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ntasia2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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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삼
작품등록일 :
2012.09.18 13:35
최근연재일 :
2012.09.18 13:35
연재수 :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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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8.31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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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양아치- 21

DUMMY

21- 양아치



서울특별시 강남특별구.


어느새 대한민국의 상징이 되어버린 곳. 동경과 홍콩, 그리고 싱가포르까지 멀찌감치 제치고 아시아의 뉴욕이라 부르는 문화수도 서울. 그 서울에서도 강남은 문화 예술의 해방구라고 불릴 만큼 다채로운 볼 거리가 많은 곳이다. 21세기 초부터 전 세계에 퍼져 지금은 아시아적 대중문화의 굳건한 아이콘이 되어버린 한류 (Hallyu, 혹은 K- wave라고 부르기도 한다.)의 중심지로 등극했다.


“정말 많구나.”


건은 눈을 비볐다. 강남 역 사거리 지하철에서 나온 직후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 하늘이 우중충했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이 불었다. 건은 코트 깃을 올리고 천천히 걸었다. 늦가을 바람이 제법 차다.


이 거리는 언제나 생소하다. 활기찬 사람들, 즐거운 사람들. 그 어마어마한 인파들이 쉴새 없이 쉭쉭- 스치고 지나간다. 그 중 반은 물 건너온 사람들이다. 하얀 사람, 노란 사람, 까만 사람, 검은 머리, 노란 머리, 붉은 머리...... 놀랍게도 그 사람들 중 50% 이상이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한국 국적을 가진 획득한 사람들의 70% 이상이 매우 부유한 사람들이라는 점.


한국은 전 세계 부자들과 그 가속들이 이민을 선호하는 나라 1순위가 되어 있다. 매우 웃기지? 그런데 사실이다. 고도(高度) 민주화가 달성된 선진국 중 한국만큼 부자에게 너그러운 정책을 베푸는 나라는 없으니까. 환상적으로 싼 소득세, 평균 이하의 금융 거래비용, 여기에 상속과 증여세 회피를 위한 종합선물세트가 체계적으로 구축된 나라. 상위 1%의 천국.


그렇지만, 극과 극은 서로를 끌어당기는 모양이다. 우습게도 이 극도로 속물적인 도시는 전 세계 모든 진보 청년들에게는 새로운 세계를 여는 꿈의 이상향으로 보였다. 디지털 사이버 세계와 첨단 예술이 만나는 지점에서 해방을 꿈꾸는 전세계의 괴짜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모든 문화 예술적 실험이 벌어졌고, 이러한 개방적 분위기는 사상적으로 너그러운 분위기를 형성했다.


이런 토양에서 다음 물결이 한국으로 들어왔다.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 파리꼬뮨의 계보를 이어 서울꼬뮨을 꿈꾸는 post-꼬뮤니스트 들, 일본식 컨텐츠의 진지함과 무료함에 지쳐 한국식으로 갈아탄 소위 ‘코덕’ 혹은 ‘한덕’이라 불리는 막강한 덕력의 고도 잉여인간들, 아방가르드에서 다다이즘, 첨단 패셔니스트에서 막장 행위예술가 집단들까지 몰려들어 서울에 둥지를 틀었다.


마지막 K-물결은 첨단 연장을 다루는 전문가의 이주로 그 정점을 찍었다. 최첨단 디지털 인프라 위에서 다문화 융합이 진행되면서 한국은 전 세계 외교의 중심무대로 떠올랐다. 그 파생효과로 서울은 아시아 최대의 용병시장이자 정보 거래시장으로 성장했다. 전 세계의 스파이와 에이전트 거인들이 한국에 거점을 설치했다. 아울러 폭력과 범죄로 먹고 사는 직종의 인간들이 이곳에서 거대한 사업기회를 발견했다.


한반도.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그리고 대한민국. 이 5 대 강국과 세계최대의 거대시장이 만나는 지구상 유일한 접점. 비빔밥처럼 모든 것이 비벼지는 곳. 어마어마한 화학 반응이 매일 마다 벌어지는 첨단과 혁신의 도가니.


그들은 서울을 ‘해방구’라고 불렀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의 파리처럼. 이곳의 인간은 안보라는 이데올로기를 해방시켰더니, 해방이 그들의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되어 버렸다.


건은 엘리베이터 창 밖을 보았다. 온갖 색깔의 불빛이 그의 얼굴에서 아른거렸다. 네온, 아르곤, 청색, 녹색, 적색 LED. 문이 열렸다. 빨간 인도 카펫이 깔린 복도가 나왔다.


“오빠, 여기예요.”


건을 보자 대기실에서 여자가 손을 흔들었다. 55층 스카이라운지. 중금속으로 오염된 서해와 일본 동쪽 태평양의 방사능 오염 때문에 요즘 금 값보다 비싸다는 북한 쪽 동해 청정해역 해산물을 전문으로 취급한다는 시푸드(Sea food) 레스토랑이다.


“국희 넌 갈 수록 예뻐지네?”

건이 앉으며 말했다. 여자는 이국희. 실종된 동생 유선아의 친구다. 선아가 가출 후 연락했다는 유일한 사람. 빨간 립스틱. 하얀 얼굴. 직업 때문이겠지만 요염하면서도 단아해서 어딘가 함부로 범접하기 어려운 기품이 있어 보이는 여자다.


“건 오빠가 그런 농담도 할 줄 아세요? 정말 많이 변했어요.”

“농담 아닌데......”


건은 대답하면서 고개를 돌려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55층 원형 타워에서 바라 보는 서울 야경은 가히 몽환적이다. 거의 모든 빌딩이 디스플레이로 도배가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원통을 따라 강남의 빌딩을 모두 아우르는 3차원 이미지가 춤을 춘다. 거대한 도시 쇼.


“굉장하죠?” 국희가 물었다.

“까무러칠 것 같다. 이거, 멀미가 나서 식사가 될 까 모르겠네.” 건이 어깨를 으쓱했다.

“천천히 드시면 되죠. 저 오늘은 시간이 많아요.” 국희가 턱을 고이며 말했다.

“이 집 맛있냐?”

“맛보다는 멋을 강조하는 집이죠. 그래도 기본은 해요.”

“비싸겠다.”

“요정 빼놓고는 제일 비싼 집이죠”

“.......”


건은 그러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며 국희는 웃었다.


‘쪼잔하긴......’


그녀 웃음에는 고소하다는 듯한 느낌이 담겨 있었다. 먼저 미팅을 청한 이 사내가 값을 치르기로 했고, 식당은 알아서 잡으라고 했으니 그녀가 잘못한 것은 없었다. 강남에 나오면서 쓸데없이 허세를 부리면 그 대가가 치명적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촌놈)이 저지르는 흔한 실수다.


특히, 이 집의 밥값은 쫄딱 망한 집안의 학생이 감당할 만한 비용이 절대로 아니다. 어차피 그녀 자신이 내줄 생각으로 나왔다. 그것이 오랜 동안 열등감과 상한 자존심으로 속을 무던히도 썩게 만들게 했던 상대에 대한 국희의 소심한 복수일지도 모른다. 타락한 여자가 고고한척하지만 가난한 남자에게 해 줄 수 있는 슬픈 한방.


우수한 유전자를 타고난 정말 우월했던 사내. 그의 동생은 될 수 있었지만 연인은 되지 못했다. 엄청 똑똑한 놈답게 매사에 자신감이 있었고, 구역 일진들 씨를 말려버릴 정도로 싸움도 잘했고, 오지랍도 더럽게 넓었다. 남의 삶에 간섭하여 함부로 영향을 미치려고 노력했고, 가끔 세상의 모든 고통을 짊어진 것처럼 고뇌하는 듯이 보였다.


철없던 소녀는 그게 얼마나 멋있어 보였는지 모른다. 그때 그는 명문대 대학생이었고, 부자였고, 자신은 평범한 집안의 꿈 많은 고등학생이었다. 그가 생각 없이 던진 말에 상처를 받았다. 그것도 많이. 어쩌면 자신이 이 화류계 생활을 하게 된 것에는 그의 책임도 컸다고 생각했다.


건은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넓은 곳이지만 예약이 없으면 못 들어오는 곳답게 모든 좌석은 꽉 차 있었다. 천정을 바라보았다. 돔형으로 설계된 천정에서는 우주 쇼가 펼쳐지고 있었다. 천정은 유리 대신 폴리머 계열의 플렉서블(Flexible) 디스플레이를 써서 시공했다. 출렁이듯 크게 휘어지는 곡률에 투영되는 영상은 입체 화면 이상의 임장(臨場) 감을 실현하고 있었다. 현실과 환상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그렇게 티 내면 촌스럽다고 놀릴 거예요.”

건이 고개를 젖힌 상태로 이리저리 둘러보자 국희가 퉁명스레 말을 건넸다. 누나가 동생을 타이르는 듯한 말투. 건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가 나왔다. 기본 찬은 10첩으로 깔리고, 코스 요리가 조금씩 접시에 담겨 나오는 방식이다. 소소한 대화를 나눴다. 주로 국희가 이야기하고 건은 들었다. 식사가 끝났다.


“후식은 뭘로 하실래요?” 국희가 물었다.

“아이스크림으로” 건이 말했다.

“오빠 취향이 많이 변했네요.” 국희가 말했다.

“응?”

“전엔 달달한 거 좋아하지 않았잖아요? 항상 쓴 커피만 시켰었는데.”

“세월이 많이 지났으니까. 입맛도 바뀌는 게 당연한 거 아냐?”

건이 싱긋 웃었다. 그렇지만 국희는 웃고 있지 않았다.


“하영이 요즘도 연락해요?”

“아니. 연락이 안 되더라. 뭐, 잊었겠지. 세월이 많이 지났잖아.”

“TV를 보면 기분이 어때요? 매 채널마다 걔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데가 없는데.”

“연예 프로나 드라마는 안 봐. 그래도 잘 나간다니까 기분이 나쁘지는 않더라.”

“이젠 만나고 싶어도 못 만날 사람이 되어 버렸죠. 너무 떴어.”

“잘 된 거지. 뭐.”

건이 씁쓸하게 웃었다. 창 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 모습이 어쩐지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잠시 대화가 멈췄다. 국희는 다리를 바꿔 꼬았다.


“오빠 그거 알아요?”

“뭘?”

“내가 얼마나 오빠를 좋아했는지?”

“그랬었니?”

“하영이보다 백배는 더.”

“그랬구나.”


건이 짧게 대답했다. 국희의 입 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이런 건 전혀 변함이 없다. 상대의 속 마음과 속살까지 후벼 파는 무심함. 쿨 하다 못해 얼어 죽을.


후식이 나왔다. 대화가 잠시 멈췄다. 숟가락에 잔이 달칵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국희는 에스프레소, 그것도 더블샷을 음미하듯 조금씩 마셨다. 오래된 습관이다. 야행성 일을 하는 직업 때문이랄까? 국희는 이 장면을 기억하려고 애를 썼다. 달달한 아이스크림을 좋아했던 내성적인 소녀와 에스프레소를 즐겨 마시던 대학생...... 웃긴다. 세월은 정말 이런 반전을 즐기나 보다.


“화장실 다녀올게.”


어색한 분위기 때문인지 건이 머리를 긁고는 자리를 떴다. 국희는 브라우스 단추를 매만지고는 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쳤다. 화장을 고치고는 창 밖을 바라보았다. 옆 좌석에서 떠들썩하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왠지 생소했다. 썰렁한 기분에 옷을 여몄다.


춥다. 이 세상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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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7

  • 작성자
    Lv.99 도도리표
    작성일
    12.08.31 21:55
    No. 31

    건강 하시길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소랭
    작성일
    12.08.31 23:10
    No. 32

    재밌게 보고 가요~
    "그 한국 국적을 가진 획득한 사람들의 70% 이상이"
    위에서 10번째줄쯤에 이부분 어색하네용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6 겨울베짱이
    작성일
    12.09.01 01:20
    No. 33

    즐감했음다..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마인천하
    작성일
    12.09.01 07:13
    No. 34

    긍정적으로 대단히 긍정적으로 우리의 미래를 바라본다면
    아마 작가님이 그린 세상과 비슷해 질듯 하네요.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0 꿈의무림
    작성일
    12.09.02 01:45
    No. 35

    에뜨랑제를 예전에 너무나 재미있게 보았다가 요삼님의 신작이라 관심만 갖고 있었습니다. 요삼님의 글은 너무 흥미진진하지만 그에 걸맞게 생각할 거리도 많고 진지한면도 많아서 조금은 부담이 되서 미뤄두었다가 1편부터 보고 순식간에 글에 빨려들었네요 에뜨랑제가 글의 완성도가 제일 높을지는 모르지만 양아치가 저에게는 더욱 재미있게 받아들여지네요 카타르시스라고 해야되나 요삼님 글중에서는 대리만족감이 충실히 들고 글도 탄탄하고 정말 재밌네요 좋은 글 감사할뿐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3 인간의길
    작성일
    12.09.02 01:53
    No. 36
  • 작성자
    Lv.68 pr*****
    작성일
    12.09.19 12:40
    No. 37

    건필하십시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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