나는 팔을 뻗어 유달리 붉은 패키지 팩을 집어 들었다. ‘석류즙’이라는 글씨가 궁서체로 크게 적혀있었다.


무심코 평소 버릇처럼 패키지 구석에 적힌 원재료명 리스트를 읽다, 특정 단어를 보고 시선이 덜컥 멈췄다.


석류추출액(그리스저승산)


“···?”


석류도 저승산도 있냐는 원초적인 질문은 고사하고, 나한테 굉장히 위험한 음료 아닌가?


석류는, 저승의 왕 하데스가 페르세포네를 꼬셔 지하로 데려오고, 다시 이승에 못 가도록 먹였던 과일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한 모금이라도 마셨다간 영원히 퇴근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액체를 도로 내려놓았다. 안 팀장은 종합 음료 세트와 알로에 세트를 들고 고심하느라 바빠 보였다.


“플루토키아는 알로에가 어울리지 않나요? 청초하게 생겨서 싱그럽잖아요.”


나는 잠시 머리를 굴려 ‘지금 옷 고르냐? 먹을 걸 골라야지!’를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플루토키아 씨가 알로에 맛을 좋아하시나요?”


잘 모르겠네, 하고 중얼거리던 안 팀장은 결국 무난한 종합 음료 세트를 들고 카운터에 갔다.


무천이라 불렸던 노인이 무뚝뚝하게 “5000만 원.”이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저승 물가가 미쳤나, 하고 눈을 땡그랗게 뜨다가 안 팀장이 태연하게 5천 원을 주는 걸 보고 진정했다.


미세하게 참고 있던 숨은 편의점 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쏟아져 나왔다.


“무뚝뚝한 분이라 처음이 어렵지, 자주 보다 보면 편해질 거야.”


안 팀장의 말에 입을 삐죽였다. 앞으로 편의점 갈 일은 아마 없을 것 같은데.


플루토키아에 있던 병실은 편의점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미세하게 형광등의 불빛도 밝아졌다.


내 앞에 선 안 팀장이 문에 노크를 두어 번 했지만 반응이 없었다.


“플루토키아 씨?”


어리둥절해 보이는 안 팀장과 눈이 마주쳤다. 내 표정도 별반 다를 바 없을 것 같군.


나는 손가락만 꼼질거리다, 안 팀장이 내 뒤로 물러난 틈을 타 앞으로 나서 문을 열어버렸다.


그리고 예상외의 풍경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




작가의말

추석 당일인 내일(9/17)은 휴재입니다.

18일부터 더 좋은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즐거운 추석 보내시길 바랍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저승시청 웹소설국 로맨스판타지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5 24) 환자 NEW 12시간 전 2 0 11쪽
» 23) 노인 24.09.16 4 0 11쪽
23 22) 생각 24.09.12 6 0 11쪽
22 21) 화재 24.09.11 10 0 11쪽
21 20) 영웅 24.09.10 9 0 12쪽
20 19) 친우 24.09.09 9 0 11쪽
19 18) 황자 24.09.06 10 0 11쪽
18 17) 간섭 24.09.05 9 0 12쪽
17 16) 서천 24.09.04 12 0 12쪽
16 15) 꽃밭 24.09.03 9 0 11쪽
15 14) 마석 24.09.02 9 1 11쪽
14 13) 간호 24.08.30 12 1 11쪽
13 12) 업무 +1 24.08.29 10 1 10쪽
12 11) 청춘 24.08.28 11 1 11쪽
11 10) 사진 24.08.27 11 1 11쪽
10 9) 사과 24.08.26 11 1 10쪽
9 8) 면담 +1 24.08.23 12 1 11쪽
8 7) 중립 24.08.22 12 1 11쪽
7 6) 조작 24.08.21 11 1 11쪽
6 5) 알현 24.08.20 11 1 11쪽
5 4) 조연 24.08.19 12 1 10쪽
4 3) 최악 24.08.18 13 1 11쪽
3 2) 작명 +1 24.08.18 15 1 10쪽
2 1) 면접 24.08.17 16 1 10쪽
1 프롤로그 +1 24.08.17 20 1 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