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ntasia2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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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삼
작품등록일 :
2012.09.18 13:35
최근연재일 :
2012.09.18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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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8.11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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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아치- 08

DUMMY

08- 양아치



“저..... 유 선배님”


강의를 마치고 나가려는 건을 막아서는 사람이 있었다. 개강 후 1개월 정도 지난 시점이다. 10월 초 캠퍼스엔 시원한 바람이 돌았다. 산기슭 성질 급한 단풍이 벌써 염색질을 하고 있었다.


“나?”

건이 물었다. 건은 그에게 다가온 사람이 경영학과 대표라는 것을 기억했다. 이름이 정인훈 이었던가? 키는 조금 작은 편이었지만 꽤나 붙임성이 있는 친구였다. 인훈이 물었다.

“다음 주 금요일 시간 있으세요?”

“다음주 금요일?”

“조촐한 모임을 하기로 했거든요. 약속이 없으시면 참석해주셨으면 해서요.”

“약속은 없는데......”

건은 머뭇거렸다. 약속은 없다. 그렇지만 새파란 아이들과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자신은 군대를 다녀온 복학생도 잘 모를 만큼 연식이 오래된 사람이다. 학교 다닐 때 학업에 힘쓴 것도 아니고, 주로 밖으로 돌았기 때문에 과에서도 그를 아는 친구는 아주 적었다. 그는 진짜 그렇게 믿고 있었다. 빠져주는 것이 도와주는 건데......

“꼭 참석해주셨으면 합니다.”

인훈이 다시 한번 말했다.

“왜?”

“대선배님이신데 정식으로 인사를 드려야죠.”

“풋-”


건은 기어이 웃음을 터뜨렸다. 넉살이 좋은 놈이다. 인사라……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고참 병장이 각 잡고 군기확립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것만큼 낯설게 들렸다. 학부 통합 후 경영학과는 인원이 한 학년만 200명이 넘는 대표적인 비만학과다. 복학생은 고사하고 그 넘의 자격증 때문에 청강생이 워낙 많아 동기 동창조차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그런 아이들이 무슨 바람이 불어 인사를 한다고...... 요즘 같은 험악한 시절, 그렇게 선후배 챙기는 예의 바른 아해들도 아닐텐데.


건은 복학생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많았다. 학생회나 동아리 단체 모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사실은 학위에 대한 욕심도 별로 없다.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이라는 타이틀은 아주 매력적이지만, 그에겐 별로 와 닿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살짝’ 겪었던 세상은 타이틀보다 더 중요한 것이 훨씬 많았다. 그렇다고 새파란 얼라들과 얼굴 붉히며 멀리 떨어져야 할 이유는 없었다. 어차피 한번은 겪어야 할 일이니까.


“몇 명인데?”

“간부들 모임이라 열 명 정도 모일 겁니다.”

“간부들? 그런데 내가 그 자리에 나가야 돼?”

“제일 연장자 이시고, 이것저것 조언도 들을까 해서...... ”

인훈이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고맙습니다.”

“어디지?”

“신림동 뉴 일미집에서 모이기로 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메시지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인훈이 꾸벅 인사하고 돌아섰다. 아이들이 인훈의 주변으로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그를 흘끔흘끔 바라보는 아이들이 많았다.


건은 발길을 돌려 도서관으로 향했다. 학기초 그의 복학생 일상은 무척 단조로웠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운동과 명상을 하고, 8시에 도서관에 간다. 평일 거의 휴식 없이 매 시간 강의를 듣고 5시에 다시 도서관에 간다. 그리고 밤 11시에 도서관을 나온다. 지하실에서 개인 작업을 하고 2시에 잔다.


건은 지난 7년간 잃어버린 시간을 빠르게 복원하고 있었다. 특히 대한민국은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고, 네트워크 기반의 디지털 융-복합 정도가 최고도로 형성되어 있어서 사회 문화현상의 복잡성은 그의 상상을 아득하게 초월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의식, 패션, 트렌드, 하다 못해 유머까지 그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너무 많았다.


사회에는 아주 새로운 권력이 등장했고, 현실과 가상 세계 모두에서 온갖 새로운 형태의 조직이 생기고 있었다. 특히 대학 문화의 변화는 너무나도 극적이어서 여기가 정말 대한민국 땅일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불행하게도 그 변화라는 것이 아주 부정적이라는 것이 문제였지만.


건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겪었던 독특한 경험으로 인해 뭔가를 예측하고 행동하려면 현상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닫고 있었다. 본질을 알아야 현상이 제대로 보이는 법이다.


그에겐 그가 명확하게 설정한 적(enemy)이 존재하고 있었다. 적은 한 둘이 아니다. 놈들은 강하다. 이 사회의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었고, 정보를 아주 능숙하게 다룬다. 가진 권력을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아는 지혜로운 자들이기도 하다. 그들과 싸우려면 작은 단서, 단편적인 정보로도 타당한 추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건은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이론과 지식을 원했다. 그리고, 그 기초 데이터들을 가장 쉽고, 싸게 얻을 수 있는 곳은 대학이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놀랄 정도로 지독하게 타락했지만 아직까지는 ‘오염’되지 않은 인간이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고.....


그 밖에도 건은 자신의 몸에 일어나고 있는 기괴한 현상에 대해서도 해결해야 할 것이 많았다. 지난 5년간 겪었지만 아직도 자신의 몸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았다. 아직도 변화는 계속되고 있다. 그것이 좋은 쪽 변화인지는 확신이 없다. 어쨌든, 죽다 살아났으니 변화가 아주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건은 강력한 능력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우고 있었다. 건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그게 뭔지, 어떻게 진화할지 전혀 짐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작은 감각의 변화에 적응하느라 허비한 시간이 지난 3년이었다. 이제 겨우 적응해서 정상적인 삶이 가능해졌는데, 몸이 일으키는 새로운 변화는 다시 발목을 붙잡고 놔주질 않고 있다. 이래 저래 학교에서 시간을 죽여야 하는 진짜 이유다.


“?”

전화가 울렸다. 진석이다.

“왜?”

“술 먹자” 진석이 말했다.

“어디야?”

“목신(牧神)의 오전”

“혼자야?”

“아니.”

“뭘 먹을 건데?”

“삼겹살에 소주?”

“맛있는 곳이야?”

“그런대로”

“돈은?”

“당근, N빵”

“많이 처먹어라. 내 것까지”

“야! -”


건은 전화를 끊었다. 아직은 그들을 만날 준비가 되지 않았다. 다시 엮이고 싶지도 않았고.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끈질긴 놈.


* * *


지민은 바빴다. 너무 바빠서 모든 연락을 다 끊어버려야 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지금 이 사람만큼은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어이 따라오겠다는 강명진 선배를 겨우 따돌리고 결국 이곳까지 왔다.


“제발 좀 봐주라.”


2004년 형 빨간색 프라이드가 힘이 부치는지 언덕배기부터 바퀴가 진창을 헛돌며 털털거렸다. 휴대전화를 다시 꺼냈다. 10월 가을장마가 또 뿌리려는지 하늘이 컴컴해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강릉 백합공원 이라고 했죠? 거의 다 왔는데, 아, 어디로 가면 되나요?”


지민은 공원묘지 사무소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리자 작업복을 입은 사람이 그녀를 맞이했다.

“김영호씨 인가요?”

“내가 김영호 입니다.”

“이 사진을 방송국에 보내신 분 맞죠?”


지민이 사진을 내밀었다. 발인 뒤에 묘지 공사를 하면서 찍은 것으로 보이는 사진이다. 썰렁한 묘소에서 인부들이 봉분 마무리 공사를 마치고 쉬는 모습이다. 약간 떨어진 곳, 산소 뒤에 풀썩 주저앉아 있는 한 사람이 덤으로 찍혀있었다. 지민은 그 사진을 들고 여기까지 왔다.


방송국은 사고 직후부터 “시민 S”를 찾기 위한 이벤트를 벌였다. 사람들은 영웅을 원했고, 숨은 영웅은 본인의 의사에 상관없이 상업적 사냥의 대상이 되었다. 지민은 그 행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직접 목격한 사람이기 때문에 참여해야 했다. 사실은 시키지 않아도 그녀 스스로 참여했을 것이지만.


뉴스에 썼던 동영상을 면밀하게 분석했다. 영웅의 모습은 꽤 오랫동안 고해상도 카메라에 노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식별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옷, 신체적 특징, 분위기 등 모든 단서가 세밀하게 분석되었고, 이를 근거로 목격자 제보를 받았다. 물론 쓸만한 경품을 걸었다. 스폰서도 꽤 큰 기업들이 붙었다.


두 달 동안 방송국에는 목격자 제보가 폭주했다. 인터넷 방송국 서열 2위로 올라갈 정도로 폭발적인 호응이었다. 그렇지만, 지민은 자신이 원하는 걸 찾을 수 없었다. 강릉의 티켓 판매원이 그를 보았지만 보았다는 사실 이외에는 어떤 정보로 얻을 수 없었다. 티켓은 현금으로 끊었기 때문에 신분을 확인할 수도 없었다. 버스에서 구조된 생존자들을 포함해서 목격자는 많았다. 그렇지만 그가 누군지 알 수는 없었다. 길거리에서 봤다는 인간들도 있었다. 복장이 비슷한 사람들 사진이 속속 올라왔다. 이벤트 게시판은 장난 사진, 패러디 사진, 코믹 동영상이 대세를 이루며 꽤나 인기 있는 놀이터가 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엉뚱한 곳에서 제보가 왔다. 무려 3개월 만이다. 이제 영웅 찾기에 대한 열광이 수그러들 무렵이었지만, 방송국은 손해 볼 것이 없었다. 짭짤한 수익도 올렸으니, 슬슬 이벤트를 끝내려고 하는 무렵이었다. 지민은 강릉에서 올린 사진 한 장을 보고 자신이 원하는 걸 찾았다고 느꼈다. 첨부된 사진의 RAW 파일 정보를 보며 그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곳 이구나.’


지민은 묘소를 찾았다. 묘비가 없는 두 개의 봉분. 어떤 쓸쓸함. 왠지 가슴이 답답해지며 코끝이 시려왔다. 6월 모일에 조성된 묘소다. 사고가 났던 그 직전 시점. 그때 조성된 봉분이 두 개. 지민은 그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짚었다. 그날 그 사내의 무거운 표정과 고약한 냄새와 추레했던 옷 차림의 의미도……


지민은 공원묘지 사무소를 찾았다. 여직원이 그녀를 맞이했다. 바깥에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젖은 머리카락을 젖히며 지민이 물었다.


“이 묘소의 주인을 알 수 있을까요? 그리고, 명의자 이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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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양아치 -04 +14 12.08.11 12,990 126 8쪽
5 양아치- 03 +11 12.08.11 12,806 108 9쪽
4 양아치 -02 +14 12.08.11 14,542 104 13쪽
3 (새 소설) 양아치 -01 +52 12.08.11 25,551 10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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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즘 근황, 에뜨랑제 관련 이야기 +133 10.12.09 26,538 6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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