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 허수아비
소련군은 조만간 있을 열병식에 대비하여 모스크바 곳곳에 침투했을 독일군과 탈영병, 반동 분자를 찾아내기 위해 주택 수사를 실시했다.
"지금 상황에서 탈영하는 것은 정치적, 도덕적 타락이자 반혁명 선동 행위이다! 철저하게 수사해서 모두 잡아내라!!"
그렇게 소련군은 가택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나타샤는 다락방 창문을 통해 NKVD들이 가택을 수색하고 민간인들을 심문하는 것을 목격하고는 벌벌 떨고 있었다.
'으아아아...'
그리고 NKVD들은 마침내 나타샤가 숨어있는 민가로 들어왔다. 아래 층에서는 NKVD들이 쿵쿵거리며 민가를 수색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루 뜯어봐!!"
"이미 뜯어져 있는데?"
"다 털린거 아냐?"
러시아인들은 식량(주로 감자)을 마루 바닥 밑에 보관하는 습성이 있었다. 그래서 민간인이고 소련군이고 식량을 찾기 위해서 비어있는 민가의 마루바닥을 뜯어내곤 했던 것 이다. 한 NKVD가 수상한 표정으로 마루바닥을 관찰했다.
"이거 얼마 전에 뜯어낸 것 같은데? 뜯어낸 부분에 먼지가 전혀 없네!"
"어떤 녀석이 얼마 전에 감자를 가져간 모양이군!"
"더 뜯어봐!!"
나타샤는 다락방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 NKVD들이 빠루를 이용해서 마루를 더 뜯어내는 소리가 들렸다.
'으아아...아아아아...'
나타샤는 자신의 신분증을 먹어버릴까 고민했다.
'그...그냥 여기서 자고 있었다고 할까?'
NKVD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것도 없네!"
"다 가져갔군!!"
"빨리 다음 건물로 가자!! 시간 없어!!"
그 말에 나타샤는 안심했다. 그런데 한 NKVD가 말했다.
"이거나 한 병 까고 가자!!"
NKVD들은 건물 1층에서 술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거 왜 이렇게 쓰냐!!"
"그럼 먹지 말던지!!"
"그 망할 새끼가 나한테만 지랄한다니까!"
"뒤통수에 총알 박아줘!"
나타샤는 무서워서 오금이 저릴 지경이었다.
'왜 하필 여기서 쉬는거야!!!'
그렇게 NKVD들은 한참 술판을 벌이다가 나갔다. 나타샤는 그제서야 안심을 했다.
'이제 갔나?'
나타샤는 오줌이 마려웠기에 다락방에서 내려오기 위해 한 걸음 내딛었다.
삐걱
그 때, 1층 구석에서 자고 있던 NKVD가 눈을 떴다.
"으잉? 다 어딨어!!"
나타샤는 질겁을 했다.
'으아아아!!'
다락방이 오래되어서 한 걸음 내딛을때마다 마루가 삐걱거렸다. 술에 취해있던 NKVD가 동료들을 찾았다.
"다 간 거야?"
NKVD의 군화가 마루바닥을 쿵쿵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타샤는 왼쪽에 있는 자신의 톰슨 기관단총을 바라보았다. 나타샤는 이 기관단총을 담요로 감싸둔 상태였다. 담요로 감싸두었으니 발사해도 소리가 크게 들리지는 않을 것 이었다.
쿵 쿵 쿵
NKVD 녀석은 1층을 둘러보다가 현관 밖으로 걸어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쾅!
나타샤는 다락방에 주저앉았다.
'으아아아...'
한편, 정치 장교 안토노프와 블라슈크는 인근에 있는 감청 부대를 방문했다. 감청병들은 독일군의 무전을 감청하고 있었다. 감청병이 말했다.
"현재 39구역에 포위된 파시스트들의 무전기 밧데리가 거의 떨어진건지 감청이 잘 되지 않습니다."
블라슈크가 물었다.
"놈들이 무선 침묵을 유지하는건가?"
감청병이 말했다.
"완전한 무선 침묵은 아닙니다. 예전보다는 무전량이 적어졌지만 계속해서 무전은 오고 가고 있습니다."
안토노프는 감청병들이 기록한 무전 내용을 읽어보았다. 독일군의 사소한 잡담까지 모조리 기록되고 있었다.
[조금만 버티자고!]
[이제 한 달 뒤에 크리스마스인데 특식도 없네.]
[우리 소대장 죽여버리고 싶군.]
[루마니아 새끼들 또 장교한테 맞는다.]
[저 병신들]
[잡담 금지]
[소대장 또 음식 꿍쳐두고 지만 먹는다]
안토노프가 이 기록을 보고 말했다.
"아직 이 새끼들이 버틸만한가보군."
블라슈크는 그 기록을 유심히 보았다.
'뭔가 정보가 있을지도...'
하지만 이 독일군의 무선 내용은 그냥 일상적인 잡담으로 보였다. 블라슈크는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온 다음 라디오를 켰다. 라디오에서는 흔한 러시아 민요가 흘러나왔다.
"승리를 거두자고 맹세한 전우 하지만 잊을 수 없는 마음의 고향"
이 민요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조만간 대반격이 이루어질 것 이라고 모스크바의 시민과 그 외 파르티잔들에게 보내는 신호였다. 그리고 모스크바가 아닌 러시아 전역에 파르티잔들은 모두 이 라디오에 집중하고 있을 것 이다.
소련군이 대반격을 준비하고 있는 이 때, 만토이펠 대대는 병사들을 보병 부대로 임시 재편성하고 있었다. 연료가 떨어져서 기동불가된 전차들 중에 탄약이 남아서 토치카로라도 쓸 수 있는 전차는 40프로 정도였다. 결국 나머지 전차의 전차병들은 모두 기관단총 등으로 무장하고 보병 부대로 재편성되어 싸워야할 것 이었다.
만토이펠 대대는 기동불가된 장갑차, 트럭 하단에 벙커 또한 파두고 기관총을 거치해두고 수류탄 등으로 무장했다. 버려진 민가의 창틀, 문짝 등을 때어내서 도심 곳곳에 기관총 벙커를 만들어둔 상태였다. 그리고 기관총 벙커의 입구쪽은 흙으로 잘 버무려서 안 보이게 했다.
또한 민가에서 침대 매트리스를 노획한 다음, 매트리스 바깥 부분을 뜯어내어 내부에 있는 금속 재질의 프레임을 꺼냈다. 그리고 중대 지휘소 1층 창문에 이 프레임을 설치해두었다. 이렇게 하면 소련군이 침투했을때 건물 내부로 수류탄을 던져 넣을 수 없을 것 이었다.
또한 만토이펠 대대원들은 추위에 대비하기 위하여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소련군 시체에서 노획한 내복, 누비 바지 등을 군복 밑에 껴입었다. 그리고 차가운 슈탈헬름으로부터 머리를 따뜻하게 보온하고자, 민가에서 커튼을 뜯어내거나 스카프 등을 노획해서 머리에 둘렀다.
지크프리트 4인조 또한 버려진 민가의 커튼을 뜯어낸 다음 대가리에 칭칭 둘렀다. 로베르트가 커튼을 엄청나게 머리에 두르고는 말했다.
"내가 제일 많이 둘렀다!!"
이걸 본 호르스트 또한 커튼을 더 뜯어내서 머리에 칭칭 둘렀다.
"내가 더 많이 둘렀다!!"
지크프리트 4인조는 경쟁하듯이 커튼을 뜯어서 머리에 엄청나게 둘렀다. 올라프는 그 위에 슈탈헬름을 쓰려고 했지만 하도 커튼을 머리에 두껍게 둘러서 이젠 슈탈헬름에 들어가지 않았다. 이 광경을 보고 전차병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스테판이 말했다.
"저렇게 멍청한데 세계대전 때부터 어떻게 살아남은거지?"
게오르크가 말했다.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닐세. 안 그래도 의약품이 부족한데 이질 환자가 증가하고 있네. 시체에서 소지품을 훔치는 행위를 금지해야 하네."
지금 포위된 만토이펠 대대는 간간히 소련군과 교전을 벌이고 있었고, 굶주리던 독일 병사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소련군의 시체에서 말린 완두콩과 빵이라도 노획했던 것 이다. 뿐만 아니라 날씨가 추워지고 있었기에 소련군의 내복은 꼭 노획해야 하는 물품이었던 것 이다.
그 때, 오토 녀석이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블라덱이 오토를 보고 말했다.
"저 새끼 또 뭔 지랄하는거냐?"
오토는 민가에서 옷가지 등을 이용하여 스탈린과 똑같이 생긴 허수아비를 만든 상태였다. 오토가 이 허수아비를 자랑하며 외쳤다.
"로스케들에게 줄 선물일세!"
머리에 두건을 칭칭 두른 지크프리트 4인조가 와서 이 허수아비를 구경했다.
"이걸로 뭘 할 수 있습니까?"
오토는 자신의 계획을 말했다. 스테판이 말했다.
"좋은 생각인걸?"
지크프리트 4인조가 말했다.
"저희도 허수아비를 만들겠습니다!"
오토는 야음을 틈타, 소련군이 점령한 구역과 독일군이 점령한 구역 사이에 커다란 대로변에 이 허수아비를 세워두었다. 지크프리트 4인조 또한 스탈린을 닮은 허수아비들을 만들고 여기저기 허수아비를 세워두었다. 어떤 허수아비는 대놓고 지붕 굴뚝 위에 올려지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이 되었다. 저격수 류드밀라는 스코프 속에서 이 허수아비를 보고 깜짝 놀랐다.
'저..저건?'
망원경을 들고 있는 안나 또한 그 스탈린 모양의 허수아비를 보았다.
"저거 뭐냐?"
허수아비에 대한 보고를 듣고 블라슈크가 달려왔다. 류드밀라는 여전히 스코프에 집중하고 있었다. 안나가 블라슈크에게 말했다.
"저것 좀 보십시오! 스탈린 동지와 똑같이 생겼습니다!!"
"망원경 좀 빌려주게."
망원경은 귀중한 자원이었기에 정치 장교인 블라슈크도 망원경이 없었던 것 이다. 그렇게 안나가 블라슈크에게 망원경을 내밀었고 블라슈크 또한 허수아비를 확인했다.
'저..저건?'
스탈린 모양의 허수아비가 지붕 위에 걸려 있었고, 그 허수아비에는 스탈린에 대한 모욕이 쓰여져 있었다.
[스베틀라나 **에 박격포탄을!]
'저 새끼들이!!!'
류드밀라가 여전히 스코프를 바라보며 블라슈크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블라슈크가 말했다.
"함정일 확률이 높다. 명령하기 전까지 사격을 금한다."
블라슈크는 망원경을 이용하여 지형을 살펴보았다.
'아마도 저 건물에 함정을 설치했겠지...'
블라슈크는 가만히 있으라고 했지만, 다른 부대의 보병 몇 명이 허수아비를 회수하러 은밀하게 건물로 접근했다.
'저런 멍청이들!!'
블라슈크가 류드밀라, 안나에게 말했다.
"파시스크가 10시 방향에 저격수를 배치했을 수 있네. 발견되면 보고하라. 사격하고 바로 이동한다."
소련군 보병들은 허수아비가 설치된 건물의 창문으로 진입했다. 독일군이 문에 수류탄이나 폭탄을 설치해두었을 가능성이 잇기 때문이었다. 안나가 속으로 생각했다.
'허수아비 따위에 이게 무슨 시간 낭비냐!!'
블라슈크는 식은 땀을 흘리며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 5시간 같은 5분이 흐르고, 지붕 위에 소련군 보병들이 기어 나왔다. 류드밀라는 스코프를 이용하여 독일군 저격수가 있을만한 곳들을 모두 훑고 있었다. 스코프를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스코프 가장 자리 쪽이 왜곡되었다.
안나 또한 망원경을 이용하여 곳곳을 살폈다. 독일군 저격수는 보이지 않았다.
"파시스트 놈들이 쫄았나봐."
블라슈크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 소련군 보병이 허수아비를 잡아당기는 순간
쿠광!!!
"헉!!!"
허수아비에 설치해두었던 수류탄이 폭발했다.
"이런 젠장!! 사격하지 말고 대기하라!!"
블라슈크는 현재 갖고 있는 무전기가 없었기에 이를 중대 본부에 보고하러 건물 밖으로 달려갔다. 안나와 류드밀라는 공포에 질렸다.
"이...이럴 수가...저 양배추 먹는 파시스트 새끼들이!!"
류드밀라가 공포감에 질려서 말했다.
"애초에 허수아비를 가지러 가면 안되는 거였어...함정이 뻔했는데..."
그리고 이 순간, 오토는 멀리서 허수아비가 내려진 것을 보며 낄낄거렸다.
"아마 지금쯤 폭발했겠군!"
스테판이 말했다.
"근데 저기 속는게 등신 아냐?"
"로스케들 등신은 맞지."
오토가 말했다.
"로스케들은 인간이 아니라 스탈린의 중공업 5개년 계획에서 생산된 부품일 뿐이지. 붉은 군대에게 로스케 한 놈은 T-34의 궤도 한 칸보다 가치가 없을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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