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
오토는 바실리, 폴스터, 비르타넨, 데니스와 함께 M1 바주카의 탄과 기관총 탄을 노획하기 위해 소련군 점령 지역을 돌아다녔다. 폴스터와 비르타넨은 팔에 깁스를 한 소련군 부상병으로 위장했고, 데니스는 다리가 다쳐서 휠체어를 타고 있는 소련군 부상병으로 위장했다. 위생병으로 위장한 바실리가 데니스의 휠체어를 밀었다.
사거리에 검문소에서 NKVD들이 검문을 하고 있었다. 오토는 식은 땀이 줄줄 흘렀다. 폴스터는 오토가 말해주었던 것을 계속해서 머리 속으로 되뇌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아르메니아에서 자랐던 아르메니아 혼혈이다...팔에 포탄 파편을 맞아서 부상이 심각하고 빨리 치료 받지 않으면 절단해야 하는 상황이고...'
폴스터와 비르타넨은 엄청나게 아픈 척 얼굴을 찡그리고 검문소로 걸어갔다. 그런데 NKVD는 오토 일행을 그냥 통과시켰다.
"빨리 통과하시오!"
오토는 일행은 식은 땀을 줄줄 흘리며 검문소를 통과했다. NKVD가 오토 일행을 그냥 통과시켜준 것은 부상병에 대한 배려 때문만은 아니었다. 부상병들은 상처가 감염되어있는 경우가 흔했기에 검문하다가 전염병이 옮을까봐 그냥 통과시켜준 것 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소련군 보병들이 무기를 보급받는 곳으로 걸어갔다. 바실리는 태연하게 데니스의 휠체어를 앞으로 밀었고, 오토, 폴스터, 비르타넨은 길을 지나가는척하며 바주카 탄이 쌓여있는 박스들 옆을 지나쳤다. 오토가 보병들에게 말했다.
"좀 지나가겠네!!"
데니스는 자신의 휠체어 아랫부분에 M1 바주카 탄 몇 개를 집어넣었다. 폴스터와 비르타넨은 자신의 팔을 깁스처럼 매고 있는 헝겊 속에 DP-28 기관총의 원반형 탄창을 하나씩 넣고는 태연하게 지나갔다.
오토 일행은 이렇게 바주카 탄 몇 개와 DP-28의 원반형 탄창을 노획하는 것에 성공하고 독일군 진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오토가 속으로 생각했다.
'이걸론 부족한데...'
위험을 감수하고 침투 작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바주카 로켓탄 4개와 기관총 탄창 2개를 노획했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수지가 안 맞았다. 어쨋거나 이렇게 눈에 띄는 상태로 더 싸돌아다니다가는 발각될 가능성이 높았기에 오토 일행은 돌아가기로 했다.
오토 일행이 골목을 걸어가는데, 비르타넨은 왼쪽 팔을 둘러싼 헝겊 속에서 원반형 탄창을 꺼내고는 자신의 잡낭 속에 넣었다. 그리고는 왼쪽 팔을 벅벅 긁었다. 오토가 비르타넨을 노려보았다.
'지금 뭐 하는건가!!'
비르타넨이 멋쩍은 얼굴로 오토를 쳐다보여 씨익 웃었다. 그 때, 집 안에 있던 올가가 창문으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토, 비르타넨, 데니스, 바실리, 폴스터 모두 올가를 보고 입을 크게 벌렸다. 비르타넨은 재빨리 다시 헝겊 속에 자신의 왼팔을 넣었다.
올가가 창문을 열고는 비르타넨에게 외쳤다.
"아저씨 팔 안 다쳤죠!!!"
오토 일행은 무시하고 계속 걸어갔다. 올가가 크게 외쳤다.
"팔 안 다쳤잖아요!!!"
데니스가 올가에게 다가가서 외쳤다.
"쉿!!!"
올가가 외쳤다.
"안 다친거 맞잖아요!!! 엄마!!!!"
오토 일행은 재빨리 골목을 지나쳤다.
'으아아아!!!!'
10분 정도 걷다보니, 독일군 점령 지역과 소련군 점령 지역의 가운데 지점에 오게 되었다. 이 구역에는 독일군과 소련군 양측의 저격수가 매복해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이 구역을 지나갈 때마다 오토는 긴장이 되었다. 오토 일행은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여기저기 콘크리트 파편으로 난장판이 된 길을 빠른 속도로 걸어갔다.
그 때, 휠체어에 앉아있는 데니스의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저...저거!!!'
아까 전에 오토 일행과 마주쳤던, 독일 군복을 입고 있는 소련군이 맞은 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던 것 이다.
'저...저 새끼들은 뭐지?'
독일 군복을 입고 있는 그 녀석들은 소련군 진영으로 오고 있었다. 순간 오토, 바실리, 데니스, 폴스터, 비르타넨의 뇌가 정지했다.
오토는 그 독일 군복을 입고 있는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녀석들도 뇌가 정지한 듯 보였다. 오토는 무의식적으로 이 녀석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 독일 군복을 입고 있는 소련군 또한 오토 일행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두 일행은 서로를 지나쳐갔다.
'!!!!!!!'
매복하고 있던 소련군 저격수와 독일군 저격수 또한 스코프에 집중했다.
독일측 저격수는 위생병과 부상병으로 위장한 아군 침투팀이 이 시간 즈음에 이 구역으로 복귀할 것이라는 보고를 들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소련군 저격수 또한 독일 군복으로 위장한 소련군 침투팀이 이 시간 즈음 이 길을 거쳐서 복귀할 것 이라고 미리 통보를 받은 상황이었다.
오토, 바실리, 데니스, 폴스터, 비르타넨, 그리고 소련군 침투팀, 독일군 저격수, 소련군 저격수 모두 순간적으로 뇌가 정지했다.
'???'
독일군 저격수가 스코프에 집중하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첫번째 침투팀이 복귀하고 두번째 침투팀이 가는건가?'
소련군 저격수 또한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은 상태로 저격총을 오토 일행에게 조준했다.
'왜 부상병들이 저쪽으로 가는거지?'
바실리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계속해서 데니스의 휠체어를 밀었다. 여기저기 떨어진 콘크리트 파편 위로 휠체어 바퀴가 천천히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폴스터와 비르타넨은 왼쪽 팔을 감싸고 있는 헝겊 안에 있는 권총을 꺼내기 직전이었다. 데니스 또한 자신의 무릎을 덤고 있는 담요 속에 권총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고 있었다.
그렇게 오토 일행은 무사히 중대 본부에 복귀할 수 있었다. 스테판, 볼프강은 오토 일행에 노획해온 로켓탄과 기관총 탄창을 보고 실망했다.
"겨우 이거 가져왔냐?"
"몇 개 더 가져오지!"
오토는 안 그래도 계속 제비 뽑기에 실패해서 계속 침투 임무를 하는게 억울해 죽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스테판과 볼프강이 이렇게 나불대니 열 받아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럼 니들이 가던지!!!"
볼프강이 말했다.
"독일 제국을 위하여 충성하는 것이 최고의 명예일세. 자신의 임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어떤가?"
오토는 볼프강을 향해 주먹을 날리고 싶었지만 그럴 힘도 없어서 자리에 엎어졌다. 모스크바 남부에서는 전투가 한창이었다. 헬무트가 말했다.
"발빠른 하인츠(구데리안 별명)가 얼마 만에 모스크바 남부를 먹을까?"
"무조건 빨리 점령해야 하네. 공세가 길어질수록 우린 좆된거야."
여전히 모스크바 곳곳에서 총 소리, 박격포 소리가 들렸다. 블라덱이 말했다.
"이보게 오토. 내가 군사 학교 관둔다고 했을때 자네가 말렸던거 기억나나?"
블라덱은 군사 학교 시절 수업에 적응을 잘 못했었다. 블라덱은 군사 학교를 그만두고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을까 고민했었다. 하지만 오토가 블라덱을 도와준 덕분에 블라덱은 군사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오토가 대답했다.
"그랬었지. 하지만 안 그만두고 열심히 했던건 결국 니 결정 아니었냐?"
오토와 친구들은 모두 군사 학교에서 엄청나게 노력한 뜻에 다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할 수 있었던 것 이다.
블라덱이 말했다.
"내가 만약 이번에 뒤지면 그 어린 시절부터 난 뭘 한거지?"
다들 블라덱의 말에 아무 대꾸를 하지 않았다. 블라덱이 계속 말을 이었다.
"그니까 내가 일주일 뒤에 총 맞아 죽는다면 말이야. 난 15살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총알 맞아 뒤지기 위해서 살아온게 되는거 아닌가?"
헬무트가 말했다.
"닥쳐라."
하지만 블라덱의 눈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니 생각해보라고! 난 내일 당장 총 맞아 뒤질 수도 있다고! 그러면 난 15살때부터 지금까지 빨갱이 새끼 총알 맞아 뒤지라고 살아온거 아닌가! 그 총알은 아마 몇 달 전에 만들어진 총알일 수도 있고 우랄 산맥 뒤로 옮긴 공장에서 나온 따끈따끈한 총알일 수도 있지! 소련 여공들이 나를 죽이기 위해 열심히 총알을 만들고 그 총알은 지금도 내 대가리를 향해 날아오고 있는 걸세!"
블라덱은 손가락을 총 모양으로 하고는 자신의 머리를 겨누고 말했다.
"빵!!!"
블라덱은 손가락으로 오토, 스테판, 게오르크, 헬무트, 볼프강을 차례로 겨누었다. 오토가 말했다.
"그만하지?"
블라덱이 오토에게 걸어가서 말했다.
"그러고보니 자네 아버지가 이 전쟁을 벌인거 아닌가?"
블라덱은 심지어 스테판에게 걸어갔다.
"아! 자네 아버지이기도 하지!"
게오르크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블라덱을 바라보았다.
'저 새끼가 돌았군...'
참고로 스테판이 한스 파이퍼의 사생아라는 것은 절대로 언급하면 안되는 금기사항이었다. 오토가 말했다.
"니 죽고 싶냐?"
블라덱이 오토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어쩌면 자네한테도 총알이 준비되어있을지도 모르네! 우랄 산맥의 공장에서 글도 못 쓰는 농촌 출신 여공이 만든 총알이 말일세! 그 총알은 태어날 때부터 오토 파이퍼의 두개골을 박살내기 위해서 제작되었을걸세! 자네의 허파를 뚫을 총알이랑 형제로 태어난거지!"
오토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블라덱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블라덱은 오토의 대가리를 겨눈 채로 계속해서 아가리를 놀렸다.
"그 우랄 산맥에서 만들어진 총알은 만들어질 때부터 자네의 두개골을 박살낼 운명이었던걸세! 어쩌면 그 총알이 자네의 진짜 형제나 다름없을지도 모르지!"
블라덱은 그렇게 엿 같은 소리를 지껄인 다음 바닥에 자빠져서 기절하듯이 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시각, 프랑스의 군사 고등학교에 다니는 샤를 예거는 친구들과 함께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프랑스 군사 고등학교 학생들은 소련, 독일을 모두 싫어했다.
"전쟁 몇 년 동안 질질 끌어서 둘 다 망해라 제발..."
에릭이 말했다.
"근데 재네 싸우다가 우리까지 휘말리게 될 가능성 있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샤를이 말했다.
"우리도 전쟁 끝난건 아니잖아. 휴전 중인거지."
"그게 뭔 소리야? 우리 크라우트랑 불가침조약 맺었잖아."
"넌 그깟 조약을 믿냐? 조약이란 원래 파기하라고 있는거야!"
"독일이 밀리면 우리가 알자스 로렌으로 들어가야 하는거 아닌가?"
"알자스 로렌은 되찾아야지."
'그래도 내 세대에 전쟁나는건 싫은데...'
샤를과 친구들은 외국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재미있었지만 솔직히 진짜 참전하기를 원하지는 않았던 것 이다. 그 날 샤를은 에릭 녀석과 함께 도서관에 공부를 하다가 지겨워서 야간에 술을 마시러 몰래 나왔다. 에릭이 말했다.
"불가침 조약은 독일 쪽에서 먼저 깨트릴 것 같냐? 우리가 깨트릴 것 같냐?"
"그건 모르지만 불똥 하나만 튀면 어느 쪽이던 터지겠지."
"전쟁 나면 초급 장교가 제일 위험하겠지?"
"하루살이 소위라고 하잖아."
에릭은 잠시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전쟁나면 뒤지는거 아니겠지?"
"병신 새끼..."
한편 1940년 11월, 프랑스의 항공기가 알자스 로렌 영공을 침범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인쇄소에서 '발포한다', '독일인인가?', '항복하라', '무기를 버려라.' 와 같은 독일어 속어 표현이 적힌 가이드를 인쇄하고 있었다는 정보가 입수되었다.
한스 파이퍼는 이것이 소련측의 역공작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측 병력을 서부전선으로 배치시키게 하기 위한 레드 오케스트라의 공작이 분명하다!'
최근 입수된 정보에 의하면, 이탈리아는 그리스와 수에즈 운하를 공격하지 않겠다고 영국과 비밀리에 조약을 맺었다. 한스는 현재 독일이 프랑스, 영국과 유지하고 있는 평화가 오래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몇 장성들은 현재 동부전선에서 적당히 퇴각하여 전선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스는 모스크바를 향해서 전력으로 공세를 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평범한 자들에게는 역사의 운명을 바꿀 기회가 오더라도 두려움에 그 기회를 놓쳐버리는 법이지. 나폴레옹조차 이루지 못한 역사의 과업을 내가 이룰 것 이다...'
- 작가의말
내일부터는 진짜로 휴재하고 당분간 외전만 올라올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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