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ntasia2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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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삼
작품등록일 :
2012.09.18 13:35
최근연재일 :
2012.09.18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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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8.11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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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아치- 07

DUMMY

07- 양아치



“번거롭네……”


건은 학생증을 꺼내 RFID 리더기에 댔다. 문이 열렸다. 정문에서부터 시작해서 강의실까지 벌써 세 번째다. 마치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는 기분이다. 허가되지 않는 물건은 반입하지 못한다. 건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생소한 일이었지만, 대학 강의실과 연구실에 출입하는 사람들이 법적으로 이행해야 의무가 된지 오래다. 총기 소유가 합법화 되어있는 새로운 현실에서 대학이 자신의 신성을 지키기 위해 적응하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폭력을 수반한 학내 조직 간 갈등은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는 것이 더욱 우스운 현실이기도 하지만.


“이건 뭐 쌍팔 년도 아니고……”


건은 좌우의 풍경을 씁쓸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주사파, 아니면 일본 적군파가 이 시대에 다시 부활이라도 한 것일까? 커다란 건물에는 경찰청 깃발이 휘날리고, 그 앞에는 80년대에나 구경할 수 있었던 닭장 경찰차가 각종 화기로 무장한 채 요새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학내에 들어와서도 학생과 사복경찰을 구별할 수 없었다. 그때와 지금이 다른 것은 학생회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경찰이 들어와 있다는 것뿐. 그나마 필요할 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지만.


건은 걸음을 늦추고, 교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는 이 장소에서 깡마른 소외를 느꼈다. 소중한 추억이 증발해 버린 지독한 상실감. 이곳은 그가 격하게 사랑했던 대학의 풍경과는 너무도 달랐다.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젊은이들답게 전체적으로 밝고 활기찬 모습이다.


제복을 입은 아이들도 있었고, 모자를 멋들어지게 쓴 학생들도 있었다. 동아리 유니폼일까? 아니다. 어떤 선택된 학생들은 보위(Guardian) 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이끌고 다닌다고 했다. 한국의 신흥귀족들이 사적으로 고용한 사람들이다. 이들 역시 학생들이다. 부조리와 권력에 대한 저항보다, 달콤한 미래가 보장되는 적응을 선택한 아이들.


첫 강의시간이다.


건은 강의실 왼쪽 중간 뒤쪽에 앉았다. 조금 일찍 왔기 때문에 학생이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학생은 대화를 나누면서 서 있었다. 건은 전망이 괜찮은 자리에 앉아 태블릿을 열었다.


최근 정치경제사 특강.


건은 화면을 하나하나 넘기며 자료를 확인했다. 문득 현기증을 느꼈다.


세상의 변화는 너무나 빨랐다. 특히 한반도를 진원으로 거세게 요동치는 동북아의 정세는 오늘과 내일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을 만큼 빠르게 변화하는 중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변화가 2년 전, 북한이 입헌군주제로 전환하며 영세중립국을 선언했을 때부터 비롯되었다는 학설을 지지하고 있다. 세계 외교사에서 신의 한 수라고까지 부르는 북한 외교력의 승리였다.


건이 가장 놀란 것은 북한의 이 선언에 대해 주변국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아기가 할아버지가 되는 기나긴 시간은, 전쟁을 했다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하게 만드는 변화의 요술은 사람의 인식을 바꾸게 하는 데 충분한 시간임이 밝혀졌다. 두 세대(60년)이상을 지탱해 왔고, 증오와 미움을 처먹어가며 견고하게 진화해온 세력구도에서 그 힘의 균형이 깨지길 원하는 나라는 없었다.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 심지어 당사국인 한국까지도.


6자의 동의와 함께 국가 인준과 정전 협정, 새로운 외교관계 설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한국의 대사가 평양에서 그토록 적대적이던 왕에게 아그레망을 받는 광경은 전 세계에 중계될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이 사건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사건과 함께 공산주의 레짐의 최후를 상징하는 것 이었다.


건은 입맛을 다셨다. 건이 보기에, 한국인의 선택한 것은 최악의 ‘죄수의 딜레마’였다. 한국은 당면한 가치 선택의 기로에서 가장 ‘합리적’으로 보이는 선택을 했다. 대다수의 한국인은 비용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는 민족공동체보다 훨씬 안전해 보이는 현상 유지를 원했다.


진보적 성향의 정당은 다문화 가정이 한 세대(30년) 동안 정착하면서 ‘한민족 자결주의’는 더 이상 한반도를 지배하는 이념이 아니게 되었다는 현실을 간과했다. 덕택에 보수적 성향의 정당이 모든 계층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냄으로써 거의 영구적인 권력기반을 확보했다.


그렇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바깥쪽 안전보장 문제가 해결되자, 안쪽에서 새로운 도전이 한국 사회를 덮쳤다. 그것은.......


상념에 잠겼던 건은 문득 고개를 들었다.


“‘화랑 ‘아이들이야.”

“역겨운 인종주의자 골통 나찌 새끼들.”


일부 학생들이 소곤거렸다. 건은 고개를 돌렸다. 앞쪽 출입문을 통해 일단의 학생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열명 정도의 아이들. 제복은 아니지만 붉은 색 계통으로 통일한 복장이 인상적이다. 리더로 보이는 학생 세 명이 강의실을 스윽 둘러보더니, 그 중 남학생이 오른쪽을 향해 턱짓을 했다. 뒤에 따라오던 아이들이 앞으로 성큼 나섰다. 오른쪽에서 먼저 자리를 차지했던 아이들이 황급하게 가방을 들고 뒤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건은 흥미로운 눈으로 강의실을 둘러보았다. 대형 강의실. 강의실 전면에는 칠판을 대체한 커다란 터치 스크린, 컴퓨터와 연결된 시청각 자료들이 배치되어 있다. 천정에는 여덟 개의 대형 카메라가 돌아간다. 반원형으로 둘러싼 좌우에는 작은 스크린이 작은 거울처럼 빼곡하게 박혀있었다. 이 스크린에는 온라인으로 청강하는 학생들의 얼굴이 나타난다. 특히 토론과 발표가 중심이 되는 강좌는 반드시 동시 접속해서 강의를 들어야 하기 때문에 만든 강의 시스템이다.


“재미있네......”


건은 고개를 돌렸다. 왼쪽 문에서도 비슷하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검은 색 계통의 옷을 입은 학생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리더로 보이는 학생은 여학생이었는데, 앞에 붉은 색 옷을 입은 학생들을 확인하곤 턱으로 왼쪽 앞을 가리켰다. 건이 있는 곳이다. 검정 재킷을 입은 남학생 하나가 다가왔다. 학생들이 소곤거렸다.


“‘천중’ 애들이다. 쟤들도 이거 수강신청 한 거야?”

“중화주의 친중파 놈들......”


건은 고개를 들어 자신의 앞에 서 있는 학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왜?”

까만 색 정장을 입은 친구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머리를 짧게 깎은 모습이 대단히 위압적으로 보인다. 그 친구는 건을 보고는 말을 섞기 싫은지 턱짓으로 뒤쪽을 가리켰다.


“자리를 비켜달라고?”


놈은 대답하지 않았다. 눈과 눈이 마주쳤다.

“복학생은 여기 앉으면 안 되는 거냐?”


놈은 대답대신 어깨를 으쓱하며 뒤를 돌아 보았다. 건은 목을 죽 빼고 놈의 뒤를 보았다. 짜증스런 표정을 숨기지 않은, 다섯 명의 학생과 그들의 리더인 듯한 여학생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여학생은 키가 훤칠했는데, 역시 검은 색 계열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보위인 듯 보이는 놈 옆으로 다른 두 놈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무서워라. 요즘은 선후배도 없냐?”


건이 여전히 앉아서 소심하게 투덜거렸다. 놈의 눈매가 약간 찌그러졌다. 여전히 앉아있는 건의 어깨를 감싸듯 안고 귀에 얼굴을 가져갔다. 잡힌 어깨에서 묵직한 힘이 느껴졌다. 평균적인 사람이라면 어깨뼈가 탈구될 만큼.


“험한 꼴 보기 전에 옮기시죠? 철모르는 선.배.님.”


놈이 건의 귓바퀴를 살짝 깨물며, 뺨을 툭툭 쳤다. 건은 귀속을 파고드는 뜨거운 숨결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알았다고. 가면 되잖아.”


건은 어색한 표정으로 귀를 벅벅 긁고는 패드와 가방을 챙겨 들고 엉거주춤 일어섰다. 건은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리더로 보이는 여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입술 끝이 움직였다. 건은 그 소리를 ‘볼’ 수 있었다.


- 병신


건은 자리를 찾는 대신 강의실 벽에 기대섰다. 이제야 왜 학생들이 자리에 앉지 않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수업이 시작하기 전까지 3개의 그룹이 더 들어와 그들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먼저 온 팀과 나중에 온 팀간 작은 말다툼이 있었지만 학기 초여서 서로 자제하자는 분위기인지 큰 소란은 없었다. 집단 별로 커다란 강의실에서 자신 만의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서 있던 다수의 학생들이 천천히 빈자리를 찾아 움직였다.


강의실의 분위기는 몇 그룹의 신경전으로 전장처럼 팽팽했다. 처음 오는 학생은 그 분위기에 숨이 막힐 정도다. 다섯 세력의 학생들이 서로를 견제하는 느낌은 그 만큼 선연했다. 주눅이 든 학생들은 그저 자신의 태블릿 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마도 학교의 모든 강의실이 비슷한 풍경이리라.


건은 맨 뒤쪽자리에 앉았다. 패드를 다시 펼쳤다.


“자리 있어요?”


건은 바라보지 않고 고개를 끄떡였다. 여학생이 건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스치고 지날 때 싱그러운 풀잎향이 퍼졌다. 건은 코를 실룩거렸다. 어딘가 익숙하다는 생각을 하며.


교수가 들어왔다. 교수는 안경테를 불안하게 만지더니 강의 시스템을 확인한 후, 바로 강의를 시작했다. 현란한 시청각 자료들이 스크린 위로 휙휙 지나갔다. 여덟 개의 스피커가 서라운드로 강의실을 가득 채웠다. 강의라기 보다는 잘된 프레젠테이션을 보는 느낌이다.


건은 100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를 한 편 본 느낌이었다. 솔직히 감탄했다. 모든 강의가 이런 수준이라면 세계의 모든 학습 컨텐츠 시장을 지배하는 한국 교육산업의 역량을 의심할 수는 없으리라. 연구의 수준은 아시아 1급이지만, 강의의 수준은 세계 특급이라는 소리는 현실을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다.


첫 시간 강의가 끝났다.

건은 태블릿 강의자료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첫 강의였지만 충격이 작지 않았다.

‘이거...... 단시간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겠어......’


“처음 보는 얼굴인데, 복학생이세요?”


건이 고개를 돌렸다. 옆에 앉았던 여학생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녹색 계열의 원피스를 입었다. 맑고도 차분한 느낌의 인상이다. 그녀에게서는 싱그런 풀잎이 스칠 때 같은 향기가 났다.


“아,..... 예. 그렇죠. 나는 이만……”


건은 어떻게 대꾸를 해야 할지 잠시 멈칫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며 가방을 챙겼다. 눈짓으로 양해를 구한 뒤 백팩을 반쯤 어깨에 걸치고 강의실을 나섰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여학생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지만 건은 알 수 없었다.

“누구야? 아는 사람이 아니었어?”

여학생의 곁에서 다른 여학생이 물었다. 김유선, 그녀의 호기심이 커졌다. 서요란. 이 유별난 아이를 직접 움직이게 하고, 말까지 걸게 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이상해.” 서요란이 말했다.

“뭐가?” 김유선이 물었다.

“너무 평범해. 그럴 리가 없는데.”

“무슨 소리야?”

“그런 게 있어.”


건은 벤치에 앉아 숨을 골랐다. 이 학교는 사람의 숨을 막히게 한다. 건은 학생회관 건물에서 하늘로 올라간 애드벌룬을 보았다. 그 아래에 펼쳐진 촌스런 플래카드도.


- 글로벌 문화 특구, 서울대학교 -


건이 웃었다.

“씨댕…… 이게 학교냐? 정글이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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