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신처
오토, 데니스, 바실리가 소련군에게 하수구에서 쫓기기 20분 전, 블라슈크는 류드밀라와 함께 모스크바 시가지를 돌고 있었다. 참고로 최근 소련군 차량과 전차 부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블라슈크도 하급 정치 장교였던지라 돌아가는 상황을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 이러한 부대 이동을 보았을때, 라스푸티차가 끝나면 바로 큰 전투가 있을 거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블라슈크가 볼 때 이는 단순한 부대 교대가 아니었다. 블라슈크가 류드밀라에게 말했다.
"미국으로부터 M1 바주카라고 하는 새로운 대전차 무기가 들어왔네. 파시스트들이 쓰던 판쳐 파우스트보다는 화력이 약하다고 하더군. 하지만 시가전에서는 상당히 유용하게 쓰일..."
류드밀라는 장난스럽게 자신의 손으로 블라슈크의 손을 건드렸다. 블라슈크가 당황해서 주위를 둘러보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밖에서는 주의하게."
류드밀라가 생글거렸다.
"주의 안 하면 어쩔 건데요? 정치 장교 동지..."
그 때, 올가라는 꼬마 아이가 계속 엄마한테 투덜대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봤다니까! 그 아저씨들이 줄 잘랐고 코트에 이상한거 튀어나왔어!"
그 말을 듣고 블라슈크가 류드밀라와 함께 올가에게로 걸어갔다. 아주머니는 정치 장교가 다가오자 겁에 질렸다.
"죄송합니다! 제 딸이 실수를!!"
평소에 아이를 좋아하던 류드밀라가 말했다.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안녕 꼬마야? 이름이 뭐니?"
"올가!"
블라슈크가 물었다.
"아까 누군가 줄을 잘랐다고 하는데 어디서 줄을 자른거지?"
잠시 뒤, 블라슈크는 올가에게 커다란 허쉬 초콜렛을 선물했다. 올가가 크게 웃으며 초콜렛을 받아들었다.
"우와와!!! 저 쪽으로 갔어요!!"
그렇게 블라슈크는 류드밀라와 함께 올가가 가르킨 방향으로 달려갔다.
"파시스트가 침입했다!!! 놈들은 NKVD로 위장했다!!"
그 때, 한 소련 병사가 외쳤다.
"파시스트가 인질을 잡고 하수구 쪽으로 도주하고 있습니다!!"
블라슈크가 외쳤다.
"지원 병력 요청하고 놈들이 도주할 수 있는 곳으로 진입해서 양쪽으로 포위한다!"
한편, 오토, 바실리, 데니스는 소련군 통신병을 인질로 잡고는 하수구 속을 달려가고 있었다. 데니스가 통신병에게 낮은 목소리로 협박했다.
"안 뛰면 니 놈은 뒤진다!!"
"으아아..."
데니스가 통신병의 대가리를 권총으로 후려쳤다.
퍽!!
"계속 소리내라. 뒤통수에 총알 박아줄테니까..."
그 때, 오토 일행이 달려가던 방향에서도 소련군의 발소리가 들렸다. 오토가 바실리 일행에게 속삭였다.
"우측으로 가!!!"
그리고 오토는 좌측에 있는 곳으로 들어가서 토카레프 권총을 발사했다.
탕!!!
이 소리를 듣고 소련군은 모두 총소리가 들린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오토는 그렇게 총소리로 소련군을 유인한 다음 바실리 일행이 달려간 곳으로 달려갔다.
'어디 간거야!!!'
하수구는 미로처럼 복잡했고 바실리 일행은 은밀하게 도망가고 있었기에 오토로서는 이들이 어디 있는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오토는 잠시 멈춰서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가늠해보았다. 하수구 옆에서는 물이 거세게 흐르고 있었기에 소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쏴아아아~~~
....
첨벙!!
2시 방향에서 소리가 들렸고 오토는 권총을 홀스터 안에 넣고는 그 쪽 방향으로 달려갔다.
'빨리 튀어야 한다!!'
소련군이 수적으로 압도적인 상황에 괜히 권총 쏘아봤자 위치만 발각될 것이 분명했다. 오토는 허둥지둥 달리다가 그만 미끄러져서 바닥에 엎어졌다.
미끄덩!
철퍼덕!
'으익!!!'
그 순간, 좌측에서 총성과 함께 어둠 속에서 불꽃이 번쩍거렸다.
타앙!!!
토카레프 권총이 불을 뿜는 순간, 엎어져있던 오토는 어둠 속에서 블라슈크를 발견했다. 총알은 오토의 머리로부터 1m 정도 위쪽을 지나가서 하수구 벽에 튕겨나왔다.
블라슈크가 다시 토카레프를 발사하기 직전, 오토는 자세를 낮추고 블라슈크에게 달려갔다.
'으아아!!!'
퍼억!!!
블라슈크는 뒤로 자빠진 상태에서 허공을 향해 토카레프를 발사했다.
타앙!!
블라슈크가 외쳤다.
"파시스트다!!!!"
블라슈크와 오토는 둘 다 토카레프를 잡은 상태에서 힘겨루기를 했다. 블라슈크는 어떻게던 오토의 머리를 겨누려고 했고, 오토는 힘을 주어 총을 다른 방향으로 향하게 했다.
'으아아아!!!'
오토는 갑자기 손의 힘을 빼버렸고, 블라슈크의 손에서 권총이 미끄러졌다.
그 틈을 타 오토는 팔로 권총을 쳐냈다.
타악!!!
권총이 미끄러져서 똥물이 철철 흐르는 배수구 쪽으로 풍덩 빠졌다. 블라슈크는 오토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퍼억!!!
블라슈크는 다시 아군에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했다.
"이 쪽이..."
하지만 오토는 블라슈크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켁...켁..."
소련군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오토는 블라슈크에게 주먹을 날렸다.
퍼억!!
오토는 그 틈을 타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소련군의 고함 소리가 하수구 내부에서 반사되며 울려 퍼지고 있었다.
"서둘러!!!"
"저 새끼 잡아!!"
'으아아아!!!'
오토는 허리를 숙이고는 빠른 속도로 하수구를 따라 달려갔다. 그리고는 소련군이 쫓아오는 방향으로 수류탄을 하나 까던졌다.
쿠과광!!!
그렇게 오토 일행은 하수구를 통해 독일군 진영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오토는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상태였다. 데니스는 포로로 잡아온 소련군 통신병의 대가리를 후려쳤다.
퍼억!!
"이 새끼가 겁도 없이 거기서 소리를 질러?"
약간 병신같이 생긴 소련군 통신병은 공포에 질린 상태로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잠시 뒤 만토이펠이 이 통신병을 데리고 가서 직접 심문을 하기 시작했다. 심문 결과 소련군은 대규모로 부대를 이동 중 이었다. 만토이펠이 생각했다.
'모스크바 북동부에 있는 2기갑군을 고립시키는게 목적이군...'
지금 여기서 만토이펠 대대가 탈출하기 위해서는 2기갑군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다. 만토이펠은 무선을 통해 이 내용을 암호화하고 사령부에 전달했다.
한편, 나타샤는 류드밀라의 톰슨 총을 탐내고 있었다. 류드밀라가 블라슈크와 사귄다는 것은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었다. 나타샤가 속으로 생각했다.
'정치 장교에게 잘 보여서 특별 대우를 받겠다는거지?'
하지만 류드밀라는 평소에도 착했기에 동료들과도 사이가 좋았기 때문에 시비를 걸기도 곤란했다. 나타샤는 머리를 굴리고는 류드밀라에게 가서 친절하게 말을 걸었다.
"류드밀라 있잖아. 어떻게 하면 너처럼 저격을 잘할 수 있을까?"
류드밀라가 계급도 높았고 나이도 많았기에 이는 군기에 어긋나는 행동이었지만, 류드밀라는 나타샤에게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나타샤가 말했다.
"넌 정말 대단하구나!"
"그냥 노력한거지."
"넌 정말 뛰어난 저격수야! 류드밀라 너한테는 이 톰슨 기관단총보다 저격 소총이 더 어울리는 것 같아."
류드밀라는 나타샤가 톰슨 기관단총을 탐내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무거운데 괜찮으려나?'
어차피 류드밀라도 자신은 저격수로서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기에 나타샤에게 톰슨 기관단총을 내밀었다.
"고마워!!"
그 때, 크세니야가 와서 이 광경을 보고 류드밀라에게 말했다.
"나타샤가 이 총 달라고 해서 준거야?"
류드밀라가 말했다.
"난 저격이 잘 맞는 것 같아서 그냥 내가 준거야. 조준 사격도 가능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기관단총이잖아."
나타샤는 아주 신나서 방방 떠서는 톰슨 기관단총을 갖고 달려갔다. 크세니야가 류드밀라에게 말했다.
"쟤가 해달라는거 다 해줄거야?"
류드밀라가 말했다.
"불쌍하잖아."
크세니야는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말해서 부대 내 군기가 개판이었던 것 이다.
'군기가 제대로 잡혀야할텐데...'
한편, 나타샤는 신이 나서 자신의 아지트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 때, 파블리첸코가 보여서 나타샤는 잽싸게 골목으로 숨었다.
'꺅! 마귀할멈이다!!'
파블리첸코는 나타샤에게도 엄격했고, 지난 번에 나타샤가 일을 안했을때 기합을 줬던 적이 있었다.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좌로 굴러!! 빨리 안하나!!!"
나타샤는 그렇게 기합을 받고 난 다음부터 파블리첸코가 무서워서 피해 다녔다. 파블리첸코가 지나간 다음, 나타샤는 골목을 지나서 한 작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주민이 피난을 가서 비어있는 이 작은 집에 계단 옆에는 작은 티 테이블이 있었다. 나타샤는 이 티 테이블을 치우고는 계단 옆에 난 작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다음 간식을 먹으며 톰슨 기관단총을 바라보았다.
'너무 예뻐! 정말 멋진 총이야!! 역시 미제가 좋아!'
나타샤의 아지트에는 혹시 탈영을 할 경우에 대비해서 가져가려고 준비해둔 삐라도 있었다. 지금은 전황이 나쁘지 않았기에 탈영 계획은 미뤄둔 상태였다. 동료들이 일을 할 때 나타샤는 쉬고 싶으면 몰래 이 곳에 와서 휴식을 취하고는 했다.
이 나타샤의 아지트로 들어가는 문은 티 테이블에 가려져서 안보였기 때문에 누구도 쉽게 찾아낼 수 없을 것 이었다.
나타샤는 간식을 먹다가 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리고 크세니야는 나타샤가 아까부터 안보여서 찾고 있었다.
"나타샤!! 나타샤!! 어디 있어?"
류드밀라, 안나 또한 나타샤가 걱정되었기 때문에 크세니야와 같이 나타샤를 찾기 시작했다.
"나타샤 못 봤어?"
"저 건물로 들어가던데?"
크세니야는 류드밀라, 안나와 함께 나타샤의 은신처가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나타샤!! 여기 있어?"
나타샤는 졸다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화들짝 깼다가 실수로 톰슨 기관단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탕!!
"꺄악!!!"
"나타샤!!!"
크세니야, 류드밀라, 안나는 총소리가 들린 계단 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나타샤가 계단 밑에 비밀 공간에서 기어나왔다.
"거기 있었던거야?"
크세니야는 한숨을 쉬며 비밀 공간을 바라보았다. 나타샤가 황급하게 크세니야를 막았다.
"미...미안!! 잠시 잠 들었어! 빨리 돌아가자."
크세니야는 수상함을 느끼고는 비밀 공간으로 들어가보았다. 이 안에는 간식거리와 책, 손전등, 담요 등이 있었다. 안나가 말했다.
"잘도 꾸며놨네."
류드밀라가 말했다.
"우리도 부르지 그랬어."
나타샤는 어색한 표정으로 씨익 웃었다.
"그...그게...나도 방금 발견한거라..."
그 때, 크세니야는 나타샤가 읽던 책 속에 삐라를 발견하고는 하얗게 질렸다.
"너...이거 뭐야?"
나타샤가 변명했다.
"그...그게 왜 거기 있지?"
안나 또한 식은 땀을 줄줄 흘렸다.
"휴지로 쓸게 없어서 모르고 주웠나봐. 그냥 불 태우고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자..."
크세니야가 나타샤의 싸대기를 갈겼다.
짜악!!!
류드밀라가 크세니야를 말렸다.
"그만해!! 모르고 주웠을거야!!"
나타샤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크세니야한테 맞은 것보다 얄미운 류드밀라가 말리는게 더 열 받았다.
"됐어!! 난 알고 주운거야!!"
안나는 이 말을 듣고는 사색이 되었다.
"나...난 아무 것도 못 들은 거야..."
류드밀라가 눈을 크게 뜨고 나타샤에게 물었다.
"그..그게 무슨 소리야...절대 주우면 안 된다는거 몰라?"
"넌 글자도 모르는 멍청이라 정치 장교들 말에 속는거야! 어차피 이 전쟁은 우리가 패배했고 우리는 스탈린을 위해서 갈려나갈 뿐이야!! 왜 우리가 스탈린 그 병신 새끼를 위해 죽어야 해?"
크세니야가 외쳤다.
"나타샤!! 입 다물어!!!"
나타샤가 기세등등해서 외쳤다.
"너희는 멍청해서 계속 속고 있는것 같은데, 수백만명 굶겨죽인 그 스탈린 새끼 때문에 내가 왜 희생해야 해? 너네처럼 멍청한 애들이나 그러라고! 어쩌면 스탈린이 뒤지고 독일이 모스크바를 점령하는게 나한텐 더 이득일지도 모르지! 이건 히틀러와 스탈린의 싸움이야! 도대체 왜 내가 싸워야 해?"
류드밀라가 냉정하게 말했다.
"나타샤 너 절대 이런 말 밖에선 하지마. 우리야 모른척 해주겠지만 바로 총살이야."
나타샤가 삐라를 들고는 말했다.
"고작 이까짓 종이 조가리 주웠다고 어린 애까지 총살시키는게 정상이야? 죽고 싶으면 너희들이나 죽어!! 병신 같은 나라에 태어나서 멍청하게 애국하느라 총알받이 되는 꼴이라니..."
그 말에 류드밀라가 나타샤에게 달려들었다.
퍽!!
나타샤 또한 류드밀라의 머리채를 잡았다. 하지만 류드밀라가 힘이 더 셌기에 나타샤는 일방적으로 얻어맞았다. 안나는 이 광경을 말리지도 못하고 가만히 보고 있었다. 나타샤가 외쳤다.
"크세니야!!! 도와줘!!"
하지만 크세니야는 입을 크게 벌리고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블라슈크가 이 광경을 보고 있었던 것 이다. 류드밀라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타샤는 블라슈크를 보고 겁에 질렸다.
'으...으아아...'
블라슈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어쩌다가 수도까지 밀려서 이런 어린 아이를 전쟁에 내보내야 했단 말인가?'
블라슈크는 나타샤를 후방으로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때, 갑자기 나타샤가 톰슨 기관단총과 삐라를 줍고는 달아나기 시작했다. 크세니야가 외쳤다.
"나타샤!!!"
평소에도 행동이 잽쌌던 나타샤는 순식간에 건물 밖으로 뛰쳐나간 다음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류드밀라가 외쳤다.
"빨리 찾아야 해!!"
안나가 말했다.
"서..설마 탈영한건 아니겠지?"
블라슈크 또한 나타샤를 찾다가 병사들에게 물어보았다.
"16살 정도에 키가 작고 톰슨 기관단총을 들고 있는 여군 못 보았나?"
나타샤는 인근 건물에 숨어있다가 블라슈크가 자신을 찾는 목소리를 듣고는 부들부들 떨었다.
'나...나를 사형에 처하려는거야!!!'
언니 크세니야가 외치는 소리도 들렸다.
"나타샤!! 빨리 돌아와!!!"
나타샤는 식은 땀이 줄줄 흘렀다.
'크세니야까지 날 밀고할거야!! 아무도 믿으면 안되!!!'
나타샤는 블라슈크가 갈때까지 기다리다가 자신만이 아는 길을 통해서 잽싸게 달아나기 시작했다.
'헉...허억...'
참고로 나타샤는 워낙 머리가 좋아서 아지트를 두 군데 만들어두었었다. 왜냐하면 포격이나 전선 변화에 의해 한 아지트가 못 쓰게 되면 다른 은신처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두번째 아지트는 작은 민가의 한 다락방이었다. 나타샤가 자신만이 알고 있는 줄을 당기자 다락방으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내려왔다. 나타샤는 잽싸게 그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저..절대 나가면 안돼...독일군이 조만간 여기까지 점령할거야...독일군이 점령하면 그 때 탈출하자...'
나타샤는 크세니야, 류드밀라, 안나를 속으로 원망하고 저주했다.
'그깟 애국심 때문에 나를 버려? 나쁜 년들!! 다 죽어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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