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ntasia2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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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삼
작품등록일 :
2012.09.18 13:35
최근연재일 :
2012.09.18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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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8.1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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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양아치 -06

DUMMY

06- 양아치



건은 자신의 집을 둘러보았다. 안양 쪽 관악산 기슭에 있는 낡은 단독 주택이다. 건이 돌아가신 부모님께 물려받은 유산은 한 푼도 없었다. 경제적으로 개털이 되겠지만, 영리하게 상속을 포기함으로써 악성 부채로부터 해방되었다. 사채업자 새끼들이 당분간 악다구니를 칠 것이다. 그건 나중에 걱정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돈은 조금 있었다. 귀국하기 전, 그러니까, 제 정신을 차린 이후 타국에서 짧은 기간 이것저것 현지 아르바이트 하면서 벌어놓은 돈이다. 그 돈으로 집과 중고 소형 자동차, 괜찮은 노트북컴퓨터, 그리고 성능 좋은 스마트폰을 사는 데 썼다. 그리고도 많이 남았다. 원래는 다른 용도로 쓰여야 했을 돈이다. 그 돈을 펑펑 써야 될 분들은 이제 세상에 없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만약을 대비해서 근처의 원룸 하나를 월세 얻었다. 공식 주소지는 원룸으로 할 생각이다. 그의 일에서 정보력(information)과 기동력(speed), 그리고 보안(security)은 정말 중요한 요소다.


구입한 단독주택은 습하고 매우 낡았지만 그런대로 쓸만한 공간이 많았다. 특히 전 집주인이 개인 사업을 위해 개조해 둔 넓은 지하실과 옥상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은 가장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그는 많은 작업공간을 필요로 하는 일을 할 생각이니까.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초라하고 수수한 외관도 마음에 드는 점이다.


노트북을 켜고 3D CAD로 설계된 도면을 찾았다. 직접 설계한 건물 레이아웃(lay out)과 각종 배선과 배관, 설치를 위한 도면이 차례로 떴다. 이어 작업지시서들을 띄웠다. 프로젝트를 하나하나 차트로 정리하며 작업을 진행했다. 전공이 경영학이지만,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닌 듯 작업은 꽤 빠르게 진행되었다.


방학이 끝나기 전 건은 여기저기 바쁘게 뛰어다녔다. 그 동안 주문한 물품이 속속 도착했다. 그는 대부분 옥상과 마당에서 작업을 했다. 컴퓨터 작업은 방에서 했다. 전기, 배관, 조명, 네트워크 작업도 직접 했다. 지하에선 중고 선반기계를 직접 돌려 필요한 부품을 깎아 만들었다. 소잉(sewing)머신, 재단 도구도 그가 애용하는 기구 중에 하나다.


그 밖에도 각종 중고 가구를 들여왔다. 벽장과 철제 수납장에 온갖 약품들이 채워졌다. 실험실 수준의 시약도 있었고, 약국에서 구매할 수 있는 간단한 약품, 그리고 어둠의 경로를 통해 선수만이 그 용도를 알 수 있는 화공약품도 하나 둘씩 채워졌다. 간이 측정기와 분석기, 반응기도 들어왔다.


집 뒤에 마련된 텃밭도 괜찮은 옵션이었다. 그리 넓지는 않았지만 상추, 무, 고추, 파, 감자 등을 심어 키웠던 곳이다. 밭 옆에는 실 개울이 흐르고 있어 관리하기도 쉬울 것이다. 건은 오랜만에 삽질을 했다. 비닐을 사서 간이 하우스를 지었고, 집 담벼락을 허물어 쪽문으로 통행이 될 수 있도록 개조했다. 물을 가두는 작은 연못도 만들었다. 작은 펌프도 설치하여 용수와 배수에 문제가 없도록 했다.


건은 이 모든 작업을 혼자서 했다. 고된 작업은 언제나 보상을 해준다. 손가락의 감각이 다시 돌아왔다. 미칠 듯 혼란한 머리 속이 차분하게 정리되었다. 터질 것 같았던 가슴은 진정되었고, 쉴 새 없이 흐르는 땀은 어딘가 깊숙하게 절어있던 피 냄새를 닦아냈다. 신성한 노동이야말로 눈빛에서 탁한 기운을 태워 없애는 가장 영험한 약이다.


건은 베란다 의자에 다리를 걸치고 앉아 열어놓은 문 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불었다. 테라스 창틀 위에 매달아놓은 풍경이 흔들리며 맑은 소리를 냈다. 후끈하게 달궈진 늦여름 바람이지만 어느새 선선한 공기가 스며들어 있었다. 한가할 때 해야 할 일은 모두 끝났다. 그의 현지 적응 훈련도 마무리 되는 중이다.


건은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띄웠다. 여성의 사진 몇 컷이 떴다. 건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진 속에서 이목구비가 뚜렷한 여성이 친구들과 함께 웃고 있었다. 기억은 희미하지만 친숙한 얼굴이다.


유선아.


그의 동생이다. 그보다 세 살이 작으니 올해 스물 다섯이다. 지금 보고 있는 사진은 그녀가 숙대에 재학하던 시절 친구와 같이 찍었다는 사진들이다.


그가 기억하는 동생의 얼굴은 7년 전 모습이다. 어렵게 찾아 만난, 그도 잘 아는 그녀의 고교시절 친구에 따르면, 동생은 1년 전쯤 집을 나갔다고 한다. 돈 벌어 오겠다는 편지 한 장을 남기고. 믿거나 말거나. 그 친구는 또 이런 이야기도 했다. 석 달 전쯤에 연락을 받았는데, 86으로 시작되는 번호가 찍혀있었다고. 86은 중국 지역번호다. 동생 친구는 언제라도 찾아오라며 자신의 명함을 건네 주었다.


이국희- 강남 텐-프로......


건은 물끄러미 동생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지금은 분노해야 할 때가 아니라, 숨어야 할 때라는 걸 알고 있다. 건은 눈을 감았다. 의자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을 뺐다. 그렇지만, 저절로 치밀어 오르는 불안한 화기를 꾹 누르며 숨을 골랐다.


- 선아의 가출은 사실일까? 그 사려 깊고 착했던 아이가?

- 살아있기는 한 거지? 석 달 전이라면......

- 사진의 얼굴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 부모님의 사망원인은 알려진 것과 다르다.

- 일 처리가 어설프고 거칠다. 그렇다면......


건은 손가락을 꺾었다. 그 동안 간이 조사를 통해 풀어야 할 문제들은 너무도 많았지만, 어설프게 움직여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을 상황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런 현실이 그를 몹시 답답하게 하고 있었다. 그는 적을 모른다. 자신도 모른다. 고로 아직 움직여서는 안 된다. 만약에 선아가 살아있다면, 그가 움직이는 순간부터 매우 위험해 질 것이다. 만약, 어디선가 죽었다면…… 건은 눈을 살짝 떴다. 눈빛이 하얗게 빛났다.


건은 의자에 몸을 푹 묻었다. 창문 너머 산자락이 보였다. 눈을 가늘게 떠 본다. 숲이 보였다. 나무가 보였다. 나무 가지가 보였다. 조금 더 힘을 줘 보기로 한다. 나뭇가지에 위장 색으로 숨어있는 애벌레가 보였다. 벌레가 기어가면서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주름이 보였고, 그 색깔도 제법 선명하게 보인다.


확대한 이미지 공간에 이제 ‘힘’을 구현해 본다. 영상이 조금씩 흐릿해졌다. 투명한 3D 필름이 무수하게 겹쳐지는 듯 이미지는 점점 몽롱하고 희뿌옇게 보였다. 이윽고 3차원 홀로그램처럼 이미지 레이어(layer)가 입체로 분리되어 나왔다. 세계가 흔들렸다. 덩어리로 떨어져 나온 레이어는 점점 많은 조각으로 나뉘어졌다. 이제, 벌레는 거의 투명해졌다. 기어가는 몸통 뒤로 뒤쪽 풍경이 보였다. 건의 이마에서 땀 한줄기가 흘러내렸다.


조금 만 더 나가보기로 했다. 벌레가 뭔가를 느낀 듯 갑자기 빠르게 움직였다. 움직이는 모습이 수 천, 수 만개의 얇은 유리거울 속을 지나는 것 것처럼 보인다. 건은 심상에서 그 중 몇 개 레이어를 체로 거르듯 신중하게 걸러냈다. 갑자기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눈앞이 까매졌다.


거기까지!

뇌리에서 경고 등이 켜졌다. 건은 눈을 깜빡였다. 눈물이 찔끔 나왔다. 심호흡을 했다.


‘아직 어렵구나.....‘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멈췄다. 산소 공급이 차단되자 흔들리던 촛점이 점차 제자리를 찾았다. 길게 숨을 뱉었다. 엷은 붉은 색 증기가 코에서 흘러나왔다. 비릿한 냄새가 났다.


그 시간 100미터 떨어진 산 기슭 느티나무 위에서 송충이 한 마리가 툭 떨어졌다. 벌레는 땅바닥에서 꿈틀거렸지만 방향감각을 잃었는지 제자리를 계속 맴돌고 있었다.


바쁜 가운데 개학날짜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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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양아치- 18 +42 12.08.23 12,483 15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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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양아치- 07 +34 12.08.11 11,982 119 12쪽
» 양아치 -06 +23 12.08.11 12,259 117 9쪽
7 양아치- 05 +15 12.08.11 12,552 119 10쪽
6 양아치 -04 +14 12.08.11 12,990 12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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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새 소설) 양아치 -01 +52 12.08.11 25,552 10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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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즘 근황, 에뜨랑제 관련 이야기 +133 10.12.09 26,538 6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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