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ntasia2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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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삼
작품등록일 :
2012.09.18 13:35
최근연재일 :
2012.09.18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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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8.17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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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양아치 -14

DUMMY

14- 양아치




“이대로 당할 수는 없다고! 그게 어떤 돈인데! 내가 어떻게 얻은 새끼인데.”


사내가 길길이 뛰었다. 밤새 한숨도 못 잤는지 입술을 바짝 말라 허옇고, 눈가는 거뭇거뭇했다. 방안은 집어 던진 기물로 인해 엉망으로 어질러져 있었다. 사내는 식식거리며 소파에 몸을 묻었다. 시계를 보았다. 아침 7시 30분. 사내는 전화를 들었다. 상대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잠을 깼는지 신경질이 잔뜩 묻어있었다.


- 웬일로 이런 꼭두새벽에 전화질이래? 거기 또, 룸방이냐?”

“어, 김부장, 나 좀 도와줘야겠어.”

- 별일이네. 맨입으로?

“농담할 기분이 아냐. 거액을 털렸어.”

- 절도? 아니면 강도?

상대의 목소리가 조금 신중해졌다.

“ 협박이야”

- 뭐? 어떤 겁 없는 새끼가 감히? 너 또 찌질하게 뱀씨한테 물렸냐? 이번엔 얼만데?

“20개, 현금으로.”

잠깐 정적이 감돌았다.

- …… 남의원, 지금 농담하는 거 아니지?

“인철이가 또 사고를 쳤어. 그런데……”

- 대형사고? 근데 아무리 그래도 어떤 간덩이 부은 놈이 현직 집권당 국회의원을 털어?

“아니, 일이 좀 골치 아파. 사실은……


설명을 다 듣고 김주창 부장검사는 생각에 잠겼다.

- 진짜 골치 아프네.

“어떻게 해결이 안 될까?


- 제도권 안에서는 불가능해. 애도 그렇지만, 자네도 다쳐.

“찾으면 그 돈 반 줄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


- 그게 어렵다니까. 일 처리가 너무 부실했어. 아무리 급해도 무슨 일을 그렇게 허술하게 하나? 그 정도라면 진짜 ‘꾼’이라는 건데, 그 놈은 돈을 주고받는 장면도 모두 녹화했을 걸? 그게 어떻게 사용될지는 그 놈 마음이야. 자네에겐 진짜 치명적이라는 이야기지. 게다가, 그 놈 이름도, 얼굴도 모른다며? 찾는다고 해도 어떻게 죄를 입증할 건데? 거기에 인철이 건은 아예 말도 못 꺼낼 상황이야. 법으로 가면 걔 인생은 완전히 끝장이야.


“그러니까, 널 찾은 거 아냐!”

사내가 소리를 질렀다.

- 남의원......

“아니, 그깟 돈 못 찾아도 돼. 놈만 잡아줘. 내가 그 씹어먹을 새끼를 잡도리하지 않으면 화병으로 돌아가실 것 같아. 솔직히 내가 불안하기도 하고.”

- 애는 어디 있어?

“병원으로 보냈어. 양쪽 다리가 박살 났고, 어깨뼈와 열 손가락이 다 부러졌고, 평생 성기능 불구가 될 가능성이 크다더라. 후, 내가 늘그막에 어떻게 얻은 새낀데. 제발 좀 도와주게......”

- 알았어. 내가 알아볼게. 그 동네가 어디라고 했지? 아이들 입원한 병원은 어떻게 돼?


남경빈 의원은 전화를 끊고 천정을 바라보았다. 한숨이 나왔다. 생각해보니 너무 서툴렀다. 자식새끼 일인데다,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때라 정치일정까지 달려있어서 정말 재봐야 할 걸 재지도 못했다. 아니, 그것보다 상대가 너무 노련했다. 뭘 생각할 시간자체를 주지 않았으니까. 찬물에 얼음을 넣어 벌컥벌컥 마셨다.


“깨끗이 당했어. 아마추어도 아니고......”


놈의 얼굴을 떠 올려봤다. 우습게도 생각이 ‘하나도’ 안 난다. 한밤 중 헬멧차림, 거기에 헤드 플래시 뒤에 가려진 얼굴이라 확인하기도 힘들었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지만 전혀 우습지 않았다. 생각나는 건 키가 조금 크다는 것. 웃을 때 보이는 하얀 이빨 정도? 그러니까 단서랄 것도 없었다.


지난 밤 일을 생각하니 다시 몸이 떨렸다. 창백한 플래시 불빛에 얼굴이 정면으로 노출될 때 마치 수술대에 준비 없이 올라간 기분이었다. 무기력하게 발가벗겨진 느낌.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인철이 놈은 뒤로 손을 묶인 채 하얀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마치 처형을 기다리는 것처럼.


자신도 모르게 분노의 고함을 내질렀다. 오랜 공직생활의 습관이었지만 일단 호통을 쳐놓고 그때만큼 후회한 적은 없었다. 놈은 웃었다. 하얀 이가 보일 정도로.


"당신, 국회의원이라지? 요즘 사과 값이 얼만지 알아?"

"......."

‘사과라는 걸 해본 적이 있어야 시세를 알지.’

"......."

"당신의 첫 마디가 진심 어린 사과였으면 이 거래는 공짜였어. 졸라 억울하지?"

"......."

"그래서 나는 당신 방식으로 현물로 거래를 하려는 거야. 왜 좀 깎고 싶어? 한 장에 갈비 뼈 한 개, 당신 꺼도 인정해줄게. 어때 콜?"


"엄마가 보는 앞에서 딸을 강간한 새끼, 딸 앞에서 엄마를 강간한 그런 쓰레기 말종 새끼를 키우신 위대한 애비의 개소리를 믿으라는 건가? 이제 당신 아들 방식을 그대로 보게 될 거야. 어디 웃으며 감상해 봐."


말은 필요 없었다. 허튼 말을 건넬 때마다 눈앞에서 자식새끼 뼈마디가 하나씩 아작아작 부러져 나갔다. 협상할 엄두는 감히 내지도 못했다. 게다가, 시간을 끌어서 뭘 도모하기에는 아이의 출혈이 너무 심해 보였다. 고기를 잘게 다진 것 같은 그 끔찍한 모습도......


현실적인 좌절감과 무력감. 영악한 그 놈은 그것도 계산에 넣었을 것이다. 그저 달라는 대로 빨리 주고, 놈이 적선하듯 증거라고 던져주는 메모리카드 하나 들고 도망치듯 빠져 나왔을 뿐.


등줄기에서 서늘한 땀이 옷을 척척하게 적셨다.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다. 남경빈 의원은 머리를 쥐어 뜯었다. 이런 일은 노회한 그도 처음이다. 떠올릴 수록 복수심보다 두려움이 점점 더 커지는, 그저 도망가고 싶은, 자식과 자신의 일이 아니라면 그냥 덮고 싶은 사건. 트라우마(trauma). 다시 놈을 볼 자신이 없었다. 남경빈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 새낀 악마야……”


* * *


“흠……”


건은 화면을 빠르게 넘겼다. 스크린 1, 스크린 2, 스크린 3, 스크린 4. 네 개의 화면이 그의 앞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앞 두 개는 24인치, 좌우에 있는 두 개는 37인치 짜리 터치패널 대형 화면이다.


대형화면에는 그가 요청한 검색 정보들이 떠 있었다. 이 정보들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된다. 그가 설정한 기준에 따라 중요, 긴급, 필독으로 판단되는 것들은 세 개의 화면으로 나뉘어 표시될 것이다. 건은 왼쪽 화면에서 ‘긴급’으로 반짝이는 항목을 선택했다.


[Hermes]


메시지 제목을 확인한 후, 시스템 보안 모드를 7단계로 설정하고 스피커를 켠 후 어플리케이션의 창을 열었다. 전면 대시보드(dashboard)에는 몇 개의 모듈이 동시에 동작하더니 잠시 후 연결음이 들렸다. 통화는 안전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해.” 건이 말했다.

- 확인 할 게 있어. 보내준 자료 중에 D-103 파일을 먼저 열어봐.


스피커에서 기계음이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확인하기 힘들다. 건은 오른쪽 화면에서 자료를 열었다. 위성으로 잡은 듯한 고해상도 이미지가 화면을 채웠다.


“대련(大連)?” 건이 물었다.

- 2021년 6월부터 올해 3월까지, 표적은 그곳에 있었어.


건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매우 신중한 자다. 그가 단정적인 표현을 썼다. 그럼 확실한 것이다. 정말 작은 단서로 6개월 만에 찾아냈으니 확실히 유능한 자다. 더럽게 비싸서 그렇지. 건은 호흡을 천천히 골랐다.


“살아는…… 있나?”

- 미 확인 상태. 추적 중

“어떤 곳이지?”

- 무명옥(無名屋). 최고급 유흥 음식점, 주로 고급 관료들 접대할 때 쓰는 장소.


“3월 이후에는?”

- 소스(source)를 찾고 있어.


건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소스가 바뀌었다는 의미는 여러 가지를 함축하고 있다.


“상태를 먼저 봐야겠는데.”

- 105번 파일을 열어봐.


건은 파일을 열었다. 몇 개 사진과 동영상이 떴다. 건은 입을 꾹 다물고 그림을 바라보았다. 동영상은 몰래 찍은 카메라인 듯 흐릿했지만 그가 원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신(神)의 이름을 간판으로 걸어놓은 놈답게 일 처리는 노련했다. 누구를 어떻게 동원했는지 모르겠지만, 의심 할 여지가 없는 증거들이 있었다. 건은 그림을 별도 파일로 갈무리했다.


“뭐가 문제지?”

- 찾는 게 사람이야, 물건이야?

“그게 일하는 데 문제가 되나?

- 돼. 경우에 따라서는 의뢰비도 조정해야 돼. 어느 쪽이야?


“사람이다. 물건은 필요 없어.” 건이 짧게 말했다.

- 20만 불은 더 줘야겠어. 조사자체가 생각보다 무척 위험한 일이 되어 버렸어. 더 이상 진도를 나가려면 전문 팀이 더 필요해.


“보내주지. 통신 끝나고 계좌 확인해봐.”

- 그런데, 누구야? 애인?


“꼭 알아야 하나?”

- 아…… 그건 아닌데, 이번 건은 너무 막연해서 그래. 사진 두 어장 달랑 던져놓고 찾으라고 하니 난감해서...... 네가 불편하다면 알려줄 필요 없어. 너와는 나쁜 걸로 엮이고 싶지 않거든.

“얼마나 걸릴 것 같아?”

- 짧게 잡아도 3개월 이상. 이번 상대는 무척 까다로워. 위험하기도 하고.

“직접 드러내지 말고 주변 만 털어봐. 누가 관련되어 있는지 알아내고.

- 동북쪽 흑사회가 주도한 것은 확실해. 그런데 중국 공안도 걸치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이지. 다른 놈도 여럿 있는데 누군지는 모르겠어.


“내가 알고 싶은 건 목표의 정확한 위치와 상태야. 넌 거기까지만 하고 빠져.

- 그러지 않아도 거기까지만 할 생각이야. 그런데……

“말해”

- 우리 팀 말고 계약한 다른 선수들이 있었나?


* * *


헤르메스와 통신을 끊은 뒤. 건은 소파에 몸을 깊게 묻었다. 손가락을 깎지 끼고 우두둑 소리가 나도록 꺾었다. 고개를 젖혀 천정 벽지의 패턴에 시선을 잠시 고정시킨 후 눈을 감았다. 흥분과 혼란이 점차 가라앉았다. 차근차근 생각을 정리했다.


‘3월 이라면 친구 국희가 전화를 받았던 시기다.’

‘전화를 걸고 나서 곧 다른 곳으로 옮겼다? 이게 무슨 의미냐?’

‘우연일까?’

‘다른 팀이라…… 누구냐?’


건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우연? 그의 인생자체가 우연이다. 그렇지만, 그는 우연을 믿지 않는다. 삶이 우연으로 시작했을지는 모르지만, 그가 겪었던 일들은 절대로 우연이 아니었으니까.


여러 가지 퍼즐을 맞추다 보니, 과거의 기억까지 따라 끌려 나왔다. 아주 어렸을 때 겪었던 사고, 남들에게는 없는 것으로 확인된 기묘한 특징, 방황, 저항, 일탈, 그리고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불행으로 몰아넣었던 어리석음. 결코 수습할 수 없었던. 후회. 통곡. 절규.


건은 코를 후볐다. 오래된 습관이다. 잊혀진 과거를 복원할 때마다 그는 약품냄새를 맡는다. 달큼한 화약냄새, 비릿한 피 냄새, 시큼한 땀 냄새, 기괴하고도 위험했던 현장의 냄새. …….


눈을 비볐다. 물기가 묻어 나왔다. 기억과 감각을 복원하려고 노력해 온지가 벌써 4년이다. 아련한 바다 냄새. 병원 냄새. 자신이 누군지도 모른 채 몽롱한 상태로 타국에서 ‘서바이벌 게임’을 즐겼던 몇 년. 오랜 꿈에서 깨어 났을 때 그는 혼자였다. 그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전혀 알 수 없는1년. 아직도 그의 삶에서 굳게 닫혀있는 암흑, 끊어진 링크.


깨어났을 때, 다시 기억이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 우연히 온전한 자유가 주어졌을 때, 그는 그 무엇도, 자기 자신조차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았다.


건은 전화를 들었다. 주소를 뒤졌다.

이국희.

버튼을 눌렀다. 신호가 떨어졌다.


- 건 오빠? 참, 빨리도 연락 주셨네요.

“오랜 만이야. 시간 좀 돼?”

- 그럼요. 저녁 사 주실 거죠?


건은 물끄러미 허공을 바라보았다. 역시 자연스러웠다. 마치 그렇게 되기로 한 것처럼.


‘우연은 없다니까…… 안 그래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2

  • 작성자
    Lv.10 ashell
    작성일
    12.08.25 10:35
    No. 31

    의심스러워요 의심스러워!

    건이라는 이름도 지민이라는 이름도 좋아하는데다가
    주인공이고~ 성격도 맘에 들고~
    요삼님의 글은 읽으면 읽을수록 더 빠져들게 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8 pr*****
    작성일
    12.09.19 12:18
    No. 32

    건필하십시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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