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ntasia2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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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삼
작품등록일 :
2012.09.18 13:35
최근연재일 :
2012.09.18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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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8.20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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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양아치 -16

DUMMY

16- 양아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정수란이 물었다.

“선배 생각.” 인훈은 건성으로 대답했다.

수란은 그런 인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인훈은 턱을 고이고 생각에 잠겨있었다. 오늘도 선배를 잡아두지 못했다. 그렇지만 뭔가 의미 있는 진도를 나갔다고 느꼈다.

“지극 정성이네.”

“그러게......”

“왜 그리 집착하지? 넌 여태까지 잘 해왔잖아? 난, 그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안 들어.”

수란의 목소리는 높았다. 같이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반감도 섞여있을 것이다. 건은 학생회에서 인기가 없었다. 그가 거둔 우수한 성적은 의외였지만, 그렇지만, 화랑이나, 중천 등 학원귀족 패거리에게 보여주었던 비겁하고도 찌질한 모습들은 모든 희망을 접게 만들었다.


“글쎄다.....”


인훈은 그냥 웃었다. 자신도 그랬으니까. 그렇지만, 인훈은 대화를 통해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묘하게도 그는 그냥 알아 볼 수 있었다.


‘그는 K와 같은 류, 같은 과의 사람이야. 그렇지만, K와는 뭔가 달라.’


인훈은 아주 최근에 만났던 사람을 기억해 냈다. 김진석 선배. 경영학과 전임강사이며 곧 조교수가 될 사람이다. 그리고 그 세대에서 가장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유건 선배를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하나라고 했다. 그와의 대화가 인훈의 행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진심으로 도움을 청해. 아마 도와 줄 거다.”

“그분이 정말 도움이 될 까요?”

“그거야 너 하기 나름이지. 재미는 있을 거야.”

“재미요?”

“그래,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전 재미로 이 짓을 하는 게 아닙니다.”

“그래? 그러면 무엇 때문에 하고 있지?”

“아시잖습니까? 작금 대학에서 횡행하는 세력들의 부조리와 허위와 기만적 행태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기 때문 입니다.”


“하하-” 김진석은 크게 웃었다.

“왜 웃으시죠?”

“요즘도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구나.”

“그게 웃을 일인가요?”

“아니, 오해하지마. 너와 똑같은 이야기를 한 친구가 생각나서 말이야”

“누구입니까?”

“너도 잘 아는 사람”

“유건 선배?”

김진석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김진석이 목소리를 낮췄다.

“K”

“예?”

인훈은 갑자기 찬물을 뒤집어 쓴 느낌이 들었다.


“K는 대인기피증에 편집증이 있지. 그런데, 그 K가 처음으로 마음을 연 사람이 누군지 알아?” 김진석이 물었다.

“박기수 선배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분 말만 듣는다는 것도.”

“아냐.”

“그럼? 설마?”

“그래, 네 추측이 맞을 거다.”

“의외네요. 그럼, 두 사람은 친한가요?”

“글쎄……”

김진석이 미소를 지었다. 알쏭달쏭한 애매한 표정이다.

인훈이 눈빛이 가라앉았다. 뭔가 애초에 세웠던 가정이 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

“그는 나쁜 사람은 아냐.”

“예?”

“그렇다고 좋은 사람도 아니지. 어떤 기준으로도.”

“어렵네요.”

“어렵지. 그래서 선택을 아주 잘 해야 돼. 그는 호(好)와 혐(嫌)이 명확하거든”

“선택이라고요?”

“요청할 것을 잘 선택해야 돼. 그 친구에게 절대로 의리 따위를 기대하지마. 한편이라고도 생각하지마. 수틀리면 뒤통수도 아주 잘 쳐. 그런 점이 사람을 아주 돌아버리게 만들지.” 진석이 큭큭 웃었다.


“그 분에게 도움을 요청하라면서요? 어떻게 그런 사람을 믿고……” 인훈이 항의했다.

“문제가 있다면서?”

“그랬죠.”

“학교 정화, 말하자면, 쓰레기 치우는 일 아니었어?”

“그렇다고 할 수 있죠.”

“그게, 그 친구 특기거든.”

“예?”

“양아치잖아? 너, 양아치 원래 뜻이 뭔지 알아?”

“ 글쎄요......”


“넝마주이, 자원 재활용 전문가......그는 쓰레기를 아주 좋아해.”

김진석이 큭큭 웃었다.



* * *



건은 우편물을 집어 들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봉투를 뒤집었다. 분홍색 포스트잇으로 메모가 붙어있었다. 이번이 두 번째다.


To Mr. S, 꼭 연락 해 주세요. 010- 9008- 899# , 오지민,


“오지민?”


메모를 바라보는 건의 눈썹 사이에 작은 골이 생겼다. 지난 번처럼 그냥 무시하려 했지만 이번에는 Mr. S 라는 표현이 마음에 걸렸다. 시사 정보에 예민한 그가 이 호칭을 모를 리는 없다. 건은 우편물을 뜯어 내용을 확인했다. 읽은 다음 편지를 두 번 접은 후 툭 던졌다. 우편물은 쓰레기통으로 쏙 사라졌다. 메모와 함께.


의자에 몸을 묻었다. 작은 창가 너머 단풍잎이 보였다. 이곳은 그가 임시 거처로 얻어 놓은 원룸이다. 평소엔 작업장이 있는 단독주택에서 머문다. 학교와 가까운 곳이라서 너무 늦을 때나, 근처에 일이 있을 때마다 잠깐씩 들르는 곳이다. 자신과 관련된 주소지는 모두 이곳으로 해 놓았기 때문에 우편물은 모두 이곳으로 온다. 건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젠장-“


* *


지민은 눈을 빛냈다. 건물에 불이 켜져 있었다. 네 번? 다섯 번째 방문이던가? 아무튼 오늘은 재수가 좋았다. 최소한 헛걸음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 차를 벽 한쪽에 세우고, 안쪽의 동정을 살폈다. 창가에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사람이 있었다.


지민은 숨을 크게 들이켠 후, 초인종을 눌렀다. 문이 금방 열렸다. 질문도 없이.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빼꼼 열린 문으로 사내의 얼굴이 나타났다. 지민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녀가 아는, 익숙한 얼굴이었다. 하루도 저 얼굴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까.


“오랜만이네요? 유건씨.”

“결국, 들켰네요.”

건이 킥킥 웃었다. TV에서 보았던 그림보다는 실물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며.

“혼자 왔어요?” 건이 물었다.

“항상 혼자 다녀요.”

“취재?”

“취재라면 응해 주실 건가요?”

“물론 아니죠.”

“저도 아녜요.”


상대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덕분에 상대를 더욱 찬찬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그때의 초췌하고도 추레한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머리는 여전히 길었지만 뒤로 돌려 단정하게 묶었고, 몸에 맞는 T 셔츠를 입어 탄탄한 상체 윤곽이 보였다. 여성과 남성을 이상적으로 섞어 놓은 듯한 강인해 보이면서도 선이 고운 얼굴.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것은 눈빛이었다. 모호한. 깊은. 신비한. 무료한. 그러면서도 어딘지 얄미운.


“그런데, 계속 이렇게 밖에 세워 둘 건가요?”

지민이 턱을 약간 치켜 올렸다. 손바닥으로 가슴을 눌렀다. 이상하게도, 그를 바라보면서 지민은 점차 가빠오는 숨을 애써 눌러야 했다. 건이 고개를 흘끗 돌려 안쪽을 바라보더니 다시 머리를 벅벅 긁었다.

“곤란하겠는데요.”

“여자?”

건이 멋쩍게 고개를 저었다.

“그럼, 야동이라도 보고 있었나 보죠?” 지민이 웃었다.

“그건 아닌데, 너무 지저분해서......” 건이 큭큭 웃었다.

“여기 안 살아요?”

“가끔 들르죠.”

지민은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사내는 빙긋 웃고 있었다.


“근처에 찻집이 없나요?”


두 사람은 천천히 걸었다. 11월 초순, 저녁 바람은 소슬하고, 상쾌했다. 걸음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그저 상대방 걸음에 보조를 맞춰서 천천히 걸었다. 지민은 기분이 묘했다. 처음 만났는데도 굉장히 친숙한 느낌. 대화가 거의 없는데도 매우 만족스런 포만감. 진부하고 뻔한 문답이 없는 담백한 대화 방식이 마음에 꼭 들었다.


“맥주 괜찮아요?” 건이 물었다.

“시끄럽지 않은 곳이라면요.”


두 사람은 펍으로 들어갔다. PPM. 잔잔한 음악이 흘렀다. 벽에는 7, 80년대 유행했던 LP 앨범 재킷들이 걸려 있었다. 진공관 앰프, 양쪽에 대문처럼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우퍼-스피커가 인상적이다. oldies and goodies를 표방하는 오디오 매니아가 차린 집이다.


Peter Paul & Mary 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전쟁을 반대하는 노래들. 그 처절한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그저 아름답게 들린다는 것이 신기하다. 두 사람은 주문한 맥주가 올 때까지 편안하게 앉아서 노래를 들었다. 노래가 끝났다.


“만나고 싶었어요.” 지민이 먼저 말을 꺼냈다.

“피하고 싶었어요.” 건이 말했다.


건이 맥주병을 입에 가져가며 과장되게 웃었다. 가지런한 하얀 이가 다시 보였다. 지민은 훅-터져 나오려는 숨을 차분하게 골랐다. 악동 같은, 그렇지만 순수한 웃음. 지민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꼭 쥐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제야 자신이 저 웃음을 얼마나 보고 싶어했는지를 비로소 알았다.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거든요.”

지민이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기네스 맥주. 까만 맥주 위에 부풀어오른 하얀 거품이 유별나게 맛있다. 입술에 포말 같은 거품이 묻었다. 첫 맛은 쓰지만, 뒷맛은 달았다.


“그런가요? 그럼, 오늘 술값내면 되겠네.”

“풋-”


지민은 웃어버렸다. 정말로 예상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소리를 듣고 싶어 했을까? 그가 살린 사람은 무려 18명, 아니 그녀 자신까지 포함하면 19명 이다. 그와 그녀 외에 누구도 모르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진심으로 이 사내를 만나고 싶어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중에는 지민도 몰랐던 의외의 이유가 많았다.


“그냥 보고 싶었다고 하면요?” 지민은 혀끝으로 입술 끝에 묻은 거품을 닦았다.

“나를?”

“진심으로.” 지민이 짧게 말했다.

“소원 푸셨네요. 우리, 앞으로도 봐야 되는 겁니까?” 건이 짧게 말했다.

“왜 싫으세요?” 지민이 눈을 가늘게 뜨고 시선을 똑바로 고정시켰다.

“아뇨. 오늘 보니 굳이 피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요. 사람을 피하는 건 피곤하거든요.”

“그건, 다행이네요. 자주 봐요.”


지민이 환하게 웃었다. 두 사람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저 신변잡기와 세상 돌아가는 그런 소소한 이야기였다. 건은 시계를 보았다. 밤 11시 40분. 건은 고개를 갸웃했다. 오늘은 이상하게 시간이 빨리 갔다고 느꼈다. 아주 편안했다. 사람을 만나면서 이렇게 편안하게 노닥거려본 기억이 있었을까?


“휴대폰 주세요.”


지민이 손을 내밀었다. 건이 잠시 머뭇거렸지만, 지민의 험악한 표정을 흘끗 본 후 쓴 웃음을 지으며 전화를 건넸다. 지민은 연락처를 확인해보았다. 세 개의 카테고리가 있었다.


전화를 할 사람.

전화를 받을 사람.

전화를 받지 말아야 할 사람.


지민은 자신의 이름을 검색해봤다. 예상했었지만 입력되어 있지 않았다. 두 눈 사이에 잔뜩 골을 만든 채 모든 항목을 연락처 항목에 일일이 채워 넣었다. 카테고리 선택에서 잠깐 손끝이 멈칫 했다. 조금 생각하더니 ‘전화를 받을 사람’ 항목을 체크했다. 입력이 끝난 후 통화버튼을 눌렀다. 자신의 휴대폰이 울렸다.


지민은 차창을 내렸다. 머리카락이 심하게 휘날렸다. 가슴이 뻥 뚫린 듯 밤공기가 상쾌했다. 소리를 질렀다. 대리운전 아저씨가 거울을 통해 뒤쪽을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미친년 아녀? 얼굴은 반반한데……’


신림동에서 대방동까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작가의말

드뎌.....

양아치의 정의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흔적을 남겨주세요. 연재는 댓글 보는 재미에 쓰는 건데.....

예스24에서 에뜨랑제가 장르1위에 올랐습니다. 교보는 포맷이 다르고 정책이 까다로워서 아직 못 올렸다고 하네요. 새삼 디지털 컨텐츠의 잠재력에 감탄합니다. 종이책과는 달리 검색 만하면 언제나 접근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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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양아치- 22 +34 12.09.02 10,765 158 9쪽
23 양아치- 21 +37 12.08.31 10,851 145 10쪽
22 양아치 -20 +36 12.08.28 11,217 146 9쪽
21 양아치 -19 +57 12.08.24 11,075 167 12쪽
20 양아치- 18 +42 12.08.23 12,483 157 10쪽
19 양아치 -17 +27 12.08.21 11,348 125 11쪽
» 양아치 -16 +62 12.08.20 13,534 156 12쪽
17 양아치 -15 +29 12.08.19 10,806 117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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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양아치 -13 +61 12.08.16 11,877 157 16쪽
14 양아치- 12 +34 12.08.14 11,443 13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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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양아치- 07 +34 12.08.11 11,982 119 12쪽
8 양아치 -06 +23 12.08.11 12,258 11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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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양아치- 03 +11 12.08.11 12,805 108 9쪽
4 양아치 -02 +14 12.08.11 14,542 104 13쪽
3 (새 소설) 양아치 -01 +52 12.08.11 25,551 107 11쪽
2 독자 제위께..... +178 12.02.10 18,991 97 3쪽
1 요즘 근황, 에뜨랑제 관련 이야기 +133 10.12.09 26,538 6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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