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예전에 미궁에서 탈출하는 법이라는 글을 본 기억이 있다.
몇 가지 방법이 있었는데 기본은 벽에 오른손이나 왼손을 올리고 벽을 따라 걷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곳은 미궁이라기에는 확 트인 공간인 것 같기는 하지만 시야가 제한되어 있기에 공간의 구조를 확인하는 용도로 쓰기에는 적절한 방법일 것 같았다.
그래서 난 일단 왼쪽 벽면에 손을 올리고 벽면을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장갑을 끼고 있어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벽면이 꽤나 매끈한 게 세심한 가공이 가해져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곳을 만든 이들은 꽤 높은 수준의 문명을 영위하지 않았을까?
이곳을 만든 이들에 대해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벽이 꺾이는 지점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한 500걸음 정도 걸은 것 같은데 뭘 하려고 이렇게 넓은 공간을 만들어 둔 걸까?’
모서리를 따라서 걷다 보니 반쯤 열려있는 문이 보였다.
조심스럽게 안쪽을 살펴보자 무기를 들고 있는 동상 같은 것들이 눈에 보였다.
들여다봐도 특별한 움직임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난 천천히 안쪽으로 걸음을 옮겨갔다.
그러자 밖에서는 안 보였던 스켈레톤들이 슬금슬금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이곳에 있는 스켈레톤들은 멀쩡한 사지를 가진 놈들이 아니었다.
어딘가 한 부분 부족하거나 부러져있거나 한 놈들이 태반이었다.
대신에 이곳이 무기고였다는 것을 알려주듯이 하나 같이 무기를 하나씩은 들고 있었다.
몸에 걸치고 있는 갑옷까지 더한다면 지금까지 만났던 스켈레톤들과는 다르게 내게 훨씬 위협적인 적을 만난 것 같았다.
그리고 스켈레톤들의 골격 자체가 달랐다.
기존의 스켈레톤들보다 훨씬 큰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내 생각에는 이곳에 있는 스켈레톤들은 죽기 전에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군인 이었던 게 아닐까?
‘그래 지금까지가 너무 쉬웠던 거겠지.’
난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좀 더 긴장하고 스켈레톤들과의 싸움에 대비했다.
휙
퉁
일단 백팩을 문가로 살짝 던져놓았다.
스켈레톤들의 숫자가 제법 되니 조금 더 빨리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마체테를 양손에 하나씩 쥐고는 제일 가까이 있는 스켈레톤에게 다가갔다.
시야에 보이는 스켈레톤들의 숫자는 어림잡아도 15 이상은 돼 보였다.
그렇다면 둘러싸이기 전에 하나라도 먼저 없애는 게 내게는 훨씬 이득일 것이다.
후 - 웅
내가 가까이 접근하자 날카로운 공격이 내게 날라왔다.
최대한 조심한다고 조심하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날카로운 공격이 날아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난 다급하게 뒤로 뛰어 이 공격을 피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공격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날라 오고 있었다.
적의 무기는 적당한 크기의 장검이었다.
연속해서 날아오는 공격은 그것 자체로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공격의 패턴 자체는 단순하고 몇 가지 되지 않았다.
금세 패턴에 익숙해진 나는 금방 녀석의 공격을 쉽게 피할 수 있는 수준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이 스켈레톤과 싸우는 동안 다른 스켈레톤들이 접근해왔다는 거였다.
마치 방진을 이루듯이 내게 가까이 다가오는 스켈레톤들은 굉장히 위협적이었다.
‘한녀석이라도 빨리 죽이려고 한 거였는데, 오히려 포위당하게 생겼잖아.’
지금 상대하고 있는 녀석의 공격에 아무리 익숙해졌다지만, 아직 반격은 꿈도 못 꾸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다른 스켈레톤들까지 공격해온다면 지금 상황이 금방 파탄이 날 것이었다.
그때 난 강가에서 썼던 마법을 떠올렸다.
충분한 마나를 사용해서 마법을 사용한다면 스켈레톤들에게 충분한 피해를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난 마법을 쓰기로 마음먹고는 지금 날 공격해오는 스켈레톤의 공격을 피하고는 바로 뒤돌아 문이 있는 곳까지 뛰기 시작했다.
방진을 이루고 내게 다가오던 스켈레톤들은 움직임이 조금 빨라지기는 했지만 내가 달리는 속도에는 한 참 못 미쳤다.
적당한 거리를 벌린 나는 내가 사용할 마법을 연상하기 시작했다.
난 게임에서 인상적으로 봤던 체인 라이트닝 같은 마법을 연상하고 마나를 모으기 시작했다.
‘체인 라이트닝은 분명히 적들을 따라다니며 맞추는 마법이었지.’
난 최대한 구체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적들이 내게 닿기 전에 마법을 사용했다.
“체인 라이트닝을!!”
파지지지지지직!!
엄청난 광량이 내 눈을 자극하며 방진을 이룬 스켈레톤들을 향해 날아간 내 마법은 엄청난 굵기를 가지고 있었다.
콰가가가강
내가 체인 라이트닝을 연상하며 쏜 마법에 맞은 방진은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렸다.
‘내가 생각한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하지만 정말 엄청난 위력이었다.
이번에는 거의 남은 마나의 절반을 쏟아붓기는 했지만 이 정도 위력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외곽 쪽에 있던 스켈레톤들까지 날아갈 정도였으니 얼마나 대단한 위력이었는지는 말이 필요 없을 지경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연쇄효과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확인조차 할 수 없었다.
‘순식간에 다 터져서 날아가 버렸으니···.’
조금씩 꿈틀거리는 스켈레톤들이 보이기는 했지만 저게 아직 살아 있어서 움직이는 건지 남은 전류의 영향으로 움직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아직도 마법의 위력이 남아서 이곳을 번쩍이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난 아직 꿈틀거리는 놈들의 머리를 박살을 내주며 확인 사살을 해줬다.
안심하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지.
마무리까지 끝마친 후에야 난 이 공간을 제대로 돌아 볼 수 있었다.
내가 마법을 쓰는 바람에 이 공간에 있던 물건들도 많이 파손 된 것 같았지만 지금까지 멀쩡한 물건들도 꽤 많이 눈에 들어왔다.
내 마법의 위력이 강하기는 했지만 이곳(아마도 무기고로 추정되는)은 굉장히 넓어서 마법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곳이 더 많기도 했고.
난 부지런히 움직여서 멀쩡한 물건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런 물건들이 꽤 많아서 적잖은 시간을 써야만 했다.
거치대 같은 게 남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불행히도 그런 물건들은 죄다 썩어 버렸거나 무너져 있어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몸이 좋아져서 생각보다는 금방 일을 끝마칠 수 있었다.
갑옷들은 주로 흉갑에 가까운 물건들이 많았고 그 외에 각반이나 아대 같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판타지에서 보는 풀 플레이트 메일 같은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무기들은 종류가 꽤 다양했는데, 당장 무장이 빈약한 내게는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이 많았다.
솔직히 어떤 괴물들을 만날지 모르는데 마체테나 손도끼들은 좀 많이 부족한 느낌이 있었다.
내 힘을 생각한다면 대형무기들도 괜찮아 보였다.
솔직히 마체테는 너무 가벼운 느낌이라 좀 아쉽기는 했었다.
‘그럼 뭘 골라 볼까?’
난 수많은 무기들 중에서 좀 큰 무기들만을 중점적으로 살피기 시작했다.
“흠, 이것도 가볍기는 마찬가지네.”
난 거의 투핸디드 소드라고 부를 만한 무기를 한 손으로 가볍게 휘둘러보며 중얼거렸다.
가볍다고 얘기하기는 했지만 뭘로 만들었는지 10kg는 족히 나갈 만한 검이었지만 내게는 깃털처럼 가볍기만 했다.
그렇게 한참을 무기를 고르던 난 조금 남다른 재질의 검에 눈이 가기 시작했다.
몸통부터 손잡이까지 새까맣게 물들어 있는 아주 길쭉한 외날검이었다.
한국의 환도 보다 조금 더 휘어 있지만 날의 길이가 아주 길었고 손잡이도 다른 검들의 두 배 정도 길었다.
이곳에 있는 다른 무기들과는 완전히 다른 형식을 가진 굉장히 이질적인 무기였다.
‘이런 게 왜 이곳에 있는 거지?’
난 신기한 외형에 일단 한번 들어 보기로 했다.
실용성은 알 수 없지만 일단 멋이 있었다.
턱
“어?”
난 검을 들자 느껴지는 묵직함에 의아함을 느끼고 있었다.
다른 무기들도 지구의 무기들에 비하면 굉장히 무거울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가 든 검은 그런 무기들을 우습게 볼 정도로 무거웠다.
물론 나라면 한손으로도 얼마든지 휘두를 수는 있겠지만 안정적으로 사용하려면 양손을 다 써야 할 것 같았다.
후 - 웅
묵직하다.
그리고 뭔가 날카롭다.
방금 휘두르는 순간 공기를 갈라버리는 듯한 감각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다시 한번
슈 - 웅
공기의 떨림이 느껴지는 것 같다.
난 이 검에 맘에 들어 홀린 듯이 이리저리 휘둘러 보기 시작했다.
난 검이라고는 과도 말고는 들어 본 적도 없었지만 이 검을 휘두르는 동안 나도 모르게 어떻게 이 검을 다뤄야 할지 알 것만 같았다.
이건 정말 신기한 기분이었다.
검이 내 몸이 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누군가가 내가 이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처음부터 지금까지 찍어놓고 있었다면 지금의 내 변화에 굉장히 놀랄 것 같았다.
처음에 검을 휘두르던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처럼 달라졌으니 말이다.
천둥거인의 힘을 얻고 나서는 어지간하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었는데, 이 검을 휘두르는 내 몸은 지금 땀을 비 오듯이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난 그런 땀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계속해서 발전하는 내 실력이 너무나도 중독적이라 멈출 수가 없었다.
“후우, 흡.”
땀을 그렇게 흘리는 것에 반해 내 호흡은 지극히 안정적이었다.
띠링
그런 내 집중을 깬 것은 상태창의 알람 소리였다.
난 그제야 무아지경에서 깨어나 나를 돌아 볼 수 있었다.
온몸이 땀에 절어 있었지만 난 알 수 없는 충만함에 가득 차 있었다.
‘이 검, 평범한 물건은 절대 아니겠는데.’
슈 -욱
난 가볍게 검을 한 번 휘둘렀다.
소리부터가 달라졌다.
난 이 검을 다시 한번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빛조차 흡수하는 듯한 검은 색을 자랑하는 검신과 일체를 이루는 검은 손잡이, 끝으로 갈수록 날카로워지는 검 끝 그리고 검신과 같은 검은색의 검날. 덕분에 그다지 날카롭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검을 휘둘러 본 나는 이 검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느낄 수 있었다.
명검은 그 위에 종이만 올려도 베어진다지?
이 검은 그 이상이면 이상이지 그 밑일 수가 없었다.
‘정말 마음에 드는 검이야.’
난 다른 무기들은 내려놓고 일단 이 검만을 챙겨가기로 했다.
그리고 제일 고급스러워 보이는 흉갑은 내 몸에 착용하고 거기에 걸맞은 아대와 각반도 착용했다.
아대와 각반 그리고 흉갑에 있는 가죽끈들은 뭐로 만들어졌는지 적당한 신축성까지 가지고 있어서 착용한 방어구들이 전혀 불편한 느낌을 주지 않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난 백팩에서 생수를 꺼내 마시며 상태창을 확인했다.
[00:00:00]
‘왜 알림이 울렸나 했더니 벌써 문이 열릴 시간이 된 거였나?’
내가 정말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던 것 같다.
도대체 몇시간이 휘두른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의미 없는 시간은 아니었어. 오히려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지.’
난 피식 웃으며 어떻게 할지를 잠시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상태창의 시간이 다 지났다고 해서 못 돌아 가는 게 아니라는 것은 이미 확인했으니 조급해할 필요는 없었다.
남은 공간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라 이곳을 탐색하는 데 얼마나 더 걸릴지 알 수 없는 상황.
그렇지만 아직 식량과 식수도 충분히 남아 있었다.
다만 조금 걱정되는 거라면 수면이었는데, 내 몸은 아직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집에 다시 돌아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건 그렇게 끌리지 않는데. 그냥 빠르게 전부 돌아보고 챙길 건 다 챙겨서 돌아가자.’
그렇게 결정을 내린 나는 백팩에서 꺼낸 전투식량부터 데우기 시작했다.
이곳을 마저 탐험하기 전에 주린 배부터 채울 생각이었다.
‘내가 많이 먹을수록 백팩에 담아갈 물건들도 늘어나겠지. 킥.’
난 가벼운 마음으로 전투식량들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전투식량들은 군대에서 먹을 때와는 달리 굉장히 맛있는 편이었다.
군대에서 먹었던 전투 식량들은 하나같이 맛없고 양도 적었던것 같은데 사제는 뭐가 달라도 다른 것 같았다.
대충 식사를 마치고 주변을 정리하는데, 예의 그 신호가 내 감각에 잡혀왔다.
‘신호가 울리는 간격이 짧아졌어.’
달라진 느낌의 신호는 마치 심장 박동 소리를 연상케 했다.
거기다 지금까지 거리가 일정했던 신호의 위치가 점점 내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내게 느껴지던 신호의 위치는 고정이 돼 있어서 어떤 물건 같은 것에서 신호가 나오는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런데 이동이 가능하고 심장 박동 소리 같은 것이 나오는 거라면 내가 모르는 또 다른 괴물일 수 도 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확 들었다.
그래서 일단 흑검을 들고 반 쯤 부서진 석상 뒤로 몸을 숨긴 채 내게 다가오는 정체 모를 괴물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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