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ntasia2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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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삼
작품등록일 :
2012.09.18 13:35
최근연재일 :
2012.09.18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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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8.11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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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양아치 -02

DUMMY

02- 양아치



쓰러진 사람을 피해 버스 바닥을 기어가면서도 지민은 짜증을 숨길 수 없었다. 오늘 겹치는 모든 불운이 마치 저 불결한 사내에게서 비롯된 것 같았다. 못 볼걸 보게 했고, 만질 수 없는 걸 만지게 했다는 불쾌감이 겹쳐 가슴 속에서 열불이 치밀어 올랐다. 아직도 아래 쪽에 남아있는 뜨뜻하고 불쾌한 숨결의 느낌도. 상민이 얼굴이 얄밉게 떠올랐다.


위쪽 통로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치마 아래쪽이 신경 쓰였다. 줄 사다리를 타는 것처럼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버스가 불안하게 삐걱거렸다. 묘하게도 버스 좌우 옆면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구멍 너머로 하늘이 보였다. 어딘가 불이 붙었는지 후끈한 바람이 불었다. 까맣게 코팅 된데다 너절하게 깨진 창 유리 때문에 바깥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장애물을 피해 어렵게 전진하면서 지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교통사고? 대체 어떻게 나면 이렇게 될 수 있는 거야?’


한 걸음을 옮기자 끼끽- 소리를 지르며 버스가 다시 불안하게 흔들렸다. 아무래도 더 떨어질 곳이 있는 모양이다. 지민은 핸드백을 찾았다. 카메라. 노트북. 기자의 재산이자 가장 중요한 무기다. 비록 월급도 제대로 못 챙기는 영세 방송사 기자지만 이런 상황에서 뭘 해야 할지를 알고 있었다. 높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런......”


지민은 입술을 깨물었다. 고개를 돌려 자신이 앉았던 자리 근처를 쳐다보았다. 핸드백은 그곳 근처에 있을 것이다. 겨우 서너 걸음 거리. 그렇지만 지금 그 거리는 위태롭게 꿀렁거리는 버스 속에서 100미터보다도 멀어 보였다. 고개를 돌리다 다시 그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어두운 음영 속에서 반짝이는 눈빛이 보였다. 흐릿한 그늘 속이었지만, 묘하게도 그의 실루엣은 푸르스름한 어깨 선과 머리 선을 이루며 뚜렷하게 보였다. 그는 한 손을 의자 위에 걸치고, 다른 한 손에는 익숙한 핸드백을 들었다. 핸드백은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뒤에 씩 웃고 있는 듯 하얀 치열이 언뜻 보였다. 지민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하필이면……


“저……”


지민이 뭐라 말하기 전에 핸드백이 휙 날아왔다. 지민은 얼결에 손을 내밀어 받아 들었다. 묵직한 느낌. 핸드백은 정확하게 가슴으로 날아와서 거의 움직일 필요조차 없었다. 지민은 멍한 얼굴로 사내를 바라보았다. 사내는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고개를 돌려 깨진 유리 너머로 창 밖을 보고 있었다. 지민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뭔가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고마워요……”


사내는 대답 대신 손을 들었다. 사방에서 커져가는 비명소리와 신음소리, 꺼지지 않은 엔진소리 때문에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겠지만...... 사내의 시선은 여전히 창 밖을 향하고 있었다. 그 상태에서 지민에게 손바닥을 보이더니 다음 검지를 세우고 손끝을 까닥였다. 지민은 그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오른쪽으로 나가라고요?”


용케 소리를 알아들었는지, 사내가 주먹을 꽉 쥐었다. 사내의 고개가 돌아왔다. 하얀 이가 다시 보였다. 아까처럼 혐오스럽지는 않았다.

“그쪽, 다쳤어요?”


사내는 대답 대신 시선을 다시 밖으로 돌린 후, 손등을 위로하여 앞뒤로 천천히 흔들었다. 어서 나가라는 수 신호다. 지민은 핸드백을 열어 카메라를 챙겼다. 작지만 똑딱이 카메라 중에서는 가장 상위기종에 위치한 강력한 놈이다. 동영상 모드로 바꾸고, 빙 돌아가며 안쪽의 풍경을 담아가면서 버스의 오른쪽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뗐다. 아직도 꿈틀거리는 사람들을 조심스럽게 헤치고, 반쯤 깨진 유리창을 지나니 한 사람 정도 겨우 빠져나갈 틈이 보였다. 빠져 나오기 전 카메라를 빙 돌려 버스 안쪽의 풍경을 마지막으로 담았다. 후끈하고 매캐한 연기가 짙어져서 보이지 않았다. 지민은 고개를 돌려 사내가 있는 곳을 찾았다.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왜 그래야 하는지 몰랐지만 지민은 소리를 질렀다.


“조심하세요! 구조대를 부를게요.”


지민은 유리파편에 신경 쓰면서 겨우 창가까지 기어 나왔다. 6월의 아카시아 꽃 향기가 더운 공기와 함께 끼얹듯 확 다가왔다. 땅에 닿으려면 자신의 키 높이 정도를 뛰어내려야 했다. 버스가 크게 기우뚱거렸다. 지민은 핸드백을 어깨에 엇걸고 카메라를 든 채 뛰어내렸다. 가시가 몸을 마구 긁고 지나갔다. 옷이 찢어졌다. 몸을 굴려 키 작은 나무 등걸을 붙잡았다. 숨을 고른 후 고개를 들었다. 나뭇가지들 사이로 하늘이 보였다. 이제야 지민은 자신이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 전체 그림을 볼 수 있었다.


“세상에나……”


손이 덜덜 떨렸다. 아직도 촬영 중인 카메라 화면이 마구 흔들렸다. 절벽에 가까운 급경사, 바닥까지 아직도 20미터 이상 남아있었다. 아래 쪽엔 시퍼런 강물이 흐르고 있었고, 버스는 꺾어진 나무 위에서 위태롭게 흔들거렸다. 위쪽을 바라보았다. 불과 10미터 정도 거리에서 사람들이 까맣게 모여 아래를 쳐다보고 있었다. 연료에 불이 붙었는지 굉음과 함께 커다란 화염이 보였다. 버스 안에서 절망적인 고함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지민은 시끄러운 소음 때문에 이어폰을 끼고 휴대전화에 잭을 연결한 뒤 119를 눌렀다. 손이 떨려서 세 번이나 다시 눌러야 했다. 그녀는 전화를 귀에 대고 여기가 어디인지 가늠해보려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전화는 바로 연결되었다. 안내 멘트가 한없이 길게 느껴졌다.


“대형사고가 났어요. 버스가 절벽으로 떨어졌어요. 버스가 불이 붙었고, 폭발 위험이...... 위험하다고요. 여기 위치는? ..... 영동고속도로 어디 쯤인데 자세히는 몰라요. 어, 거기서 이 휴대폰으로 위치 확인 안돼요? 빨리 구조를…… 어? 어? 안 돼!!!”


지민은 한 손에는 카메라를 다른 손엔 휴대전화를 든 채 망연하게 서 있었다. 버스가 갑자기 아래 위로 급격하게 흔들리더니, 나무등걸이 툭 꺾어졌다. 버스는 그대로 아득하게 추락하고 있었다. 앞쪽을 돌출된 바위에 세게 부딪친 후, 튕겨서 옆으로 빙글 돌아 물속으로 잠겨 들어갔다. 뒤집어진 버스의 아래 쪽 모서리 쪽이 물 위에 삐죽 남았다. 커다란 한쪽 바퀴가 물 위에서 겉 돌고 있었다. 지민은 풀썩 주저 앉았다.


“어떻게....... 이렇게 쉽게……”


그냥 중얼거렸다. 눈이 풀려있었다. 사람이 저렇게 쉽게 죽을 수도 있는 건가? 그 많은 사람이...... 바로 코 앞에서 말이다. 위쪽 난간 어디선가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아래를 바라보며 고래고래 악을 썼다. 지민은 멍하게 입을 벌리고 아래를 바라 보았다.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꿈이라면 악몽일 것이다. 아니, 이건 개꿈 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자신에겐 더 할 나위 없는 행운이라는 건 웃기지도 않은 역설이었다. 혼자 만 기적처럼 살아남았지 않은가? 지민은 멍한 눈으로 아래 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왠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마지막 보았던 사람의 눈빛이 아직 지워지지 않는데.....


‘그 사람도?’


카메라를 들고 물 밖으로 조금 튀어나온 버스의 흔적을 멍하게 쳐다보던 지민의 눈이 조금 커졌다. 누군가 물 밖으로 툭 튀어 나왔다. 시간이 꽤 지났었는데……


“생존자다!!”


위쪽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그 쪽으로 집중되었다. 지민은 벌떡 일어났다. 카메라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다. 화면을 보던 지민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 남자야, 살아있었어......”


지민은 흥분된 얼굴로 좁은 공간에서 몸을 움직여 시야가 잘 확보되는 곳을 찾았다. 사내는 버스 차체를 더듬으며 빙 돌았다. 물 속인데도 사내의 움직임은 무척 빨랐다. 허리 띠로 보이는 끈으로 차체 어딘 가를 묶더니 줄을 슥슥 잡아 당겼다.


“저 사람, 뭐 하는 거지?”


지민은 카메라의 광학 30배 줌을 있는 대로 키웠다. 줄을 따라 허리가 묶인 한 사람이 물 밖으로 끌려 나왔다. 이어 그와 함께 묶여있는 한 사람이 더 끌려 나왔다. 몸 집으로 보아 둘 다 어린 아이였다. 아이들은 사내가 이끄는 끈에 매달려 축 늘어져있었다. 지민은 주먹을 꼭 쥐었다. 위쪽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사내는 아이들을 버스에 묶어 놓고 물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물 위에 남겨진 두 아이는 얼굴을 위로 향하고 축 늘어진 채 흐르는 물을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숨을 쉬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지민은 침을 삼켰다. 불과 몇 초 후 사내가 물 밖으로 다시 나왔다. 위에서 커다란 환호성이 들렸다. 이번에는 여자가 머리 채를 잡힌 채 끌려 나오고 있었다. 물 밖으로 나온 여자가 목을 컥컥 거렸다. 사내는 여자의 목을 조르듯 팔을 목에 두르고 다른 손으로 윗옷을 벗겼다. 사내의 거친 행동에 저항하려던 여자의 목이 아래로 툭 떨어졌다. 사내는 벗긴 옷을 끈처럼 길게 엮어 여자의 겨드랑이와 목 사이에 둘러 묶고는, 아이들과 같이 끈으로 엮었다. 위에서 함성과 함께 박수 소리가 들렸다. 여자도 아이들처럼 흐르는 물에서 고개만 내민 채 둥둥 떠 있었다. 사내의 동작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거침이 없어서 원래 그래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내는 다시 물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 모습을 보며 지민은 잠시 멍한 표정이 되었다. 어떤 데자뷰 (deja vu). 아까 버스 안에서 경황 중에 자신이 겪었던 일들이 저절로 다시 떠 올랐다. 그리고 그 와중에 끊어졌던 자신의 허리 끈도..... 그 의미를 깨달아가며 지민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지민은 다시 카메라에 눈길을 돌렸다. 멀리 경적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렉카가 도착했을까? 그러나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헬기라도 오면 모를까? 헬기가 온다고 해도 늦으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 두대로는 안 될 텐데. 지민은 스마트폰 지도 앱을 실행시켜 현재 위치를 확인했다.


- 강원도 문막? 섬강?


지민은 단축 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면서 다른 손으로 핸드백을 뒤졌다. 작은 노트북을 꺼내고, 전원을 켰다. SSD 드라이버가 장착된 기종답게 금방 부팅이 되었다. 휴대폰에서 굵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 무슨 일이야? 휴일에 전화를 다 주고...... 서울이야?

“사고 현장에 있어요.”

- 사고? 너 또 사고 쳤냐?

“사고를 당했다고요. 교통사고.”

-교통사고? 너 혹시 다쳤어?

“몸은 괜찮아요. 근데 지금 생방 딸 수 있어요?”

-생방?.......


잠깐 대화가 끊겼다. 지민은 기다렸다. 그의 채널은 연예/문화/사회쪽 사건 사고를 다룬다. 교통사고는 회사의 전문이 아니다. 사람들 관심을 끌만한 꺼리도 아니다. 지민은 아래를 바라보았다. 사내는 벌써 다섯 번 째 생존자를 매달고 있었다. 지민은 다시 카메라를 확인하면서 말을 이었다. 목소리는 조금 침착해졌다. 상대는 유능하지만 아주 현실적이고 냉정한 사람이다.


“대형사고예요. 승객을 꽉 채운 버스가 30미터가 넘는 높이에서 강으로 추락했어요.”

- 30미터?

“대형 참사죠.”

- 거기 현장이라고 했냐?

“지금 버스에서 20미터 정도 떨어진 위쪽이요.

- 다른 방송사는?

“방금 일어난 사고예요.”

- 내가 더 알아야 할 사항이 있나? 그 정도로 편성을 뒤엎기 힘든 건 알잖아?

“일단 그림부터 보낼게요. 판단해보세요.”

-보내봐


지민은 스마트폰을 인터넷 접속을 위한 테더링 모드로 바꾸고, 노트북의 네트워크에 연결했다. 확실히 5세대 통신망은 빨랐다. 여전히 촬영 중인 네트워크 카메라에 케이블을 연결하고, 사내 SNS가 지원되는 방송 전용 소프트웨어를 돌렸다. 워낙 익숙한 작업이라 금방 끝났다. 마이크가 장착된 헤드셋을 쓰고 팀장의 반응을 기다렸다. 생방송이 아니라면 녹화라도 해 두어야 했다. 사이트 접속 수를 늘릴 만한 좋은 재료니까. 이런 컨텐츠는 돈이 된다.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일 수록 더욱 더 비싸지지.


지민의 눈길은 여전히 아래 쪽을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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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양아치 -04 +14 12.08.11 12,990 126 8쪽
5 양아치- 03 +11 12.08.11 12,806 108 9쪽
» 양아치 -02 +14 12.08.11 14,543 104 13쪽
3 (새 소설) 양아치 -01 +52 12.08.11 25,552 107 11쪽
2 독자 제위께..... +178 12.02.10 18,991 97 3쪽
1 요즘 근황, 에뜨랑제 관련 이야기 +133 10.12.09 26,539 6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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