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개가 아니다!!! 이 빌어먹을 인간 놈아!!”
후-웅
“큭!”
거칠게 휘둘러진 언월도를 흑검을 들어서 막아냈다.
“막아?”
내가 자신의 공격을 막아내자 꽤 놀란 눈치였다.
“어디 계속 막아봐라!”
캉! 캉! 캉!
쉴 틈 없이 이어지는 공격에 난 나도 모르게 계속해서 뒤로 밀려났다.
그러나 밀려나는 와중에도 놀 대장의 공격을 잘 막아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놀 대장의 무기도 보통 무기가 아닌 것 같았다.
다른 놀의 무기들은 흑검과 한 두 번 부딪히는 것만으로도 부러져 나갔었는데 놈의 언월도는 흑검에 아무리 부딪혀도 멀쩡했다.
‘설마 다룬이 말한 비브릴 합금제 무기인 건가?’
이러면 무기가 가지는 이점은 없다고 봐야겠지.
그래도 일대일은 할만 했다.
놀 대장이 강한 건 맞지만 나한테는 난전이 더 힘들었다.
한 번에 여러 적을 맞아 싸우는 것이 확실히 더 힘들었다.
한 명에게만 집중해서 싸울 수 있게 되자 흑검을 통해 익힌 검술의 진가가 발휘되기 시작했다.
‘슬슬 반격을 해봐도 될 것 같아.’
놀 대장의 공격은 확실히 위협적이다.
그렇지만 움직임이 지극히 직선적이고 힘을 기반으로 한 공격이라 막는 데 큰 무리가 없었다..
놀 대장은 자신의 힘이 나보다 우위라고 생각하는지 힘으로 나를 찍어 누르려는 게 보였다.
하지만 계속해서 놈의 공격을 막다 보니 알 것 같았다.
힘은 내가 확실히 위다.
놀 대장의 언월도는 무거워 보였지만 흑검 만큼은 아니다.
서서히 변해가는 놀 대장의 표정만 봐도 자신의 힘이 내게 안 통한다는 것을 슬슬 깨달은 것 같다.
그럼 이제부터는 내 차례지.
슈-악!
놀 대장의 언월도가 뒤로 빠지는 순간 곧바로 반격을 가했다.
캉!!
놀 대장은 언월도로 간신히 막아내기는 했지만, 뒤로 크게 밀려났다.
“인간 무슨 짓을 한 거냐!!”
“내가 하긴 뭘 해! 이 개대가리야!!”
녀석과 말을 섞을 필요는 없겠지.
곧바로 흑검으로 놀 대장의 빈틈을 노려 다시 흑검을 휘둘러 갔다.
“크르릉, 이 비겁한 인간 놈이!”
내 공격을 간신히 막아 낸 놈이 뭐라고 지껄이든 간에 중심이 무너진 놈을 계속 공격했다.
캉! 캉!
놀 대장이 언월도를 마주쳐왔지만, 힘은 내가 확실히 위다.
흑검과 마주한 언월도가 순식간에 튕겨 나갔다.
싸우는 중에 가장 큰 빈틈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죽어!!”
크게 밀려난 놈의 틈을 노리려고 빠르게 움직이자 다리의 통증이 몰려온다.
난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르며 순간 비어버린 놀 대장의 상체를 노리고 흑검을 크게 휘둘러 갔다.
그런 내 눈에 비릿하게 웃고 있는 놀 대장의 얼굴이 보인다.
‘뭐지?’
뒤로 튕겨 나갔던 놈의 언월도가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속도로 내게 날라오고 있었다.
콰직!!
“컥!!”
어떻게 된 거지?
어느새 나는 바닥에 대자로 누워 있었다.
가슴 부분에서 참을 수 없는 통증이 느껴진다.
순간적으로 너무 큰 고통에 의식이 나갔었나?
가슴이 계속해서 욱신거린다.
가슴 부분을 만져보니 크게 구겨져 있는 흉갑이 느껴졌다.
유적에서 챙긴 흉갑 덕에 살아남은 건가?
흉갑이 찌그러진걸 보니까 흉갑 안에 여유 공간이 있어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숨을 쉬는 것도 힘들었을 것 같다.
“크르르, 인간 운이 좋았구나.”
놀 대장이 이를 갈며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난 다급하게 일어났다.
온몸이 아파왔지만 지금 쓰러져서 저 개대가리에게 목을 내줄 수는 없다.
‘지금 어떻게 한 거지? 분명히 완전히 무방비 상태에 가까웠는데.’
저놈이 계속해서 저런 공격을 한다면 난 막아낼 자신이 없었다.
“크르릉, 죽어라!!”
슈-욱
캉!
‘응?’
잔뜩 긴장한 것이 무색하게도 이전까지 막아왔던 평범한 일격이었다.
뭐지?
너무나 수월하게 막아내고 다음 공격을 기다렸다.
그런데 계속해서 막을 만한 수준의 공격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언제 아까 같은 공격이 날아올지 몰라서 공격을 할 수가 없었다.
‘뭘 하자는 거지?’
막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다만 내 몸 상태가 문제였다.
놀 대장의 언월도를 막을 때마다 상처 부위가 징징 울리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진다.
더불어 가슴의 상처가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았다.
‘아무리 막을 만하다고 해도 이대로는 버티기 힘들어.’
몸 상태만 멀쩡했다면.
아니.
그런 가정은 의미가 없다.
녀석이 숨겨진 수를 냈다면 나도 최선을 다해야겠지.
지금까지는 난 의도적으로 내 힘을 다 제한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힘을 아직 제대로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천둥거인의 힘을 얻었을 때 나도 모르게 모든 힘을 뽑아 썼다가 팔이 뽑히는 줄 알았다.
그때 이후로 난 의도적으로 힘을 최대한 억제하고 싸우고 있었다.
그렇게 해도 적들을 물리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이 놀 대장은 그런 식으로는 해치우는 게 불가능해 보인다.
여러 번은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부상이 두려워서 시험해보지는 못했지만, 체력과 민첩수치가 올라간 내 몸으로도 그 괴력을 여러번 사용하는 건 무리다.
‘다음 공격을 받아친다.’
놀 대장 놈도 분명히 아까 같은 공격을 숨기고 있을 것이다.
당하기 전에 먼저 친다.
‘이번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면 어떡하지.’
아니, 무조건 성공시킨다.
뿌득
난 각오를 다지고 흑검을 쥔 두 손에 힘을 집중시켰다.
자신만만한 개대가리가 다시 언월도를 휘둘러왔다.
이번에는 내 허리를 노린 공격이다.
모든 힘을 모아서 녀석의 언월도에 내 흑검을 부딪혀 갔다.
파캉!!!
역시 내 힘은 강하다.
놈의 언월도의 날이 산산조각이 났다.
난 반발력을 억누르고 몸에 느껴지는 고통을 참고 한 걸음 더 나아가며 흑검을 재차 휘둘렀다.
슈-웅
빠가각
“크르륵!!”
놀 대장 놈은 내 공격을 피해냈다.
녀석의 갑옷에 긴 흔적이 남았지만 스친 정도였다.
조금 전 말도 안 되게 빨라졌던 공격에 사용했던 힘을 회피하는 데 사용한 것 같았다.
그래도 완전히 피하진 못했지만, 치명상은 커녕 아무것도 아니었다.
공격을 한 나도 멀쩡하지 않았다.
내 팔들이 찢어질 듯이 아파왔다.
솔직히 놀 대장 놈만 없었다면 비명을 지르고 있었을 거다.
그만큼 아팠다.
놀 대장 놈은 자신의 무기가 부서진 게 충격이었는지 날 노려보며 서 있었다.
점점 커지는 고통을 참아 내며 나도 놈을 노려봤다.
온몸이 통증으로 부들부들 떨리고 있지만 난 결코 놈에게서 눈을 피하지 않았다.
“인간. 이름이 뭐냐?”
갑자기 이름은 왜 물어봐.
솔직히 말하면 고통이 너무 심해서 입을 여는 것만으로 비명을 지를 것 같았다.
그래서 계속해서 놈을 노려보기만 했다.
“크르릉, 전사로서 이름을 나누는 예의도 모르는 건가?”
말이 왜 이렇게 길어 들어올 거면 그냥 들어오지.
“크릉, 난 강철이빨 부족의 바르그다. 너 정도 전사라면 이름을 나눌 정도는 되겠지.”
갑자기 이름은 왜 얘기하는 거야.
쓸데없는 얘기는 그만하고 들어오라고.
“너 정도 전사라는 것을 알았다면 처음부터 제대로 상대할 것을. 이름을 대지 않는 인간 전사! 다음에는 이렇게 끝내지 않겠다.”
바르그라고 이름을 댄 놀 대장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을 하고 뒤돌아서 사라져갔다.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
사실 난 전신에 올라오는 통증 때문에 이미 반쯤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르그가 완전히 사라진 후 난 그 자리에서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마지막에 힘을 전부 끌어 쓴 것이 치명적이었다.
‘이대로 쓰러지면···.’
뀨웃?
***
따뜻하다.
그런데 몸이 무겁다.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리자 뿌연 안개 같은 것이 잔뜩 들어 차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끄응.”
온몸이······.
멀쩡하네?
분명히 내가 쓰러지기 전까지만 해도 전신이 아파왔는데 하나도 아픈 곳이 없다.
몸이 조금 피곤한 것 같기는 한데 나를 괴롭히던 통증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온천인가?’
난 물속에 들어와 있었다.
‘누가 나를 여기다 집어넣은 거지?’
정신을 좀 차리려고 온천물에 눈을 비비자 이제야 좀 시야가 트이는 느낌이다.
그대로 주위를 돌아보자 숲에서 만났던 근육질의 보팔래빗들이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어? 이놈들이 왜?”
보팔래빗들 진심으로 온천욕을 즐기는 것 같았다.
뀨-우웃
‘시원해 보이네.’
나를 신경 쓰지도 않고 온천욕을 즐기는 것을 보니까 나도 좀 안심이 된다.
근육들이 좀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어차피 난 신경도 안 쓰니까.
슬슬 나가보려고 일어나자 모든 보팔래빗들이 고개를 돌려 노려보기 시작했다.
“···왜, 왜? 그냥 다시 앉으라고?”
일어나려다 말고 다시 온천수에 몸을 담그자 눈들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어쩌라는 거야 진짜.
그렇게 삼십 분 정도를 더 온천수 속에 있다가 보팔래빗들과 같이 온천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숲 안에 이런 곳도 있었구나.’
[00:00:00]
타이머는 진작에 멈춰서 시간이 얼마나 지난 줄도 모르겠다.
뀨웃-
“응?”
뀨우웃!
뭐지?
숲에서 제일 처음 만났던 보팔래빗이 어느새 내 앞에 서서 빠르게 앞발을 움직이고 있다.
음, 모르겠다.
나한테 뭔가를 전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전혀 알아볼 수가 없다.
뀨-웃!!
내 표정을 본 보팔래빗은 짜증이 좀 난 것 같다.
앞발 동작은 못 알아보겠지만 대충 에너지바를 더 가져오라는 것 아닐까?
거래에 충실한 것 같았으니까, 부상을 치료해줬으니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에너지바로 치러라 뭐 이런 의미지 않을까 싶다.
“알겠어. 저번에 먹었던 걸 더 가져다주면 돼?”
뀨웃
그제야 만족스러운 소리를 내는 보팔래빗이었다.
보팔래빗들은 내 짐들도 잘 챙겨서 같이 가져온 듯 온천 바로 옆에 잘 모셔져 있었다.
내 갑옷과 옷을 벗길 줄을 몰랐던지 백팩만 벗겨진 상태로 온천에 집어넣은 것 같았다.
덕분에 옷이 다 젖어서 조금 찝찝하기는 하지만 몸 상태는 최상이다.
이전에 입었던 잔 부상들도 전부 치료가 된 것 같다.
쓰러지기 전까지만 해도 죽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지금은 너무 멀쩡해서 어색할 정도다.
“구해줘서 고마워. 조만간 찾아올게.”
뀻
시크하게 뒤돌아서는 모습이 좀 멋있어 보인다.
그렇게 보팔래빗들은 순식간에 내 눈앞에서 사라져 갔다.
어디로 가는지 조금 궁금하기는 하지만 그건 지금 해결할 수 있는 의문은 아니다.
‘그런데 저 조그만 보팔래빗이 우두머리인 건가? 저 녀석이 무리를 이끄는 것 같으니까 맞는 것 같기는 한데.’
난 그대로 짐을 챙기고 내가 가야 할 곳, 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내가 쓰러지고 얼마나 시간이 지난 줄을 몰라서 마음이 좀 급해졌다.
은성이 형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유적에 혼자 남아있을 다룬도 걱정이 된다.
회귀본능에 의지해 몇시간이 나 움직였을까?
이제는 익숙해진 문이 있는 곳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미궁에서 거의 하루 이상은 있었기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졌다.
‘이번에는 시간이 얼마나 늘어날까?’
처음 대미궁에 들어왔을 때 8시간, 그다음이 12시간, 이번이 24시간이었으니 다음에는 48시간이려나?
그런데 딱히 규칙이랄게 없었기 때문에 쉽게 예상이 가지는 않는다.
‘그것 보다는 대기 시간이 더 문제지.’
들어간 시간과는 다르게 대기시간은 항상 24시간이었다.
그게 이번에도 적용된다면 혼자 남은 다룬이 문제다.
식량도 충분하지 않고, 주위의 스켈레톤들을 거의 다 정리했다고 해도 내가 발견하지 못하고 넘어간 놈이 있을 수도 있다.
‘대기시간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으니 최대한 빨리 유적으로 가야겠어.’
어느새 문 앞에 도착했다.
문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어 집으로 들어갔다.
이번 대미궁행은 정말 길었던 것 같다.
24시간이 마치 며칠은 지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몸의 피로는 거의 없지만 정신적으로는 아주 피곤했다.
졸리지도 않는데 바로 침대에 눕고 싶은 기분이다.
[정시현이 이세계로 무사히 귀환하였습니다.]
[이제 제약 없이 대미궁을 드나 들 수 있습니다.]
“어? 제약 없이 대미궁을 들어갈 수 있다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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